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추적

황제 폐하, 어머니가 행복하도록 해주세요

어머니는 황제 폐하를 믿지 않아요

저도 믿는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예전에 사제님은 황제 폐하께 진심으로 기도하면 

이루어진다고 하셨어요. 

기도하면...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야나는 거인의 말을 따랐다. 야나는 집 안에서 어머니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하루를 굶었다. 이틀째가 되자 배가 너무 고파서 견딜 수 없었다. 야나는 옆집 발린 아저씨의 문을 두드렸지만 대답이 없었다. 그녀는 고민 끝에 창문을 깨고 들어갔다. 먹을 것은 없었지만 발린 아저씨가 사용하던 가죽 장갑이 있었고, 야나는 그것을 끓여 먹었다. 날씨가 점점 더 추워지고 있었다. 야나는 이불을 들고 어머니 방에서 잠들었다. 잠에서 깼을 때 그녀가 곁에 있기를 바라며. 하지만 야나는 아무도 없는 방에서 눈을 떴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을 거야. 야나는 깨달았다. 이제 혼자서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하이브 하층부에서는 이틀 사이에 많은 일이 벌어졌다. 어머니가 따르던 교단은 자신들을 "하이브컬트" 라고 선포했다. 첫째 날 기지국이 점령당한 이후 하루 종일 방송이 나왔기 때문에 집 안에 있던 야나도 주변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대성당은 하루도 버티지 못했다. 제국 사제들의 처형이 방송될 때가 가장 끔찍했다. 불이 거세게 타오르는 소리와 함께 기도문과 비명, 애원과 원망이 뒤섞인 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사방에 울려 퍼졌다. 야나는 귀를 막았지만, 끔찍한 소음은 오수처럼 손가락 사이를 파고들었다. 


언더하이브와 연결된 통로는 둘째 날 아침에 열렸다. 갱들이 지하에서 올라왔고 닥치는 대로 약탈하기 시작했다. 야나는 침대에서 몸을 웅크린 채 갱단이 들이닥치지 않기를 빌었다. 별의 자손들에게도 황제 페하에게도. 기도 덕분인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갱단은 야나의 집이 있는 구역을 그냥 지나쳤다. 


거리는 광산에서 골리아스 트럭이 올라오는 소리로 하루 종일 시끄러웠다. 야나는 창문으로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트럭에는 고출력 지진파 발사기, 채굴 레이저, 중형 착암기와 중형 쇄암기 같은 광산 장비들이 잔뜩 실려 있었다. 폭파 장약을 가득 실은 골리아스 락그라인더도 몇 십대가 지나갔다. 뭔가 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야나에게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은 어머니의 빈 자리였다. 어머니는 언제나 화가 나 있었댜. 술을 마시면 그녀를 때렸고, 배급 받은 식량은 교단에 바치곤 했다. 그래도 야나는 어머니는 야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기분 좋은 날이면 아버지나 천사들의 이야기를 해주곤 했다. 


야나는 화가 났다. 왜 거인 아저씨의 말을 따른걸까? 거인 아저씨는 멍청한 하프-오그린인데. 이불에 남아있는 어머니의 냄새를 맡을 때마다, 야나는 그때 함께 축복을 받으러 가야 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락그라인더의 바퀴가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랬다면 이렇게 혼자서 무서워할 필요 없을 텐데. 


"그래. 어머니를 찾아가면 되잖아." 


거기까지 생각이 마친 야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연설을 했던 사내는 누구든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야나는 어머니 같은 믿음이 없었지만, 그녀의 말투를 흉내낼 자신은 있었다. 가서 어머니가 괜찮은지만 보고 오는 거야. 축복이 마음에 드시는지만 말이야. 야나는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그리고 돌아오는 거야. 비밀 교회의(야나에겐 이 호칭이 더 익숙했다) 사제님들도 이해해주실거야. 안된다고 하면 나도 축복을 받지 뭐. 


야나는 스스로에게 속삭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은 어두웠고, 이따금 폭발 소리가 났다. 야나는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옷을 갈아입었다. 


왠지 모르게 손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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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폭발 소리가 들렸다. 

그는 눈을 떴다. 머리 위에서 붉은 빛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가슴에서는 더 이상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붉은 색은 안 좋은 징조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일어나게, 서전트." 


아포세카리의 목소리가 복스-그릴을 통해 울려 퍼졌다.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하네." 


갑자기 강한 빛과 소음이 그의 신경을 자극했다. 회복 캡슐의 문이 왼쪽으로 열리자 차가운 공기가 그를 몸서리치게 했다. 그는 호흡 마스크를 벗고, 등받이에서 몸을 떼고 걸어 나왔다.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하얀 안개가 뒤따랐다. 


"디켈리안 형제. 무슨 일입니까?" 


목이 쓰렸지만 말하는데 불편함은 없었다. 회복실 입구에 서있는 아포세카리는 당장이라도 전장으로 뛰어들 것 같은 모습이었다. 잘 정비된 파워 아머, 날이 잘 갈린 나르테시움과 볼트 피스톨, 일곱 개의 수류탄. 요새 수도원에서 파워 아머를 입고 다니는 것은 흔한 일이었지만, 이 정도로 철저한 전투 태세를 유지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뭔가 잘못된 것이 분명했다. 


"챕터 마스터와 다른 병력은?"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네." 아포세카리가 말했다. "자네와 부상자들이 마지막 귀환이었어." 


그의 목소리에서 경멸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어째서? 

다시 폭발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좀 더 가까운 곳이었다. 아포세카리는 문 밖을 경계하며 볼트 피스톨을 들어 올렸다. 


"무기고로 가서 파워 아머를 입게. 여기서 빠져나가야 하네." 

"빠져나간다니? 대체 무슨 일입니까?" 


그의 질문에 아포세카리가 날카롭게 고개를 돌렸다. 헬맷을 쓰고 있어 얼굴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분노와 증오만큼은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자네들이, 챕터 마스터가 그 행성에서 벌였던 일의 결과가 돌아온거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저지른 것인가? 나도 영상을 봤네. 그 광경은 정말이지…." 

천사여,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제기랄. 이 목소리. 그가 인상을 일그러트렸다. 부상은 치유되었는데도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목소리는 끊임없이 그를 추궁하고, 대답을 원했다. 대체 왜? 그는 잘못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들은 워프의 악마들에 물들어 있었습니다. 악마를 부르기 위한 사악한 의식을 벌이고 있었어요. 우리는 해야할 일을 한 겁니다." 


그가 스스로를 설득하듯 강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가슴 속에서 불안감이 피어오르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다. 만약 그가 황제 폐하의 이름으로 올바른 일을 행했다면… 그곳에서부터 그를 쫓아온 이 목소리는 대체 뭐란 말인가? 


"아니. 그렇지 않아. 자네들은 어리석었네. 그들은 사악한 악마의 종이 아니었어." 

저희가 무엇을 잘못했단 말입니까? 


아포세카리의 목소리가 비탄으로 흔들렸다. 다시 폭음이 울려 퍼졌다. 아주 가까운 곳이었다. 감각이 완전히 돌아온 것인지 그 외에도 수많은 소리가 들려왔다. 총성, 하이-고딕으로 명령을 주고받는 목소리. 수류탄이 폭발하는 소리. 파워 아머가 총탄을 튕겨내는 소리. 중화기가 세라마이트 벽면을 강타하는 소리. 누군가 그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하지만 누가? 누가 감히 위대한 죽음의 천사, 스페이스 마린의 요새 수도원을 공격한단 말인가?


아포세카리가 반대편 문을 가리키며 그에게 외쳤다. 


"이런 이야기를 할 시간이 없네. 무기고로 가서 파워 아머를 입게. 캡틴 머독이 격납고 쪽으로 가는 길을 뚫고 있네. 격납고가 확보 되는대로 우리는 요새-수도원을 버리고 탈출할걸세." 

"요새-수도원을 버린다니요! 챕터 마스터께서 절대 용납하지 않으실겁니다!" 

그는 돌아오지 않아!


아포세카리 디켈리안은 차가운 목소리로 외쳤다. 그는 아포세카리의 왼쪽 어깨에 그려져 있어야 할 챕터 문양이 지워진 것을 깨달았다. 챕터 마스터가 돌아오지 않는다니 그건 무슨 말이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챕터 마스터의 마지막 명령은 인퀴지터가 전면 공습을 시작하기 전에 모성을 버리고 도망치라는 것이었네! 그가 우리를, 형제들을 버렸단 말이네!

"인퀴지터? 그들이 어째서?" 


멜타 폭탄이 벽면을 뚫는 폭음이 들렸다. 적들은 이제 아주 가까웠다. 금속 부츠가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황제 폐하의 이름으로! 한 놈도 빠짐없이 정화해야만 한다! 

황제 폐하의 이름으로! 적들은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엑소커뮤니케이트 트레이토리스(Excommunicate Traitoris). 우리는 파문당했네, 아르녹 형제." 


아포세카리 디켈리안이 비참하게 뒤틀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절망으로 가득차 있었다. 


"이제 우리는 반역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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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즈마 제네레이터가 꺼진 밤의 거리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추웠다. 야나가 가진 가장 따뜻한 옷도 소용없었다. 이불이라도 뒤집어쓰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뒤뚱거리며 걸어야 할 것 같았다. 야나는 대신 어머니가 가끔 쓰던 커다란 모자를 썼다.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반짝이는 은색 머리는 잘 보인다는 요릭 아저씨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야나는 최대한 조용히 움직이려고 했지만, 이따금 바람이 불 때면 이가 딱딱 부딪치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전력 공급이 끊긴 거리는 엔진 기름처럼 새까맸다. 유일한 불빛은 언더하이브 갱단이 피워놓은 모닥불들이었다. 야나는 불빛을 발견할 때마다 조심스럽게 방향을 틀었다. 모닥불 주변에서는 시체가 타는 것 같은 고약한 냄새가 났다. 


야나는 광장 근처에 있는 옛 구청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 골목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 번에 들어갈 수 있는 장소는 그곳뿐이었다. 구청은 큰 건물이었기 때문에 어둠 속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피해 가는 것이 문제였다. 사람들은 모두 총을 들고 있었다. 


'내가 아는 아저씨들일까? 만약 요릭 아저씨나 듀락 아저씨라면 내가 어머니를 만날 수 있게 도와줄 거야. 틀림없어.' 


하지만 짙은 어둠 때문에 누구인지 분간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갱단이면 어쩌지? 야나는 무서웠다. 대집회 이후 주변에는 야나가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평소에도 하이브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함부로 다가서는 건 위험했다. 사람들이 모두 흥분한 밤에는 더더욱. 


야나는 결국 그들을 피해가기로 마음먹었다. 야나는 무척 작았고, 그녀는 갑옷이 아니라 헤진 평상복을 입고 있어서 빛이 거의 반사되지 않았다. 야나는 모자를 깊이 눌러쓴 채 소리죽여 걷고, 벽을 기어오르며 어둠을 틈타 움직였다. 구청에 도착하기 까지는 두 시간이 걸렸다. 평소라면 사십 분이면 충분할 거리였다. 손이 찢어질 듯이 시렸고, 입술이 뻣뻣했다. 발가락에도 감각이 없어서 야나는 몇 번이나 넘어질 뻔 했다. 


구청 근처에 도착하니 입구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다섯 명의 블루텅 갱단이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손전등이 달린 산탄총을 들고 주변을 비추며 파란 혀를 날름거렸다. 이제 어떻게 하지? 야나는 싸늘한 벽에 등을 붙인 채 생각했다. 어딘가에 들어갈 방법이 있을 거야. 야나는 손에 입김을 불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배수로. 야나에게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망가진 배수구가 있었다. 위에는 강철망이 쳐져 있었지만 강한 충격을 받은 것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야나의 체구라면 어떻게 지나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야나는 주변을 돌아본 뒤 재빨리 다가가서 안으로 발을 넣었다. 그녀의 하반신이 무리 없이 안으로 쑥 들어갔다. 발에 닿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게 지하 깊숙한 곳으로 떨어지는 구멍이면 어쩌지?'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그녀의 머리를 스쳤다. 하지만 손끝에 감각이 없어서 조심하기가 쉽지 않았다. 붕대를 감은 손등이 뒤틀린 철망에 부딪치자 녹슨 입구가 끼익 하고 소름끼치는 신음소리를 냈다. 무슨 소리지?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간이 없었다. 들킬 것 같았다.


가야해. 야나는 숨을 크게 들이쉰 뒤, 뱀처럼 틈 사이로 미끄러졌다. 


어둠이 그녀를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