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왔지만 채희는 그 중 어떤 소리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심장이 머릿속에서 쿵쿵 뛰는 기분이었다. 지난 일에 대한 감사를 핑계로 어떻게든 번화가 쪽 식당으로 준호를 데려오기는 했지만, 막상 마주보고 말을 하자니 아무런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준호는 채희에게 오늘따라 이상하신 것 같다면서 잠시 화장실을 가겠다는 말과 함께 자리를 나섰고, 채희는 홀로 앉아 남아있는 맥주를 천천히 들이켰다.



 TV에서는 마지막 늑대인간에 관련된 신상을 확보했다며 경찰이 자신있게 발표하고 있었다. 얼마 전에 채희가 인터넷에서 보았던 그 사진이었다.



 '저 사진, 본 적 있어?'



 이 말 한 마디면 충분했다. 더 깊게 말할 필요도 없었다. TV 화면을 가리키면서 가볍게 말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하지만 내뱉지 못했다. 단지 그 뿐이었다.



 어째서일까.



 스스로에게 회의감을 느껴 한숨을 쉬려던 찰나 준호가 돌아왔다. 여전히 긴 팔과 긴 바지를 입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 왔어?" 어정쩡한 말투로 말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준호는 그대로 채희를 마주보고 앉았고, 채희는 "이 집 치킨 맛있지 않아?"라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



 여전히, 그 한 마디만큼은 말할 수 없었다.




 "죄송하지만, 무슨 이유 때문에 저를 부르신 건지 알려주시겠어요? 단순 감사를 목적으로 만드신 자리는 아닌 것 같네요."




 결국 선수를 친 건 준호였다. 느닷없는 준호의 말에 채희는 사래가 들려 헛기침을 연거푸 내뱉었고,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잔에 담겨있던 물을 한꺼번에 털어넣었다.



 차라리 잘 됐다. 좋은 기회였다. 이대로 그토록 말하고 싶었던 한 마디만 끼얹으면 끝날 일이었다.



 하지만,




 "그러니까, 그게 말이지..."




 튀어나오지 않았다. 그냥 내지르라고 제아무리 마음속에서 외쳐봐도, 입술은 뻐끔거리기만 할 뿐 말을 내뱉지 못했다. 오랫동안 대화가 이어지지 않자 준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채희를 쳐다봤고, 결국 채희는 하는 수 없이 다른 화제로 말을 돌리고 말았다.




 "보육원 봉사는 어쩌다 생각하게 된 거야?"




 그다지 좋은 질문은 아니었다. '옷 문제랑 식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서 왔어요.'라고 곧이곧대로 말할 늑대인간은 없을 테니까.



 다만, 한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했다. 옷 문제랑 식사 문제 정도면 다른 장소에서도 해결할 수 있을 텐데, 왜 굳이 보육원이라는 장소를 고르게 된 걸까. 단순히 집이 가까웠던 걸까?



 준호는 치킨 조각을 오물거리면서 뜸을 들이더니, 이내 그것을 꿀꺽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




 "보육원에서 자랐거든요. 이곳은 아니었지만."




 일순간, 예기치 못한 답변에 채희는 마시고 있던 맥주를 얼른 삼켜버렸다. 하마터면 또 사래가 들릴 뻔했다.



 보육원 출신이었다니. 그렇다면 그 요상한 친근감의 정체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었을까. 신뢰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납득할 만한 주장이었다.




 "그러는 채희 씨는요?" 준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거, 말해도 되는 걸까. 채희는 고개를 숙이며 고민했지만, 고민과는 별개로 채희의 입에서는 이미 '아이를 잃었어' 라는 말이 제멋대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결국 채희는 그대로 모든 진실을 말하고야 말았다. 대학생 시절 멋모르고 관계를 가졌다가 임신하게 된 이야기부터, 혼자서 아이를 키우다 그 아이를 사고로 잃어버리게 된 이야기까지. 채희는 중간중간마다 머리를 쓸어내리는 척 눈물을 닦았고, 준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채희의 말을 가만히 들어주었다.



 왜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채희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고 준호를 부른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늑대인간이 맞기는 한 건지, 맞다면 왜 하필 이곳을 거주지로 삼은 건지 준호의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어쩌면 그런 것이 있을 리 없을지도 모르지만, 준호의 내면 속에 존재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나, 잠시 담배 좀 피고 올게."




 피지도 않는 담배 이야기를 꺼내며 채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해를 사지 않고 건물 밖으로 이동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핑계였다.



 채희는 식당 바깥으로 나와 뒷골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꺼내들어 '1 2 8'이라는 숫자를 다시 한 번 눌렀다.



 준호가 늑대인간인 건 거의 확실했다. 치킨을 같이 먹으면서 확인한 준호의 얼굴은 두꺼운 안경을 하나 더 끼얹었을 뿐인 영락없는 늑대인간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신고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이상한 생각이 채희의 머릿속을 사로잡았다. 어쩌면, 사실 윤준호라는 늑대인간은 속사정이 있는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계속해서 채희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나, 천천히 생각해보면 또 그렇지만도 않았다. 여지껏 채희가 봐왔던 준호의 모든 행동들은 '단지 그 보육원에 오래 있고 싶었을 뿐'이라는 행동원리로 모두 설명이 가능했다. 아이들과 살갑게 지냈던 것도, 수호를 찾아주었던 것도, 울고 있었던 자신을 위로해주었던 것도 전부 그 이상적인 보육원을 쓰기 위해 감쪽같이 꾸며낸 계산된 행동이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일말의 망설임이 사라졌다. 채희는 곧장 초록색 통화 마크를 눌렀다.



 스마트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네, 늑대인간 전담 수사팀입니다. 신고입니까, 목격입니까?>



 남자가 냉정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채희는 입을 열지 않았다. 준호에게 한 마디를 건네지 못한 때처럼, 또다시 머릿속이 새하얘지며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말을 잃어버리기라도 한 기분이었다.



 <들리십니까?>



 수화기 너머의 남자가 다시 한 번 되묻는 순간, 채희는 그대로 전화를 끊고 말았다. 가슴이 아팠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콘크리트 벽에 몸을 기댄 채로 주르륵 주저앉았다. 초점을 잃은 탓에 눈 앞의 풍경이 흐리게 보였다.




 "저기, 채희 씨?"




 그 순간, 난데없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채희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시간을 오래 쓴 거 같지도 않은데, 무엇 때문에 갑자기 자신을 찾아온 걸까. 설마 눈치라도 챈 걸까. 채희는 코너를 돌아 밝은 얼굴로 준호를 맞이했다. 준호의 한 손에는 '채희'라고 이름적힌 라이터가 들려있었다.




 "라이터도 없이 무슨 담배를 피나 싶어서, 잠시 전해주러 왔어요."




 아차. 채희는 준호에게서 급하게 라이터를 뺏어왔다. 혹시나 싶어 속임수용으로 들고 왔던 라이터였는데, 설마 이렇게 돼버릴 줄은 몰랐다.




 "아하하, 그게, 내가 라이터를 두 개씩 들고 다니거든. 원래 쓰고 다니던 게 가스가 동나서ㅡ"




 일순간, 채희는 자신이 하던 말을 멈추고 말았다. 준호는 여지껏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딱딱한 표정으로 채희를 응시하고 있었다.



 역시, 이런 시답잖은 변명은 통하지 않는 걸까. 그 정도에서 생각을 멈춘 채희였지만, 갑작스럽게 두 눈을 부라리기 시작하는 준호의 모습에 채희는 자신이 핸드폰 통화기록 창을 켜놓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자각했다.



 당연하게도, 그 통화기록에는 '1 2 8' 역시 찍혀있었다.




 "저기, 나, 그..."




 엷은 목소리로 말했다.




 "말하지 않았어. 아무것도, 정말로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어."




 준호는 말없이 채희를 쳐다본다.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말뜻 그대로의 무표정이다. 그에게서 감정은 읽을 수 없다.



 목덜미가 빳빳하게 굳는다. 쿵쿵 울리는 심장 박동 소리 한 번이 한 시간처럼 느껴진다.



 이윽고 준호는 몸을 돌려 바깥으로 나갔다. 두 다리에 힘이 풀린 채희는 그대로 풀썩 주저앉았고, 뒤따라 담배를 피러 나온 치킨집 직원이 채희를 발견할 때까지 싸늘한 흙바닥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자취처럼 남아있던 준호의 향수는 점차 흐릿해졌고, 결국 준호가 사라진 것처럼 준호의 향기 또한 그 자리에서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이후, 채희가 준호를 마주하는 일은 없었다.




*




 다음날 오후, 경찰 몇 명이 보육원을 방문했다. 채희의 통화 기록이 경찰에 남은 것이 화근이었다. 잘못 걸었다는 말을 연신 반복해봐도 경찰들은 잠시 둘러보겠다는 말과 함께 보육원 이곳저곳을 수색했고, 준호와 함께 찍은 보육원 단체사진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자기들끼리 무언가 이야기를 떠든 다음 그 사진을 가지고서 떠나버렸다.



 그리고, 그 다음 날에는 경찰 수십 명이 보육원에 들이닥쳤다. 예상치 못했던 풍경에 직원들은 무슨 일이냐며 경찰에게 물었고, 경찰은 윤준호가 늑대인간이었다는 사실을 직원들에게 친절히 알려주었다. 다들 하나같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그게 무슨 말이냐는 질문을 연거푸 해댔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당황한 것은 현서였다. 부정부터 분노까지 온갖 태도로 질문을 해보아도 경찰은 '윤준호가 늑대인간'이라는 사실을 반복해서 언급했고, 다섯 번째 답변이 돌아오자 현서는 "거참..."이라는 말과 함께 지난 한 달간 끊었던 담배를 입에 물었다.



 이윽고 시작된 것은 취조였다. 보육원의 원장인 성대부터 시작하여 차례대로 취조가 돌아갔고, 채희는 단순 봉사자였음에도 최초 신고자라는 이유로 오랜 기간 동안 취조를 받아야만 했다.



 다만, 어디까지나 구색만 갖춘 취조였다. 보육원이라는 특수한 환경 때문에 취조 중간중간마다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필요했고, 특히나 초등부를 맡고 있었던 채희는 아이들 때문에 도중에 수십 번 가량 취조를 끊어야 했다.




 "정신없는 하루였네."




 세차게 내리는 비를 보며 소정이 읊조리듯 말했다. 분명 취조를 시작할 때만 해도 아침이었던 것 같은데, 취조가 끝난 지금은 동네 뒷산 너머로 석양이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다.




 "알고 있었니? 준호가 그런 사람이었다는 거."




 가만히 바깥을 바라보고 있던 소정은 자신의 옆에 있는 채희를 향해 촉촉하게 젖은 소리로 말했다. 채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네"라고 작게 대답했다.




 "짐작은 했지만, 아니기를 바랐어요."


 "그래, 나는 아직까지도 믿기지가 않아. 그 살갑고 다정했던 사람이 늑대인간이라니."


 "......."


 "하긴, 내가 원체 사람을 잘 못 보기는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 소정은 아스라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저번에 얼핏 들었던, 소정이 이십 년 전에 이혼했다는 이야기가 채희의 머릿속에 어렴풋이 떠올랐다.




 "참 어렵단 말야. 어쩔 때는 좋은 면만 보이고, 어쩔 때는 나쁜 면만 보이고.




 순간 소정이 돌아서서 채희를 봤다.




 "채희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네?"


 "준호에 대해서 말이야. 지금 어떤 느낌이 들어?"




 갑작스러운 소정의 질문에 채희는 손등으로 턱을 문지르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경찰에 전화를 걸 때만 해도 모든 게 연기였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도 않았다. 그 사람의 모든 행동이 가식이었을 거라고 믿었던 자신의 모습에는 자신을 괴롭히던 상우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겹쳐있었다.



 결국 모든 건 내 오해 때문이었을까. 사실 준호는 착한 사람이었던 걸까. 하지만 그런 생각에도 마냥 동의할 수는 없다. 지난 몇 년 동안 늑대인간들은 수백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죽여왔고, 준호 역시 그러한 늑대인간 중 한 명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 역시 오해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생각해보면 모든 늑대인간이 같은 뜻을 따른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준호'라는 사람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증거도 없다. 다만 '늑대인간'이라는 존재가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만이 존재할 따름이다.



 진실은 대체 무엇일까. 생각의 골이 깊어지니 머리가 아파왔다. 역시 그때 물어봐야 했었다는 생각과, 어차피 그때 물어봤자 만족스러운 대답을 얻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동시에 뇌리를 맴돌았다.




 "저는...잘 모르겠어요." 나지막이 말했다.




 준호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또다른 보금자리를 찾아 그곳에서도 새로운 인물로 살아갈까. 아니면 경찰에게 붙잡혀 최후를 맞이하게 될까.



 준호의 기억 속에, 이 보육원이 남아있기는 할까.



 빗방울이 우두둑 창문에 쏟아졌다.



 누구의 입에서도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두 사람은 언제까지나 8월의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





간만에 쓴 중편이네요. 재작년에 쓴 마지막 중편 이후로 처음인 것 같습니다.


꽤나 분량이 많은 만큼 정말 제 쓰고 싶은 대로 썼어요. 어거지로 쓰면 도무지 문장이 안 나오는 스타일이라.


그래도,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