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안경을 쓰지 않았다. 거기에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깜빡한 것이다. 왜곡된 지각 체계로 얻을 뒤틀린 귀납은 생각지도 못했다. 아니, 조금은 생각 했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잘 모르겠다. 그저 모든 게 희미했다.

 11:30AM. 눈을 뜬 건 그 언저리였다. 환기는 하지 않았다. 새벽까지 거세게 온 비 덕에 안개가 잔뜩 낀 탓이었다. 내 방 안을 습기에 찌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대략 가로 3.63635806818 미터의 정방형. 그 방바닥 안에서 모든 게 침잠해간다. 옷 몇 벌 안 든 장롱과 서랍장, 질리도록 푹신한 이불과 요, 그 사이 갇힌 답답한 공기 사이 갇힌 나. 떠오르는 것은 희뿌연 담배연기 뿐이었다. 아니, 담배는 실내에서 피우지 않았다.

 외출이라고는 그 담배를 필터까지 태우기 위해 나갈 때 뿐이래도 좋았다. 담배를 피울 때 만큼은 방 속 침잠되었던 내 속 침잠되었던 찌뿌둥하게 자리잡았던 무채색의 감각, 감정들을 조금이나마 잿빛 연기에 꾹 담아 날려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로써 허기를 조금이나마 잊으면 아름답게도 끔찍한 생의 구조에서 벗어나는 것만 같았다. 감각적 육체에서 지적 정신으로 전이될 수 있었으리라. 감성적 지각에서 벗어나 관조적인 이성적 지각을 할 수 있었겠다. 생 만을 위한 잡념과는 다른 어떤 관념에 몰두할 수 있었다. 구조체정신구조체육신구조체구조체 혹은 구조체육신구조체정신구조체구조체. 이런 생각들을 하곤 한다. 거기에 별다른 이유가 있었는지의 여부는 부정.

 여하튼 어김없이 오늘도 담배를 피우러 밖에 나간다. 아니, 정말 ‘밖’이라고 할 수 있는가? 담배를 피우는 곳은 사람 하나 지나지 않는 골목 깊숙한 곳. 그곳은 나만의 ‘안’이래도 좋았다. 내 몸뚱이는 그 ‘안’에서 보헴 시가 No.6 두 개비를 태워마신다. 나의 정신계와 물질계의 분리 기제인 니코틴으로 두 계를 조금씩 좀먹는다. 지리멸렬한 인간 같으니!

 지리멸렬! 그 단어가 요즈음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지리멸렬, 지리멸렬… 생각하지 못하기에, 그와 동시에 모순적이게도 생각을 멈출 수 없기에, 지리멸렬한 나는(우리는) 지리멸렬하다 할 수 있겠다. 그것을 숙명이라고 하는가보다. 상처주고 상처받는 숙명. 어지럽다. 희뿌연 연기와 왜곡된 각막으로 모든게 희미하다.



의식의 흐름으로 써내려간 글입니다. 다소 과장된 표현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