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JRA CM 타카라즈카 기념 비와 하야히데 편




93년 클래식 시즌을 수놓은 BNW 트리오의 일원이며 셋중 가장 뛰어난 족적을 남긴 말이다.

15경주 연속 연대連対(2착 이내) 기록은 신잔 다음으로 가장 긴 기록. 극강의 안정성을 자랑했다.


처음으로 등장한 안경 캐릭터다.

회색털, 보라색-검정색 톱니무늬를 기조로 한 승부복 어레인지에 더해 

커리어 동안 썼다 벗었다 했던 빨간색 가면은 빨강 테의 안경으로 바뀌었다. 

머리카락이 풍성한건지 머리 자체가 큰건지 분별하기 힘든 모습은 

역시 이 말 최고의 네타인 대두 네타. 저 가면을 쓰지 않은 모습은


대략 이 정도다. 이 말의 가능성을 처음 발견한 타카야마 유우키는

"얼굴이 하얗기 때문에 커보이는 것이다. 정말 큰게 아니다"라고 항변했지만,

어떻게 봐도 머리 자체가 크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하야타 목장이 영국 뉴마켓의 경매에서 낙찰받은 번식암말 퍼시피커스Pacificus. 

20세기 최고의 씨수말 노던 댄서Northern Dancer의 딸로,

낙찰 당시 샤루드Sharood의 새끼를 임신하고 있었다.

때는 90년, 버블 경기 막판이라 수입되는 말들이 폭주 , 통관이 늦어지는 바람에

나리타 공항에 들어올 때는 이미 출산이 임박한 상태였고, 니캇푸까지 갈수 없어

드물게도 홋카이도가 아닌 후쿠시마의 목장에서 출산을 해야 했다. 

이때만해도 이 암말이 이때, 그리고 1년 후에 낳은 두 마리가 

2년 연속으로 일본 경마판을 흔들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생후 1개월쯤 위에서 대두설에 항변하던 타카야마 유우키가

구매 대리인 활동차 목장을 돌던중 이 말을 보자마자 홀딱 반해서 

'비와'의 관명을 쓰는 나카지마 유우에게 추천,

속도速가 빼어나기秀를 기원하며 지은 이름이 비와 하야히데.

하야히데를 맡기로 한 하마다 미츠마사 조교사가 보기에도

머리가 유별나게 크고 다리도 굵고 뭔가 규격 외의 느낌이었지만 

노던 댄서의 핏줄을 믿고서 큰 걱정은 안했다고.


신세대 기수 키시 시게히코가 안장에 올라 맞이한 3세(현재 기준 2세) 데뷔전은

92년 9월 13일, 한신 경마장에서 열린 신마전.

2위 TM 신잔과 10마신 이상의 대차로 완승하면서 그 파격의 소질을 처음 드러냈다.

이후 모미지 스테이크스와 데일리컵 3세 스테이크스에서도 연달아 3세 레코드를 갱신하며 3연승.

4차전이자 3세 챔피언전인 아사히배 3세 스테이크스(GI, 1600m)에서 

외국산말인 엘 웨이 윈에게 코 차이로 패배해 연승 행진이 끊겼지만, 

엘 웨이 윈은 클래식 출전 자격이 없었기 때문에 2착을 한 비와 하야히데는

93년 클래식의 유력 후보로 이미 입지를 굳히고 있었다.


93년의 복귀전은 교도 통신배 4세 스테이크스(GIII, 1800m)였는데, 여기서도 또 코 차이로 2착에 그쳤다.

2번 연속으로 물을 먹은데 분노한 마주 나카지마가 키시를 내릴 것을 강력히 요구, 주전 기수가 바뀌었다.

하마다는 타케 유타카를 권했지만, 이미 젊은 기수에 데인 나카지마는 노련한 기수를 요구,

미호 쪽 기수라 하마다와 연이 없었던 오카베 유키오를 마주가 직접 삼고초려해 태웠다.

교체되자마자 사츠키상 트라이얼인 와카바 스테이크스를 손쉽게 이겼지만,

오카베를 주전으로하는 클래식 예비주자가 둘이나 더 있어 인맥상이나 순서상으로나 불리한 상황,

그러나 돌연 나머지 두 마리가 부상으로 잇따라 이탈하면서 자연스럽게 오카베가 주전으로 못이 박혔다.


사츠키상(GI, 2000m)를 앞두고 비와 하야히데를 상대하는 유력 후보는

야요이상에서 두각을 드러낸 두 마리였다. 우승자 위닝 티켓과 2착의 나리타 타이신.

위닝 티켓, 비와 하야히데, 나리타 타이신 순으로 단승 인기를 나눠 가졌고

실제로는 앞 두마리의 2강 대결에 가까운 분위기였지만

전편(링크)에서 보았듯이 섬광같은 스퍼트를 폭발시킨 나리타 타이신이 승리를 채갔다.

비와 하야히데는 또다시 코앞에서 승리를 놓치며 2착.


이어진 일본 더비(GI, 2400m). 머릿글자를 따 BNW 3강이라 불리던 셋이 재격돌했다.

기수 생활동안 한번도 연이 없었던 더비 자키에 도전하는 시바타 마사토,

클래식을 위해 교체된 기수라 그 책임감을 더 무겁게 느끼는 오카베 유키오와 타케 유타카.

인마 모두 총력을 다한 더비 사상 손꼽히는 3강 대결 명승부에서


위닝 티켓이 승리, 비와 하야히데는 반마신 차로 또다시 타이틀 획득에 실패했다.

클래식 2경주 연속 2착의 쓰라린 좌절.


킷카상을 목표로 와신상담하던 비와 하야히데 진영에게 좋은 롤모델이 떠올랐다. 

전년도에 상식을 깨며 삼관 도전에 나섰던 언덕길의 산물 미호노 부르봉.

남들 다 쉬는 여름 동안 비와 하야히데는 미호노 부르봉처럼 언덕 코스를 달렸고,

그 결과는 봄철과 완전히 달라진 근육질 체형으로 보답받았다.


복귀전인 고베 신문배를 완승, 킷카상(GI, 3000m)로 향한 비와 하야히데는

교토 신문배를 승리하고 돌아온 위닝 티켓과,

폐출혈로 비실대다 간신히 킷카상에서 복귀한 나리타 타이신을 만났다.

단승 인기는 위닝 티켓에 비와 하야히데가 근소하게 앞서는 양강 구도였지만

컨디션의 충실함은 차원이 다른 상태였고, 그 결과는 경주 결과로 드러났다.


4코너에서 일찌감치 선두에서 나선 후 후속과 5마신차의 완승. 3천미터 일본 레코드 경신.

비와 하야히데의 첫 GI 우승이자, 나카지마와 하마다에게도 첫 GI 타이틀이었다.

위닝 티켓은 3착, 나리타 타이신은 꼴찌에서 두번째. 

봄철의 팽팽한 3강 구도는 어느새 명백한 상하관계로 바뀌어 있었다.

그 기세를 타고 비와 하야히데는 연말 그랑프리인 아리마 기념(GI, 2500m)로 향했다.


마침 그때 출전하던 고마들의 상태는 전부 불안 요소가 있었다.

직전 재팬 컵을 우승했지만 플루크처럼 보이는 레가시 월드,

천황상·春에 올인해 메지로 맥퀸을 꺾은 이후로 줄곧 난조였던 라이스 샤워,

전년 아리마 기념 깜짝 우승후 하락세를 걷던 메지로 파머.

항상 선전하지만 우승만큼은 못하는 3착 전문가 나이스 네이처.

전년도 아리마 기념 후 무려 363일만에 복귀전을 갖는 토우카이 테이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비와 하야히데가 단승 1위를 차지하는건 어찌보면 당연했다.

킷카상에서처럼 4코너에서 도주중인 메지로 파머를 따라잡고 선두에 나섰으나



그 바로 바깥에서 육식동물처럼 달려든 한 마리가 있었다. 토우카이 테이오.

근 1년간의 공백기가 무색하게 절정의 컨디션을 보이던 테이오에게 반마신 차로 역전패했다.

비와 하야히데를 타야 했기에 직전까지 주전이었던 토우카이 테이오를 타지 못했던 오카베는

"진 상대가 테이오라면 어쩔수 없다. 내년에 갚고 싶다"며 패배에 승복했다.

다만 이후 네번째 골절 덕에 결과적으로 이 경주를 끝으로 은퇴하는 테이오를 만날 기회는 없었다.


93년에 화룡점정의 기회를 놓쳤지만 94년 상반기는 비와 하야히데의 적수가 없었다.

위닝 티켓은 상반기를 통째로 결장했고, 나리타 타이신은 이미 한계점이 보이는 상황.

교토 기념(GII, 2200m)에서 복귀해 59kg이라는 고중량을 지고 나서지만 7마신차 완승.

천황상·春(GI,3200m)에 이르면 이름 높았던 고마들이 사라져

경주 전부터 적수가 있긴 하냐는 평까지 나오는 참이었다.

그나마 인기 2위였던 나리타 타이신이 경주 후반에 추격해 오자 



그제서야 채찍을 넣는 여유를 보이며 눈으로 보이는 격차 이상의 완승을 거뒀다.

그런데 이때 칸사이 TV의 스기모토 키요시는 골 순간 

"형도 강하다! 형도 강하다!" 라고 외쳤다. 형'도'.....?


바로 천황상 1주 전, 94년 사츠키상에서 나타난 섀도우 롤의 괴물 덕분이었다.

비와 하야히데의 동복 동생, 나리타 브라이언.

사츠키상 우승 순간 삼관의 재목으로 꼽히면서 매스컴의 관심을 싹쓸이했기 때문이었다.

명백히 그 순간, 경마계 화제의 중심은 현역 고마 최강인 형이 아니라, 클래식 초입의 동생이었다.


일본 더비에서 예정되었다는 듯 나리타 브라이언이 승리해 2관을 달성한 2주 후,

상반기 그랑프리인 타카라즈카 기념(GI, 2200m)에서 애초에 적수가 없던 비와 하야히데도


5마신차로 2200m 일본 레코드를 갱신하며 우승, GI 3승째를 기록했다.

연말의 아리마 기념에서 '형제대결'을 기대한 매스컴은

비와 하야히데에 대한 질문보다 나리타 브라이언과의 대결 전망에 대한 질문을 퍼부어

하마다 조교사를 진저리치게 할 정도였다.

여름을 휴양하고 형제는 각자의 노선으로 복귀했다. 

형은 올커머(GIII, 2200m)에서 시작해 천황상·秋(GI, 2000m). 재팬 컵을 건너 뛰고 아리마 기념으로.

동생은 교토 신문배(GII, 2200m)에서 복귀해 킷카상(GI, 3000m)으로 클래식 삼관에 도전, 그 후 아리마 기념으로.

비와 하야히데는 올커머에서 위닝 티켓과 재회해


1과 3/4마신차이로 낙승, 반면 나리타 브라이언은 교토 신문배에서 2착, 형이 체면을 살렸다.

다만 이때 미묘한 불안 징후가 드러나고 있었는데, 다름 아닌 체중 감소였다.

전년도 킷카상때 만들어 놓은 최고의 컨디션 때가 480kg 정도였는데

94년엔 폭염의 영향으로 경주를 치르면서 조금씩 체중이 줄더니 

올커머를 앞두고는 의식적으로 체중 회복을 노렸는데도 470kg으로 오히려 줄었던 것.

그리고 이 체중은 본편인 천황상 당일에도 회복되지 않고 그대로 470kg에 머물렀고..


본 경주에서 그 불안감은 현실이 되었다. 직선에서 전혀 뻗어나오지 못한 끝에 5착 패배.

비와 하야히데의 15경주 연속 연대 기록이 끝장나는 순간이었다.

우승한 말은 공교롭게도 전년 킷카상에서 비와 하야히데가 우승할 적에

심방 세동을 일으켜 꼴찌로 기어들어왔던 네하이 시저였다.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천황상 3일 후에 굴건염이 발견되어, 위닝 티켓과 나란히 은퇴가 발표되었다.


경마계 모두가 기대하던 형제 대결이 무산된 후, 킷카상에 출전한 나리타 브라이언은

7마신차로 완승하며 사상 5번째의 삼관마 자리에 오른다.


(6:50부터)

당시 실황을 중계하던 스기모토 키요시는 이번엔

"동생은 괜찮다! 동생은 괜찮다!"를 연발하며 환상이 된 형제대결의 아쉬움을 달랬다.


GI 3승, 93년 JRA 연도 대표마, 94년 상반기 최강마이자 94년 JRA 최우수 5세마.

동세대에서 가장 강했고 15연속 연대가 말하듯 안정감 또한 최고였음에도 불구하고

기이할 정도로 경마계에서 주인공이 되는 일은 없었던 말이었다.


더비에서는 시바타 마사토 비원의 더비 제패의 조역,

아리마 기념에서는 토우카이 테이오 기적의 부활의 조역,

94년 상반기에는 동생에게 관심을 빼앗겨 주역이 되지 못하는 등...

강하고 커리어에 굴곡이 없는데도 매스컴이 풀어내는 스토리에선 항상 한발 비껴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성적을 냉정하게 평가하게 되면서

'뭐야, 역시 강했잖아 이 말'

하고 재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는 점에선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은퇴후 씨수말로 전업했으나 유력한 자식을 내지는 못하고 2005년에 은퇴,

98년에 장폐색으로 급사한 나리타 브라이언과는 대조적으로

그를 처음으로 발탁했던 타카야마의 닛세이 목장에서 공로마로 유유자적 지내고 있다.


2015년, 25세의 비와 하야히데. 꼬리와 갈기 말고는 하얗게 세었다.


출처 : 우마무스메 캐릭터 소개 50 - 비와 하야히데(ビワハヤヒデ) - 우마무스메 갤러리 (dcinsi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