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사모아 형사의 말마따나 절벽 아래에서는 늑대의 발자국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예상했던 대로 늑대 발자국은 물이 흐르는 계곡 주위에 나타났다. 


계곡을 따라 이어진 늑대 발자국을 쫓아 앞으로 나아가면 계곡 옆으로 바람이 멈춰진 듯 고요하기만 하다. 멀리에서는 늑대 울부짖음이 들리고 가까이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새가 우짖는다. 나에게 익숙한 형태는 아니지만 어쨌든 공중을 나는 동물을 대체로 새라고 하지 않던가? 


안쪽으로 깊숙히 나아갈수록 늑대 발자국은 더욱 선명해졌다. 머지 않아 늑대의 무리와 조우하게 될 터였다. 우리는 긴장했다. 30시간 정도쯤 진행했을까? 계곡에 들어서면서부터 보이던 하얀 연기는 더 가까워졌다. 이제는 늑대 소리가 귀청을 찢을 듯해졌다. 늑대의 빈도가 높아졌기 때문에 더 이상 무작정 전진을 하는 것은 무리이다. 외곽에 있는 늑대를 한마리씩 줄여나갈 필요가 있었다. 


사모아 형사는 양손에 단검을 하나씩 든 채로 외톨이 늑대를 찾아 달려갔다. 왼손의 단검으로는 늑대의 앞발이나 이빨 공격을 막아내자 바로 오른손의 단검으로 정확하게 늑대의 심장을 가격했다. 이러한 동작은 매우 효율적이었기 때문에 공중으로 뛰어오르거나 손이 우지끈 아프게 뼈를 자를 필요도 없었다. 가장 적은 에너지 소모로 늑대를 처치하는 방식이었다.


스파링과 나는 사모아 형사와 경쟁을 하듯이 외톨이 늑대 사냥에 몰두했다. 숲의 공기는 일순간에 출렁이기 시작했다. 무차별적인 도륙의 냄새가 넓게 퍼지기 때문인지 흉포하던 늑대는 우리를 먹이로 알고 달려드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도망칠 수 없다는 자존심을 유지하기 위해 죽여줍사 하고 몸을 맡겨오는 듯했다. 


우리가 늑대 사냥에 열중하고 있던 때에 이러한 분위기를 깨뜨리는 다른 물결이 앞쪽에서 다가온다. 그것은 무리 지어 달려오는 늑대들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얼핏 보아도 늑대 무리의 숫자는 10가 아니라 100으로 헤아리는 단위였다. 우리는 바짝 긴장하며 흩어졌던 간격을 좁혔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교훈을 실천할 때가 되었다. 사모아 형사가 가운데 서고 왼쪽에는 스파링이, 오른쪽에는 내가 호위를 하는 형세를 지었다. 사모아 형사가 말한다.

"한누리, 혹시 군대에 갔다 오셨소? 3명에 불과하지만 대형을 이탈하지 말고 자리를 지킵시다. 대형만 잘 유지해도 우리한테 승산이 있소. 늑대가 아무리 협동공격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저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짐승에 불과하니까."


늑대도 우리에게 마구잡이로 덤비지 않고 30미터쯤 근처에 와서는 멈추더니 우리를 빙둘러 포위하기 시작했다. 늑대는 100마리가 일제히 우리를 공격하려는 듯했다. 


우리는 사모아 형사를 가운데 두어 일직선을 보던 형세에서 각자의 등이 상대의 등을 바라보는 삼각형으로 진형을 바꾸었다. 이제는 사방에서 늑대가 쇄도해올 것이다. 한 명이라도 실수를 한다면 세 명이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을 깨뜨린 것은 늑대의 울부짖음이 아니라 쩌렁쩌렁한 지성체의 음성이었다. 

"항복하라. 너희가 우리 영토에 침범한 것에 대해 잘못을 구한다면 죽이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 이곳에 침입하지 않는다고 약속하면 목숨만은 보존해주겠다."


우리는 각자 뒤로 물러났다.  서로 등을 맞대었다. 지성체들은 늑대 무리 뒤로부터 모습을 하나 둘씩 드러냈다. 어슴푸레한 빛 아래 살펴보니 지성체는 오크의 형상을 띠고 있었다. 스파링은 새롭게 나타난 오크 형상의 지성체를 확인하자마자 입을 열었다. 

"오크 형제들이여, 무슨 일로 우리를 공격하십니까?"

"너희는 우리 영토를 침범했다."

"저희는 이곳이 당신들의 영토인 줄 몰랐습니다."

"너희가 몰랐다는 것을 알기에 다시 이곳의 땅을 밟지 않겠다고 약속을 한다면 생명을 해하지 않을 것이다."


일순 긴장의 끈이 팽팽해졌다. 

"저는 경찰 소속으로 근무하고 있는 사모아 형사입니다. 저희에게 잠시 시간을 주십시오. 저희끼리 내부적으로 의견을 나누고자 합니다." 

"10분의 시간을 주겠다. 항복한다는 확답을 주지 않으면 공격을 개시할 것이다."


나는 사모아 형사에게 건의를 했다.

"오크들에게는 우리가 항복을 하되 바로 숲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특이한 사건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 서로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하는 것이 어떨까요?"

"과연 오크들이 받아들일까요? 스파링,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저는 오크들이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차피 오크가 우리를 죽인다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까요. 더구나 정부에 소속되어 있는 요원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숲에서 사망했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더 많은 경찰이 이곳에 파견되거나 심지어는 군대까지 처들어올 겁니다. 오크는 그러한 사태를 원하지 않을 테죠." 

"형사님, 저도 스파링과 같은 생각입니다. 오크와 대화를 나누어 늑대가 협동해서 마을이나 도시를 습격하는 행동을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인간사회에 대한 위협이 커지면 이곳의 오크 마을이 오히러 더 위험해질 가능성이 더 크니까요."

"그럼 그렇게 합시다."


사모아 형사는 오크 무리의 지도자로 보이는 사람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저희는 더 이상의 물리적인 공격이나 방어를 중지할 겁니다. 이를테면 항복을 하겠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여러분께 늑대의 집단행동으로 인해 인간사회에서 발생하는 피해상황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또 여러분이 자기 마을의 안전을 위해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 의사를 정부에 전달하고 싶습니다." 

"너희의 말은 앞으로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에 대해 얘기를 나누자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정부에서도 더 많은 인원을 파견하여 여러분의 마을을 파괴할 겁니다. 저희는 단지 발생되고 있는 문제의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서 왔을 뿐입니다."

"너희를 살려둘지 여부는 대화를 나누고 난 뒤에 결정하겠다."


오크 마을의 우두머리는 늑대 가운데 듬성듬성 서 있는 오크를 향해 말했다.

"저들을 묶어라. 우리 마을로 데려갈 것이다."


오크들은 성큼성큼 밧줄을 들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우리는 저항하지 않고 저들이 우리 양팔을 등 뒤로 잡아당겨 어긋맞긴 손목을 밧줄로 둘둘 감아묶게 놔두었다. 사실 숫적으로 보아 우리에게는 승산이 전혀 없었다. 

오크 무리는 족장 뒤를 따라 마을쪽으로 향했다. 우리는 밧줄에 양팔이 묶인 채 오크들이 이끄는 대로 갔다. 


오크 마을은 목책으로 둘러쳐졌는데 목책 앞에는 깊게 구덩이를 파 물을 흐르게 하는 해자의 형태를 띠었다. 목책 문을 넘어가자 옹기종기 모여 지어진 나무집들이 보였다. 화려하게 꾸미지 않고 그저 사람이 살기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갖춘 모양새였다. 우리는 조금 커다랗게 지어져 강당이나 회의실로 쓰임직한 방으로 인도되었다. 그곳에는 원형 탁자가 놓여져 있었다. 오크 족장은 그 탁자 앞의 한 의자에 앉았고 다른 유력한 오크가 따라 앉았다. 우리에게 빈 3개의 의자가 제시되었다. 


원탁에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어 중요한 사항을 결정하는 것이 오크 마을의 전통으로 보였다. 우리가 원탁에 따린 의자에 앉자 오크 족장은 목소리를 높였다. 

"너희 마을이나 도시에 늑대의 침입으로 인한 피해가 있었다고 들었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가?"

"정부에서는 경찰인 저를 이곳으로 보내어 늑대가 이례적으로 집단행동을 하는 이유를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늑대가 집단행동을 하는 것은 우리가 그 집단적 본성을 일깨워주었기 때문이다." 

"어떤 방법으로 숨겨졌던 늑대의 본성을 깨우셨나요?"

"그것은 너희들에게 지금 말할 수는 없다."

"그럼 여러분 오크 마을에서 정부에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더이상 이 숲을 침범하지 말고 우리를 그대로 놔두는 것이다."

"정부에서 여러분을 그대로 놔두기 위해서는 먼저 여러분께서 도시나 마을에 해를 입히는 늑대를 단속하셔야 합니다."

"우리의 세력은 지금 이 숲에서 계속 밀리고 있다. 우리를 쫓아내는 숲의 세력은 막강하다. 그들은 이 행성 전체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늑대의 집단 본능을 일깨우지 않으면 우리가 악한 숲의 세력에 대항할 수 없다." 

"여러분과 이 행성을 위협하는 세력이란 도대체 누구를 말하나요?"

"그것은 우리도 그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

"그들은 특이한 형태로 상대의 정신을 지배한다. 오직 늑대만이 그들의 정신 지배에 면역력을 갖고 있을 뿐이다."


내가 오크 족장이 하는 정신지배라는 말을 들으니 생각하는 것이 있었다. 나는 인공지능 게임에 빠지기 전 어렸을 때에는 태블릿에서 흘러나오는 음성낭독을 듣는 것이 취미였다. 내가 잠을 자기 전에 어머니가 뭣 모르고 틀어주셨던 동화 낭독 가운데는 엄청 무시무시한 내용도 많았다. 

"저는 우주를 떠돌며 장사를 하다가 최근 이 행성에 불시착하여 용병이 된 한누리라고 합니다. 옛날 제가 자주 듣던 지구의 동화에서는 좀비 바이러스에 관한 내용이 있습니다. 좀비가 정상인을 물어뜯으면 바이러스가 전파되어 좀비로 변한다고 합니다. 좀비는 이성을 잃고 오직 인간을 물어뜯는 것만을 생각하지요."

"좀비에 관한 동화를 들으니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상과 매우 유사한 것 같군. 오크, 인간, 엘프, 도깨비 등 어떤 종족이라도 적군에게 물리고 나면 악한 숲의 세력에 속하게 되니까." 

"말씀하신 대로 물리는 것에 따라 정신지배가 전파된다면 좀비와 상당히 유사하네요."


오크 족장의 말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오크족은 인간의 박해를 피해서 깊은 숲속에 여러 마을을 이루고 살아왔었다. 이 숲에서는 가끔씩 이상한 행동을 하는 동물이 발생한다. 늑대는 이상한 행동을 하는 짐승을 발견하는 눈이 있어 그 짐승을 다른 동물보다 더 빨리 잡아먹는다.  이상한 행동을 하는 짐승의 숫자는 억제되어 왔다. 인간이 숲에서 살고 있는 늑대를 사냥하여 그 숫자가 줄어들자 이상한 행동을 하는 동물의 숫자가 늘어나게 되었고, 끝내 지성을 가진 어린아이도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되었다. 어린아이가 감염된 마을의 전체가 모두 이상한 행동을 하였다. 어떤 어른이 이상한 행동에 전염된 후부터는 이상한 행동을 하는 무리의 지능수준이 높아졌다. 과거에는 동물처럼 행동하던 이상행위자 집단이 이제는 사냥도 하고 전투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이웃의 지성체 마을을 점령한 후에는 필요한 자를 살려주되 입으로 물어뜯어 이상행위자 집단의 일원이 되게 한다. 이상행위자 집단은 동물은 물어뜯지 않고 죽이되 오직 지성체를 포섭하는 방향으로 진화되었다. 그것은 이 집단이 자연적인 생식을 통해서 규모를 늘릴 수 없기 때문이다. 성행위를 할 수는 있지만 그 의욕도 사라지고 설사 성행위를 하더라도 자녀를 낳을 수 없다. 오크 마을은 이웃 마을에서 벌어지는 희귀한 사태를 파악하고 오직 늑대만이 면역력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크 중 정신력을 개발한 자는 동물과 교감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오크 마을은 늑대의 본능에 숨겨진 집단행동능력을 일깨워 이상행위자 집단과 싸우게 하였다. 이상행위자 집단의 전투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에 개별행동을 하는 늑대는 대항할 수 없지만 집단행동을 하는 늑대는 충분히 대항할 수 있다. 


나는 오크 족장의 말을 이해했고 이 문제가 정말로 행성 전체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차대한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모아 형사는 반신반의했지만 중요한 문제라면 빨리 정부에 보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