잘 읽히는 글이란?

작가가 생각하는 것을 독자에게 명확히 전달하는 글이다.

독자들은 글을 읽음에 있어 혼란스러운게 적고,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읽기만 해도 모든 정보가 차곡차곡 들어와 알아서 맞춰지는 그런글이 바로 잘 읽히는 글이다.

이런 글은 빠르게 훑어도 쉽게 읽히고, 그렇기에 독자들의 피로감도 상당히 적다.


이렇게 독자에 부담이 가장 적은 방식으로 최적화된 플랫폼이 바로 웹소설이라고 본다.

웹소설은 회차마다 연재되는 방식에 뒤로가기 버튼 한번이면 읽는걸 그만두고 다른걸 찾으러 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만일 웹소설로 삐까뻔쩍한 문체로 

우리 앞에는 모든 것이 있었지만 한편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모두 천국으로 향해 가고자 했지만 우리는 엉뚱한 방향으로 걸었다. 말하자면, 지금과 너무 흡사하게, 그 시절 목청 큰 권위자들 역시 좋든 나쁘든 간에 오직 극단적인 비교로만 그 시대를 규정하려고 했다.

이러면 과연 누가 읽을까. 

위 글은 (당연히) 잘 쓴 글이다. 알사람들은 알겠지만 윗 문장은 두도시 이야기 첫문단 일부이다. 

생각할 거리도 많고, 비유적인 표현도 정말 많기 때문에 천천히 음미하며 곱씹어야 그 풍미가 우러나오는 문장이지만, 웹 환경 친화적인 '술술 읽히는' 문체는 아니다.


그럼 이 생각이 들것이다.

아니 그럼 고전 명작 읽을 필요도 없고 문장력 기르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인가?

그리고 그게 SCP랑 뭔 상관이라는거지?


첫번째로, 오히려 문장력을 잘 기르고 독자들에게 정보를 잘 전달을 해주야 술술 읽히는 문체가 완성이 된다. 그리고 이하 내용은 이렇게 잘 짜인 문장이 어떤 특징, 구성, 역할을 가지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두번째로, SCP는 그 자체로써 웹소설과 여러 부분이 맞닿아 있다. SCP는 웹소설과 마찬가지로 독자가 언제든 흥미가 떨어지면 뒤로가기 버튼을 누를수 있다. 이점이 웹소설과 마찬가지로 독자들의 부담을 덜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또한 SCP를 묘사하는 문체는 윗 글처럼 문과적이면서 곱씹을수록 향이 나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도 순문학과 간극이 존재한다.

(테일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개인적으로 '태평성대' 테일의 첫문장은 '두 도시 이야기' 급이라 생각한다.)


여하튼, 서론이 길었는데, 이번 시간엔 잘 읽히는 글을 쓰는 법, 즉, 명확하고 독자가 상상하기 쉽게 하고, 독자의 혼란을 최소화 하는 그런 문장을 쓰는 법에 대해 다룬다. 그리고 '재미'란건 약간의 모호함, 궁금증에서 오기 때문에 주요한 서술적 트릭을 위해선 아래 지시사항을 조금씩 위배해야 할 것이다.

어찌되었든 독자는 읽기 힘들면 뒤로가기를 누를거고, 작가는 그걸 최대한 막아야 한다는 것은 변함 없다.





1. 떠올리기 쉽게 쓰기


예시를 보자.

아래는 잘 안읽히는 글의 예이다.

나는 음료수를 마시고 있다. 그리고 얼굴을 찡그렸다. 쓴맛 때문이다.

카페에서 커피를 시켰는데, 내 취향과는 맞지 않다. 커피는 아메리카노였다.


아래는 잘 읽히는 글의 예이다.

난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한입을 먹자마자 올라오는 쓴맛에 난 얼굴을 찡그렸다.


이 두 글의 차이가 무엇일까?

윗글은 독자에게 정보를 역순으로 제공한다. 독자는 제공하는 정보를 즉각적으로 머릿속에 그리게 되는데, 윗글의 경우 독자들의 머릿속 심상을 계속해서 수정하고 부정해야 한다.

'음료수? 뭐 콜라인가? 뭐? 쓴맛이 난다고? 썩어버린건가? 아 카페였구나, 쓴 커피를 먹고있었던거야. 그럼 어떤 커피지? 아 아메리카노였네.'

이게 이 두문장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문장이 이따구면 독자들은 피곤해 죽을것이다.


잘 읽히는 글이란 명확하게 독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면서도 독자가 그것을 쉽게 떠올리고 오해하지 않도록 중재하는 글이다.

그러기 위해선 정보를 순차적으로 찬찬히 제공하여야 한다.

주체 설명을 명확히 한 뒤에 이어서, 배경에서 행위로, 넓은 것에서 좁은 것으로, 보편적인 것에서 특수한 것으로, 바깥에서 안으로, 과거에서 현재, 미래 순으로 차근차근 설명하는게 좋다.

또한 반전과 같은 이유로 앞서 소개한 정보를 부정해야 하는 경우, 올바른 정보에 대해 다시한번 강조할 필요가 있다.


+ 이에 관한 여담

위에서 밖에서 안으로 묘사하라고 했는데, 이는 한국어의 문장구조로 인한 것이라 생각한다. 주어 목적어 서술어 순으로 이루어졌기 때문. 

나는 밥을 먹는다: 주체 설명 - 배경 상황(목적) 설명 - 세부적인 행동 설명(동사) (주어, 그리고 밖에서 안으로)

대신 영어는 문장구조가 달라 조금 다른 방식을 취한다. 영어권에선 대개 안에서 밖으로 작은것에서 큰것으로, 일부에서 전체 순으로 대개 설명한다.

I eat meal: 주체 설명 - 주체가 하는 행동 설명 - 그리고 그 배경(목적) 설명 (주어를 기준으로 안에서 밖으로)

3199나 106의 격리실 설명을 보면 이 점을 알 수 있다.(내부 격리실 먼저 설명한 뒤 외부 격리실을 설명한다.)

KO를 쓴다고 이 구조를 굳이 뒤바꿀 필요는 없지만, 한국인 입장에선 이게 조금 더 알아듣기 편할 것이다.


+ 특격차에 관한 여담

재단 특성상 특격차가 설명보다 앞에 있어 이런 정보의 순차제공을 1차적으로 방해한다.

개인적으로 특히나 이 점이 재단의 창작의 문턱을 꽤나 높이는 요인이라고 본다.

다들 개체의 실제 관리법처럼 쓰고, 이미 그렇게 많이 쓰여 있고, 다른 본사의 저명한 작가들도 많이들 이렇게 썼고, 또 본사 가이드에서조차 이렇게 쓰라고 말하지만... 

난 이점에 대해서 조금 회의적이다.

난 어디까지나 SCP는 '글 창작'이 메인이 되는 창작 플랫폼이라 생각하기에 특격차의 역할은 이후 설명에 나올 요소를 암시하고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역할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 생각한다.

이에 대해선 나중에 시간이 될 때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다.


+ 그리고 좀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중요하므로 짚고 넘어가겠다.

문장이 꼬여 있으면 읽기가 힘들다.

특히나 절이 많아지면 문장의 길이가 비대해지고, 그럴수록 문장의 구조는 복잡해진다.

너무 긴 문장이 있지는 않은지, 너무 많은 문장이 연결되어 있지는 않은지 꼭 확인해야 한다.

또한 중의적인 문장이 있으면 독자에겐 상당히 고역이다. 항상 그런게 있는지 체크하고 최대한 없애는 방향으로 퇴고 하는거 추천한다.




2. 명확한 주어

무조건 주어가 명확해야 한다. 모든 문장이 그래야 하며, 특히 설명란은 더더욱, 중요한 문장이라면 필수적으로 주어가 명확한지 꼭 확인해야 한다.

주어가 명확하지 않은걸 하나 보자

SCP-XXX-KO는 한마리의 새(SCP-XXX-KO-1)와 그 새가 품은 알(SCP-XXX-KO-2)을 칭한다.

'해당 개체'는 녹색빛을 띄며...

해당 개체라면, 새? 아니면 알?

주어가 명확하지 않고 이로 인해 '녹색'이라는 서술이 갈곳을 잃었다. 어쨋든 이 둘중 하나는 녹색이라는 정보가 주어졌지만 이제 곧 우리 머리속에서 사라질 것이다. 우리가 떠올리지 못하기 때문.

이렇게 중의적인 표현이 있진 않은지 무조건 확인해보고, 최대한 줄여야 한다.


이 외에도 다른 예시를 들어보겠다.


D-2685: 다들 무사하냐?

D-1634: 어 괜찮아.

D-1662: 니 앞길부터 챙겨라 남 걱정하지 말고

D-4312: 지부터 챙겨라 남 참견하지 말고

D-1634: 싸우지좀 마라 우리 임무 잊었어?

D-2685: 임무는 개뿔 우리 살아 나가는게 우선이다.

D-4312: 잔말말고 캠코더나 들어.

D-1662: 캠코더 내가 가지고 있다.

D-2685: 빨리 내놔.


와우 쉬바

4명의 D계급이 서로 대화를 하는 장면이다. 머릿속에 그려지는가?

1도 안그려질거다. 이름이 다 일련번호기 때문에 누가 누군인지, 누가 누구에게 말하는지가 존나 불분명하다.

옆에 메모지를 뜯어서 펜으로 필기를 해가며 읽어야 이해가 겨우 갈 정도이다.

말하는 주체를 명확히 하려면? 각각의 캐릭터에게 유일한 성질을 부여해야 한다.

예컨데, 누구 하나는 일련번호가 3자릿수라 혼자 튀어 보인다거나, D계급이 아닌 사람이 끼어 있거나, 존댓말을 쓴다거나, 성격이 뚜렷하거나 이런식으로 말이다.

그럼 이름이나 일련번호는 모르더라도, 뚜렷한 캐릭터를 바탕으로 우리는 상상을 하게 된다.

즉, 이름이 없어도 독자는 누가 이것을 말하는지 알 수 있어야 한다.

요건 특히 순문학에서 자주 찾아 볼 수 있는 팁이다.


MTF 알파: 컨트롤? 실내로 진입하겠다.

컨트롤: 수신. 적대적 독립체를 자극하지 마라.

MTF 알파: 수신.

최 연구원: 저, 적대적 독립체라뇨? 저, 저안에 괴물이 있는건가요?

D-615: (낄낄거림) 연구실에서 강화 유리 너머로 볼땐 실감이 안났나보죠?

최 연구원: 무슨소리야, 나 이론 쪽이야. 실험실 들어가보지도 않았어.

MTF: 잡담은 그만 하고, 천천히 진입합시다. 라이트는 잠시 꺼주십시오. 독립체는 빛에 반응 합니다.


어떤가? 각각의 인물들의 성격도 확고하고, 거로 호칭도 안겹치면서 말투가 다르다보니 앞의 이름 딱지가 없어도 누가 어떤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지 않은가?

주요한 캐릭터나 반전이 될만한 캐릭터들 위주로 이런 기억에 남을만한 특징을 부여하는게 좋다.

(이거는 특히나 평서문을 쓸 때 주요하게 작용한다. 이 대사가 누가 하는 말인지 간간히 독자에게 상기시켜 주면서도(XXX이 말했다 등으로 ㅇㅇ) 이게 없어도 독자들이 바로 대화의 주체를 파악할 수 있게 해야 한다. )


이외의 또다른 예시로는 인명이 될 수 있겠다.

수많은 사람 이름들이 나오게 된다면 독자들은 혼란스러울게 뻔하다.

각각의 이름에 특징을 부여하거나 뒤의 호칭을 붙여서 구분할 수 있게 하자.

이름에 특징을 부여하는 방법으론, 외자나 특이한 성을 쓰거나(김철, 남궁민수 등) 유명인과 이름이 비슷하거나(손형민, 엄정식) 하는 방법을 한번 제시해 본다.




3. 보여주기와 말해주기

전에 말한적이 있지만 중요하므로 한번 더 이야기 하겠다.

독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냥 텍스트로 풀어서 설명하는거고, 다른 하나는 컨텍스트를 통해 암시하고, 그걸 직접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손대면 죽는 돌이 있다.

그냥 단순히 '이 돌은 손대면 죽는다.'라고 쓰면 이건 말해주기인것이고.

'돌 주면에 몇구의 백골이 있다. 이중 몇구는 꽤 최근에 죽은것으로 보이는데, 그것들의 공통점으론 모두 이 돌에 접촉한 상태라는 것이다.'

이게 보여주기이다.


또다른 예시를 들어보겠다. 이번엔 게임이다.

설산 한 중턱에 여행자의 텐트에 피가 묻어있고, 침낭 주변엔 약재와 연금술 제작대, 주변엔 호랑이의 시체가 있고, 주변 쪽지에는 누군가의 일기가 있다. '어머니의 병세가 날로 심해진다. 마을 의사는 '붉은 고사리'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그걸 찾기 위해선 북쪽 설산으로 향해야 한다고 했다. 그곳에는 호랑이가 있다고 하던데, 사냥꾼과 동행하기에는 상황이 급박하다.' 좀 찾아보니 설산 정상쯤에 붉은 고사리까지 있으면 완벽.

이걸 보면 우리는 '아, 어머니를 구하려고 연금술사가 약재 찾으러 설산 왔다가 봉변 당했구나.'라고 알 수 있다. 이것에 대해 말해주는 텍스트는 별로 없지만 말이다.

스카이림 게임 해본사람은 알것이다. 베데스다가 이런 미장센을 이용한 보여주기의 달인이라 생각한다. 버그는 좀 많지만.


여하튼, 독자들은 보여주기와 말해주기 중, 보여주기를 통해 얻은 정보를 더 잘 기억한다. 

즉, 주요한 단서는 최대한 보여주기를 통해 제시되어야 한다. 

그러나 역시 장단점은 존재한다. 

말해주기는 보여주기 만큼 독자들에게 강하게 정보를 각인시켜주지는 못하지만, 작가 입장에서 상당히 편한 기법이다. 말해주기면 위의 몇줄의 상황을 한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기 때문. 역시 잘 저울질 해서 사용하는게 좋다.




4. 독자들을 이끄는 떡밥들

그리고 술술 읽힌다는 것은 기본적인 재미가 받쳐준다는 것이다.

단순히 구조가 단순명확하고 떠올리기 쉬운것만이 잘읽히는 글이 아니다.

내가 오늘 뭘 먹었는지, 맛은 어땠는지 이야기를 한들,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을거다.

결국 잘 읽히는 글이라는건 독자들이 흥미를 가지고 계속 글을 읽어나가는 원동력을 제시하는게 가장 중요하다.

이거는 내가 이전부터 '떡밥'이라는 용어 하에 자주 설명 한 적 있다.

좋은 떡밥이 되기 위해선 거창할 필요가 없다. 별거 아니더라도 그것을 잘 포장 한다면 진짜 재미있게 글을 쓸 수 있다.

이거는 순전히 작가의 필력에 달린 문제이기도 하고, 이전에도 충분히 설명을 한 적이 있으므로 이렇게만 이야기 하고 넘어가겠다.



결론

잘 읽히는 글이란 독자들을 배려하는 글인거다. 독자에 입장에서 천천히 어떤 정보를 어떤 순서로 얻게 되는지, 어떤 부분에서 혼란이 있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이 잘 받아들일 수 있게 제시할 수 있는지 계속해서 고민해야 한다.

독자에게 주요한 정보를 은근슬쩍, 효과적으로 제공하며 지속적으로 독자의 흥미를 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