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없는 백사장에


소년은 누워 있었다


그는 자신의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가 좋았으니까 


다른 이유는 없었다


어느 날 하늘이 어두워지고 비가 내리고


소년의 발치를 간지럽히던 작은 파도가


누워있는 소년의 얼굴을 덮칠 만큼 크게 울부짖을 때도


파도에 자리가 눅눅해져도


소년은 그저 누워 있었다


파도를 어떻게 막아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그리고 달리 어찌해야 할지도 몰랐기에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벽을 만들기 시작했다


자신이 베고 있던 모래로 


파도를 막을 벽을


당연히 모래는 작은 파도에도 계속해서 쓸려 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년은 지쳐 다시 자리에 누웠다


파도를 맞으며 비바람을 맞으며


몇 번의 파도를 더 맞고 난 후 


소년은 더 두껍게 벽을 쌓았다


그것은 그만큼 시간을 더욱 소모하였고


그리고 그만큼 파도를 막아줄 수 있었다


하지만 또다시 파도는 소년이 쌓은 벽을 허물었고


소년은 다시 파도를 맞았다


아무 것도 없는 백사장에


소년은 누워 있다


다음 벽은 어떻게 쌓을 지를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