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의 부두교는 뭘 믿을까?


하도 대중매체랑 밈 같은 데서 좀비랑 부두인형만 띄워주다보니 얘네가 뭔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그런 종교처럼 느껴질거야



사실 나무위키만 봐도 알겠지만, 부두인형은 딱히 본래 부두교랑 상관도 없고, 그냥 서양권에서 부두교 특유의 음침한 이미지를 따다가 문화상품으로 팔아먹은 거 뿐... 


실제로 부두교 신자들의 신앙대상은 '로아lwa'이고, 부두교는 로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종교야. 로아는 일종의 신령이라고 볼 수 있는데, 굉장히 많은 종류들이 있고 부두교 신자들은 상황마다 그때 도움이 될 수 있는 로아에게 찾아가 의식을 치르고 소망 사항을 빌어. 아마 이런 종교론부터 오컬트, 판타지 같은 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아이티 부두교가 자연 정령들인 로아를 섬긴다고 많이 들어봤을거야. 


그런데 로아 신앙은 그렇게 단순하지만도 않고 좀 복잡한 부분이 있음


사실 아이티 부두교는 정령들을 숭배하는 다신교가 아니라, 일종의 유일신에 가까운 멀리있는 신의 개념을 갖고 있어. 그리고 로아는 그 신의 다양한 변양체에 가까워


그러니까 신이 게이머라면, 여러가지 종류의 로아들은 그 신이 갖고 있는 다중 계정들이라고 생각하면 편할거 같음



물론 이런 관념은 부두교 뿐 아니라, 세계 여러 곳에 있음

인도 힌두교에서도 비슈누 같은 신이 여러 아바타를 갖고 인간세계에 개입한다고 믿고, 그리스의 제우스신도 여러가지 모습으로 변신해서 인간 세계에 나타나는걸로 나오곤 하니까(물론 거의 대부분 여자 꼬시려고 그런거지만)


또 부두교에선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티 본 앙주라고함)이 우주의 정기와 뒤섞여 뭉친다고 해. 그 정기에서 로아가 만들어진다고 함


위 유일신의 변양체라는 이야기랑 이거랑 합쳐보면, 대충 로아의 본체는 유일신인데 사람들의 영혼이 우주의 정신과 뭉친 게 그 본체에 특정한 성질을 부여하는 재료 같은게 되는건가 봄...


이렇게 보면 로아는 신의 한 모습이면서, 죽은 조상들의 영혼이라고도 할 수 있음

그러니 로아는 신앙의 대상으로 매우 중요하지. 유일신이 너무 멀리 있고, 부두교의 종교관에서 창조주는 세상을 만들어 놓은 다음 별 관심을 안두고 방치하기 때문에 신자들은 창조주에게 직접 기도하기 보단 중간에 있는 로아에게 여러가지 소망사항을 빌게 돼.


로아는 여러 종류가 있음

자세한 건 나무위키를 봐도 나오고, 여기서 흥미로운 것 몇가지를 소개할게


담발라(Damballah)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존재했다는 태초의 뱀.

땅속에서 7천만번씩이나 똬리를 튼 채로 땅이 깊은 바다로 가라앉지 않도록 지탱하고 있었다고 해. 그러다 차츰 거대한 소용돌이 모양으로 우주를 감싸고, 세상을 만들었다고 함

그러니까 일단은 담발라가 지상의 모든 것을 만든 창조주라고도 볼 수 있을거 같네


이 담발라의 살갗 안에는 영원한 생명의 샘이 있는데, 그 샘물이 떨어져 강물이 생겼다고 해. 강물에 들어가면 사람들은 병을 치유할 수 있다는 전설이 있음


아이다 웨도(Ayida Wedo)


무지개의 신령. 연못 위에 드리워진 무지개에서 나타난 다고 하고, 그래서 이 신령에게 굿을 할땐 물가에 가서 한다고 함. 위의 담발라와 결혼했다고 해.


오군(Ogoun)


불과 전쟁의 신령. 

아이티 흑인노예들이 처음으로 폭동을 일으키고, 프랑스군과 싸우기로 하던 날, 바로 이 신령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해.


1791년 8월 14일에 흑인 노예들이 집회를 열었는데, 바로 이 오군이 한 할머니에게 빙의했다는 전설이 있어. 아마 무당이었던거 같아

오군은 할머니의 입을 통해서 단검을 가져오도록 명령하고, 일종의 제사 희생양으로 아프리카 흑돼지의 목을 자르게 했어. 그리고 흘러내리는 피를 보면서 아이티의 흑인 전사들에게 프랑스와 맞서 싸우라고 명했다고 하네. 그때부터 아이티 혁명이 시작되었고, 프랑스 군대와 서로 처절하게 싸우는 전쟁이 시작된거

 

게드(guede)



죽음의 정령들로 이루어진 집단.

게드에게 청하는 의식을 치를 때 여자 무당인 맘보가 다리를 벌리고 무덤 위에 올라앉아 아주 높은 목소리로 통곡하며 소환한다고 함.. 우리나라 장례 때의 고복(皐復) 의식이랑 비슷한듯


이때는 살아있는 닭 한 마리를 들고 죽은 이의 몸 위로 천천히 통과시키며 날개와 다리를 부러뜨리는데, 이게 날개와 다리에 해당하는 환자의 사지에서 죽음의 정기를 뽑아내기 위한 의식이라고해


그 다음 닭 머리를 이로 물어서 잘라내고, 그 피를 죽은 이의 몸에 뿌리면 죽은 이는 의식을 회복한다는 신앙이 있음. 근데 역사적으로 이거 해서 죽은 사람이 살아난 사례가 한개라도 있는지 몰겠다


바롱삼디(Baron Samedi)



죽음과 삶과 부활을 관장하는 게드의 우두머리. 무덤의 수호신 무덤가를 돌아다닌다고 함. 일단은 힘이 강한 신격이고, 생사를 주관하는 힘이 있으니까 굉장히 두렵기도 하고 또 힘을 빌려 쓰고 싶기도 한 그런 존재일거야


외모는 흑인 남성인데 얼굴은 해골이고, 실크햇에 턱시도를 걸치고 시가를 물고 있는 모습으로 나옴 


아마 바롱삼디라는 이름은 몰라도 생김새가 익숙할거야. 이 신령 자체가 워낙 개성넘치고 존멋이라 각종 매체 같은데 많이 나왔고 하니까.. 

챈럼들도 아마 뭔가 익숙할거임


이외에도 굉장히 많은 신령들이 있음


이런 로아들은 아이티 흑인 노예들이 그 자리에서 지어낸 건 아니고, 원래 이들이 살던 서아프리카 땅 곳곳에서 자생적으로 존재하던 신적인 존재의 관념들이 아이티로 건너와 변형된거라고 보면 될거야


다들 아이티라는 섬에 끌려왔지만, 출신 지역이나 부족은 조금씩 다 달라서 부족별 신앙 대상들이 뒤섞이다 보니 다양한 성격을 가진 로아들이 공존하게 된거


각 로아마다 소환하는 도상들이 각각 있음



판타지 같은데 나오는 마법진이랑 비슷하게 저걸 땅에다 그려서 해당 신령을 강신하게 하고, 그렇게 해서 신령에게 제물을 바치고 신령의 목소리를 듣는 식

바롱삼디는 도상도 멋있네..ㄷㄷ


그렇다면 이 신령들은 어떤 방식으로 부두교 신자들에게 다가오느냐,

바로 의례를 주관하는 사제가 직접 잠깐동안 로아가 되는 방식임


그러니까, 우리나라 무당들이 굿을 통해서 하게되는 '접신'의 개념이랑 굉장히 비슷해


아이티 부두교에선 인간의 영혼이 '그로 본 앙주gros bon ange'와 '티 본 앙주ti bon ange' 이렇게 두 개가 있다고 믿음. 여기서 그로 본 앙주는 대충 보편적인 생명력과 비슷하고, 티 본 앙주가 개개인의 자아를 만드는 인격적인 영혼이야.


종교 의례를 통해서 로아가 강신하면, 무당의 티 본 앙주가 그 로아의 형태로 변형되고 무당은 잠깐동안 그 로아가 된다는 방식이야. 일종의 부두교식 접신이라고 보면 될듯


참고로 아이티 흑인 노예들에게 로아들은 단순히 저승과 이승을 잇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는데, 로아들은 바로 흑인 노예들의 본 고향인 '기니'와 아이티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기 때문임


여기서 '기니'는 지금 서아프리카에 있는 공화국 그거 하나만 말하는게 아니라, 그냥 프랑스령 서아프리카 전반을 기니라고 불렀어



아이티 흑인 노예들에게 기니는 다시는 갈 수 없는 그리운 고향이고, 안타깝게도 죽어야만 돌아갈 수 있는 곳이었어.. 그래서 로아에게 기니와 아이티를 자유롭게 오간다는 설정을 덧붙이고 로아와 접신한 무당들의 입을 통해서나마 고향의 이야기를 전해들으려고 했을거야.


우리가 생각하기에도 지금이 힘들면 어린 시절 살던 고향을 생각하면서 그때가 좋았지.. 하는 식으로 추억보정도 좀 하고 하면서 스스로 위로할 때가 있잖아. 근데 우리는 정 그때가 그리우면 살던 동네 찾아 가볼 수 있는데 아이티 흑인 노예들은 평생 돌아갈 수 없으니 훨씬 간절했을거야, 그러다보니 거의 신화적인 공간, 저 세상 비슷한 무언가가 되어버린 것 같네


좀 구슬프게 느껴지기도 하고


또 기니는 죽은 흑인 노예가 돌아가서 편안하게 쉬는 곳으로 여겨지기도 했던거 같다. 


(투생 루베르튀르)


아이티 혁명의 최고 영웅으로 투생 루베르튀르라는 인물이 있는데, 이 사람은 프랑스와 싸우고 완전한 독립까지는 아니지만 흑인 노예들이 해방되서 자유롭게 아이티 섬을 다스리는 자율권 까지는 얻어낸 인물이야.


그런데 프랑스는 일단 아이티 흑인 노예들 풀어주긴 했지만 돌아가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암만 생각해도 빡쳤던거 같음


그래서 루베르튀르를 화해 협상을 하자고 프랑스 본토로 불러 놓곤, 거기서 냅다 죽을 때까지 가둬버리는 혐성질을 저질렀어



그리고 다시 해방된 노예들을 농장으로 끌어들여서 다시 노예로 돌아가게 하고, 아이티 혁명에 찬물을 확실하게 끼얹었어


이때 루베르튀르의 부하이고, 두번째 혁명 영웅이던 '장 자크 데살린'이라는 인물이 나서서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함


"우리의 파파 루베르튀르가 지금 기니에서 지원군을 끌고 아이티로 오고 있다! 용기를 갖고 적들을 물리치자"


(장 자크 데살린)


물론 이건 아주 신빙성 있는 얘기는 아니고, 일종의 전설적인 에피소드지만 어쨌건 독립투사들을 존경하는 아이티인들에겐 지금도 심금을 울릴 이야기야


결국엔 아이티 혁명군은 게릴라전을 통해 재차 쳐들어온 프랑스를 물리치고, 흑인 노예 최초로 독립국을 세우게 돼. 


기니라는 곳이 아이티 흑인들의 정신 속에서 굉장히 의미 있는 공간이 된 것이고, 그렇게 놓고보면 부두교는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처럼 열려있는 종교라기보단 유대교, 힌두교, 신토처럼 특정 민족의 정서에 맞는 민족종교 색채가 꽤 있는거 같네


여기까지 보면 또 서양인들 인식 속에서 아이티 부두교가 왜 악마에게 영혼을 판 종교처럼 보이는지도 이해가 될거임


원래 부두교의 로아들은 딱히 선악 개념이 따로없는 존재들이고, 굳이 하자면 부두교 공동체 내부의 악인을 징벌하고, 선행을 권장하고 공동체를 수호하는 느낌이라 정의로운 느낌이 강함


그런데 이런 로아들 생김새가 워낙 무섭거나 기괴하게 묘사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아이티 흑인 노예들이 백인 농장주들과 싸우기 위해 로아의 힘을 빌리려고 제사를 지내고, 강령술을 하고 한거잖아. 일단은 서로를 악인으로 보고 대치하게 되는 상황이지


게다가 오히려 한국인들은 무당들이 할매신, 장군신, 이런 신위를 몸에 모신다는 식의 개념이 익숙해서 저게 아주 낯설게만 느껴지진 않는데, 기독교가 대세가 된 서양에선 그렇지 않았을 거야. 오히려 서양세계에선 마지막까지 남은 접신, 빙의 이런 것들이 악마의 장난, 귀신들림 같은 식으로 받아들여졌지


그러니까 서양인들 입장에선 저게 섬뜩할 수 밖에 없고, 악마와 결탁해서 정의로운 기독교도들을 공격하는 이미지로 느껴질 수 밖에 없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