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네임 중 하나였던 '사이보그'에 착안,

원본 승부복의 패턴은 넥타이로 반영하고 사이버네틱한 분위기로 어레인지한 승부복이다.


일본 경마계에서 스파르타 조교로 성공한 말을 꼽으라고 하면 단연 첫선으로 꼽히는 말로,

'언덕길의 산물', '스파르타의 바람', '인조 서러브레드', '밤색 털의 초특급' 등 갖가지 별명을 갖고 있다.

단거리 혈통을 후천적인 단련으로 어느 정도까지 괴물로 만들 수 있는지 증명한 괴물이다.

미호노는 관명, 부르봉(Bourbon)은 프랑스의 왕가에서 따 온 이름.


JRA의 경주마 트레이닝 센터는 관서의 릿토(栗東)와 관동의 미호(美浦)가 있다.

우마무스메 세계관에서 트레센 학원 기숙사 명칭의 어원이 된 두 곳.

그 중 릿토의 명물로 꼽히는 곳이 바로 전장 1085m, 고저차 32m의 우드칩 언덕 코스.


우드칩을 깔아 발의 부담을 줄이고, 허리와 엉덩이 근육을 단련, 파워를 증강하는 효과가 탁월하다.

본래 관서 경주마들이 급경사가 있는 관동 지역 경마장만 가면 탈이 나는 문제가 있어

85년에 완공한 코스인데, 이 코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되면서 관서 말과 관동 말의 역학관계가 역전된다.

그리고 그 역전의 시발점이 된 것이 이 코스에서 단련되고 완성된 미호노 부르봉이다.


데뷔 전까지의 미호노 부르봉의 혈통적 평가는 그다지 높지 못했다.

아버지 매그니튜드는 명종마 밀 리프의 아들로 형제 밀 조지의 성공을 보고 데려온 씨수말이지만

전방위로 우수한 자마를 내던 밀 조지와는 대조적으로 단거리 스프린터만 배출하는 경향이 있었고,

어머니 카츠미 에코도 지방 경마 1승에 그친 말이라 겨우 700만엔에 팔렸다.


통상적으로 보면 단거리 경주에서 뛰다가 조용히 사라질 운명이었겠지만

릿토의 토야마 타메오 조교사 마방으로 들어가면서 그 운명이 바뀐다.


스파르타 조교의 대부, 토야마 타메오(戸山為夫)


토야마는 '모든 말은 본질적으로 스프린터다. 장거리는 노오력으로 가능하다'는 신조의 소유자.

싼 말을 데려와 하드 트레이닝, 유명 기수를 태우지 않고 전담 기수 기용,

언덕길 코스의 적극적 활용 등의 독특한 방침을 고수하며 고승률을 올리던 조교사였다.

미호노 부르봉도 3세(현 2세)에 마방에 들어오자마자 릿토 언덕 코스를 뛰게 했는데,

이때부터 이 말의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같은 또래의 말이 한번만 뛰어도 기진맥진하는 언덕 코스를 뛰고도 태연하게 여물을 씹더니

하루에 2번, 3번...4세가 되었을 땐 하루 4번의 언덕 조교를 버텨내는 괴력을 보였다.

어느새 근육이 울룩불룩 커지고 자잘하게 쪼개지면서 엉덩이가 네쪽으로 보였을 정도.

언덕을 쉼없이 오르는 괴물이라는 소문에 데뷔 전부터 평판이 높았다.


토야마의 신조대로 전담 기수로 코지마 사다히로를 내정,

91년 9월에 츄쿄 1000m에서 데뷔전을 치른 결과는



평판에 부응하는 낙승. 그것도 출발이 늦었는데도 3세 1000m 레코드를 갱신하는 58초 1의 신기록.

2차전인 3세 500만 이하 1600m 경주에서는 한술 더 떠




도쿄의 직선 언덕 코스를 혼자 평지처럼 활보하며 6마신차의 압승을 거뒀다.


3차전은 3세 챔피언을 가리는 아사히배(GI, 1600m). 거칠것 없던 미호노 부르봉은

이 경주에서 처음으로 고전하게 된다. 마이네르 아서의 도주에 자극받아 선두로 나가려다

페이스를 늦추려고 하던 코지마와 힘씨름을 한 것.


가까스로 2번째 위치에 잡아놓는데 성공했지만 힘을 낭비했던 탓인지 예상 외의 신승.

단거리 혈통 덕에 초반 폭주는 위험하다는 생각 때문에 억눌렀으나 그게 오히려 역효과였다.

토야마는 애제자 코지마에게 '저 말은 강하다, 걱정하지 말고 기분 좋게 뛰게 해라'라고 피드백,

이후의 미호노 부르봉은 마이 페이스의 도주마가 된다.


해가 바뀌어 92년, 4세(현 3세).

클래식 무대를 노리는 미호노 부르봉의 복귀전은 스프링 스테이크스(GII, 1800m)였다.

아사히배를 제패했으나 길어진 거리, 그리고 아사히배에서의 신승을 감안해

이번엔 어려울 것이라는 평이 많았는지 커리어 첫 단승 인기 2위.

단승 인기 1위는 샤다이에서 배출한 명문 혈통에 타케 유타카를 태운 노던 컨덕트였다.

그리고 훗날 단거리에서 제왕으로 군림하게 되는 사쿠라 바쿠신 오가 단승 3위.

아직 평가가 높지 않던 라이스 샤워도 이 경주에 참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예상 외.

혼자 앞서서 도주를 감행한 미호노 부르봉은 전혀 지치지 않는 모습으로

직선에서 오히려 거리를 크게 벌려놓으며 무려 7마신차의 완승,

거리 불안이니 하는 예상을 모두 흰소리로 만들어 버렸다.


사람들을 더욱 경악하게 했던건 미호노 부르봉의 페이스 안배였다.

폭주인가 싶던 도주였음에도 불구, 각 200m로 나눈 랩타임은


12.4-11.9-12.0-11.9-12.1-12.2-12.6-12.4-12.6


체내 시계가 달렸나 싶을 정도의 완벽한 페이스 배분이었던 것.

선두에 나서서 완벽하게 페이스를 배분하고 누구도 쫓지 못하는 완승.

이 빈틈없어 보이는 승리 패턴은 겨우 200m 늘어날 뿐인 사츠키상(GI,2000m)에서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예상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하루 4회의 언덕 훈련을 소화하던 미호노 부르봉은 한달 전보다 더 강해져 있었다.



초반 200~600미터 구간을 11.1과 11.6으로 빠르게 달리면서도

나머지 구간을 모조리 12초대로 끊는 괴력을 보이며 나리타 타이세이와 2마신 반차의 완승.

단승 1.4배의 압도적 인기에 부응하며 커리어 무패로 사츠키상을 제패했다. 아사히배에 이어 GI 2승째.


거칠것 없는 이 괴물에게 다음 목표이자 최대 목표는 당연히 일본 더비(GI, 2400m)였다.

2400m의 거리는 아무리 단련한다 해도 본래 단거리 혈통인 미호노 부르봉에겐 무리라는 얘기가 또 나왔다.

토야마 조교사의 스파르타 훈련의 효과는 2000m의 거리까지 극복시켰지만, 400m가 더 늘어나면...

워낙 예상을 깨고 연달아 압승하던 말이었기에 단승 인기는 여전히 1위였으나, 배당은 2.3배로 높아져 있었다.

외곽에서 출발한 덕에 평소보다 과감한 도주를 택한 미호노 부르봉,

그런데 예상 밖의 검은색 말이 미호노 부르봉을 마크하고 쫓아왔다. 18마리중 인기 16위였던 라이스 샤워였다.


결과는 이전과 같은 4마신차 완승. 

지난해의 토우카이 테이오에 이어서 2년 연속으로 탄생한 무패의 클래식 2관마였다.

다만 주목할 만한 변화는 후속 주자들이 따라오지 못하고 늘어져버린 반면,

미호노 부르봉을 초반부터 추격하던 라이스 샤워가 2착으로 살아남았던 것.


칠흑의 스테이어, 관동에서 온 라이스 샤워.

500kg에 육박하던 미호노 부르봉과 대조되는 430kg의 호리호리한 체형.

이미 시대에 뒤떨어져 보이는 정진정명의 스테이어(장거리 전문) 혈통.

봄철 초반만 해도 두드러져 보이진 않았지만, 사츠키상 8착에 그쳤던 이 말은

단 한달 뒤 일본 더비에서 거리가 늘자 2착까지 올라온 것이었다.


토야마도, 미호노 부르봉을 믿고 맡기던 코지마도, 

삼관 경주의 마지막인 킷카상(GI, 3000m)를 생각하면 이 스테이어를 의식하지 않을수 없었다.

단련해서 3000m를 뛰게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애초부터 장거리가 적성인 말을 상대한다면...?


여름을 휴양하고 킷카상을 노려 복귀한 미호노 부르봉은

킷카상 트라이얼인 교토 신문배(GII, 2200m)에서 다시금 무난하게 승리했다.


초반 200~400m 구간을 무려 10.5초로 뛰면서도 지치지 않는 힘,

2분 12초 0의 2200m 일본 레코드 경신은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그러나 일본 더비 때 4마신 차이였던 라이스 샤워와의 격차는

이런 하이페이스의 경주에서 오히려 1마신 반 차이로 줄어 있었다.

데뷔후 7전 전승, 무패가도를 달리던 미호노 부르봉 진영의 뇌리에는

저 검은색 말의 그림자가 망령처럼 넘실대고 있었다.


교토 신문배에서 3주 후, 11월 8일의 킷카상.

경주를 앞두고 또 하나의 변수가 발생했다.

참가한 말들 중 또 하나의 도주마였던 쿄웨이 보우건 진영에서

'도주할 것이다. 상대가 미호노 부르봉이라도 선두를 내주지 않는다'

라고 아예 공개 선언을 해 버린것.


마이페이스의 단독 도주라면 걱정이 없다.

하지만 도주마들끼리 선두 경합을 벌이면 자의건 타의건 페이스가 올라간다.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3000m의 장거리에서 오버페이스는 치명적.

심볼리 루돌프 이후 처음 도전하는 무패 삼관 달성이 걸린 경주에서 모험은 너무 위험했다.


토야마는 미호노 부르봉을 믿고 있었다.

"이 말은 일단 맨 앞에 나서기만 하면 거리가 어떻든 200m를 12초대로 끊어 준다."

하지만 안장 위의 코지마는 마지막까지 3000m라는 현실적인 벽에 고민하고 있었다.

경주가 시작되고 선언대로 쿄웨이 보우건이 먼저 도주하자

코지마는 고삐를 잡아당겨 미호노 부르봉을 2번째 포지션에 놓았다.


애초에 적수가 되지 못하던 쿄웨이 보우건은 3코너에서부터 쳐졌고,

4코너를 돌아나오며 미호노 부르봉이 선두에 나섰지만

밖에서 라이스 샤워, 안에서 마치카네 탄호이저가 나란히 추격해 왔다.

일순 두 마리에게 추월당한 미호노 부르봉은 다시 힘을 내 마치카네 탄호이저를 재차 제쳤지만

라이스 샤워를 따라잡는 건 무리였다. 1과 1/4마신 차이의 패배.

무패의 삼관을 목전에서 놓치는 순간이었다.

라이스 샤워가 골을 통과하는 순간 요도에 운집한 팬들은 환호 대신 비명을 질렀다.


애초에 이길 가망이 없으면서 사상 5번째의 삼관마 탄생에 초를 친 쿄웨이 보우건은

희대의 눈새로 욕을 바가지로 먹었고,

라이스 샤워는 미호노 부르봉의 삼관을 저지한 것은 물론, 이듬해 천황상·春에서 

메지로 맥퀸의 사상 첫 3연패까지 저지하며 경마판 최대의 악역, '관동의 자객'으로 이름을 떨쳤다.


코지마는 "더 빠른 속도로 도주했다면 2착조차도 위험했다"고 술회했고,

토야마는 "말을 믿지 못했다"라고 코지마를 질책했지만, 추후 다른 곳에서는

"보우건과 경합했으면 승리 아니었으면 참패라는 큰 도박이긴 했다"고 부분적으로 인정했다.

삼관 실패의 아쉬움을 접어두고 재팬 컵을 준비하던 중 근육통이 발생, 92년의 일정을 마쳤다.


해가 바뀌어 93년이 되었지만 미호노 부르봉은 돌아오지 못했다.

1월에 골막염이 발견되어 장기 휴양, 4월엔 설상가상으로 오른 뒷다리가 골절.

식도암으로 투병하며 부르봉의 귀환을 고대하던 토야마 조교사는

5월 29일, 더비 제패 1주년을 이틀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토야마가 투병중에 집필한 책. 국내에도 발간됐다.


한편 미호노 부르봉은 다른 마방으로 옮겨져 복귀를 모색했지만 끝내 부상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94년 1월 은퇴했다.

통산 8전 7승, 2착 1회. 91년 최우수 3세마, 92년 연도 대표마 및 최우수 4세마.


히다카로 옮겨져 씨수말로 활동했으나 혈통면의 장점보다는 후천적으로 완성된 덕분인지 

중앙에서는 활약하는 말 없이 지방 경마에서 간간히 중상 우승마를 내는 정도에 그쳤다.

2012년을 끝으로 씨수말에서 은퇴, 원래 생산자였던 하라구치의 양아들이 경영하는 스마일 팜에서

공로마로 여생을 보냈다. 씨수말 은퇴 이후로는 겨울나기를 힘들어해 점점 몸이 약해지다

2017년 2월 21일 스스로 일어나질 못하고 노환으로 사망. 향년 28세.

조교사와 기수가 먼저 떠나고(코지마는 조교사 생활중 경영난으로 2012년에 자살),

가장 늦게까지 살아남았다.


25세 때의 미호노 부르봉. 인간 나이로 80을 넘긴 영감이면서도 엉덩이 근육이... 


출처 : 우마무스메 캐릭터 소개 47 - 미호노 부르봉(ミホノブルボン) - 우마무스메 갤러리 (dcinsi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