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사를 가는 날이다. 서울에서 충주로 발령이 나 출퇴근하기에 너무 멀어 결국 강남 전셋집을 처분하고 충주에 꽤 괜찮은 집을 구했다. 서울에선 조그만 아파트 하나도 살 수 없는 돈으로 지방에선 결코 작지 않은 집을 살 수 있다니, 확실히 서울 집값이 많이 비싸긴 한가 보다. 

 

 

 가지고 갈 짐은 모두 다 트럭에 실렸다.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부터 있었던, 전셋집까지 날 따라온 이 낡은 서랍장은 서랍 하나가 빠지고 군데군데 세월의 흔적을 이기지 못해 망가진 곳이 많아 결국 버리기로 했다. 몇 년간 쓰지 않았으니 아무것도 없겠지. 그래도 옛날 추억이 떠올라 서랍을 하나하나 열어봤다.

 

 

 맨 밑에 서랍을 여니 크리스마스 트리 모양의 카드가 한 장 있었다. 그 존재를 잊고 있었던 나는 화들짝 놀라 그 카드를 황급히 집어들었다. 카드 윗면에 수북히 쌓인 먼지를 조심스레 털어내고 카드를 열어보니, 오랜만에 보는 익숙한 글씨체가 한쪽 면 가득 정성스레 써져 있었다. 한 줄 한 줄씩 편지를 읽어내려가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편지를 읽는 것을 멈추고 중학교 1학년 시절의 기억 속에 퐁당 빠지고 말았다.

 

 

 내 중학교 1학년 인생은 꽤 재밌는 편에 속했다. 난 초등학교 때 이미 중학교 교과과정 대부분을 선행으로 한두번 씩은 다 봤기 때문에 1학년 시험을 만만하게 보았고, 따라서 중학교 1학년 때는 공부 생각은 거의 하지 않고 친구들과 노는 데 열중했다. 어릴 때의 좋은 추억은 인생에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는, 언젠가 책에서 한 번 보았던 그 글귀를 핑계삼아 친구들과 별별 놀이를 다 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내가 오랜만에 갑자기 마주한 기억은 그 기억이 아니었다. 엄마에게 꾸중을 들어가며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던 기억이나, 친구들과 딱지치기를 하다 운이 좋아 올킬을 한 기억이나, 부반장으로써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의무감에 잡혀 지냈던 1학기에 대한 기억이 아니었다. 그 카드는 중학교 1학년 시절의 내 첫사랑이었던 시현이에게 받은 크리스마스 카드였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며 다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일이건만, 고작 편지 한 장에 그 기억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중학교 1학년 때 우리 반에 여자아이들은 두 파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1학기 때 회장인가 부회장인가를 지냈던 아이가 이끄는 패거리와 만화와 그림에 관심이 많던 아이가 이끄는 패거리, 이렇게 두 개였다. 이 두 패거리는 서로 싸우기를 밥 먹듯이 했다. 뭐 우리 남자아이들은 때로는 구경하거나 나같은 할 건 없고 말빨은 괜찮은 아이들은 중간에 끼어들어 양측 전부를 조져놓고 가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1학기 임원 파의 한두 명이 남자아이들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발언을 했고, 이에 제대로 빡돈 나와 남자아이들은 해명을 요구했으나 오히려 꺼지라는 말만 듣고서는 바로 상대편, 일명 "만화 패거리"에 가담해 "1학기 임원 패거리"를 두 달 만에 완전히 초토화시켰다.

 

 

 1학기가 끝나가고 여름방학식을 며칠 앞뒀던 날, 그 1학기 여자 임원은 지방으로 떠났고, 모든 건 그 이전으로 빠르게 돌아갔지만 나를 포함해 최초로 사태에 개입했던 남자아이 몇 명과 오리지널 "만화 패거리" 는 꽤 친해졌다. 방학 때 만나 같이 놀기도 하고, 한 번은 그 여자아이들이 우리의 초상화를 그린답시고 각각 그림 한 장씩을 그리고 우리에게 평가를 부탁했던 일도 있었다. 

 

 

 하지만 그 관계는 사랑이 싹트기는커녕 우정이나 신뢰를 바탕으로 한 친구 간의 관계도 아니었고 그저 공공의 적에 대항해 급조된 이른바 "군사 동맹"에 불과하였고, 우리 두 집단 사이에는 거의 아무런 접점도 존재하기 않았기에 겨울 어느 날에 있었던 사소한 다툼이 기폭제가 되어 그 관계는 아예 해체되었다. 그 이후에는 반 배정이 들이닥쳐 모두를 뿔뿔이 흩어놓았고, 그렇게 중학교 1학년 생활은 끝났다.

 

 

 시현이도 그 "만화 패거리" 의 일부였는데, 원래부터 그 파의 일부는 아니였고 중립이었지만 모종의 이유로 (나는 알지 못하는 데다, 몇 번씩이나 물어봤지만 도저히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임원 패거리와 사이가 틀어져 만화 패거리의 일원이 된 것이었다. 겨울의 그 다툼 이후에 두 집단 간의 연락은 완전히 끊겼지만, 유일하게 나와 시현이는 여전히 연락을 주고받았다. 아마 둘 다 서로에게 호감이 있었던 듯 하지만, 둘 다 상대방에게 그걸 말할 용기는 없었던 것이다.

 

 

 가을부터 급속히 친해진 나와 시현이는 연락을 매일 주고받으며 저녁마다 이야기꽃을 피웠다. 나는 아직도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던 때의 저녁에 장난으로 둘 다 서른까지 결혼하지 못하면 꼭 다시 돌아와 이 공원에서 결혼식을 올리자는 약속을 했던 그 기억이, 그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괜히 기대하던 그 설렘이 문득 스쳐지나간다. 주고받은 편지는 수백 통을 넘었고, 그 편지들을 몽땅 보관하던 종이 박스는 중2 개학식 무렵에는 꽉 찬 두 박스가 되어 있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자 그 박스는 없어졌고, 깜짝 놀라 어머니께 여쭤보니 공간을 너무 차지해 버렸다는 답을 들은 나는 그 때 전속력으로 뛰어나가 편지를 다시 찾으려 한 시간은 족히 달렸었다. 결국 실패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와 침대에 쓰러지듯이 누워 울며 잠든 기억은 덤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시현이도, 서로를 좋아했던 건 맞는 것 같다. 내 자의식 과잉일지는 모르겠지만.

 

 

 풋풋한 첫사랑의 기억은 이제 어른이 다 되어 버린 나에게 있어 거의 십 년만에 동심을 조금이나마 되찾게 해 주었고, 마치 빛바랜 사진처럼 희미해졌지만 명확히 존재하고, 보고 있다 보면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상황이 연출됐다.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던 나는 갑자기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는 바이올린 소리에 무심코 귀를 기울였고, 이는 또다시 그떄의 기억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소환했다.

 

 

 봄의 어느 날 저녁, 꽃이 활짝 핀 언덕의 들판에서 빨갛게 지는 석양을 뒤로 하고 시현이가 연주하던 그 바이올린 곡. 딱 한 번 들었을 뿐더러 십몇 년도 더 전의 일이라 명확히 기억하지도 못했을 테지만, 내 뇌는 다음 소절을 완벽히 기억해내어 내 머릿속에서 연주하고 있었다.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서 두 눈을 감고 연주를 듣던 그 날을 떠올리며, 그녀가 연주했던 첫사랑의 세레나데를 머릿속에서 무한 재생하며, 그 크리스마스 카드를 내 가방에 넣고 충주를 향해 떠났다.

 

 

 누군가 말했던가,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기에 더 아름답다고. 처음 들었을 때에는 이게 뭔 개소리인가 싶었지만, 이제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