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왕성으로부터 북북서방향으로 약 12km 떨어진 곳에 있는 용의 무덤, 그 곳으로부터 서쪽으로 약 5km 떨어진 모래로 뒤덮여있는 산인지, 아니면 모래만으로 이루어진 산인지 모를 곳의 정상에 두명의 남자가 마주보고 있었다.

 세 군데에 빨간 브릿지가 들어간 파란 머리칼이 바람에 헝클어진 남자는 키 182cm의 장신이었으며, 입고 있는 백은의 갑옷과 푸른 보석이 박혀있는 검을 들고 있는걸로 봐선 기사인 듯 하다.

 그런 미남 기사의 앞에 서있는 자는 그와는 달리 검은 갑옷을 입고 서있었으며 얼굴에는 투구를 쓰고 있어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푸른 머리의 기사와 비슷한 신장의 그 역시 손에는 검 한자루를 쥐어들고 있었다.
 그의 검엔 푸른색이 아닌 붉은색의 보석이 박혀있었다.
 아무래도 이 자도 기사인듯 하지만 내뿜는 기운은 기분 나쁠 정도로 악의 것이었다.

 

 "마왕, 오늘에야말로 끝이야"

 

 청명한 목소리의 주인은 백은의 기사였다.

 

 "그런가, 드디어 끝인가. 후회는 없다, 용사"

 

 마왕이라고 불린 검은 기사의 목소리 또한 악의 기운에 어울리지 않게 청명했다.
 아무래도 그 목소리에 용사는,

 

 "뭐야, 꽤나 좋은 목소리잖아. 그 얼굴 보여줄 수 없어?"

 

 마왕의 얼굴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이에 마왕이 웃겼는지 쿡쿡, 하고 웃더니 자신의 칼을 지면에 박고는 양손을 투구에 가져가 투구를 벗어 용사에게 집어던졌다.
 용사가 이를 받아드는 동안 마왕은 머리를 몇번 흔들고는 용사를 바라보았다.
 용사는 웃으며 그 투구를 받아들고는 머리를 올려 마왕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어째서일까, 이내 그 표정이 심각하게 일그러지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마왕은 웃으며 말했다.

 

 "놀랐나, 용사. 뭐, 놀랐겠지. 보다시피 나는 너니까"

 

 똑같았다.
 투구를 벗은 마왕의 얼굴은 용사와 단 하나도 다르지 않고 똑같았다.
 그야말로 자기자신이 아니고서야 가능하지 않을 정도로.

 

 

 01


 시대는 용과 인간 그리고 마물 등 여러 종족이 공존하는 환상의 시대, 아니, 그렇게 불리운건 어느덧 머나먼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다.
 시간이 흐르며 인간이 자연을 파괴해나가자 마물을 비롯한 묘호[猫虎], 조견[鳥犬], 어인[魚人] 등 많은 종족들이 인간들과의 전쟁을 선언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용들만은 인간과 다른 종족간의 전쟁을 지켜보며 지는 쪽을 도와주며 전쟁을 계속해나가길 어느새 수천년의 시간이 흘러 번식이 불가능한 용들이 죽어나가 단 한명의 용만이 살아남자 인간들은 그를 꼬득여 자신들을 돕게 하였고 수천년의 시간이 무색하게 십년도 지나지 않은 시간 내에 모든 종족이 멸종당하고 인간과 마물만이 남은 상황에서 마지막 용이 죽어버리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 돌입하게 되자 인간의 왕은 마물을 퇴치할 용사들을 모으는 문구를 여기저기에 붙이기 시작해, 드디어 4월 1일인 오늘 그것을 보고 모인 사람들로 왕궁 앞의 광장을 가득 메웠다, 라고 할까, 나도 그 중에 하나지만.
 북적대는 광장을 어떻게든 뚫고 들어가 왕궁의 3층 높이에 있는 왕이 나올 테라스가 보이는 곳까지 들어왔다.
 그러자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왕궁의 창이 열리고 그 안에서 누군가가 걸어나와...... 아니, 앉아서 나왔다.
 의자에 바퀴라도 달린 양, 자신의 앉은 키의 두배정도 되는 새하얀 의자에 앉은째로 나오는 것은 분명 왕이겠지.

 왕은 전신이 새하얗고 발과 팔 끝까지 내려오는 긴 옷을 입고 있었으며, 갈색빛의 머리카락은 한가닥을 남긴채 뒤로 넘겨 어째선지 만화에서 경화수월이라도 쓸 법한 외모를 하고 있었다.
 어쨌든 그런 왕이 북적대는 용사지원자들을 한번 둘러보고는 그 입을 열었다.

 

 "쓸데없이 너무 많군. 약해빠진 놈들이 가봤자 개죽음이지. 오늘부터 일주일에 걸쳐 그 수를 하나로 줄이도록 하겠다"

 

 애초에 선택 받는 자가 한명이라는 말이 없던 탓일까, 지원자들의 대부분이 말도 안된다며 소리치자 왕은 다물고 있던 입을 다시 한번 열었다.

 

 "어중이떠중이들이 말이 많구나. 어차피 죄다 마왕의 목에 걸린 포상금을 노리고 온 자들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돈을 내줄 나의 말을 따르는 것이 순리이거늘. 싫다면 여기서 떠나도 좋다. 어차피 필요한건 단 한명 뿐이다"

 

 왕의 말에 지원자들은 갑과 을이 누군지 깨달았는지 조용해졌다.
 왕은 이를 보고 조용히 미소지었다.

 

 "좋다. 그럼 이 순간부터 용사의 시험을 시작하지. 떠벌떠벌 떠들어대는 것은 질색이다. 단 한번만 말하도록 하겠다. 정확히 오후 1시에 도마뱀의 숲의 중앙에 있는 '도마뱀의 꼬리'라 불리우는 거대한 나무의 나뭇가지를 가진 상태로 광장에 있어라. 무슨 수를 써도 좋아. 필요하다면 팀을 맺어도 좋고, 상대를 죽여도 좋다. 단, 명심하도록. 이 성 안에서 사람을 죽이는 자는 나의 손에 죽을 것이다. 자, 시작이다. 부디 살아돌아오라, 용사들이여"

 

 그 말에 광장에 있는 모든 자들이 너나 할것 없이 달린다.
 나뭇가지가 몇개나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 오로지 용사가 되기 위해 도마뱀의 숲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


 대부분의 지원자들은 남쪽 성문을 향해 달려나갔다.
 도마뱀의 숲은 여기 왕성으로부터 남서쪽으로 5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그곳은 예전에 인간과 싸우던 벌레처럼 생긴 종족이 거주하던 지역으로 그들이 죽은 지금은 독기만을 뿜어낸다고 한다.
 그런 곳에 아무런 생각도 없이 달려든다는 것은 그야말로 죽으러 달려드는 것이랑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나는 광장 구석으로 향해 거기에 있는 나무벤치에 앉아 광장을 빠져나가는 자들을 구경한다.
 그런 나의 뒤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음? 넌 뭔데 안가냐?"

 

 마치 친구에게 말을 거는 듯한 남자는 금발의 머리카락에 붉은 눈동자를 지니고 있어, 마치 고대 우르크의 영웅왕이자 방심왕인 남자를 연상시켰다.

 

 "글쎄? 그러는 너는 왜 안가는데?"

 

 의문에 물음으로 답하자 녀석은 외형과는 달리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어차피 나뭇가지인데 이런걸로 속이면 되는거 아니냐?"

 

 녀석은 손에 든 나뭇가지를 보여주며 말했다.
 그러더니,

 

 "뭐, 농담이지만. 어쨌든 아직은 갈 필요가 없잖아? 시간이 안됐으니까"

 

 그 나뭇가지를 나에게 던지며 웃는다.
 나는 나뭇가지를 받아들고 말했다.

 

 "그러면 나와 같군. 설마 너, 여행자냐?"

 

 나의 물음에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제는 시간이지만 말이지, 라며 자리를 떠난다.
 뭐 때문에 말을 걸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여행자라는 것은 말 그대로 여기 왕성을 떠나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자들의 통칭이다.
 마물이 있는 용의 무덤을 제외하곤 거의 전국을 돌아다닌 나 역시도 여행자이다.
 아무래도 이번의 퀘스트는 여행자들을 위한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한번이라도 도마뱀의 숲에 가본 자들이라면 쉽게 해결할만한 퀘스트다.
 그 이유는 독을 내뿜는 도마뱀의 숲이 오후 12시부터 1시까지의 약 한 시간 동안 그 활동을 멈추기 때문이다.

 그러나 녀석의 말대로 문제는 시간이다.
 1시까지 가져오려면 12시 이전에 도마뱀의 숲을 찾아가 12시가 되자마자 숲에 들어가서 도마뱀의 꼬리를 찾아 여기까지 가져오는걸 1시간만에 해내야한다는 소리인데 5km를 그 시간 안에 걸어올 수 있을리도 없고, 이거야 원 어쩔 수 없이 도움을 받아야하나......
 나는 손에 든 나뭇가지를 주머니에 넣고 광장을 떠났다.


 ◇


 현재 시각 10시, 나는 지금 도움을 청하기위해 누군가의 집에 와있다.
 노란 지붕의 2층집이라 병아리집이라고 놀려댄 기억이 있다.
 어쨌든 녀석의 집 앞.
 조심스레, 뭘 조심하는진 모르겠지만, 조심스레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하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수초간의 정적.
 아니, 정적은 계속되었다.

 

 "흠, 아무래도 집을 비운 모양인데,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나는 어쩔 수 없기에 주머니에서 나의 전용무기를 꺼낸다.
 짜잔-, 하는 효과음이라도 있을 법하게 철사를 꺼내들었다.
 뭐, 용도는 간단하다.
 우선 문의 열쇠구멍에 철사를 넣는다.
 그리고 돌린다.
 그러면 마치 마술을 쓴 것처럼,

 

 "짠!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근데 나 누구한테 설명하냐. 뭐, 어쨌든"

 

 철사를 빼내 주머니에 되돌리고 열린 문고리를 돌려 문을 열어 집으로 들어간다.
 집 안엔 진짜로 아무도 없는 모양인지 적막했다.

 

 "자주 나돌아다니는 녀석이 아닌데 말이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방을 열어보다가 거실에 들어간다.
 거실의 식탁엔 마치 나에게 말하는 듯한 글씨가 써진 종이가 놓여있었다.

 

 '너도 용사시험 들었으니까 알겠지만, 나 이번건으로 돈 좀 벌어야겠으니까 넌 알아서 해라. 아 그보다 너, 갈 때 문 닫는거 잊지마라'

 

 ......
 망했다.
 이 녀석만 믿고 있었는데 도망가다니, 그럼 이렇게 된 이상 나도 돈을 주고 다른 사람을 고용해야 되는건가.
 어쨌든 여기엔 더 이상 볼일은 없다.


 ◇


 녀석의 집 문을 열어둔채로 나와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
 참고로 녀석의 집엔 허락된 자만 들어갈 수 있는 결계가 있으니까 문을 잠글 필요는 없다.
 게다가 절대로 일부러 문을 열어두고 온 건 아니다, 어쩌다보니다, 어쩌다보니.
 어쨌든 나는 걸어서 걸어서 성의 북쪽편에 위치한 마술사길드로 찾아갔다.

 

 "우와-"

 

 나도 모르게 소리가 나온다.
 평소에는 개미 한마리도 보이지 않던 길드건물 앞이 사람들로 북적댔다.
 아무래도 용사지원자들이겠지.
 이거야 원, 순간이동이 가능한 녀석들은 별로 있지도 않을텐데, 이러다 경매라도 시작하겠는데.

 


 시간은 어느새 11시 30분.
 아니나다를까, 길드 주체로 순간이동이 가능한 마술사들의 경매가 시작되었다.
 돈의 액수는 엄청나게 올라간다.
 아니, 그 정도의 돈이 있으면 그냥 집에서 먹고 놀아도 되지않나, 싶을 정도의 액수를 불러대는 놈들도 있었다.
 아무래도 일이 이렇게 되자, 돈이 없는 자들은 하나 둘 자리를 떠나고, 돈이 없어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자들도 있었다.
 나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어쩔 수 없이 길드를 떠나 성의 중앙인 광장으로 향했다.


 ◇


 어느새 광장 중앙에 있는 시계탑의 시계는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도마뱀의 숲이 휴면에 들어가있는 시각이다.
 아마 지금쯤 대부분이 도마뱀의 숲에 들어가 있는지 광장에는 나를 포함해 열 명도 채 되지 않는 사람들만이 있었다.
 나는 둘째치고 다른 녀석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 자리에 있는건지 궁금한데,

 그 순간 시계탑의 근처에 푸른빛과 함께 두명의 남자가 나타났다.
 생각할 것도 없이 텔레포트, 공간이동이다.
 아무래도 벌써 도마뱀의 꼬리를 가지고 온 모양이다.
 그런 두 남자에게 원래부터 광장에 있던 사람들 중 한명이었던 남자가 다가가 그들과 대화를 나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것일까, 궁금해하고 있자, 광장에 점점 푸른 빛이 늘어났다.
 아무래도 1시가 다 되어가다보니 찾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겠지.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새 1시가 되기 1분 전, 아침에 그랬던 것보다는 현저하게 적지만 왕이 보이는 곳에 가려면 여길 뚫고 들어가는 수 밖에-
 뚫고 들어가는 도중 툭, 하고 누군가와 부딪힌다.
 미안, 이라고 말하곤 그 뒤로도 몇명과 부딪히면서 수없이 많은 인파를 빠져나간다.
 그리고 그 사이 1시가 되어 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02


 왕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입을 열었다.

 

 "모든 확인은 끝났다. 진짜 도마뱀의 꼬리를 꺾어온 자는 단 2명인가, 그런데 많이도 꺾어왔군. 가져오지 못한 1088명의 용사들은 나의 기사들이 직접 광장의 밖으로 인도할 것이다"

 

 왕의 말에 왕궁의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백은의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나온다.
 그들은 마치 물과 같이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지나가 각자 자신이 맡은 사람이 있는지 그들의 앞에 선다.
 그런데 어째선지 대부분의, 아니 모든 녀석들이 괴성을 지르며 무언가가 잘못되었다고 아우성이다.
 이런 그들의 말을 듣고 왕이 입을 열었다.

 

 "시끄럽다, 얼간이들. 이 몸의 판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 네 녀석들이 가진 도마뱀의 꼬리를 꺼내들어 태워보아라. 불에 타지 않는 것이 도마뱀의 꼬리이며 불에 타는것이 가짜이니. 그리고 도둑 맞은 자가 있을것인데, 분명히 말했을 것이다. 어떠한 수를 쓰더라도 지니고만 있으면 된다고. 아니면 적에게 무기를 도둑 맞더라도 지금처럼 소리만 칠 것인가?"

 

 왕의 말에 자신의 것을 꺼내 불 태워보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그 전부가 전부 불에 타들어갔다.
 그런 지원자들의 모습은 신경도 쓰지 않은채 왕은 말을 이어나갔다.

 

 "자, 진짜를 지닌 자들을 왕궁에 들라. 참고로 들어오면서 나의 비서에게 가져온 도마뱀의 꼬리를 전부 건네지 않으면 그 순간 실격이다"

 

 왕의 말을 듣고 나는 인파를 헤치고 지나가 왕궁에 들어서는데 어느새 먼저 온 파란머리칼의 남자가 있었다.
 12시부터 광장에서 보이던 사람들 중 한 명인 이 남자가 어떻게 통과한거지?
 어쨌든 그런 그가 자신의 바지주머니에서 도마뱀의 꼬리를 하나 꺼내더니, 회수를 위해 서있는 회색머리칼을 뒤로 빗어올리고 검은 양복을 입고있는 비서가 아닌 비서의 근처 바닥에 던졌다.
 그러자 던져진 도마뱀의 꼬리가 바닥에 닿자 마치 수도꼭지에서 물이 뿜어져나오듯 나뭇가지에서 나뭇가지들이 쏟아져나왔다.
 그걸 본 탈락한 지원자들이 소리쳐댄다.
 그러거나말거나 비서는,

 

 "1082개, 확인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를 통과시켜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 뒤를 쫓아 각각의 바지 주머니에서 나뭇가지를 꺼내 총 4개를 건네고, 상의에 있는 두개의 주머니에서 2개를 더 꺼내 비서에게 전하고 들어섰다.


 ◇


 2층의 거대한 응접실에 안내되어 단 두 명.
 파란머리의 남자와 나뿐이었다.
 남자는 180cm 정도 되어보이는 키에 머리엔 파란색의 머리칼에 브릿지를 넣었는지 얇게 세줄로 빨간색의 머리칼이 있었다.
 뭐랄까, 이미 용사가 아닌가, 싶을 정도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뭔가 어색한 분위기이기에 말을 건넬까 하는 도중, 사람들이 음식을 들고 들어온다.
 이것저것 맛있어보이는 것들로 식탁을 가득채우자 그제서야 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흐음, 안타깝군. 꽤나 많은 지원자들이 통과할거라 생각하고 음식을 많이 준비해두었는데. 뭐, 어찌됐든 배도 고플텐데 많이들 먹으시게나"

 

 왕의 말에 내가 음식을 먹으려고 손을 뻗기 직전,

 

 "독을 먹으라고 내주다니, 지저분하군. 죽이고 싶으면 직접 죽이는게 나을 것을"

 

 파란머리의 남자가 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에 왕은 웃음기를 머금은 얼굴로 그 자를 쳐다보고 말한다.

 

 "호오, 대단한 식별이로군. 먹어보지않고 보기만 해도 아는가? 좋다. 음식을 새로 들라!"

 

 왕의 말에 마치 준비되어있었다는 듯 음식을 가져왔던 자들이 음식을 교체해나간다.
 그제서야 남자는 음식을 먹기 시작하고, 나도 그가 먹는것을 지켜보고 나서 음식을 입에 갖다댔다.

 


 준비된 음식을 먹어 배를 채운 우리는 3층의 한 방으로 불려졌다.
 방이라기엔 너무 커서 친구녀석의 집을 통째로 옮겨와도 될 법한 공간이었다.
 그 방의 끝엔 언제 온건지 이미 왕이 기다리고 있었다.

 

 "맛있게들 먹었으니 이제 최후의 1명을 가려야겠지? 뭐, 간단하다"

 

 왕이 말을 하는 도중,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들어올 때 1층에서 봤었던 비서가 손에 검을 들고 서있었다.
 검의 손잡이부분엔 푸른 보석이 하나 박혀있어, 어째선지 눈에 띄었다.

 

 "저 검을 둘 중 한명이 들어봐라. 누가 들어보든 상관없다. 허나, 선[善]의 기운이 더 강한자는 푸른빛이 유지될 것이고 악[悪]의 기운이 더 강한자는 붉은빛으로 변할 것이다. 만약 그대들 둘 다 악의 기운이 강하다면, 검을 잡은 자는 떨어질 것이고, 잡지 않은 자는 여기에 남아 용사가 될 것이다. 반대로 둘 다 선의 기운이 강하다면, 검을 잡은 자는 여기에 남고, 나머지 하나는 떨어질 것이다"

 

 요컨대, 검을 집어 보석이 푸른채로 남아있거나, 상대가 집어 보석이 붉게 변하면 용사로 선택받는다는 것인가.

 

"자, 선택하라. 자신이 선하다고 생각하면 먼저 집으면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집지 않는 편이 낫겠지. 뭐, 상대방이 선하다면 기회따위는 없을 지라도 말이다"

 

 이에 나는 망설였다.
 아니, 안 집는 것을 선택했다고 보는게 낫겠지.
 첫 번째의 시험에 도마뱀의 꼬리를 다른 자에게서 몰래 훔친 내가 선의 기운이 강하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뭐, 그게 아니더라도 살아오면서 느낀 게 있고 말이지.
 게다가, 옆에 녀석도 다른 참가자의 모든 나뭇가지를 뺐은 것 같고 말야.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 파란 머리의 녀석이 왕에게 말을 걸었다.

 

 "하나만 묻겠다, 왕이여. 여기서 아무도 검을 잡겠다고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지?"

 

 그의 말에 왕은 웃으며 말했다.

 

 "그런가, 그럴수도 있겠군. 그럼, 둘 중 하나를 죽이면 되지. 그렇다면 자연히 한명만 남으니 용사가 되지않겠나"

 

 뭣?!
 용사가 되고 싶으면 상대를 죽이라는거냐.
 이 무슨 말도 안--
 휘익-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파란머리놈이 자신의 검을 뽑아 나에게 휘둘렀다.

 

 "왕의 말을 들었겠지?"

 

 미친놈.
 이렇게 죽을 바에 잡는게 낫지.

 

 "기... 기다려. 내가 잡으면 되잖아"

 

 나는 말을 하며 비서에게로 다가갔다.
 그러나 어째선지 그 앞을 파란머리의 남자가 가로막았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지. 만약 너가 잡아서 보석이 푸른채로 유지된다면 이쪽이 떨어질테니 말이야"

 

  또 다시 휘둘러지는 검을 어떻게든 피한다.

 

 "이런 젠장. 그럴리가 있겠냐?!!! 도둑이 선의 기운이 강할 리가 있겠냐고"

 

 내가 소리치자 어째선지 그가 아닌 왕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아, 혹시 모르는 일이다. 도둑이라고 모두 악이라고 볼 순 없는 일이지"

 

 왕의 말이 도화선이 된 것인지, 녀석은 진짜 죽일 기세로 검을 휘둘러온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내가 반대로 녀석을 쓰러뜨릴 수 밖에!

 

 

 03


 피가 묻은 검을 한번 휘둘러 피를 털어내고 검자루에 집어넣는다.
 앞에는 심장을 찔린 남자가 죽어있다.
 뭐, 말할 것도 없이 내가 죽인거지만.

 도적이라고 약하다고 생각한다면 오늘부터 생각을 갈아치우는 게 좋다고 본다.
 어쨌든 이걸로 남은 사람은 나 하나 뿐이다.
 나는 왕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걸로 내가 용사인가?"

 

 나의 말에 왕은 뭐가 그리 즐거운 지 미소지으며 말한다.

 

 "아아, 남은건 그대뿐이니 그대가 용사로다. 그 검을 받아라. 그 검은 용사의 검이다. 마왕을 없애기위해 만든 검이지. 이제부터는 그대의 것이다. 자, 검을 하사하라"

 

 왕의 말에 비서가 나에게 검을 건네준다.
 비서로부터 검을 받아들었다.
 그런데, 어째선지 보석이 푸른색인 그대로였다.
 그걸 보고는 왕이 크게 웃어댄다.

 

 "하하하하, 안타깝구나. 마물이 아닌 인간이라면 누가 잡든 변하지 않는 푸른색의 보옥이거늘. 쓸모없는 죽음이었구나, 녀석은"

 

 안타깝다고 말하면서 웃어대는 왕은 비서에게 시체를 치우라 명한다.
 이런 왕에게 나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쓸모없지는 않지. 어차피 나는 안 잡을 생각이었으니까, 녀석이 잡았다면 난 떨어졌을테니"

 

 내 말이 또 녀석, 아니, 왕의 웃음을 부추겼는지 왕은 소리죽여 웃는다.
 그런 왕을 지켜보다가 웃음이 멈추지 않았기에 먼저 물어보았다.

 

 "그래서? 난 이제 마왕을 잡으러 가면 되는건가?"

 

 그제서야 왕은 웃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아아, 지금 당장 떠나라. 한시라도 빨리 처리해주면 좋겠군. 아, 참고로 혼자가는건 아니다. 나의 비서랑 내 기사들을 붙여줄테니, 넌 마왕이랑만 싸우면 된다. 그럼, 가봐라. 기사들이 이미 기다리고 있다"

 

 왕의 그 말을 마지막으로 비서에게서 하얀 갑옷을 받아입고 왕궁을 빠져나와 성의 북쪽문으로 향했다.


 ◇


 언제 준비했는지 시민들의 열렬한 송영인사를 받으며 북쪽에 위치한 성문을 빠져나오자 언제 왔는지 모를 비서가 나를 불러세우더니 그대로 텔레포트를 사용했다.
 아니, 이럴거면 왕궁에서부터 쓰라고.
 송영인사 같은거 필요없으니까.
 어찌됐든 그렇게 어딘가의 모래사막에 도착했다.

 

 "음, 여기가 어디야?"

 

 비서에게 말을 건네자 비서가 지도를 꺼내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직접 보는게 빠르겠죠. 여기가 저희가 있는 곳입니다"

 

 비서가 가리킨 곳은 왕성으로부터 북북서쪽으로 12km에 위치한 용의 무덤, 거기로부터 서쪽으로 5km에 위치한 이름이 따로 없는 모래사막이었다.
 근데 뭔가 이상하다.

 

 "내가 알기론 마물은 용의 무덤에 자리잡은걸로 아는데?"

 

 나의 물음에 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서 거긴 왕의 기사부대를 보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응?
 그럼 난 대체 뭘 위해서 온거지?
 이런 나의 생각이라도 읽었는지 비서는 말을 이어나간다.

 

 "용사님은 마왕과 싸우시면 됩니다. 괜히 잡몹들이랑 싸우느라 시간낭비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자, 그럼 전 이만"

 

 "뭐?! 잠깐!"

 

 그러나 이미 비서는 사라졌다.
 이걸 어쩌라는거지, 하고 서있었더니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다리고 있었다, 용사여. 날 치러 온 모양이구나"

 

 목소리와 함께 모래가 솟아오르며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검은 갑옷에 검을 지닌 자.
 아마 그가 바로 마왕이겠지.
 그런데 어찌된건지,

 

 "너가 어째서 그 검을 들고있지?"

 

 마왕은 내가 들고있는 용사의 검과 같은 검을 지니고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한가지, 내가 지닌 검의 푸른 보석 대신 거기엔 피처럼 새빨간 붉은 보석이 박혀있었다.

 

 "뭐가 이상하지? 왕에게 못 들었나보군. 불쌍한 녀석, 결국 너도 버리는 패 중 하나라는 것이겠지"

 

 마왕이 짓거린다.

 

 "뭔 개소린지 모르겠지만 어찌돼든 상관없어. 마왕, 오늘에야말로 끝이야"

 

 나의 말에 마왕은 차분하게 말했다.

 

 "그런가, 드디어 끝인가. 후회는 없다, 용사"

 

 마치 자신을 죽일 용사를 기다렸다는 듯한 말투다.
 그것보다도 어째 목소리가 알고있는 마왕의 나이에 맞지않게 젊은 사람의 목소리였다.

 

 "뭐야, 꽤나 좋은 목소리잖아. 그 얼굴 보여줄 수 없어?"

 

 이에 마왕은 뭐가 웃겼는지 쿡쿡, 하고 웃더니 자신의 칼을 지면에 박고는 양손을 투구에 가져가 투구를 벗어 집어던졌다.
 나는 그것을 받아들고 마왕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미간에 주름이 잡혀가는게 느껴진다.

 

 "놀랐나, 용사. 뭐, 놀랐겠지. 보다시피 나는 너니까"

 

 똑같았다.
 투구를 벗은 마왕의 얼굴은 나와 단 하나도 다르지 않고 똑같았다.
 그야말로 내 자신이 아니고서야 가능하지 않을 정도로.

 

 

 04


 "너가 나라고? 개소리하지마. 그래봤자 환각이나 마술로 내 얼굴을 만들어낸거겠지"

 

 아니다.
 마술을 쓴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혹시나하는 생각해 되도 않는 말을 던져보지만,

 

 "그게 아니란건 너(나)는 잘 알고 있어, 그렇지?"

 

 마왕은 웃으며 현실을 들이밀었다.

 

 "뭐, 너가 나든, 내가 너든, 어찌됐든 간에 너는 날 죽이러 왔으니까 죽이면 된다. 그 다음 어찌될지는 너의 문제지, 나의 문제가 아니니까"

 

 웃으며 말하는 마왕의 말이고 뭐고 패닉의 빠진 나는 생각한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 어째서 내가 둘이지?
 아니, 그것보다도 설마 이 상황을 왕은 알고 있는가?
 그렇다면 어째서--
 그리고 결론에 도달했다.

 

 "왕을 만나러 가겠어. 널 죽이는건 그 다음이야"

 

 나는 녀석에게서 돌아서 걸어나간다.
 그러거나말거나 녀석은 말을 계속해나갔다.

 

 "왕에게 간다고? 가서? 가서 뭘 어쩔거지? 내가 왜 둘인가, 어째서 자신이 마왕인가 묻기라도 할거야? 그러면 그 빌어먹을 왕이 친절하게 설명해줄거라고 생각하냐?"

 

 계속해서 쏘아대는 마왕의 말에 나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 소리쳤다.

 

 "그럼 날보고 어쩌란 말이야!!! 널 죽이고 돌아가 왕한테 가면 되는거냐?!! 모든걸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녀석한테 돌아가라고?!!"

 

 내 말에 마왕은 뭐가 웃겼는지 살짝 웃더니,

 

 "날 죽이고 너가 마왕이 되면 된다. 그걸 위한 존재다, 너(나)는"

 

 이상한 소리를 짓거린다.
 어안이 벙벙해 아무말도 못하고 있는 나를 보고 녀석은 말을 잇는다.

 

 "설명은 내가 해주지, 용사여. 너도 모르겠지만 넌 만들어진 존재다. 호문클루스라고 알고 있는지 모르겠군. 아니, 내가 용사였을 때는 몰랐으니 너도 모르겠지. 어쨌든 넌 호문클루스다. 왕에 의해 만들어진 용사, 그것이 너다"

 

 "잠깐, 그럼 어째서 용사를 뽑는거냐? 말이 안되잖아!"

 

 내 말에 녀석은 뭐가 웃긴지 시종일관 웃은채로 말을 이어나간다.

 

 "녀석은, 왕은 그런 놈이다. 이벤트를 좋아하지. 어차피 이기는건 너로 정해져있다. 그게 무슨 게임이 되었든 승자는 너로 정해져있다는거다. 첫번째 경기에서 몇명이 남든, 두번째 경기에서 몇명이 남든 말이지. 뭐, 그래서 어찌됐든 그런 너가 여기에 온건 마왕을 없애고 그 자리를 가지게 하기 위해서다"

 

 "어째서냐, 어째서 녀석은 마왕과 용사를 만들어내는거냐"

 

 "그야 단순하지. 나라의 통제다. 마왕과 마물이라는 적이 있는 한, 녀석들은 성에서 나와 다른 도시를 만들진 못하지. 이 넓고 넓은 땅이 전부 비어있는데 말이지. 그렇기에 녀석은 그 작은 성에서 언제까지나 군림하는거야. 게다가 몇 십년에 한번씩 용사를 보내 마왕을 퇴치하면서 말이지"

 

 마왕은 모든 설명을 마치고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너는 어쩔거냐?"

 

 고민할 것도 없다.
 결국은 왕의 심심풀이에 놀아나는 꼴이 아닌가,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내가 직접 왕을 죽이겠다"

 

 내 말에 녀석은 웃으며 말했다.

 

 "그런가, 가능할 리가 없지만 혹시 또 모르지. 무운을 빌도록 하지, 용사여"

 

 그리하여 나는 왕성으로 향하는 길에 나섰다.


 ◇


 며칠이나 흘렀을까, 어느새 눈앞에 왕성이 보여온다.
 호문클루스라던 마왕의 말이 맞았는지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않았음에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완전 괴물이다.
 물 없이도 살 수 있다니 인간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몸이라도 외형은 인간인 덕분에 아무런 의심없이 왕성에 들어간다.

 그리고 왕궁에 도착했다.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 들어가느냐, 하는 것인데,

 

 "오, 왔는가, 용사여"

 

 마치 나를 배웅나오듯 왕이 여전히 의자에 앉은째로 3층 높이의 테라스에 나타났다.
 나는 왕을 보자마자 용사의 검을 꺼내고 왕궁의 벽을 발로 차올라 녀석을 베어버렸다.
 새빨간 피가 흐른다.
 너무나도 간단해서 대역이 아닌가 싶을 정도.
 왕을 죽였으니 더 이상 호문클루스는 만들어지지 않겠지.
 나는 웃었다.
 용사라는 자가 왕을 죽이다니 이상한 이야기지만, 마왕이 나이기에 어쩔 수 없다.
 그래, 나는 마왕이니까.
 어느샌가 푸른색이었던 검에 박힌 보석은 왕의 피가 묻은 탓일까, 새빨갛게 변해있었다.

 

 

 Epilogue


 시대는 용과 인간 그리고 마물 등 여러 종족이 공존하는 환상의 시대, 아니, 그렇게 불리운건 어느덧 머나먼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다.
 시간이 흐르며 인간이 자연을 파괴해나가자 마물을 비롯한 묘호[猫虎], 조견[鳥犬], 어인[魚人] 등 많은 종족들이 인간들과의 전쟁을 선언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용들만은 인간과 다른 종족간의 전쟁을 지켜보며 지는 쪽을 도와주며 전쟁을 계속해나가길 어느새 수천년의 시간이 흘러 번식이 불가능한 용들이 죽어나가 단 한명의 용만이 살아남자 인간들은 그를 꼬득여 자신들을 돕게 하였고 수천년의 시간이 무색하게 십년도 지나지 않은 시간 내에 모든 종족이 멸종당하고 인간과 마물만이 남은 상황에서 마지막 용이 죽어버리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 왕은 세상에서 가장 현명하고 가장 빠르고 가장 힘 센 용사를 찾아내 그에게 마왕을 처리하라 명했으나, 용사는 상대의 모습으로 변하는 마물의 꼬임에 넘어가 자신이 마왕이라 착각하고 인간들의 왕을 죽이고 그것만으론 부족했는지 단신으로 모든 인간을 죽여버린다.
 그렇게 세계에서 마물을 제외한 생명체는 전부 사라져 마물만의 세계가 되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