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소리와 함께 공중에서 터지는 불꽃.

주변에서 들려오는 커다란 환호성.

밤 하늘에 그려진 형형색색의 불꽃들이 지면에서 올려다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동을 자아내게 한다.


“예쁘다! 예뻐!”


“그러네.”


지현은 내 호들갑을 받아주며 맞장구쳤다.

난 하늘에서 큰 소리와 함께 터지는 불꽃을 입을 벌리며 쳐다봤지만, 지현은 느끼는 게 없는지 무표정이었다.


그런 지현의 옆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든 생각이 있었고, 난 그걸 곧바로 실행에 옮긴다.

살짝 까치발을 들어 무표정인 지현의 뺨에 입술을 맞추자, 그는 화들짝 놀라며 날 돌아봤다.


“어때? 아내의 입맞춤은.”


지현은 자신의 뺨을 문지르며 붉어진 얼굴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뭐, 좋네.”


그의 대답에 난 미소 짓는다.

난 그를 좋아한다.

지현이가 날 좋아하는지 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이 입맞춤의 반응으로 봤을 때 적어도 날 싫어하는 건 아니겠지.


“있잖아. 난 꿈이 하나 생겼어.”


“뭔데? 의사란 꿈은 이뤘고, 아, 혹시 백만장자?”


지현의 질문에 난 고개를 젓는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건지, 아니면 살짝 꺼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현이 나에게 먼저 스킨쉽을 해 온 적은 없었다.


“난 네가-.”



“아.”


눈을 뜨자 내 방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젠장. 엄청 좋은 꿈을 꾸고 있었는데.

근데, 무슨 꿈이었더라. 분명 옛날에 있었던 일 같았는데.


하지만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결국 하품하며 주방에 들어간 난 앞치마를 하고 아침을 만들기 시작한다.

기름이 끓는 소리, 전자레인지의 소리. 고기가 구워지는 소리 등으로 가득찬 주방에, 지현이가 들어왔다.


“오. 오늘은 일찍 일어났네?”


“…그런 게 있어.”


지현이는 깊은 한숨과 함께 책상에 앉았고, 난 타이밍 좋게 완성된 아침 식사들을 그 위에 올려놓는다.


그렇게 우리 둘의 조용한 식사가 시작됐고, 난 하루를 시작하는 이 시간이 너무나도 행복했다.

우리 사이에 오가는 대화는 없었지만,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조용한 식사 시간이 끝나고, 출근하기 위해 옷을 갈아입으며 지현에게 충고한다.


“담배 좀 그만 펴. 알겠지?”


“생각 해 볼게.”


생각만 하지 말고 그만 피라니까.

에휴. 말만 저렇게 하고 끊을 생각을 안 한다니까.

저러다 건강 나빠지면 어떡하려고. 


‘시간 되면 빨리빨리 병원에 넣어야하는데.’


의사로서 나에게 남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제아무리 병원에서 막내라고는 하나 일단 나도 의사다.

환자들의 진료, 수술도 진행해야하고, 입원 중인 환자들도 보호해야 한다.

그렇게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밤 12시가 다 돼가는 밤.

그런 시간에 병원이 문을 열 리가 없으니까.


지현이를 병원에 데려가는 유일한 방법은 운 좋게 일찍 퇴근하는 날이 있을 때, 어떻게든 잡아내는 것이다.


문제는 지현이도 날쌔서 쉽게 잡혀주지 않는다는 것.


“진짜…. 그 멍청이.”


한숨을 내쉬며 이쪽의 걱정은 생각해 주지도 않는 지현이를 떠올린다.


그러자 뒤에서 친한 선배 한 명이 말을 걸었다.


“웬 한숨? 또 갈굼당했냐?”


이 선배는 병원에서 거의 유일하게 날 같은 의사로서 바라봐주는 사람이다.

즉, 날 괴롭히거나 하지 않으며, 고민도 가끔 들어주는 상냥한 선배인 것이다.


“남편이 담배를 끊을 생각을 안 해서요.”


“아, 바이러스로 여자가 됐다는 그 남편? 나도 담배 피는 사람 싫어해.”


선배가 얼굴을 찡그리시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사람은 착해서 사람 없는 곳에서 짧게짧게 피는 게 대다수이긴 한데. 그래도 담배는 몸에 나쁘니까요. 옛날에 운 좋게 폐암 수술까지 했는데.”


“그래, 그래. 그건 운이 좋았지. 억지로 끌고갔더니 폐암 초기 진단이 나올줄 누가 알았겠어?”


이것도 많이 얘기했었지.

솔직히 나도 그땐 많이 놀랐다. 그저 건강이 걱정돼서 끌고 온건데 폐암 초기라니.

그래도 덕분에 수술도 가능했으며, 성공까지 했다.

하지만, 그랬으면서 다시 담배라니.


“진짜. 한숨밖에 안 나온다니까요. 게다가 여자가 되고나서 저랑 거리를 두려는 것 같고.”


내 고민을 듣던 선배가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여셨다.


“성별이 바뀌면 몸의 형태도 바뀌지. 이로 인한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도 있어.”


“일단 의사니까 저도 아는 내용인데요. 갑자기요?”


“넌 이해가 안 가? 폐암이 걸렸던 네 남편. 그리고 성별이 바뀌면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 여기까지 말했는데 못 알아들어?”


선배가 여기까지 말하자 내 뇌리에 무언가가 스쳐지나갔다.


“서, 설마….”


“내가 섣부른 판단을 한 걸 수도 있어. 하지만, 넌 네 남편이라는 사람을 좋아하는거지?”


싫어할 리가 없다.

처음 만난 그 날부터 쭉 간직해온 마음이다.


“그 남편이 여자가 됐지만, 넌 여전히 그 사람을 좋아해. 그러면, 이런 걱정 정도는 해도 되는 거잖아?”


“선배. 저, 땡땡이 좀 쳐도 될까요?”


“허락하마. 솔직히 여기 병원 엄청 좁으니까. 너 한 명 없다고 안 돌아가는 곳은 아니야.”


선배가 내 등을 툭 쳐 준다.

난 그런 선배를 빠르게 지나쳐 집으로 달려간다.



‘제길.’


더 이상 써지지 않는 글에 분노하며 괜한 책상을 주먹으로 두들긴다.


‘나만 아프네.’


혀를 차며 의자에서 일어나 하얀 바탕에 빼곡하게 타이핑 된 글자들을 바라본다.

편집자 님에겐 죄송한 말이 되겠지만, 한 달이면 된다는 건 거짓말이다.


한 달안에 할 수 있다는 게 아니다.


한 달안에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난 소설을 포기하고, 편지를 쓰기로 했다.

지금까지 밝힐 수 없던 내 진심을 담은 편지를.


하지만, 결국 편지에서조차 부끄러워 망설이고 있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주먹을 강하게 쥐며 방을 나서자, 갑작스러운 고통이 찾아온다.

무릎을 꿇으며 입을 열자,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이 보인다.

떨리는 몸으로 휴지를 찾아 바닥에 흘린 피를 닦았고, 곧바로 화장실로 뛰쳐들어간다.


“하아…. 하아….”


제길.

왜?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있을 터….

아니.

짐작 가는 게 있었다.


‘담배…!’


하.

설마 이제와서 담배를 핀 걸 후회하게 될 줄이야.

진짜, 난 어디까지 추해져야….


“지현아!”


뭐….


“야! 여기서 뭐 해!”


한별이가 화장실로 뛰쳐들어온다.

어째서 이렇게 빨리 돌아온거지?

일찍 퇴근했다고쳐도 나무 빠르다.

아직 점심 막 지난 참이라고.


“화장실에서 뭐 하겠냐. 볼일보고 세수하는 거지.”


“너, 입가에 묻은 피는 뭔데.”


…진정하자.

여기서 괜히 오버 액션을 보이면 더 의심을 살 뿐이다.


“그냥 입술 깨물다가 피가 난 것 뿐이야.”


한별이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하지만 큰 의심은 피한 것 같으니 이걸로 다행, 이라 여기고 싶었지만.


“병원 가자.”


“잠ㄲ-!”


어떻게 저항하기도 전에 한별에게 끌려가기 시작했다.

바로 방금 한 번 발작을 일으켰던 상태라 힘으로 저항할 수도 없었다.

결국 한별이 부른 택시에 강제로 탑승하게 되었다.


“이대로 민성 병원에-.”


거긴, 안 된다.

한별이가 근무하는 곳은 절대 안 돼.


“거기 말고. 위세브란스 병원으로.”


“여기서 거기까지 한 시간 걸릴텐데 괜찮겠어 아가씨?”


한별이가 무슨 생각이냐고 묻는 것 같은 표정으로 노려본다.


하지만 난 개의치 않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결국 한별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채 한 시간이나 달려 내가 제안한 병원에 도착했다.


“왜 여기까지 온 거야? 학생 땐 집이 근처였어서 이해하는데.”


“그냥. 여기 의사 선생님이랑은 친하니까.”


대충 변명을 던지며 한별과 함께 병원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자 간호사 한 분이 날 알아보며 다가오셨다.


“이지현 씨 맞으시죠? 선생님을 불러드릴까요?”


“그러면 감사드립니다.”


“네. 그럼 이쪽으로.”


한별이가 다시 날 쳐다본다.

나에게 날아오는 이 시선의 의미는 알 것 같다.


“내가 스스로 여기 다니고 있었어. 됐냐?”


한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거였어? 난 왜 그리 병원 가는 걸 거부하나 했는데. 이미 병원을 다니고 있었네? 기특해라~.”


키가 닿지 않아 머리가 아닌 어깨를 쓰다듬는 한별이 귀엽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야.’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잡념을 떨쳐낸다.

나에게 지금 필요한 감정은 이런 게 아니다.

모든 걸 끝낼 각오.

이거 한 가지였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쇼. 곧 선생님이 오실 겁니다.”


방으로 들어가고 2분도 지나지 않아 익숙한 선생님이 안으로 들어오셨다.


“지현이랑, 아내, 분이시군요.”


한별을 보는 선생님의 표정이 어두워지셨다.


“선생님! 이 사람이 자꾸 담배를 피워서 걱정돼서 데려왔습니다! 어때요?”


입을 꾹 닫으며 기도한다.

그리고 그 기도는 신에게 닿은 듯, 선생님은 내 편을 들어주셨다.


“건강에 큰 문제는 없습니다. 뭐, 담배는 끊어야 할 것 같지만요.”


선생님이 슬쩍 날 바라보신다.


“뭐, 그래도 일단 병원에 왔으니 진단은 하고 가시죠.”


“감사합니다!”


“그럼 아내분은 잠깐 나가주시죠.”


“아, 네!”


한별이 방을 나가자 난 곧바로 허리를 숙여 감사를 표한다.


“됐어. 아내가 저런 반응이라는 건, 네가 말 안 했다는 거겠지. 너도 아무런 생각 없이 다물고 있는 거라고는 생각 안 하니까.”


선생님의 대답에, 난 조용히 중얼거린다.


“전, 쓰레기입니다.”


선생님은 의자에 앉아 조용히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


“겁쟁이에 부끄럼쟁이라, 지금까지 말하지 못 했습니다. 그러면서 추한 변명을 했죠. 그녀가 먼저 스킨쉽을 해주면 그걸 받아치기만 하면 된다고.”


나도 의자에 앉아 얼굴에 손을 갖다댄다.

부끄러워서 하지 못 했던 말들.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결국 지금까지 말하지 못 했다.

그러면서, 한별이가 먼저 그렇게 말해주면 그걸 받아쳐주는 형식으로 안도하고 있었다.

이거면 됐다고.

굳이 내가 먼저 표현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안심했고, 그 탓에, 한별이를 힘들게 했다.


“그래도 한별이는 착하니까, 분명 어떻게든 절 위로해줄 게 분명해요.”


“뭐, 그 아이라면 분명히 그러겠지. 네가 해맑게 웃으면서 사람을 죽였다 말해도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면서, 널 위로해주겠지.”


그래.

한별이는 그 정도로 상냥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나와 결혼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던 거다.

더 좋은 사람이 있었을텐데.

왜 하필 나였는가.


쏟아지는 눈물을 참지 못했고, 터져 나오는 눈물이 바닥과 내 손을 적신다.


내가 사라지면 한별이는 당장은 울 것이다.


하지만 곧장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하게 살 것이다.


그거면 됐어.


그거면….


‘싫어….’


한별이가 나 말고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애를 낳고, 그 사람에게 애정 표현을 하고, 애교를 부리는 모습을 상상하니 구역질이 올라온다.


이 감정은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질투.


난, 질투하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 한별이의 행복을 우선하고 있으면서, 내심 이대로 나만을 바라봐주길 원하고 있다.


아아, 난, 난 정말로 왜 이렇게.


-이기적인 놈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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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시던 분들이 계실까나싶은 저의 단편 소설 엇갈림입니다.

이제 학교에 등교를 하고 본 소설 비축분을 쌓고 있어 이 소설에 손길이 별로 가지 않았네요.

그래도 마침 오늘 친구들도 모이지 않겠다 생각난 김에 3편을 써왔습니다.

아마 4편, 혹은 5편 정도로 완결이 나지 않나 싶네요. 

이런 글을 따라와주신, 다면야 전 행복하겠네요. 에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