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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양지라니…이게 무슨…"


"휴양지라기보다는, 그린캠프라고 해야할까요."


유유자적하게 다리를 꼬은 채로 그는 말을 이었습니다.


"사실 이미 세워뒀어요. 인원 배정도 끝난지 좀 됐죠."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안경을 한 번 추켜올리고 패널을 조작하고는 대단한 자랑거리라도 보이고 싶은 양 한껏 팔을 활짝 펼칩니다.


"뭐, 그 서류는 그냥 형식적인 거니까요."


이 사람, 두번째 사령관에 대해서는 도무지 예지를 할 수 없습니다. 정보가 부족해서일까요. 그래서 단 한번도 속을 들여다 볼 수 없어서였을까요. 무엇이 됐든 그가 내민 서류와 책상의 패널에서 비춰지는 정보로는 그의 인상만큼이나 불투명한 예지조차 불가능 했습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본능만이 핏빛 사이렌과 경적을 높게 울릴 뿐입니다. 그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건지 전혀 모르겠다는 제 기색을 그는 눈치라도 챈 듯, 다가오며 말했습니다.


"아르망, 내일은 나와 동행하세요. 직접 가서 보도록 해요."


그렇게 말하고 저를 지나쳐 새 사령관실을 나서면서 그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명령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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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요. 

제 눈 앞에 펼쳐진 이 광경이 정말로 현실인 걸까요.


 먹구름 낀 하늘 아래로 펼쳐진 눈 앞의 광경이 가져다주는 위협이, 공포가, 떨림이, 지금 당장 주저앉으라 말하는 듯 했습니다. 다리부터 시작된 떨림은 곧 바로 얼굴까지 올라와 저도 모르게 입을 달싹이게 됩니다. 제 옆에 있는, 이 곳에 함께 동행한 몇몇 호위들 모두 저와 같았습니다. 방금까지 상기된 뺨을 보이며 애교섞인 웃음을 흘리던 샬럿의 경우는 더했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그 자리에 굳어 입을 열지 못하는 그 잠깐의 순간이 영겁처럼 느껴졌습니다.


모조리 무너져 있었어야 할 그 장소가, 누군가에게는 유희와 쾌락을 위했었던 그 장소가, 누군가에게는 죽음보다 더한 시퍼런 절망만이 도사렸던 그 장소가, 다시금 악의를 한가득 머금은 채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제 안에 요동치는 무언가가 제 모든 것을 무너뜨릴 것만 같은 것을 꾹 참고, 저는 쥐어짜듯 입을 열었습니다.


"이게…어떻게 된…도대체…"


"기록처럼 화려하게 꾸미는 건 불필요하다고 생각해서요. 구색만 갖춰 봤습니다."


"언제…부터…이런…이런 걸…"


작은 웃음소리와 함께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죠.' 라고 덧붙인 뒤, 그는 극상의 아름다움을 품은 조형물을 음미라도 하는 듯한 감상에 젖은 얼굴로 천천히 몇 발 앞으로 걸으며 말했습니다.


"그래도 꽤나 공을 들였답니다. 여러분 몰래 만들자니 그게 또 쉽지가 않더군요."


그렇게 말하고 그는, 지금부터는 자기가 직접 에스코트 하겠다는 모양새로 저희의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제가 직접 참여한 곳도 있어요. 거기부터 가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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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웨에에엑! 켁…케헥!"


그에게 가장 먼저 안내받은 그 건물, 그 장소의 안에 펼쳐진 것은 그 어떤 감상도 입에 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동행한 몇몇의 브라우니들과 샬럿은 그 허락을 받지 않은 채, 온몸으로 감상을 말하고는 있었지만 거기에 신경 쓸 이는 없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뇨…설명을 해야 할까요?



굳이 말하자면 그것은 악기였습니다.






어두운 조명으로 밝혀진 방의 한가운데에는, 평범한 바이오로이드 한 개체의 크기만한 색소폰같은 것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과 이어진 아이의 손목만한 굵기의 파이프…로 보이는 것이 방의 벽에, 십자형이라도 받는 듯한 모양새로 고정되어 있는 스틸라인과 발할라의 면면들의 목과 이어져 있습니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예지까지 갈 필요도 없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듯한 모양새였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제 첫 작품을 소개할게요."


두번째 사령관은 색소폰 같은 것에 다가가 손잡이 언저리의 부분을 떼어내고는 팔을 높게 치켜들고 한껏 힘을 주었습니다.


"―――!!"


파이프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나는가 싶더니 이윽고 색소폰이라고는 생각 할 수 없는…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가 높게 울려 퍼졌습니다. 누구에게나 물을 것도 없이, 두번 다시 듣고 싶지 않을 소리라는 감상을 내뱉을 만한 기묘하고도 음습한 소리였습니다.

벽에 고정되어있는… 브라우니, 이프리트, 레드후드, 안드바리들은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진 채 들릴 듯 말듯 한 가파른 쉰소리를 반복해서 냅니다. 그 작은 소리마저 파이프는 모두 빨아마시고 색소폰의 음율로 승화시킵니다. 


"제 미적감각을 다소 절제해서 표현해봤어요. 소양이 그렇게 뛰어난 건 아니라서 자신있게 소개하기는 부끄럽네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제 앞으로 다가온 두번째 사령관에게, 저는… 사고의 갈피를 한 줌도 쥐지 못한 채로 중얼거리듯 말했습니다.


"이런 걸 언제…왜…어떻게…"


저는 그에게 이 장소에 대한 설명을 요구한 것이 아니었지만, 그는 색소폰을 돌아보며 흐뭇한 표정으로 구구절절 말을 잇기 시작했습니다.


C구역의 재건과 '인원배정'…은 부대 절반의 지휘권을 이양 받고서 직접 새로 제작한 바이오로이드와 AGS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

계획 자체는 그 전부터 있었다는 것.

배정된 인원은 대부분 전사 처리되거나 장기간 외부 작전을 떠나있는 것으로 되어있는 대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힘이 풀릴 것만 같은 다리에 신경을 세우고 그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벽에 고정되어 악기의 일부가 된 이들로 발을 옮겼습니다.

제 눈 앞에 있는, 이 안드바리는 어떤 개체였는지 다가가자마자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두번째 사령관에게 자원과 관련된 간언을 직접 했다가 현장직으로 보직변경 되었던 그 개체였습니다.

안드바리의 목과 파이프의 결합부에는 엉겨붙은 피딱지가 한가득했고 진이 빠진 가쁜 숨소리가 파이프를 가늘게 타고 흘렀습니다.


"당신…당신은 도대체…"


이 장소, 이 작품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세세한 자초지종 따위는 돌아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저, 이유만이 궁금했습니다.


그는 미소를 머금고 가늘게 눈을 뜬 채 저를 잠깐 응시하고는 말했습니다.


"혹시 모르니까 다시 말할게요. 끝까지 동행해요. 명령입니다."


이제껏 제 자신의 존재에 대해 비관한 적은 없었습니다. 바이오로이드로서 태어난 것을 저주한 적 또한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저는 바이오로이드로서 태어난 것을 마음 깊이 저주합니다.

두번째 사령관에 대해 단 하나도 예지하지 못한 것을, 제 존재이유가 사라져버린 것을 자책하고 저주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 명령을 거부하는 반동으로 걸리는 부하에 속절없이 굴복해버리는 것을 그 무엇보다 저주합니다.


파르르 떨며 눈물을 흘리는 안드바리를 차마 더는 볼 수 없어 돌아서고는, 머리를 포함한 전신의 부하를 견디면서도 저는 인간의 명령에 따르고 마는 것입니다.





――――――――――――――――――――――――――――――――――――――――――――――――――





  

 


"명령이라는 건 참 편해요."


C구역에서 가장 큰 건물로 들어선 뒤, 그가 말했습니다. 

기록에서 본 제가 가진 기억과 대조해본다면 이 장소는 실내골프장이란 곳과 흡사했습니다.


"당신들을 부리는데엔 말이죠."


정면에 넓게 펼쳐진 필드를 마주보고 설치 된 대공포에 발을 들이면서 그는 바로 근처의, 이 장소의 관리를 담당하는 듯한 AGS에게 명령 했습니다.


"사출 해."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찢어지는 경적이 한 번 울리더니, 필드에 설치되어 있는 커다란 캡슐과 같은 곳의 입구가 일제히 열렸습니다.


그와 동시에, 눈가리개와 일부러 손상시켜놓은 듯한 기동장비를 착용한 다수의 바이오로이드들이 날아들었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조명으로 모여드는 날벌레와 같았습니다.

고도와 방향의 갈피를 잡지 못해 공중에서 허우적대거나, 서로 부딪히거나, 겁에 질려 정지 비행을 하는 등, 필드를 가득 메운 날벌레들에게 두번째 사령관은 아무 망설임없이 살충제를 겨눴습니다.

연발로 날아드는 대공포에 하나 둘, 수십의 바이오로이드들이 추락하거나 그대로 폭발하듯 터져나갔습니다. 

대공포 소리와 터져나가는 바이오로이드들의 모습에서 어처구니 없게도 불꽃놀이를 연상해 버립니다. 

그런 제가 우스워 무심코 실소를 흘렸지만, 실내를 가득 울리는 대공포의 소리에 가려 그걸 아는 이는 없었습니다.


수십 수백의 대공포탄이 필드를 가르고 나서야, 사령관은 멈췄습니다. 

'휴우~'하고 톤을 올리고 저를 돌아 본 사령관은 후련하고 시원한 쾌감에 흠뻑 젖어 이전과는 달리 진심어린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뒷처리 하도록, 이그니스."


근처의 AGS의 옆에서 대기하던 이그니스, 아마도 그가 직접 손을 봐 제작했을 바이오로이드는 그의 명령에 고개를 끄덕이고 필드로 들어서서 그 우악스런 장비를, 필드를 한가득 매운 바이오로이드들에게 겨눴습니다.


가슴 아래로 전부 터져버린 아쿠아, 

기동장비에 걸쳐진 가위만으로 방금까지 존재했었다고 알리는 리제.

곧 꺼질 숨을 몰아쉬고 있는 드리아드.

그리고 지금은 누구였는지 전혀 짐작도 되지않는 이들로 이루어진 피웅덩이들.


시뻘겋고 거대한 화염의 줄기가 그들을 몇 번이고 덮치자 불바다가 된 필드에서 피와 살이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제 눈에서 떨어지기 시작한 눈물 또한 그 화염만큼이나 뜨겁게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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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의 장소로 돌아와 그의 '예술작품' 몇 점을 더 감상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를 호위해야 하는 브라우니들과 샬럿은 색소폰이 있는 방 그 자리에서 졸도한 채 였습니다. 

그를 호위하는 이들도 있었다는 아무래도 좋을 사실이 텅 빈 머리속을 잠깐 때리고는 두번째 사령관의 등 뒤를 밟았습니다.


색소폰과 비슷한 방식으로 제작된 오르간.

바이오로이드를 구성하는 각 신체부위로 제작된, 붙박이장을 비롯한 여러 가구들.

복도를 수놓은 고운 화장을 한 박제된 머리들.

여러 내장으로 장식한 샹들리에.


그 외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아무래도 좋을…작품이라 표현된 광기의 산물들을 지나쳐,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C구역의 가장 안쪽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 장소는 경마장을 연상케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분명, 제 머릿 속의 경마장은 바이오로이드 말들이 인간을 태우고 속도를 경쟁하는 스포츠를 하는 장소였습니다.

이 장소도 비슷했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 곳에 '배정'된 바이오로이드들 사이에서는 경쟁이랄게 없다는 점일까요.

그리고 무언가에 탑승하지도 않았습니다. 

탑승 할 만한 것도 없었지만, 있었다 하더라도 이 곳의 바이오로이드들에게는 그 탑승한다는 행위에 필요한 다리가 없었습니다.



각 트랙에서 다리가 잘린 채 종착지까지 기어가는 바이오로이드들 뒤로, 온갖…그 용도가 무엇인지 단번에 알 수 있을 법한 장비들을 주렁주렁 달고있는 AGS한 대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를 유지하면서 바이오로이드들을 뒤쫓습니다. 


"몇 번에 걸래요?"


트랙과 같은 고도에 위치한 VIP룸 처럼 보이는 곳에서 레드와인이 담긴 와인 잔을 내밀며 그가 말했습니다. 그 잔에 비친 색이 이 C구역에 들어서면서 쭉 보아온 것들 대부분이 머금은 색이었기에, 저는 밑에서부터 치고 올라오는 구토감을 억누르느라 괴롭게 일그러뜨린 얼굴을 돌렸습니다. 


두번째 사령관은 능청스럽게 '두 잔은 많은데…아, 나는 3번에 걸게요.' 라고 신나게 말하고는 와인을 한 모금 들이켭니다.


가장 뒤쳐졌던 6번 트랙의… 테티스가 AGS에 붙들렸습니다. AGS는 집게 손 같은 장비로 테티스를 들어올리더니 좀 더 앞서가던 5번 트랙의 핀토에게 다가가 몇 번이고 내려쳤습니다. 찢어지는 비명이 트랙을 울리고, 그 비명이 차츰 잦아들었을 때, 바이오로이드라고 불리었던 두 고깃덩이가 곤죽이 된 채 각 트랙을 벗어나 나뒹굴었습니다.


그걸 목격해버린 다른 트랙에 위치한 바이오로이드들의 각 면면의 반응은 다양했지만 그 반응은 하나로 귀결되는 것이었습니다.


생존본능.


그 어떤 다른 감정과 생각없이, 오로지 살고자하는 생존본능만이 얼굴에 감돌아 그 표정을 다양하게 일그러뜨립니다.

두번째 사령관이 지목한 3번, 티에치엔에게 AGS가 거의 다다를 무렵이었습니다. 

뒤를 확인하고 소스라치게 경악한 3번은 살짝 뒤쳐졌던 2번의 유미의 얼굴에 오른팔을 마구잡이로 휘둘렀습니다.

갑자기 날아든 손에 가격당한 유미는 눈을 부여잡고 고통에 신음하다가 AGS에게 그대로 짖이겨 졌습니다.


"으하하하하!"


눈 앞에 벌어진 광경에, 점잖게 들고있던 와인 잔을 높이 던져버린 두번째 사령관이 트랙으로 달려가 난입합니다.

길다란 막대기 같은 것을 손에 들고 4번 트랙의 칼리스타에게 뛰어간 그는 그 막대기를 내밀었습니다.


"자! 잡아요! 도와줄게!"


칼리스타가 매달리듯 막대기를 붙잡자 사령관은 힘껏 당겼습니다. 뒤가 아닌, 옆으로요.

2번 트랙으로 붙들려간 칼리스타가 당황과 경악에 몸을 마비시키고 막대기를 도로 놓는다는 판단을 하지 못한 채, 막 당도한 AGS에게 붙들렸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들어올려지더니 원형 톱에 의해 고간부터 머리까지 양단 당합니다.

칼리스타에게서 뿜어져나오는 피분수에 흠뻑 젖은 두번째 사령관은 오늘 흘린 그 어떤 웃음소리보다 더욱 크게 웃어재끼면서  AGS의 뒤로 돌아가 그대로 탑승했습니다.


머지않아 1번 트랙에 위치한 백토의 허리춤에 두 집게 손이 닿았습니다.

공중에서 뒤집혀있는 백토를 AGS는 머리부터 바닥에 내리꽂은 뒤, 확인사살을 하듯 두 집게 손을 빠르게 회전시켜 마구 구타합니다.


"난…살거야. 살 수 있어. 살 수 있어…"


피가 흐르기 시작한 팔뚝과, 눈물로 범벅된 얼굴을 한 채 쥐어짜내듯 중얼거리는 티에치엔이 마지막 진을 짜내 속도를 높힙니다.

그리고 종착지를 얼마 남겨놓지 않았을 무렵,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티끌 같은 희망에 티에치엔의 얼굴이 살짝 풀어졌을 때, 광기어린 고성이 쩌렁쩌렁 트랙을 울렸습니다.


"피버~!!!! 타임!!!!!!!!"


그 말에 맞춰 이제껏 균일한 속도를 유지하던 AGS가 이전과는 비교도 안되는 속도로 티에치엔에게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뭐야, 잠깐만, 아냐, 이게 뭐야, 반칙이야, 반칙이야, 반칙이라고!!!"


AGS가 달려오자 종착지에 거의 당도한 티에치엔은, 방금까지 유지하던 실낱 같은 침착함마저 끊겨버려 팔을 허우적댑니다.


"끼야아앗호!!!!"


쿵쿵쿵쿵, 트랙을 울리며 가속하던 AGS가 힘차게 점프합니다.

티에치엔에게 드리워진 그늘이 점점 커져가는 짧은 순간, 마지막으로 찢어지는 비명이 들려왔습니다.


"꺄아아아아아아악!!!"


뚬- 하고 경마장 전체를 울리며 착지한 AGS의 하부는 터져나온 피로 물들어 갔습니다.


종착지에서 과하게 확장되고 경직된 동공으로 소리높여 응원하던 캐럴은 주저앉았습니다.

AGS에서 내리는 두번째 사령관에게 종착지에서 다가온 키르케가 수건을 건냅니다. 그녀의 표정 또한 캐럴과 같았습니다.

먹구름은 보다 탁해져 이내 굵은 비를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방을 때리는 빗소리 속에서 망연하게, 빨갛게 물든 트랙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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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가 궁금한거였죠?"


그랬습니다. 그에게, 이러는 이유를 듣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아무래도 좋았습니다. 

아주 잠깐, C구역에 들어서서 머지않아 졸도해버린 호위들이 부럽다고 느껴졌습니다.

어떻게 의식을 유지하고 있는지 저조차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수건으로 한가득 뒤짚어 썼던 피를 닦는 둥 마는 둥 하는 눈 앞의 남자에게서 시선을 피하지 않으려했지만, 도무지 고개에 힘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거 알아요?"


두번째 사령관, 또다른 생존자, 남자…이젠 뭐라고 칭하기 조차 꺼려지고 두려워집니다.

그런 저를 아랑곳 않은 채, 눈 앞의 존재는 말했습니다.


"난 다 기억하거든요."


귀가 먹은 것 같습니다. 잘 들리지 않네요.


"인류가 멸망하기 전을 기억해요. 전부 다 기억났어."


'너희 전 사령관과는 다르게 말이지.' 라고 덧붙이고는 비릿한 웃음을 지은 채 말을 잇습니다.


"멸망 전의 내가 누군가는 지금 중요하지 않아요. 지금 너희에게 가장 중요한건, 내가 당신들, 너희 바이오로이드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다뤘었느냐가 중요한거죠. 그래, 그게 중요한거지. 그걸 알아야…그래야 너희가 빨리 적응하지."


"…웃기는 얘기야. 어느 날 깨고 보니까 인류가 멸망했다잖아. 그것도 멸망한 지 거의 백년 가까이 되는 시간이 지나버렸다는데, 믿겨져? 믿겨지냐고. 눈뜨고나니 휑뎅그렁한 도시에 철충 뭐시기가 가득하고 인간 비스무리한 바이오로이드만 있다는게 믿겨지냐? 어? 너희는 모르겠지. 인간도 아니고 인간이 되어 본 적도 없으니까."


"킥킥킥… 뭐가 어쩌고 어째? 인류를 되살려? 그게 가능할 것 같냐? 진심으로? 가당키나 한 소리냐? 꼴랑 남자 둘이서 니네들 싹 다 임신시킨다고 그게 돼? 인간의 숫자가 증가하긴 커녕 유지도 힘들텐데? 너희 모두 진심으로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냐?"


"아무리 봐도 불가능하잖아. 그렇잖아. 말도 안되잖아!!!!이 씨발년들아!!!! 그냥 다 뒈진 채로 내버려두지, 왜 깨우고 지랄이냔 말이야!"


"견디기 힘들더라, 끽해야 좆집으로 쓰던 년들이 갑자기 날 깨워서는 인류 재건을 도와달라니까 말이야. 야, 지금이라도 유이한 인류인 내가 말해줄게. 그거 절대 안되거든? 그러니까 단념해. 그런 방법은 어디에도 없고, 무엇보다도 내가 그럴 생각이 없어."


"그래도 이왕 눈뜬거 아무것도 안하고 다시 뒈져버리긴 또 그렇잖아. 그래서 이러는거야. 한번 시원하게 즐기자고. 아무도 없기에 가능한 것들 한번 원 없이 해보고 뒈지던가 하자고. 이제 알아들어? 내가 왜 이러는지?"


"싫지? 그래서 뭐 이제라도 알았으면 날 막을 수 있을 것 같냐? 알고는 있지? 네가 폐하라 부르던 걔는 없고 오르카의 절반이 내 것인 이 상태에, 이제 유일한 인간이 난데. 니들 중에 내 명령에 반할 수 있는 애들이 있다고 해서 뭐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냐?"


"……다…소용없어."


저주, 원망, 단념, 분노, 절망… 그 수많은 것들의 폭포를 멈추고 그는 저를 지나쳐 힘 없이 C구역의 출구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깨닫고 맙니다. 폐하가 특별했었던 것이라고. 저희에게 있어 너무나도 큰 행운, 인간과 다른 무언가라고. 

누군가의 말 그대로 구원자였다고.


…그리고 저것이 우리가 기억하는 '인간' 이라고.

폐하께 익숙해져 버린 탓에, 우리 바이오로이드의 뇌리 깊숙히 새겨졌을 그것을 헤아리지 못했다고.

그것을 그 누구보다 제가 알아챘어야 했다고.


비는 더욱 굵어져, 제 어깨를 세차게 두들깁니다. 

이대로 주저앉아 정신을 잃고 명을 다한다면 혹시라도 폐하를 뵐 수 있을까.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절 돌아봐주실까.

여느 때 처럼 그 따뜻한 품이 전해주는 기쁨을 느낄 수 있을까.


속으로 읊조리는 그 바램들도 빗소리에 묻혀 사라지면서, 제 의식은 점점 멀어져만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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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저 하셈 이어쓸 수 있으면 이어 씀


재밌게 읽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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