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가 울기까지는 아직 멀었던 때, 선선한 바람이 저 멀리서 불었다.

 푸른 하늘의 아래. 해는 중천에 떠 있지 않았고, 닭장수가 사는 곳에서는 수탉이 운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의 무렵. 그 때에 하준은 침대에 누워있었다.

 한가로운 휴일. 깨우는 사람은 없었다. 한 달에 몇 안되는 홀로 집에 있는 날이었다. 산들바람 불어오는 작은 마을에서는 흔한 일이다. 그날은 아이들이 하루 종일 놀아다니는 날이 되곤 했다. 혹은 여유롭게 낮잠을 자는 날이 되거나. 그런 자주 없는 날이었다.

 하준은 낮잠을 자고 있다. 침대에 편하게 몸을 펼친 채, 가슴께는 천천히 오르락 내리며 부러울 정도로 자고 있었다. 깨면 억울해 할 정도로 숙면을 취했다.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적당히 그늘 진 창가. 잠이 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슬 맺힌 풀 냄새가 어슴푸레 날 때쯤에, 그러니까 몇 분도 지나지 않았을 때쯤에 하준은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자의는 아니고 타의에 의해서였다.


"야, 도하준! 빨리 나와, 자전거 타러 가자!"


 자전거가 따르릉 거리고 커다란 대문은 두들겨진다. 빠르게 나오지 않으면 문을 뜯어낼 정도로 두드린 다는 것을 하준은 알고 있었다. 원하지 않는 기상 알람 서비스였다. 거절은 불가능한.

 창 너머로 익숙한 인영이 보인다. 하준은 대문이 보이는 창 가에서 소리쳤다.


"야, 유서하. 너 시계 안 보고 살지? 세상에 이른 아침에 자전거 타러 가자고 깨우는 사람이 어디 있냐?"

"왜, 여기 있잖아."

"넌 진짜… , 됐다. 조금만 기다려."


 반 팔의 티셔츠에 짧은 바지. 간단하게 걸치고서 하준은 대문으로 뛰어갔다. 서하가 대문 밖에서 부르고 하준은 대문 밖으로 나가고. 언제나 반복되는 패턴이었다. 잠은 없기라도 한 듯이 방도 나서기 전에 자전거나 채집망을 들고 대문에 서 있었다.


"잠은 푹 자긴 했냐?"

"안 졸리면 된 거지. 자전거 끌고 왔으니까 오늘은 자전거 타고 놀러 가자. 조금 멀리 까지 나가보자고."

"어디로 갈 건데?"

"젖소들 있는 데까지 가자. 가서 우유도 조금 얻어먹고."


 서하는 자전거에 올라탔다. 성인용이라 조금은 크지만 충분히 탈 수 있었다. 하준은 서하를 따라 그 뒤에 탔다. 하준이 자리를 잡자 마자, 서하는 페달을 밟았다. 바람이 불면서 서하의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묶어낸 머리타래가 호선을 그리는 동시에 서하의 입가도 호선을 그렸다.

 마을 전체를 지나는 기다란 길. 그 위를 자전거가 지나갔다. 새싹의 티를 벗은 풀잎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가로수들이 흔들리는 길을 지나 작은 숲을 건널 때,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스며든 빛이 어른 거리고 있다. 숲을 지나면 작은 내천이 흐르는 데, 맑은 물 아래의 조약돌들이 반짝인다. 6월의 초입, 초여름 만의 것이다.


"여기서 잠시 멈출까?"

"그래. 그리고 다시 탈 때는 내가 앞에 탈게."

"좋아, 조금 더 있다가는 교대다?"


 자전거가 내천의 옆에 멈춰 섰다. 하준이 먼저 내려서 자전거를 붙잡았다. 서하는 뛰어내리듯 자전거에서 내렸다.


"가재나 잡아볼까?"

"오늘은 그냥 물놀이나 조금 하다 가자."

"그래, 그러자."


 서하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내천에 발을 담근 서하는 천천히 걸다가, 갑자기 물을 퍼다 뿌렸다. 하준의 옷은 순식간에 젖었다.


"야!"

"왜, 하자고 했잖아?"

"한 번 해보자는 거지?"

"말은 그정도만 하고, 빨리 덤벼."


 하준은 물을 두 손에 떠서 뿌렸다. 서하는 몸을 움직여 피했다. 물을 뿌리고, 피하거나 맞고. 다시 뿌리고. 싸움에 끼기 싫었던 가재들은 이미 도망가버린 지 오래다. 비슷한 새우가 고래싸움에 등이 터졌던 것을 보면 꽤 좋은 선택이었다. 하준과 서하는 물만 가지고 놀면 물놀이라는 듯이 놀고 있었다. 물만 튄다면 레슬링 기술을 쓰는 것도 허용이다. 물놀이가 끝날 때쯤, 그때는 흠뻑 젖지 않은 것이 없었다.


"야, 다 젖은 거 같은 데?"

"너 옷에서 물 떨어지거든."

"그런가? 뭐, 이쯤하고 갈래?"

"그러자."


 하준과 서하는 옷의 물을 짜낸 뒤 자전거에 올라탔다. 물이 뚝뚝 떨어져 자전거에 흐를 정도만 아니면 굳이 말릴 필요가 없었다. 이런 날에는 축축히 젖은 옷도 금방 말랐다. 입은 옷이 조금 차갑거나 달라붙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그런 것에 신경 쓰기에는 날이 짧았다. 굳이 만날 이유를 만들어서 더 만나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만나지 않을 날도 없지만, 날보다는 짧을 만나지 않을 때를 줄이고 또 줄였다.

 이번에는 하준이 앞에 앉았다. 하준은 서하가 자리를 잡자 페달을 밟았다. 목적지는 여전히 소들이 풀을 뜯는 푸른 들판. 그 길을 따라서 자전거가 달렸다. 바람이 시원스레 부는 동시에, 물먹은 옷이 펄럭였다.


"야, 도하준."

"왜?"

"우리 자주 붙어다니잖아. 그래서 말인데, 다른 애들이 우리 사귀냐고 묻는 건 아냐?"

"…돌겠네. 헛소문 좀 그만 퍼트리라고 말해야 하나. 그리고 맨날 찾아오는 건 내가 아니라 너 거든. 근데 그런 건 왜 물어. 생뚱맞은 건 알지?"

"그냥 놀려먹기 좋아서 묻는 건데? 그래도 알긴 아나 봐? 너 얼굴 빨개졌거든."


 맹세컨데, 얼굴이 빨개진 것은 태양 아래에서 오래 놀아서 그을린 생리적인 현상이다. 그것 외에는 없었다. 하준은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페달만을 밟았다. 하준의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뜻은 하준의 표정이 어땠는 지는 하준 외에 알 수가 없다는 뜻이다. 뒤를 쫓는 무언가가 있는 듯이 하준은 페달을 빠르게 밟았다.

 들판에 가까워지면서 초록 풀이 무성해졌다. 들바람이 시원하게 불지만 조금은 더웠다. 그 원인은 모른다. 그저 여름이 그 색을 내보였다, 그 정도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여름은 아직 일렀다. 초여름, 여름의 시작이다. 완연한 여름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니 더운 것은 여름의 탓이 아니다. 다른, 알 수 없는 이유다. 알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할 수 있었다.

 완연한 여름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이른 때. 그러나 이르다 해도 여름은 여름이다. 서서히 더워지는, 그런 초여름이다. 이를 때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르지 않게 될 때다. 그 때가 되면 지금 모르는 것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아직은 이르지만, 이르지 않게 될. 여러가지로 이른 때였던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