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어먹을.'

 회장이 시장 개척을 위해서 직접 세계의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꼭 이런 곳들이 있었다. 지성체들은 '세계 멸망'이라 부르길 좋아하는 광경들 말이다. 아니면 그 직전의 모습들도 상관 없지만, 지금 이래서야 세계 멸망은 확정이다.


 회장은 이런 광경을 볼 때마다 지성체란 게 참 오만하기 짝이 없단 생각을 하지만, 놀랍게도 지성체가 멸망한 게 '세계 멸망'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은 것 역시 사실이란 걸 잘 알았다. 양자역학이란 게 철학적으로 전개되거든 인식을 이렇게 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니까.


 'Contain.'

 멸망을 앞둔 세계를 방문한 와중에 회장은 꽤나 익숙한 요소에 저렇게 반응했다.

 SCP. 아, 지성체란 가히 태양의 빛마저 거래할 정도로 탐욕스러우니, 땅에서 그들이 벌인 땅값이네 부동산이네 하는 것을 생각하면 SCP란 개념은 딱 거기서 벗어나질 못한 것이었다. 인간이 초자연적인 존재와 공존하는 것을 도무지 감당할 수 없어서, 결국 인간의 영역에 끌어내리고 또 끌어내린 산물이었다. 그럼에도 결국 지금의 멸망을 앞두고서, 세계 멸망에 대비해서 갖춰둔 일련의 시스템조차 쓰지 못 하고 그대로 멸망을 앞두고 있는 꼬락서니란!


 비록 지성체가 없더라도 세계는 존재한다. 애초에 지성체의 감각이라고 하는 것부터가 물질과 상호작용을 이룬 산물이란 걸 감안하면 지성체란 존재는 착각 속에 허우적대며 일상이란 걸 지내고 있다. 그렇다면 조금 의문이 드는 점이 있다.


 지금처럼 '일상'관 눈꼽만큼도 관련없는 요소와 여태까지 부대끼고도 과연 일상이란 게 존재했던가?


 이 시점에 회장은 자신이 시간 낭비를 하고 있는 걸 느꼈다. 지금 회장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시장 개척'을 위한 것이고, '시장'이라고 하는 건 최소한 화폐 개념은 있는 지성체들이 존재해야 성립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멸망을 앞두고 있는 와중에 시장 개척을 운운하며 돌아다니고 있는 건 그저 시간낭비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회장이 이 세계 멸망을 자기가 나서서 걷어낸 다음에 우리 회사 물건 좀 사라며 광고를 하자니, 그건 그것대로 비위가 상하는 짓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여길 떠야 옳을 텐데도 회장이 고민하고 있는 건, 결국 회장은 스스로를 사람이라 여기는 까닭이었다.

 이 곳에 불어닥친 세계 멸망의 근원을 찾다보면 결국 회사 상품의 개발에 도움이 될만한 뭔가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인간적'이라고 하는 건 무엇인가? 사람이 하는 짓이라면 뭐든 인간적인데, 그렇다고 사람을 학살하는 걸 두고서 '인간적'이라 하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참 이상하고 저열한 현상이 아닌가. 인간이 저지르는 모든 행위가 전부 인간적인 행위인데도, 그렇게 인간적인 행위를 구분하고 있단 건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아, 사르킥 숭배를 생각하진 않았으면 한다. 비록 회장의 전적을 생각하면, 윤리적 기준이 뒤틀렸단 점에서 그들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적어도 회장은 미학적 기준이 뒤틀린 건 아니었으니까. 무슨 말이냐고?


 사르킥 숭배란 놈들의 행태를 보라. 이 놈들은 그야말로 테러리스트라서, 커뮤니티에 '그 전술핵'을 투하하는 것에 대해서 최소한의 기준이나 조건조차 없이 그저 개인적인 사유만으로도 거리낌 없이 투하하는 미친 새끼들이다. 사르킥 숭배가 아니라 할매/할배 숭배라 해도 되겠지. 사르킥은 할매/할배가 아니라 '살점'을 말하는 거라고? 오, 그 전술핵도 내용 보면 그닥 다를 건 없는 것 같던데.

 회장은 적어도 그 정도로 미학적 기준이 뒤틀린 건 아니었다. 회장이 스스로를 '사람', '호모 사피엔스'라 여기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적'이란 말은 '윤리적 기준'을 말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미학적 기준'에 따라 규정된다. 미학에 윤리도 포함되는 것 아니냐면 할 말은 없지만, 좀 다르게 보자. '세계 멸망'이라고 하는 것을 '미학'으로 평가할 순 있어도, '윤리'로 평가할 건 못 되지 않나?


 여기까지의 딴 생각을 순식간에 해치운 다음에, 회장이란 인간이 그 다음으로 생각한 내용은 이랬다.


 '아, 섹*하고 싶다.'

 세계 멸망을 앞둔 세계에 손님으로 갔단 사람이 할 생각인가도 싶지만, 이게 인간이었다. 회장은 이러고도 자신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이 이러는 게 어디 한두 번이던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지성체의 멸망이 세계 멸망이라 해도 되는 이유를 양자역학이 제공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런 해석도 될 테다. 특정한 개인의 죽음과 함께 세계가 멸망하는 것이다.


 여전히 그러고도 남아있는 이들이 있다곤 해도, 각자의 죽음 역시 그 나름대로 세계 멸망이 따로 없을 것이다. 물질이라고 하는 것들 중에서 아주 발칙한 녀석들은 이런 시스템을 적당한 환경이 주어지거든 스스로 만들어내곤 한다. 이걸 지성체는 '생명'이라고 부르길 좋아하고, 굳이 그 정도까진 안 가더라도 이 시스템에 합류한 물질은 최대한 생존하려고 드는 본능을 구축해서 살아남으려고 든다.


 정작 그런 주제에 물질과 생명을 구분하려고 애쓰는데, 기실 그 둘 사이에 차이가 뭐란 말인가?

 물질의 입장에서 보라. 양자역학조차도 결국 물질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 그 물질의 입장에서 지성체가 싸그리 다 죽든 말든 그게 대체 뭔 상관이란 말인가?


 아까 전과 완전히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고 하거든, 옳다. 아까 전엔 전술핵 숭배자들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번엔 다시 SCP '제단'인가 하는 종교단체에 대해서 말해보려는 것이니까. 어, 과학단체고 '재단'인 거 아니냐고?

 굳이 창조론자들의 병신스러운 논법이 아니더라도, 과학이라고 하는 게 '패러다임'이란 건 이미 유명한 사실 아니던가. 그런 이상에야 과학이란 것도 종교의 일종이다. 그 종교에선 물질과 생물을 구분할 수 없다면서도 편의상 구분하는 게 좋으니깐 구분하려고 드는 좀 괴상한 움직임이 있다.


 SCP라고 하는 이들의 숭배방식은 대체로 이렇다. 초자연적인 존재를 어떻게든 인간의 영역에 끌어내린단 얘기는 아까 했고, 그런 다음에 그걸 또 굳이 자기네들 몸 속에 품고서 통제하려고 드는데, 그 이유로 드는 게 위험하네 어쩌네 하는 것이었다.

 아주 같잖고 어찌 보면 역겨운 명분이었다. 그들은 그저 그 힘을 자기네들 것으로 삼고자 하는 욕망을 그런 식으로 포장하려 든 걸 테다. 그러니깐, 그런 걸 애써 확보하고선 관리만 하지 않고 실험 같은 것도 하지 않던가. 왜? 관리만 해도 빠듯한 걸 갖다가 왜 실험을 하고 그것들의 사항을 조작적 정의를 내리려 애쓰는가?

 그래, 그렇게 해서 지금 이런 상황에 대항이라도 하고 있으면 모를까, 그 관계자란 놈들이 죄다 목 메달고 대롱대롱 흔들리는 모습이 아주 그냥 장관이었다.


 그래.


 어찌 보면 지금 이렇게 다들 목 메달고 뒈져있는 꼴만큼 '인간적'인 광경도 좀처럼 없을 터였다. 이미 세계가 멸망했거든 여기 메달린 이들의 수만큼은 넉넉하게 망하고도 아직 이런 움직임에 저항하려 애쓰는 이들의 기척만이 이 행성에서 간간히 느껴지고 있는 형편이었다.


 지금 회장의 눈에 비치고 있는 건, 이 와중에도 수도 없이 많이 펼쳐진 평행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었다. 어느 곳에선 멸망은 커녕 생생한 데, 어느 곳에선 이미 멸망해서 D-데이 찍고도 시간이 지나고 있는 곳들도 있었다. 세계가 멸망한 방식들도 참 다양했다. 어느 곳은 운석이 떨어지다가 마검에 홀려서 상황이 종료된 곳도 있으며, 어느 곳은 또…….

 참으로 다양한 시공간 속에서 회장이 의식을 품고 있는 곳이 바로 이 곳이었다.


 이런 와중에 회장은 섹*를 속으로나마 외치고 있단 점에서 일단 제정신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여기저기 목 메단 시체들 중에 적당한 걸 고를까 하냐면, 그러고도 남을 게 회장이었다. 다만 지금 당장 그의 눈앞에 보이는 광경들은 회장이 잠시나마 섹무새 노릇을 하던 걸 집어치우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회장의 지난 행적들을 보여주는 그 광경에 회장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회장이 알기로 SCP엔 이미 묵시록의 4기사가 있는데, 지금 이건 이것대로 묵시록이었다. 하기야, 회장 본인의 행적도 묵시록이 따로 없지만, 지금 이건 뭐라고 해야되나.


 묵시록만큼 그 얘기대로 제대로 실현 안 된 예언서도 얼마 없을 터였다. 로마 제국이 하느님께 징벌당해 망할 거라고 하더니, 실제로 로마는 제3제국까진 끝까지 가다가 결국 장렬하게 터지면서 망하고 말았다. 그렇기에 인제 와서 묵시록이라고 하는 텍스트에 그나마 가치가 있는 부분은 문학적인 요소들밖에 없으며, 그 대표적인 게 4기사였다.


 묵시록은 세계 멸망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지만, 당대 박해받던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그만큼 약빨을 강하게 줘야만 했던 사정도 읽어내야만 그들이 원하던 '가감없는 해석'에 이를 수 있는 텍스트이다. 결과적으로 그건 사실상 불가능한 경지에 이르렀고, 결국 묵시록을 읽는 이들이 하는 건 싸움박질이 됐다. 그조차도 어찌 보면 가감없는 해석이었다.


 묵시록의 방법론은 다음과 같다.

 지구에 50억 명 정도가 있다고 치거든, 40억 명 정돈 가지치기를 하면 나머지 10억 명은 잘 먹고 잘 살 수 있단 것이다.


 지금은 전부 다 목 메달고 있는데, 왜 묵시록의 방법론이 나오냐고 할 수도 있겠다.

 글쎄, 10억 명 내지는 144,000명 정돈 살 줄 알고서 일을 저질렀는데, 알고보니 죄다 죽어나가고 있더라- 이런 얘기는 너무나 흔했다. 핵무기 같은 게 튀어나온 시점이고, 그 핵무기가 억수로 지랄맞단 걸 알거든 대번에 단골 소재가 되는 얘기다.

 현실은 공산종자들이 역병 퍼트린 게 핵무기보다 더 끔찍하단 말조차 나오곤 있다지만, 그 역병이란 것도 계시록의 방법론과 맞닿은 부분이 강한 것도 사실이다.



 'SCP-231.'

 "세상에 개새끼들이 바글대지만, 그 중에서 왕 노릇하는 이가 하느님이라."


 무신론자이자, 무정부주의자인 회장에게 있어서 이 곳은 그야말로 악몽의 소굴이다.


 "개자식들이 전부 다 이런 식으로 반성하고 있으니, 이건 이것대로 낙원이겠다."

 회장은 추모와 조롱을 함께 섞어서 쏘아붙였다.


 이들에겐 세계 멸망의 순간이지만, 회장마저 이 와중에 함께 휘말릴 필욘 없었다.

 이 곳도 슬슬 하느님이 죄다 수거해갈 텐데, 그 하느님이란 작자와 굳이 엮일 정도로 회장의 비위가 그리 좋진 않았다.


 "괴담 중에 제일 가는 것을 역사라고 부르는구나!"

 회장은 저주를 퍼붓듯 내지른 다음에 주위를 노려봤다. 역시나 대롱대롱 매달린 형체들이 일품인 그런 광경이었다.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닌 이는 오랜만이로군."

 신이라고 하는 게 한다는 짓이 이런 기만이라는 건 아무래도 유감스러운 일이었지만, 손님이자 겁쟁이인 회장이 더 이상 나설 생각은 없었다.

 "실례 많았소. 당신이 원해서 이런 걸 한 것도 아닐 텐데."

 끝까지 조롱하는 회장에게 그는 그 표정 그대로 그를 쳐다봤다. 이에 회장은 눈을 감았다가 뜨며 말을 이었다.

 "물난리를 없앤다더니, 이런 쇼라니. 다음 번엔 또 어떤 식으로 처리하실련지?"

 "세간에 알려진 계시록은 너무 요란스러운 방식이라서, 이건 그래도 최근에 한 것 중에선 참신하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저게 무슨 하느님이냐?

 하느님 맞다. 여태까지 하던 생각도 회장이 본인이 침착해지기 위해서 했던 것이다.

 이 상황을 최대한 납득하기 위해서.


 "또 볼 일은 없었으면 좋겠군."

 "못 볼 꼴 보여줘서 미안하네."

 "방문한 날을 잘못 잡은 내 잘못이 더 크겠지."


 회장은 그렇게 자리를 떴다.

 이런저런 사정을 다 넘겨두고 보거든, 아무래도 이사하려고 분주한 집에 들러서 세일즈를 하려던 꼴이었다.


 그제야 회장은 참 부끄러운 짓을 저질렀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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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문 챈에서 대회 소식을 듣고 참가해봤다. SCP에 대해선 잘 모르니, 어떻게 잘 써졌는지 모르겠다.


 읽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