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레 멸망이 도래했다. 그것은 풀려난 SCP 개체의 난동일 수도 있고, 고대 신의 봉인을 실패해서일 수도 있고, 아니면 하다못해 어떤 멍청이가 병균형 개체를 접하고 손을 안씻어서인지도 모른다. 


웃긴 일이긴 하다. 재단에서는 그깟 평범한 사람들 하나 살리고자 그 많은 일들과 범죄를 저질러왔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다니. 정말 기울어지는 널판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하찮은 달팽이처럼 어떠한 재앙 속에서도 살아남았는데. 피 묻은 거품 점액질이 끈적거림이 작아지더니 달팽이는 그대로 정상이라는 세상의 발판에서 떨어져버린다. 한 번, 단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하면 가속도가 붙기 시작하여 어디 손을 내밀 틈새도 없이 바싹 말라버린 더러운 흙바닥에 떨어져 달팽이는 배를 뒤집고 말라 죽어버린다.


일주일 전. 재단의 연구복을 외투로 숨겨 출근하던 클라라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TV에서 송출하는 화면을 쳐다봤었다. 회색빛 길가에서 자신의 목적도 모르는 채 바삐 움직이던 사람들도 클라라처럼 그 걸음을 멈춰버렸다. 일평생 쳐다보지도 못할 O5가 노곤에 붙은 늙은 피부로 멸망을 전했다. 조성된 가장 무도회에 춤추던 사람들은 흔들리며 서로의 구두를 짓밟고 깨진 가면들로 엉망이 된 파티에 쓰러진다. 그렇게 진득하게 붙여뒀던 가면이건만 겨우 약지 하나를 넣은 것 만으로 가면은 깨진 음반이 되버리고 깨진 음반이 화려한 음악 대신에 노이즈 섞인 끔찍한 소리를 파티에 연주한다.


쓰러지기 시작한 도미노는 지금까지 서있던 것이 질렸는지 급작스레 무너짐의 파도를 만들어 전위차의 노래를 연주했다. 재단은 선언했다. 인류가 멸망하기 7일 전이라고.


<잠깐, 6! 우리가 희망이 없는 것은 확연하네! 그렇다고 지금 우리가 보호해왔던 정상성마저 깨트릴 셈인가!>

<7의 의견이 맞아. 우리들이 이런 위기를 한 두번 겪었어? 미쳤다고 바로 장막 정책을 깨버려? 의장으로서 선언하지. 이제부터 자네를 파면하고 계급을 강등할거야.>


O5 평의회, 혹은 다른 말로 이 세상의 공리주의적 실권 지배자. 또 다른 말로는 인류 수호의 마지막 보루. 그렇게 불리우는 O5들이 그들 사이에서도 발표가 혼동스런 일인지 서로 싸웠다. 그리고 그런 싸움마저 재단의 특수 안테나를 통해 모든 전자 매체의 송신되었다.


클라라는 말은 안했지만 알게 되었다. O5들은 가장 현명하고 가장 잔혹한 자들이다. 인류 보존을 위해 무엇도 거리끼지 않을 그들이, 정상성을 수호하기 위해 반쯤 미쳐버린 그들이, 이미 TV에 송출된다는 것을 암에도 그들끼리 싸우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들끼리도 말을 하지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정상성의 수호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세상에 가장 공포스럽고 절망스런 적들을 맞이해도 끄덕않고 인간답지 않은 태도를 보이던 그들이 인간다워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인간적임은 인간의 끝을 맞이할 때가 와서야 생겨날 수 있었다.


<그만 포기하게. 1, 2 그리고 13까지. 자네들도 이미 알지 않은가. 우리의 명백한 패배일세. 인류의 절명은 예정되어 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네. 마지막의 마지막의 마지막 채보마저 파괴되었고 모든 것은 끝날거야.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할 것은 한 가지 뿐이네.>

<그런! 희망이...>


반론을 펼치려던 다른 O5는 목소리를 높이지 못하고 축 늘어진 죽은 개구리처럼 목소리를 늘인다. 무기질적이고 남성적이고 여성같기도 한 인간의 뇌로는 이해할 수 없는 O5들의 목소리가 변형되고 뒤틀리고 흔들리며 대화를 나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를 못하고 멍을 때리며 비현실적인 현실을 자그만한 바보 상자를 통해 본다.


<그래, 덮개를 걷고 계시를 보여줘야지. 우리에게 남은 주어진 시간을 사람들도 알게 해줘야하네. 마지막 남은 7일을 가치 있게 보내도록. 그리고 이제 우리는 모든 것을 희생하여 인류의 미래를 보호하는 대신에 인류의 남은 7일을 수호해야되겠지. 늘 하던 것처럼.>


7일이란 기간은 길지만 인류의 끝을 맞이하기에는 끝도 없이 적은 시간이였다. 삽시간에 세상은 혼동과 카오스에 빠지고 패닉에 빠진 사람들과 현실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로 도시를 가득히 메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사회는 무너지지 않았다. 눈물과 절망으로 지새우는 사람들은 많아져도 폭동과 폭거는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에 전하지 못한 사랑과 이루지 못한 소원을 성취하려는 사람들이 무너져가는 도시를 붙잡고 세상을 끄집었다.


6일. 5일. 4일 3일. 2일 1일.


부족한 시간은 부족할수록 가속했으며 인류의 멸망이 단 하루가 남게 됐다. 시간은 왜 풍요로울 때는 느리고 필요할 때는 빨라지는가. 그런 의문은 클라라는 품고 변해가는 세상을 바라봤다. 세상은 질리도록 인류의 창작물에 나온 아포칼립스와는 달리 발버둥치는 땅바닥의 금붕어보단, 죽음을 수용하고 멈춰버린 숭어처럼 지친 기색을 늘어뜨리고 쓰러졌다. 


그래도 재단은 일해야 한다. 마지막 남은 하루까지, 사람들이 마지막을 정상성의 세계에서 보낼 수 있도록. 절반의 절반도 안되게 출근한 SCP 재단의 연구원들을 클라라는 본다. 모두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허무함. 상실감. 우울함. 공허감. 또 무엇이라 부룰 수 없는 모든 것을 잡아먹을 듯한 검정의 흑빛. 하지만 그들 모두 같은 심장을 가지고 있다. 비록 세상이 끝나기 하루전이라지만 죽기 전까지도 사과 나무를 심는 성자처럼, 모두 다 같이 죽어가는 사과나무를 질긴 흙바닥에 심고 있다.


클라라는 연구복 대신에 애도하는 마음으로 상복을 입고 머리는 치장 없이 묶은 채로 오후가 다된 시각에 재단에 들어간다. 아무도 지각을 지적하는 사람은 없다. 중요한 물품을 담은 가짜 가죽제 손가방을 흔들며 깨져버린 재단의 문을 발을 벌려 그냥 뛰어 들어간다. 어차피 이제 재단의 보안 절차는 어떠한 의미도 갖지 못할테니.


익숙한 연구복들을 보다보니 눈에 익은 남자 한 명이 보인다. 단정하게 댄디 컷으로 맺은 갈색 머리. 천장에는 닿지 않지만 아슬아슬한 거대한 키. 말량광이면서 동시에 튼튼해보이는 모순적인 인상을 가진 제인이라는 이름의 청년. 금발을 늘여뜨린 클라라는 갑자스레 신부복을 입기 시작한 제인을 쳐다본다. 재단에 기초적인 옷 수칙마저 어긴 그에게 뭐라 말하려 하다가, 이내 스스로도 상복을 입어 규정에 어긋난다는 것을 깨닫고 관둔다. 대신에 허무함을 바람에 실어 입 밖으로 낸다.


"이제 끝이네요."

"이제 끝이지."


부드럽지만 강한 스코틀랜드인 특유의 억양이 말에서 우러나온다. 제인은 얼굴도 돌리지 않고 데스크에서 서류를 대충 넘기며 맞대답한다.


"정말 이렇게 끝이 올 것이라건 상상도 못했는데."

"난 언제나 세상이 이 꼴이 될거라 생각했어. 오히려 이제서야 이 꼴에 다다른 것이 놀라울 지경이지."

"말이 심하시네요."


그러자 제인은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껄껄 웃는다. 그러는 바람에 재단 로고가 찍힌 서류가 데스크에 가지런히 놓이지 못하고 연처럼 가로세로 대각선을 만들며 바닥에 떨어져버린다. 제인은 웃음을 멈추고 서류를 줍기 위해 허리를 굽힌다.


"줍지 마요. 어차피 내일이면 다 죽을텐데."

"그것도 그렇네."


서류를 줍는 것이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일상을 지속하려던 강박 행위는 아니였나 보다. 제인은 순순히 인정하고 거기다 서류를 두팔 버려 서류를 위로 쏟아낸다. 로켓 발사를 성공한 NASA의 과학자같이, 하지만 상황은 정 반대로.


"이렇게 끝날 줄은 몰랐어요. 끝이 있을 줄은 알았지만, 인류가 멸망하는 것보다 제가 먼저 죽을 줄 알았는데."


클라라는 MTF의 로고가 씌여진 명찰을 짚으며 말했다. 기동특무부대 중에서도 시간적 변칙 진압을 맡는 과학자와 군무 부대. 시간의 조형적 뒤틀림을 보고 인지하는 것은 어렵고, 설사 인지한다 한들 대처하는 시각부터 이미 늦어버린다. 그럼에도 더 많은 희생자를 내지 않기 위해 투입되는 부대. 그 특성상 개죽음은 흔했고 클라라도 필시 그 끝을 맞이할 거라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었다. 남몰래 보험도 많이 들어놨고, 부모님의 노후만큼은 보장시켜드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너가 기특대 소속이이었나, 그럼 빨리 죽을 만도 하네."

"큭큭 웃지마요. 저는 나름대로 진중한 얘기를 하고 있다고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 PTSD적 웃음을 나누며 웃는다. 그 웃음에 음울하게 꿈틀거리는 딴 연구원들이 쏘아본다. 하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그딴 사소한 것까지 신경쓰기 전까지는 세계 멸망이란 짐은 너무나도 컸다.


"어디 보자... 이제 시간이 7시간도 안남았네요. 끝을 이딴 칙칙한 연구소에서 보내고 싶지는 않았는데."

"비행기 편도가 다 막혔지? 아니, 이전에 바로 옆에 주를 가는 것도 어렵잖아."

"자동차로 7시간 거리인 오하이오 주도 못가죠. 주유소도 일 안하고, 식당도 일 안하고, 뭐, 일하는 데가 없으니깐요."


폭동만 일어나지 않았다 뿐이지 예정된 죽음이란 안개는 거리와 도시를 덮고 사회적인 죽음을 한숨 대신에 쉬었다. 마트는 털리지 않지만 마트에 들어갈수도 없다. 사람들은 끝을 보내느라 여유롭게 자신의 미래를 투자할 시간이 없다. 그렇게 사람들은 바로 8일전만 해도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일이 이제는 황무지에 놓인 모래 한줌만도 못한 시간 낭비로 전락해버린다.


"그래도 죽기 전에는 엄마랑 아빠는 한 번 보고 싶었는데. 전화기도 먹통인 거 있죠? 아마 SCP-2222이 인공위성들을 먹었기 때문이겠죠?"

"나 그 문서 안봐서 몰라."

"앗, 그래요? 뭐. 애초에 알든말든 이제는 상관없는 문제지만요."


사랑하는 가족의 품에 돌아가기는 커녕 전화로 목소리를 교환하는 것마저 좌절되었다. 그렇게 부모님과 연결할 고리를 찾는 사이에 해와 달은 수평선을 6번 지나쳤고 이제는 이 재미없는 밋밋한 남자에게 맞서 앉아 끝을 보게 되었다.


"제인은 가족이 있어요? 저는 사무치도록 엄마랑 아빠가 보고 싶어져서요."

"난 고아야. 다섯 살 때 아빠는 어딘가로 행방불명 되었고 친애하는 어머니께서는 손수 수건에 나를 감싸서 상자에 담고 대충 교회 근처에 버렸지."

"어이구, 이런. 미안하게 됐네요. 하지만 대신에 그리워할 사람이 없어서 종말을 즐겁게 맞이할 수 있겠어요."
"이제는 패드립마저 거리낌 없이 날리는 구나?"


제인과 클라라는 텅빈 웃음을 또 교환하며 재단에 매끄러운 은색 벽에 기댄다. 희생당한 피로 몇 번이나 장식되었고, 앞으로도 장식되었어야 할 무기질적인 이 벽에다.


"영원한 건 거의 없어요. 이 불멸하는 우주도 보세요. 애초에 우주는 언젠가 열적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데요. 인간 따위가 거스를 수 없는 열역학의 법칙에 따라 인간은 언젠가 끝이 날 예정이었던 거죠."

"하지만 그렇다고 그 끝이 지금 오길 바라진 않았지."

"그게 바로 문제죠! 하하."


어쩌면 재단이라면 열적 죽음도 막아낼 수 있지 않을까, 사소한 생각을 클라라는 한다. 생각을 마치고 클라라는 고개를 돌려 제인을 바라본다. 마침 제인도 똑같이 고개를 돌려 클라라를 바라본다. 미묘한 전기가 그들을 타고 흐른다. 사랑도, 애정도 아닌 무언가가. 하지만 마법적인 무언가가 그들을 이끈다. 그들은 천천히 눈을 감고 입을 서로 맞댄다. 입과 입이 떨어지자 서로의 숨소리와 냄새가 중추를 타고 전해진다.


"이 키스처럼 영원한 것이 있었다면 좋을텐데."

"영원에 가까운 게 하나 있긴 하죠. 당신도 본 적 있잖아요.  우리 MTF에서 발명한 특급 기밀 무기. 시간 고정축 말이에요."

"아, 맞아. 그런 것도 있긴 했었지."


제인은 저번 SCP 격리 실패 사태를 떠올린다. 부서진 신의 교단의 괴상한 시계 바퀴. 시간 조정 계열의 살상 기계였던 그것은 시간을 망가트리며 수많은 인명 피해를 낳았지만 클라라 부대가 던진 수류탄 하나로 멈춰서 같은 행동을 반복하게 되었다. 시간을 뒤트는 기계는 두려워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망가진 기계 바퀴를 진압하는 것은 쉬웠다.


"그거 기계를 오작동 시키는 EMP인 줄 알았는데 말이야."

"우리가 명칭이 앨리스의 망가진 톱니 시계인데 EMP를 다룰 리 있나요. 비상용으로 하나 정도 쯤 챙긴다면 몰라도요."

"EMP를 비사용으로 챙긴다고?"

"그게 흔한 재단의 업무잖아요. 안그래요?"


하긴. 이런 이상한 것들을 다루는 재단이라면 비상용으로 권총 대신 EMP를 들고 다녀도 이상할 것 없긴 하지. 그렇게 제인은 헛생각을 또 되짚었다.


"그래서, 우리가 앨리스의 망가진 톱니 시계잖아요."

"시계니까 대충 시간 계열 변칙성 쓰겠지."

"맞아요. 정식 명칭은 좀 복잡한데 대충 우리끼리는 시간 수류탄이라고 부르는 무기를 쓰죠. 흄 준위와 타키온 선별 인과율성에 간섭하여 특정 개체에게 시간을 반복시켜 가둬버리는 무기에요. 좀 비싸지만 효과는 확실하죠."

"격리에도 사용할 수 있을만큼 편리하네. 근데 조금만 쎈 놈이여도 무력화되겠구나."


클라라는 웃으면서 맞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쉬운 무기였으면 모든 격리 개체들이 시간 수류탄에 부착되어 반복되는 삼라만상 속에서 암전히 갇혀 있었을 것이다. 그러지 못한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지.


"제조 단가가 비싼거야 재단 무기 특이니 넘어간다 쳐도, 변칙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금방 풀려버려요. 저번 부서진 신의 알림 시계 바퀴는 변칙적이긴 해도 그 근본이 비변칙적인 기계여서 시간 수류탄이 작동했던 거죠. 아마 일반 기계한테나 쓰는 것 아니면 의미 없을 거에요."


비변칙. 시간 반복. 불멸. 그리고 사람. 반복적인 단어들이 제인의 머리를 휩쓴다. 무언가, 무언가가 눈에 선했다.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 정답이. 굴에서 태양을 향해 흙을 파내던 두더지가, 마지막 지면을 건드리며 느끼는 예감. 끝이지만 이제 끝이 아닐 수 있다는 의미 없을 희망이. 제인에 등뼈를 타고 뇌에 간절히 신호를 보내고 있다.


마찬가지로 클라라처럼 별 쓸모 없는 물건들을 담았던 가방과 번호도 지정되지 않은 변칙 개체들을 떠올린다. 객체 보안 등급이 낮기에 당장 달려가기만 해도 손을 댈 수 있는 이상한 물건들을.


"잠시만, 기다려봐. 잠시만. 뭔가, 뭔가가 생각나려 하고 있어. 그, 시간 수류탄. 제대로만 작동하면 영구적이야?"

"당연히 영구적이죠. 시간이 주입되면 하나의 관성이 되어서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으니깐요. 근데 왠만하면 중력-시간 마찰로 에너지를 다 소모해서 의미 없을 걸요."

"그 비변칙성, 사람에게는 어떻게 되지?"

"당연히 영구적용 되겠죠? 근데 그러면 뭐 어떻해요. 세상에 멸망하고 나고 물리적 충격을 받으면 효과가 해지되고 말텐데. 혹시 뭐, 시간 수류탄으로 기계를 보존하겠다 이딴 소리는 아니죠?

"맞아."


어이가 없어서 클라라는 제인을 뒤돌아본다. 제인은 이상하게도 확신과 희망으로 가득차 있었다. 세계 멸망 선언 직후로 아무도 보지 못했던 그 표정이.


"변칙 개체 기록에 부서지지 않는 물건들은 많아. 그것들을 이용하여 시간 수류탄으로 얼린 사람을 보존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래도 아무 의미 없잖아요. 시간만 영원히 반복될텐데 그것에 의미가 있어요?"

"먼 훗날 누군가가 그 인간을 시간에서 해방시켜줄지 모르지. 그냥, 좀 긴 겨울잠을 자는 거야. 어쨌든, 무엇이든 해봐야 하잖아."

"확실히... 시도해볼만한 가치는... 있겠네요."


클라라는 재고하면서 제인의 생각을 받아들인다. 제인의 긍정이 점점 옮아 클라라의 표정도 조금씩 밝아진다. 어쩌면, 어쩌면 하는 생각이지만. 어차피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만. 무엇이든 시도해볼만한 가치는 충분했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지?"

"6시간 10분. 서두루죠."


일이 정해지자 클라라와 제인은 뛰었다. 방법을 알게 된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시간 수류탄은 어디에 있지?"

"MTF의 중요한 보안 창고에 있어야겠지만."

"만 붙였으니까 아니겠네."

"마침 세상도 멸망한 겸 뽀린 무기 가방에 시간 수류탄도 들어있거든요. 제 숙소에 있는 큰 가방에요."


넓은 재단의 복도를 제치고 대충 비밀번호를 누르며 재단을 종횡한다. 희망이 차오르면 차오늘 수록 걸음은 빨라진다.


"여기에요."


작은 명패로 클라라 메리골드라고 적힌 문을 두들기다 싶이 하여 열고 두꺼운 검은 가죽 재질로 된 터질듯한 가방을 뒤진다. 총, 칼, 뜻을 알 수 없는 작은 정육면체. 별의 별 이상한 것들이 튀어나오더니 태엽이 감긴 동그란 구를 클라라가 열어 가져온다.


"빨리 갑시다."


제인과 클라라는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재단 하층에 있는 변칙 개체 창고로 간다. 낡아버리고 전기가 떨어지기 직전인 엘레베이터를 타고 사람이 거의 없는 죽은 재단을 SCP들을 조심하면서 달려간다. 그 사이 전기가 8% 남은 휴대폰으로 제인은 재단의 문서들을 훑는다.


"자전거, 이빨, 종이, 입마개. 얘네들은 충격에도 부숴지지 않았어. 이것들을 두루고 지하실에 시간을 터트리자. 얼마나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인류의 멸망은 엄청 큰 충격과 같이 온다고 했다. 그리고 이어서 방사능, 독가스, 전염병. 이루 말할 수 없는 재난들이 올 것이라고. 하지만 시간이 고정된다면 대부분의 것들은 해결된다. 단, 하나. 큰 충격을 막아줄 외벽이 요구될 뿐.


재단의 낡은 지하의 창고 문을 열어재끼고 불을 킨다. 이미 전력이 끊어져버린지라 불은 힘겨운 신음을 내며 지지직 거리다 꺼져버린다. 제인와 클라라는 서로 힘을 합쳐 문서에 기록된 안부서지는 물체들로 주위를 두른다. 그러는 사이에 시간은 계속 흐른다. 이런 잡 물건들로 몸을 보신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지만, 이미 희망이라는 비이성에게 사롭잡힌 그들에게는 그 생각을 떠올리는 것도 힘겨웠다.


"헉... 헉... 이정도면 충분할까?"

"충분하다고 믿어야죠. 이제 시작할 거에요."


클라라는 시간 수류탄의 마개를 뽑더니 자신과 제인 사이에 놓고 기다린다.


"만약 살아남는다면 넌 뭘 할거야?"

"글쎄요. 맛있는 음식도 먹고 싶고, 제대로 여행도 떠나보고 싶고. 아! 가벼운 해치에 매달려 걱정과 근심 없이 자고 싶어요."

"나랑 똑같네. 그러면, 시간이 짙게 흐른 후의 머나먼 미래에서 만나자."


둘은 서로 웃음 짓고 터지는 시간의 흔들리는 섬광을 맞이한다. 그리고.


"어?"

"아무 일도 없어?"


희망이 컸던 만큼 낙망도 크다. 시간을 얼마나 날려버렸는지 알 길도 없이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허망한 표정으로 터지고 남은 시간 수류탄의 잔해를 볼 뿐이었다.


그리고 끝은 왔다.





두 사람이 절망에 빠져 허망이란 이름의 절벽에 떨어져 있을 때, 그들을 감싸안았던 디스크 중 하나가 어느 누구도 모르게 희미하게 작동하며 빛을 낸다.


<NBA 최고 결승전! 보스턴 셀틱스와 마이애미 하트 결승이 시작됩니다!>





파딱이 홍보하길래 나도 와서 써봄 글이 좀 병신인건 미안하다

나름 반전이라고 넣었는데 잘 전달됐는진 몰겠다 암튼 ㅂ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