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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인가, 사령관."


나는 사령관에게서 진중함과 무게감을 느껴 본 적이 그다지 없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야 통신기기 너머로 지시해오는 목소리에서 다급함을 느껴 본 적은 몇 번 되지만, 작전이 끝나고 복귀하면 항상 애써 실없는 농담을 던지며 웃어주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전투 이외에는 그와 딱히 접점이 많지 않았기에 그의 다양한 면을 보는 기회가 좀 처럼 없어서 이기도 했다. 가끔 탈론페더가 흥에 겨워 보여오는 영상들 속에 비춰진 사령관은 그 나름대로 전투의 노고를 치하하는 그 실없는 모습과 또 다른 쾌활함을 담고 있기도 했지만, 직접 마주하고서는 좀 처럼 볼 수 없는 모습이었기에 대체로 사령관에게 갖는 내 인상은 '적당히 가벼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오늘, 우두커니 선 채 사령관실의 창문을 바라보고 있는 그 눈은 바스라진 양초의 심지 처럼 생기 하나 없는 어둠을 품고 있었고, 뒷짐 진 양손은 조금 떨면서 헐거운 매듭과 같이 깍지를 풀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그는 여유를 가질 시간이 얼마 없기도 했고 근래엔 그 어느 때 보다도 무거운 격무에 시달렸다해도 어떻게든 그 것을 티내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심중을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전부 드러내고 있는 그가 낯설었다.

두번째 사령관이 그와 둘이서 시간을 가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바로 나를 제외한 각 지휘관들이 모여 그를 찾은 뒤에, 그는 나를 따로 호출했다. 그리고, 그가 처음으로 내뱉은 말은 내 귀를 의심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래…그게 맞는 것 같아. 아니, 맞아. 이 이상 내가 이 방을, 이 자리를 지킬 이유도 필요도 없는 것 같아."


"사령관, 그에게 많은 권한을 이양했다해도, 모든 부분에서 그대가 우선권을 갖네. 일차 명령자는 오직 그대야. 저 머저리들이 무슨 생각으로 그 따위로 구는 것인지는 둘째치고, 오르카에는 그대가 필요해."


"칸… 아니야. 그녀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게 중요한거야……차라리, 대놓고 배신을 당한다면 마음이라도 편했을까."


"도대체 무슨 소리를 들은 것인가? 말해보게. 배신보다 더 한게 무엇이란 말이야?"


사실 짐작은 간다. 굳이 그에게 방금 전 일을 상기시키도록 재촉할 필요도 없다. 괴롭기만 할 테니까.

그럼에도, 다 알면서도 나는 물을 수 밖에 없다. 그가 분노와 증오보다도 회한을 품고 있는 것만 같아 견딜 수가 없다.

혹시라도, 그 괴로움을 모두 토해내고 홀가분해져 다시 심지를 굳힐지도 모른다. 

지금도 그만 바라보며 믿고 따르는 이들을 다시 돌아보고 오르카에 남는다는 선택을 해줄지도 모른다. 


내게 의지해 줄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붙잡아오는 내 모습에 그는 쓸쓸한 웃음을 짓는다.

초연함과는 거리가 먼 그 인상이 견딜 수가 없어 나도 모르게 손을 뻗고, 한 발 그에게 다가가고 만다.

그리고 뒤늦게 깨닫고만다. 이미 너무 멀리 지나가버렸음을. 그에게도. 나에게도. 


"…서운하게 듣지는 마. 음…그래, 사실 좀 지치기도 했고. 다른 이유를 들이밀지 않더라도 사실은 조금 쉬고 싶기도 했고…"


"…"


"이제껏 항상 아무렇지 않은 척 하기도 힘들었고… 잠도 잘 못자서 몸도 무겁고, 밥도 제대로 먹은지도 오래되서 배도 많이 고프네."


"…"


"사령관실에서 담배피지 말라고 핀잔 듣는 것도 힘들었고…아, 바닐라한텐 비밀이야. 하하… 뭐 그리고…매일 내 지휘에 죽고사는 이들이 정해진다는 것이…제일 힘들었어…" 


"…사령관."


"그래도, 있잖아… 칸…"


목소리가 떨린다. 내리 깐 고개에서 굵은 물방울이 천천히 한 방울, 두 방울, 이윽고 턱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실은, 나 또한 그들과 다를게 없다.

그를 눈물짓게 한 책임에서 피할 수 없다. 이 자리에서 조차도 방금까지 변명으로 자위하던 것이 그 무엇보다도 추하다.

그래서, 소리없이 흐느끼는 저 등을 감싸안아 주기는 커녕, 다가가는 것 조차도 할 수 없다. 


"부탁이 있어. 칸."


눈가를 소매로 슥슥 닦아내고는, 그가 날 돌아보며 말했다.


"네가 구심점이 되어 줘. 최대한 많은 대원들을 보듬어 줘. 특히 아이들… 칸이 더 힘들게 전투를 치루는 일이 있더라도, 불필요한 희생은 막아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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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원, 통신 암호화. E-16, 보고."


"여기는 E-16, 특이사항은 없습니다. 오늘도 허탕인 것 같아요."


탈론페더의 노이즈 섞인 한숨이 통신장비를 타고 흘렀다.

의자삼은 나이트칙이 움찔거린 것이 둔부를 통해 전해졌기에 한번 더 그 머리통에 창부리를 쳐박고는 통신 장비를 이어서 조작했다.


"T-75, 보고해라."


"여기는 T-75, 근방의 숲에도 특이사항 없음. 아~ 이럼 안되는데."


태평하게 보고하는 워울프였지만 통신장비 뒤로는 걱정에 안절부절 못하는 그 모습이 절로 그려졌다.


"퀵 카멜, 항만 쪽은 어떤가."


"여기는 퀵 카멜, 근방의 고수 부지까지 탐색해봤으나 소득은 없습니다. 4번 거점으로 복귀할게요."


"확인, T-40, A-15는 메일로 보고 한 뒤 4번거점으로 복귀하도록. E-16과 T-75는 도시로 합류해라. 대기하겠다."


나이트칙의 머리통에서 리볼버 캐논을 뽑아들고 짧은 기지개를 켜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무너지고 색이 바랜 도시의 잔해 사이사이로 이른 아침의 햇살이 파고들었다. 도시의 거리와 건물 곳곳을 물들인 초록은 먼 과거의 난잡하게마저 느껴지던 활기와는 다른 원초적인 생기를 머금은 채 투명한 이슬을 빛내고 있다.

전투가 없거나 규모가 크지 않다면, 더해서 날이 밝은 날에 이른 시간부터 작전을 나왔다면, 그 작전의 장소가 초원이나 사막이 아닌 도시라면 이라는, 평소라면 다수의 난해한 조건을 만족해야만 볼 수 있는 진귀한 풍경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적어도 이 한 달간은 충분히 만족할 만큼 보아온 풍경이다.

한가히 감상에 젖고만 잊을 시간은 아니었지만, 오르카를 떠나 사령관을 찾기 시작한지 한 달 동안 별다른 소득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감상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평소부터 작전에 별도로 투입되고 장기간 파견임무까지 자주 수행하던 부대 특성상 각 지역에 정비가 가능한 거점을 다수 구축해 뒀었기에 탐색에 있어서 장애물이 될 것은 없었다.


문제는 이 탐색이 언제 끝날 지 였다. 혹시 사령관은 이미…하고 전혀 상정하고 싶지않은 상황을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나는 그가 반드시 살아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가 돌아와 줄 것 또한 의심치 않는다. 그는 제 발로 떠났지만, 그의 성품이라면 망설임없이 돌아와 상황을 정리하는데 힘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장."


역광으로 몸을 물들였던 탈론페더가 눈 앞에 착지했다. 이어서 먼 발치의 사거리에서부터 돌아 나오는 워울프까지 확인한 나는 리볼버 캐논을 고쳐잡고 입을 열었다.


"도시부터 4번 거점의 경로까지 추가로 정찰한다.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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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달 간 보여준 대원들의 모습은 평소의 그들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언행은 그대로였지만 명령에서 벗어나지 않는 워울프, 촬영장비를 목적에만 맞게 사용하는 탈론페더, 시도때도 없이 무엇이든 이분한 뒤에 대원들에게 내기를 걸어오는 걸 그만 둔 샐러맨더, 거점에서도 폭발물을 만들고 싶어 근질거리는 것을 꾹 참는 하이에나. 

평소에 막나가던 그들을 따로 통제 한 것은 아니었기에 올바른 감상이라 말하기에는 부끄러웠지만 평소와는 다른 그 하나하나가 굉장하게 받아들여졌고 또 그만큼 심각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사령관을 찾는다.' 라는 매우 비밀스럽고도 막중한 임무는 대원들 모두를 그 어느 때 보다 진지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거점에 도착하니 지하로 향하는 해치 앞에서 하이에나와 샐러맨더가 기다리고 있었다. 탈론페더가 얕게 날아가 그들 옆에 착지하고 물었다.


"두 분 먼저 와계셨군요. 음? 퀵 카멜 대위는요?"


"뭐야? 오는 길에 대장이랑 합류라도 했는가 싶었는데, 아니야?"


오른쪽 눈만 뜬 채 샐러맨더가 되물었다.

옆에 있던 하이에나가 탈론페더의 기동장비에 달려있는 패널을 조작해 지도를 띄우고는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위치 상으로는 퀵 카멜 대위가 가장 먼저 도착했어야 하는데?"


하이에나의 말을 이어 받듯, 워울프가 귓가의 통신장비를 조작했다.


"여기는 T-75, 퀵 카멜 응답바람."


가느다란 교신음만이 들려올 뿐, 퀵 카멜은 응답하지 않았다.


"여기는 T-75, 퀵 카멜 응답바람."


두번째 교신에도 응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4번 거점의 모두가 워울프에게 시선을 향한 채, 불길한 침묵에 휩싸이려던 때였다.


"대위에게 무슨 일이 생긴…"


"대장! 6시 방향!"


울창한 숲 사이에서 장비의 기동음이 어렴풋이 들린다 싶더니 퀵 카멜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 모습이 조금 이상했다.

퀵 카멜의 장비에 달린 발치의 바퀴가 이상이라도 생긴 듯 느린 움직임에 걸맞지 않게 기이한 소리를 높이고 있었고, 무엇보다 퀵 카멜의 안색이 숲의 그늘 보다도 더욱 그늘져있었다. 그리고 퀵 카멜이 등진 숲 쪽에서, 가볍고 날랜 그림자 하나가 튀어나가듯 나무 사이를 가로 질렀는가 싶은 순간, 퀵 카멜이 힘 없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 때 였다.


"피해!"


탕-!


숲을 울리는 굉음과 동시에 나는 숲과 가장 가까이에 있던 샐러맨더에게 몸을 날렸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나뒹군 샐러맨더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숲을 한번 보더니 나와 나뒹굴면서 난 똑같은 둔탁한 소리가 뒤이어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마에 난 관통상으로부터 시작된 출혈이 탈론페더의 얼굴을 한 가득 적시고 있는 중이었다.


"씨발…!"


워울프가 허리춤의 권총을 양 손에 치켜들고, 나무 사이사이로 순간 마다 비추는 그림자를 향해 마구잡이로 쏴댔다.

워울프가 총알을 숲에 퍼붓는 사이 나는 제빨리 리볼버 캐논이 놓여있는 지점으로 몸을 날린 뒤 다시 일어서며 말했다.


"전 대원, 전투 태세."


명령과 동시에 워울프가 사격을 멈추고 재장전을 하는 와중, 마지막으로 총알이 날아간 지점에서 그림자가 보다 선명히 떠올랐다.

한 쌍의 노란 안광이 떠오르고 나와 대원들을 노려보는가 싶더니, 나무 사이에서 한 번 번뜩이고는 다시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이번에는 뒤편에서 아까와 같은 굉음이 숲을 울렸다.


"윽…커억…"


탑승 중인 장비의 사이로 정확히 파고든 탄환은 샐러맨더의 흉부를 꿰뚫고 지나갔다. 샐러맨더는 가슴을 부여 잡은 채 숨을 몰아쉬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주저앉듯 장비 위에서 쓰러졌다. 총알이 날아온 방향을 경계하니 그 곳에는 방금과 같은 안광이 또 한 쌍, 남은 우리 셋을 노려보고 있었다.


"쥐새끼들이 찍찍대는 소리가 들린다 했더니, 당신들이었군요?"


다시 앞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드러난 모습의 정체는 흑색과 백색의 투 톤 의상을 로자 아줄의 불길한 감청색으로 물들인 채 다가오는 블랙 리리스였다. 양 손의 권총을 우아하게 고쳐잡고 리리스는 발걸음을 멈춘 채 입을 열었다.


"경고했었죠? 머리통에 바람 구멍이 날거라고."


그 말에 바톤이라도 이어받는 듯이, 낮은 웃음 소리를 섞으며 뒷편에서 나타난 또 하나의 블랙 리리스가 말했다.


"하나는 가슴에 났지만."


흑백의 저승사자들을 앞 뒤로 맞닥드린 상태에서 섣불리 움직이지 못한 채 대치하고 서로를 노려보기를 수 분.

턱에서 방울져 떨어진 식은땀을 신호로 나는 대원들에게 외쳤다.


"흩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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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쓸 수 있으면 이어 씀.  전체적인 흐름은 짜놨는데 내가 필력이 이 정도밖에 안됐나 싶을 정도로 슬슬 쓰는게 버거워진다 ㅜㅜ 너무 뇌절하는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ㅋㅋ 

재밌게 봐주는 라붕이들 있으면 계속 쓰긴 할거임


재밌게 읽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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