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서사의 중요성 시즌 2. 다만 여기서 봐볼 것들은 아이디어만 놓고 보면 뇌절 취급 받기 딱 좋지만 그 외 다른 살을 붙여서 살아 남거나 좋은 평가를 받은 케이스들이다.


서론으로 말하자면 내 기준 뇌절의 핵심은 '재미없게' 막 나가는 것이다. 사실 뇌절이라는게 문제시 되는 이유가 재미는 없는데 마구 이어나가고 확장하기만 해서 그런건데, 재미가 있으면 그건 후속작이고 인기에 힘입은 연재지 뇌절은 아니라는게 내 의견이다. (같은 맥락으로 요즘 SCP가 뇌절이라는 의견에도 동의하지 않는 바이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재밌게 읽었다고 좋은 평가를 내렸기에 살아남은 작품들 아닌가)


SCP-343, 신


343은 헤드 카논에 따라 갈려서 다소 애매하긴 하지만 일단 내 헤드 카논에 따라 집어 넣었다. 343이 진짜로 이것저것 다 할 수 있는 야훼나 창조주가 맞고 설명이 이것 뿐이었다면 솔직히 얘는 그냥 시리즈 1의 적폐들 중 하나였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343이 사실은 그런게 아니라 그냥 광범위한 정신조작 능력자라는 떡밥을 던지고 이걸로 해석의 다양성이 생기게 해놓아서 괜찮은 SCP라고 본다. (그래서 나는 343이 진짜 신이라는 해석 보다는 그냥 정신 조작 능력자라던가 6666의 므두셀라라던가 하는 식의 다른 해석을 더 선호한다.)


SCP-2241, 캐머런 더 크루세이더


요약하자면 염동력+현실조작 능력을 가졌는데 나이를 먹을 수록 더 넓고 강한 변칙성을 발휘하고 있다는 7세 남자 아이. 이렇게 설명만 놓고 보면 그 말도 많고 탈도 많다는 076 아벨도 한 수 접어주고 갈 정도의 메리 수 캐릭터인데... 얘는 능력도 능력이지만 후반부에 나오는 이러한 존재가 있을 때 일어나는 O5 평의회와 윤리위원회의 대립이란 서사가 존재해서 살아남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그런 서사가 평의원과 위원회 소속 인원들 간의 대화를 통해 더 잘 드러났으면 좋겠다라는 평이다.


SCP-2845, 사슴


유튜브 희생양 Top 3 중 하나... 변칙성 위주로 보자면 물질 조작이 가능한 인면 사슴에 '신'이라고 칭해질 정도의 존재라는 설명 때문에 뇌절 취급 받기 좋을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 얘의 핵심은 이러한 존재가 나타났을 때 격리하기 위해 재단이 무슨 짓까지 할 수 있는가라는 재단의 본질에 대해 다루는 격리절차가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SCP-2317, 또다른 세상으로 가는 문


사슴과 함께 유튜브 희생양 Top 3 중 하나다... 그냥 특징만 보자면 에리케샨 문명에게 봉인당했고 후에 금화살회에 의해 봉인 깨지는 바람에 봉인 풀리는 중인, 30년 후에 세계 멸망시킬 괴물 정도인데, 얘 역시 그냥 변칙성 보다는 보안 인가에 따라 달라지는 내용과 그를 통해 밝혀지는 진실이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별칭부터 문에 초점을 맞춰서 다 보기 전까진 실체가 뭔지 정체를 숨긴다.


SCP-3485, 오메가 메시에


살아남은 작품인 만큼 넣긴 넣었다. 실제로 서사를 보면 황당하기 그지 없긴 한데, 나한테는 개그가 잘 안 와닿았기도 하고 저 '오메가 메시에'라는 거창한 이름 때문에 더 그렇다... 차라리 별칭이 랍'스타'였다면 확 와닿았을지도. 암튼 그래도 그냥 짱짱 크고 워프하는 우주 가재라는 특징만 썼을 때보다는 확실히 재밌다.


SCP-3812, 내 뒤의 목소리


"대상의 강함은 작품의 질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려주는 SCP. 2747과 함께 워낙 명실상부한 능력을 지닌 탓에 재단의 vs 놀이를 종결 시켜버리고 아무 의미 없게 만들어 버릴 정도로 강하다. 사실상 어느 세상을 가든 그 세상의 작가와 같은 힘을 내는 녀석인데, 이보다 더 강한 존재를 내놓는다는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언젠가 전능에 '전지'하기까지 한 SCP가 나온다면 그때서야 최강 기록 갱신되겠지) 그 정도로 강한 녀석이지만 3812의 주요 특징과 서사를 통해 밸런스 붕괴 뇌절 일으키지 않고 성공적으로 만든 SCP.







번외) SCP-2020, 너무 뻔하지?


얘는 뭐 그 자체로도 여기 글의 예시가 될 수 있지만 자체 특징부터 서사까지 이 주제를 관통한다. 얘가 아이디어라고 풀어놓는 것들 중 하나를 살펴보면...


아니, 아니, 잠깐만. 얘들아. 나한테 아이디어가 하나 있거든. 더 좋은 아이디어가. 어떤 시설이 있다고 치자고, 응? 이 시설이 먼 옛날 어떤 때에 어떤 사람이 세계를 멸망에서 구해내기 위해서 만든 거라고 치자고. 예컨대, 지구가 망할 만큼 큰 구멍을 내 버릴 수 있는 어떤 게 있어. 그런데 시설이 나서갖고 "게임 끝났슘. 다시 플레이하시겠슴까 와이 슬래시 엔" 똬악 했더니 그 구멍이 확 줄어들어서 마리아나 해구가 되어 버린 거야. 왜냐하면 그 시설은 엄청 많은 일을 할 수가 있거든. 그 물리학하고 첨단기술을 가지고. 어, 너무 뻔하지? 이 아이디어가 뭐 어떻게 이야기로 쓰여질지 어떨지 그건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뭐지, 배경설정은 될 수 있지 않을까? 내 생각엔 내가 생각할 수가 있을 거 같어… 


읽어보면 대강 눈치들 챘을 것이다. SCP-2000, 재단의 혁명이자 2000 경연의 우승작이다. 그 밖에도 쭉 나열하는 아이디어들은 각각 2000, 2099, 2085, 2048, 2003, 2020, 2001-J 이다. 이렇듯 얘 자체가 아무리 띵작도 아이디어만 횡설수설(?) 늘어놓기만 하면 딱히 좋게 보이진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내가 시즌 2를 적게 된 이유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이 주제에 2241이 너무 잘 맞아서 안쓰면 아쉬울 것 같아서고, 또 하나는 뉴비들에게 가이드에서 한참 벗어나도 좋은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당장 '총체적 난국 탈출 메뉴얼'에서 나쁜 아이디어의 예시로 나오는 케테르이다. 사람을 많이 죽인다. 인간형이다. 능력자다. 격리하거나 죽일 수 없다. 종교나 신화에서 모티브를 따 왔다. 현실에서 일어난 거대한 재해를 일으켰다. 농담 항목이다. 이쁘고 멋지고 짱짱 세고 카와이하다. 그냥 먼치킨 메리 수 SCP다. 

이 항목들. 순수하게 변칙성 아이디어만 놓고 봤을 때 이 항목들 중 하나라도 안 쓰였던 항목은 없다. (당장 격리 못하는건 '아폴리온', '케르눈노스', '아르콘', '쿠슘' 같은 등급 붙은 SCP들 종특이다.) 이쁘고 멋지고 짱짱 세고 카와이하다... 뭐 이것도 외적으로 멋져 보이는 애들은 대략 해당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디코나 아카에서 사람들이 아이디어 풀 때 괜히 서사까지 같이 푸는게 아니다. 아무리 아이디어가 구리고 뇌절 같아 보여도 서사가 캐리해 내면 성공적으로 글을 쓸 수 있다. 고로 지금 구려보이는 아이디어들도 고이 모셔두자, 혹시 모른다. 나중에 띵작의 재료가 될지도. (당장 내 작품 중 하나도 내 최초 아이디어의 리메이크다.)



여담이지만 이런 말 잔뜩 늘어놓는 나도 서사를 그렇게 잘 쓰는 편이 아니다. 당장 지금도 쓰는 글에서 서사 1은 해결 했는데 서사 2를 해결 못해서 고생하는 중... 성경X재단 크로스오버 소재 만으로 데몬버스 같은걸 뽑아낼 수 있는 서닌장이 대단하게 느껴진다.(굳이 데몬버스를 예로 드는 이유는 비슷한 성경 크로스오버 사례인 문의 수호자를 내가 별로 안 좋아하기에 더 대비되어 느껴지기 때문이다.) 뭐 별 수 있나. 그냥 될 때까지 계속 쓰고 또 쓰는 수 밖에 ㅡㅡ;;


그럼 다들 건필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