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서울 2063 4화 - 창작문학 채널 (arc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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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지원은 침대에서 일어나 씻고 옷을 갈아 입은 뒤 아직도 잠들어 있던 명훈을 깨웠다.


“오늘은 일 없어?”


명훈은 비몽사몽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의뢰 안들어왔어… 자기는?”


“오늘 쉬는 날이야.”


“그럼 어쩔 수 없이 일어나야겠네…”


명훈이 뒤이어 일어나 몸을 씻더니 방 구석에 놓인 금고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뭘 꺼낸 거야?”


“용병일 하면서 알게 된 친구 연락처.”


그러더니 그는 관자놀이를 눌러 쪽지에 적힌 전화번호에 전화를 걸었다.


“그래, 나야. 방사능 차단용 사이버웨어 2개 정도 필요해… 그래, 알았어.”


전화가 끊기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 입었다.


“무기도 챙기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지원 역시 재빨리 창고에 놓인 구식 권총 두자루와 총알을 챙겼다. 해가 막 뜨려 할 때, 현관문을 열자 문 앞에 자그마한 상자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정말 빠르단 말이지… 방사능 차단용 사이버웨어야. 외부 탈착식이니까 걱정하지 말고.”


상자 안에 놓인 사이버웨어를 본 지원은 감탄했다.


“초커네.”


“그것도 센스 있게 남성용과 여성용을 나눠서 보내준 방사선 차단용 사이버웨어지.”


초커 같이 생긴 사이버웨어를 착용한 둘은 자동차에 올랐다. 전쟁 이전 시기 자동차의 외형을 간직한 자동차가 태양빛조차 들지 않는 도로 위를 달리자 조수석에 앉은 지원이 LED 조명으로 번쩍이는 건물 외벽의 광고들을 보며 물었다.


“그냥 이사 가버릴까?”


“어디로 가게? 못 갈거야 없지만 갱단이 우릴 건드리지 못하는 이태원이나 수원으로 가려면 돈이 부족한걸?”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그렇지…”


“혹시나 모르지. 대학가 원룸 같은 곳으로 이사하면 모를지도.”


더 이상 둘 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자동차의 인공지능이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경고. 외부 방사능 수치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방독면 좀 줄래?”


조수석에 앉은 지원이 글로브 박스 안에 든 방독면을 꺼내 명훈에게 건넨 뒤 남은 하나를 썼다. 그와 동시에 사이버웨어로 통화가 걸려왔다. 남편이었다.


“한 두 블록만 더 간 다음에 차에서 내리자. 너무 깊이 들어가면 자동차가 강제로 자율주행으로 전환되서 밖으로 나와버리거든.”


잠시 후, 차가 멈추자 지원은 차 문을 열고 공기를 마시다 자기도 모르게 기침을 해버렸다. 분명히 방독면과 사이버웨어로 걸러져서 들어오는 공기임에도 전혀 다른 세상처럼 느껴졌다. 폐로 들어오는 공기는 거칠기 짝이 없었고 그녀 앞으로 보이는 풍경도 마치 황무지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 지원이 녹슨 자동차와 부서진 철근 콘크리트로 지은, 집이라기보다는 폐허에 가까운 가옥들을 바라보는 동안 명훈이 말했다.


“가능하면 빨리 찾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그리고, 이거 써. 어제 그 사람이 말했듯이 여기서 여자라는 걸 들키면 좋을 건 없어.”


명훈이 건내 준 망토 같은 것을 뒤집어쓰자 그녀의 몸이 주변 환경과 완전히 동화되었다. 지원은 감탄했다.


“광학미채잖아? 엄청 비싼데 이걸 어떻게 구했어?”


“구하긴, 창고에 처박혀 있던 초기형 하나 훔쳐온 거야. 저격할 때 쓰려고. 가자, 트레일러 타운은 넓어.”


트레일러 타운을 돌아다니며, 지원은 광학미채 너머로 그 황량한 풍경을 보았다. 한때 대한민국의 중심지로 찬란하게 빛나던 종로는 이제 방사능에 찌든 황무지와 피폭으로 언제 죽을 지 모르는 빈민들만 남은 곳이 되어 간간히 보이는 기왓장이나 대리석, 화강암 파편 등으로 지은 건물만이 이곳이 한때 대한민국의 중심지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노출되는 피부에 새카만 사이버웨어를 덕지덕지 붙여 인간이라기보단 로봇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었고, 사이버웨어를 장착하지 못한 아이들은 피부를 꽁꽁 싸매고 있었다. 어찌보면 이러한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존경을 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허나 활기차 보이는 이들도 지원이 자세히 바라보자 몸 곳곳이 병들어 죽어가고 있는 이들뿐이었고, 탐문을 위해 폐허로 지은 건물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누워 있는 사람들과 죽은 이들이 즐비한 것을 볼 수 있었다. 

한참을 찾아다닌 끝에, 둘은 방사능과 세월 속에 낡아가는 동상 파편 아래 살던 노인에게까지 도달했다. 노파가 다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 혼자서만 온 게 아니로군…?”


광학미채 속에 숨은 지원은 깜짝 놀랐지만, 노파의 두 눈이 붉게 빛나는 것으로 두 눈에 -이곳 기준으로- 비싼 사이버웨어를 장착했다는 것을 눈치챘다.


“벗어도 상관없네. 밖에선 여기가 보이지 않으니 말이야.”


지원은 명훈이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선 광학미채를 벗었다.


“제가 숨어 있는 것까지 보셨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이곳에 인민사회당과 관련있는 자가 있습니까? 아니, 최근 들어서 외부에서 여기로 들어와 정착한 이가 있습니까?”


노파는 가만히 두 사람을 바라보더니 대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굽은 허리를 꼿꼿하게 폈다.


“젊은이들, 내가 살고 있는 이 동상을 알고 있나?”


노파는 집 구석에 놓인 밀대를 가져오더니 물웅덩이(보기에는 전혀 청결해 보이지 않았지만 여기서 구할 수 있는 나름 깨끗한 물이라고 지원은 생각했다.)에 그것을 행군 다음 집을 이루는 동상 파편을 닦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모르는 모양이군. 이 동상은 예전에,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이 자리에 있었네. 아주 오래전 이 나라를 지킨 영웅의 동상이야. 지금은 이렇게 버려져서 먼지 속에 흐트러지고 있지만.”


명훈이 말했다.


“그렇군요. 그래서, 저희의 질문에 답해드릴 수 있나요?”


노파는 동상을 닦는 것을 멈췄다.


“여기서 오랫동안 살다 보면 시간 감각을 자주 잊어버리지. 바깥으로 나가는 이들도 거의 없으니 말이야. 몇 년이나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예전에 바깥에서 온 놈들이 있어. 전부 남자였지. 나이는 제각각이었고. 자네들이 말한 인민사회당인가 하는 놈들 때문에 바깥 세상이 떠들썩 하던 그때 즈음일 거야.”


드디어 두 사람은 사건의 실마리가 어느정도 맞춰지는 것을 깨달았다. 지원이 물었다.


“그렇다면, 놈들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노파는 대답하기에 앞서 주름 가득한 손가락을 펼쳐 북쪽을 가리켰다.


“북쪽, 한때 청와대가 있던 자리.”


두 사람은 노파에게 감사인사를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직후, 북쪽으로 향하며 광학미채를 다시 쓴 지원이 물었다.


“그런데, 여기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무슨 소리야?”


“인민사회당 사건도 거의 10년 전 일이잖아. 놈들이 그동안 세력을 엄청나게 키웠을지도 몰라.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 둘 만으로는 부족하고. 그냥 지금 돌아가서 정 반장에게 알리자. 그리고… 방금 그 노인 말이야, 뭔가 수상하지 않았어?”


“갑자기 또 무슨 소리야?”


“아니… 나이는 엄청 많아보이긴 했지만 하는 행동이 뭔가 이상해서 말이야. 경찰로 일하는 동안 많은 사람을 봐 왔어. 어린 사람, 나이든 사람, 부자, 가난한 사람까지. 그러면서 알게된 것 중에 하나가 최고급 사이버웨어로도 완전히 노화를 늦출 수는 없다는 거야. 그런데 그 노파는… 너무 자리에서 쉽게 일어나고, 덩치도 묘하게 큰데다 굽은 허리를 너무나도 쉽게 폈어. 뭔가 수상해. 그 노파가 거짓말을 한 것 같지는 않지만… 지금 찾으러 간다면 뭔가 우리 스스로 함정에 발을 들이는 것 같아.”


명훈은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무언가 고민했다.


“맞는 말이야. 어차피 놈들이 이곳에서 벗어날 것 같지도 않으니까. 일단 돌아가자.”


명훈이 발걸음을 돌리자 지원도 따라 발걸음을 차가 있는 곳으로 돌렸다.


“그래…”


그 순간, 한 발의 총성이 트레일러 타운 전체를 울렸다. 주변의 주민들이 혼란에 빠져 이리저리 달아나는 와중에 한 사람만이 그 자리에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주저앉은 지원은 광학미채 위로 액체가 떨어지는 것을 깨달았다. 그 액체… 그 붉은 액체의 정체를 지원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액체의 진원지 역시 그녀가 잘 아는 사람이었다.


“자기야…? 야, 최명훈!”


명훈은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피와 살점이 사이버웨어 파편과 함께 흘러내려오자 명훈의 몸도 그 자리에 쓰러졌다. 지원은 아슬아슬하게 그를 붙잡은 다음 품 속에 넣어 둔 연막탄을 집어 던졌다.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자 지원은 빠르게 관자놀이를 눌러 전화를 걸었다.


“응급환자야, 3등급 손님이고. 이리로 올 수 없어?”


“죄송합니다 고객님. 저희는 트레일러 타운엔 구급차를 운행하지 않습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 EF(긴급 비행형, Emergency Flight) 구급차를 대기시켜 놓겠습니다. 좌표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제기랄!”


지원은 다시 전화를 걸었다.


“차 몰고 이리로 와, 최대한 빨리!”


그 순간, 지원은 연막탄 주변으로 마치 군화를 신은 것 같은 묵직한 발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을 들었다. 지원은 재빨리 명훈을 붙들고 있지 않은 손에 총을 들고 두 눈을 부라렸다. 아직까지 눈에 장착된 사이버웨어가 연막 너머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던 와중에, 한 발의 총탄이 그녀의 머리 바로 위를 스치듯 지나갔다. 바깥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쏘지 마! 반대편에 동지가 맞을 수도 있어!”


연막탄의 연기가 점차 가라앉고 있었다. 지원은 당장이라도 응전할 태세를 갖췄지만, 혼자라면 몰라도 치명상을 입은 명훈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발소리만 들어도 상당한 숫자인 적과 싸워 이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곧이어 연막 너머로 사람들의 실루엣이 보이자 그녀도, 그들도 서로에게 총을 겨눴다. 그 순간, 경적 소리와 함께 반가운 엔진음이 울려 퍼졌다. 모두가 그쪽을 바라보자, 지원의 자동차가 요란한 경적 소리와 함께 그 무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누군가 “피해!”라고 소리치고, 누군가는 총으로 자동차를 쐈다. 하지만 자동차는 총탄을 받아내면서 가볍게 지원을 중심으로 몇 바퀴를 빠르게 돌아 괴한들을 물러나게 한 다음 차 문을 열었다. 지원은 빠르게 명훈을 차 안에 넣고 문을 닫은 뒤 소리쳤다.


“남대문으로, 최대한 빨리!!”


“놈이 탔다! 쏴!!”


괴한들이 일제히 지원을 향해 총을 갈겼지만, 자동차의 유리는 금이 갈지언정 깨지지 않았고, 빠르게 달려 그곳에서 순식간에 벗어났다. 하지만, 지원은 안심하지 않고 계속해서 명훈의 머리에 난 구멍을 손으로 틀어 막았다. 슬슬 그녀의 얼굴에서 조급함이 감추어지지 않고 있었다.


“제발… 자기야 눈 좀 떠봐!”


그때, 간절함이 통했는지 명훈이 눈을 떴다. 명훈이 힘 없는 목소리로 겨우겨우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누군가 총으로 자기 머리를 쐈어. 조금만 기다려, 구급차가 대기하고 있으니까!”


“구급차…? 혹시 삼성… 병원이야…?”


“그래! 이럴 땐 그 놈들 밖에 믿을 놈이 없잖아!”


명훈은 대뜸 지원의 팔을 꽉 잡았다.


“부탁이 있어. 내가… 만약 다시 일어나지 못하면… 방에 있던 금고 있지? 그걸 열어서… 거기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 내 이름을 대면 알거야…”


“비밀번호는?”


“자기도… 알 거야… 4자리니까… 그리고…”


명훈은 팔을 뻗어 축축하게 젖은 지원의 뺨을 어루만졌다.


“혹시 이 일이… 삼성이랑 연관되어 있다면… 절대 개입하지 마…”


점점 지원의 외침이 울부짖음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런 말 하지마! 그리고 조금만 더 버티라고 했잖아! 아직이야?!”


“정말… 정말 사랑해…”


명훈의 팔이 힘 없이 떨어지는 순간, 자동차가 대기중이던 비행 구급차 앞에 멈춰섰다. 적십자 마크가 새겨진 초록색 방탄복을 입은 의료진들이 우르르 달려와 명훈을 끌어 내 기계로 된 유지장치에 연결한 뒤 구급차에 실었다. 의료진 중 한 명이 말했다.


“보호자시죠? 환자분 상태는 조금 뒤에 연락드리겠습니다.”


구급차가 특이한 엔진소리와 함께 하늘로 날아오르자 지원은 문뜩 피투성이가 된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손 위로 투명한 물이 방울방울 떨어지며 조금씩 조금씩 그 피를 지워나갔다. 또다시 비가 내리자 자동차의 AI가 공허하게 물었다.


“자택으로 돌아갈까요?”


지원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그저 어깨를 들썩이며 최대한 숨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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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안에도 비가 내리는 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