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프 여성은 냉장고에서 소주 5병을 꺼내들고 몸을 돌려 내게로 걸어왔다. 얼굴이 붉어져서 고개를 숙인 채 그녀의 가슴쪽은 쳐다 보지도 못했다. 지금껏 내가 한번도 하지 않은 이상한 행동을 한 것 같아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이 참으로 한심했다. 그녀는 프론트에 소주 5명을 올려놓고 고개를 숙인 채 멀뚱하게 서 있는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다그쳤다. 

"소주 5병이에요. 이제 값을 지불하셔야죠?"

"아 그렇죠. 제 단말기를 계산기기에 갖다대면 되는 건가요?"

그렇게 말하면서 호주머니에 넣어둔 단말기를 꺼내 15피코라고 쓰여 있는 화면의 기기에 갖다댔다. 바로 띠링 하는 돈 빠져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소주 5병을 들고 일행이 있는 탁자로 되돌아왔다. 


나는 돌아와 탁자의 한 가운데에 소주 5병을 놓으면서 말했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엘프 여성이 아주 예쁜데요? 그렇지 않나요?"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인류 남성이 대뜸 대답을 한다. 

"이 마을에는 소문이 널리 퍼졌지. 다들 한번만 보면 뻑 가버리거든, 허허. 심지어는 가까운 도시에서도 이곳으로 놀러오는 사람이 있을 정도라니까."

"혹시 용병 휴게소의 자리가 이렇게 꽉 차 있는 것도 다 저 엘프 여성 덕분이겠군요." 

"사실 이 마을에서 다른 데보다 더 많은 용병 업무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거든. 아무튼 이곳 장사는 다 저 여성 덕분이라는 것은 맞는 말이고 말고."

"이렇게 후미진 마을에 저렇게 예쁜 엘프 여성이 있는 것이 신기하네요." 


보통 엘프 여성은 대도시에서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것이 보통이다. 대도시에서는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고, 다른 여러 가지 다양한 기회가 있다.
"저런 여성이 이곳에서 일하는 데는 어떤 사연이 있나요? 아니면 개인 취향인가요?" 

"저 엘프 여성의 이름은 리라인데, 리라에게 첫눈에 반했다면 눈빛을 조심하도록 해. 리라한테는 엄청나게 잘생기고 싸움도 잘 하는 약혼자가 있으니까 말이야."


순간적으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오 내 인생이 이렇게 기구할 수가! 내가 여태 어떤 여성을 보고도 마음의 동요가 없었는데, 처음으로 반한 여성에게 약혼자가 있을 줄이야. 내가 크게 실망하는 눈치를 보이자 우락부락한 도깨비는 듬직한 손바닥을 내 어깨어 얹으며 말한다.

"그렇다구 실연의 아픔에 젖어 목매달지는 말라구. 자네처럼 첫눈에 반한 남성 지성체는 한둘이 아니니까. 이 마을의 거의 모든 남성이 다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

"리라가 약혼자 때문에 이곳에서 일한다고 하니 더욱 대단하다고 여기게 되네요. 대도시에서 일하더라도 종종 만나면 될 텐데.... 아무튼 둘 사이의 애정이 대단하긴 대단한 모양이군요." 

"리라는 얼굴만 예쁜 것이 아니야. 성격도 좋고 교양도 풍부하다고. 사실 나도 리라와 대화를 많이 나눠본 것은 아니지만 말이지." 


리라에게 약혼자가 있다고 하니 더 이상 화제로 삼기도 뭣했다. 어차피 내 약혼녀가 될 수 없는 사람이만 그래도 시골 마을에서 미녀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할까?


술자리에서는 각자가 소주 한 병씩을 들고 마시는 형식이었다. 황량하고 야생의 상태와 가까운 변두리 마을에서는 병나팔을 부는 것이 당연한 술자리 예절이니까. 


아직은 오후 4시가 조금 넘었을 뿐이니까 술에 거나하게 취할 시간은 아니다. 한 사람마다 소주 1병을 마시는 것으로 취기는 족할 것이다. 각자가 목을 충분히 축였다고 생각되었을 때 나는 본론을 꺼냈다. 

"아까 제가 늑대 사체를 운반할 트럭을 빌릴 수 있는 곳을 알려달라고 부탁했었죠?"

"내 이름은 준코라네. 내가 트럭을 임대하는 주인장을 잘 알고 있지. 보아 하니 자네가 돈이 많아 보이지 않네만, 아무래도 조금 허름한 트럭을 빌리려는 것이겠지? 트럭 주인은 니마카라고 하지. 내가 그 친구의 연락처를 알고 있으니까 내가 연락을 해서 자네 얘기를 하지."

"감사합니다."

"내 생각에는 트럭만 빌리기보다는 니마카한테 자기 트럭으로 자네가 잡은 늑대 고기를 운반해 달라고 하는 것이 나을 걸세. 자네가 아무리 우주를 항해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이곳 법에 따르면 트럭을 운전하려면 면허증이 따로 있어야 하거든. 내친 김에 지금 바로 연락을 함세."


도깨비 준코는 곧바로 단말기를 꺼내 트럭 운전자 니마카에게 연락을 취했다. 다시 우리가 각자 소주병으로 나팔을 불며 한 모금씩을 빨았을 때 니마카에게서 연락이 왔다. 

"니마카, 나 준코인데 여기 자네 트럭을 이용하겠다는 고객이 있네. 그 신분은 내가 보증하지. 아주 선량하게 생긴 인류 남성이라네. 한누리라고 하는데, 내가 그 단말기에 연결할 테니까 잘 얘기를 해봐." 

"안녕하세요. 저는 한누리라고 합니다. 준코님의 소개로 트럭을 이용하려고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가 감사하죠. 요즘 일거리도 많은 편이 아닌데."

"늑대 고기를 수송하는 데 트럭을 이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도 있으셨을 텐데, 더욱 감사드립니다. 아무래도 고기를 실어나르는 트럭은 냄새도 나고 해서 더 많이 세척도 해야 할 테고요." 

"사실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그것보다 더 구질구질한 일도 많거든요."  


나는 니마카와 내일 정오 12시경에 타클라호 숲의 섹터 123 지점에서 만나 늑대 고기를 수송하기로 약속했다. 오늘 잡은 늑대는 부패할 수 있으니까 버려둔 채로 내일 새롭게 잡은 늑대 고기를 실어나르기로 했다. 운송료는 70피코로 정했다. 트럭이 낡은 편이기 때문에 한 사람의 일당까지 포함한 운송료로서는 대체적으로 저렴한 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도깨비 준코 옆에 앉아 수더분히 말이 없는 또 다른 도깨비는 마코였다. 마코와 준코는 형제로서 이들의 성격은 완전히 딴판이라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준코와 마코는 모두 D등급의 용병으로서 과거에는 늑대 사냥을 많이 했지만 심심해져서 이제는 "무법자 체포" 업무를 주로 한다고 했다. 무법자는 공개 수배된 악당으로 원래는 경찰이 체포 업무를 맡아야 하지만, D급 용병은 일반 경찰보다 훨씬 탁월한 전투능력으로 지역의 자치단체에서 인기가 많다고 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원시적인 자연환경이 남아 있는 대부분의 행성에서는 경찰력만으로 치안을 유지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고 경비도 많이 들기 때문에 용병이 선호되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아직까지는 악당역으로 오크가 많이 등장한다는 편견이 많이 퍼져 있는 상황인지라 흉포한 오크와 싸우는 경찰을 지원하는 인력이 적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은 인류가 정치권력을 장악한 행성일수록 심했다.


소주 1병을 마시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벌써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다. 도깨비 준코가 시계를 보더니 나와 스파링에게 제안을 했다. 

"이제 저녁 시간이군. 자네들 우리 집에서 저녁이나 한번 먹지 않으려나?"

스파링은 머뭇거리는 듯했으나 나는 바로 대답했다.

"저야 감사하죠. 딱히 먹을 곳도 없었는데요."

"스파링, 자네는 어떤가? 우리 집이 누추하기는 하지만 그대로 하룻밤을 보내기에는 큰 불편은 없을 거야." 


오크는 대부분 주택을 보유하고 있지 못하다고 들었다. 대체적으로 오크의 소득 수준이 낮은 것도 있지만 인간이 주류인 이 사회에서는 오크가 이웃이 되는 것을 꺼려 오크에게는 집을 팔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도 많다. 도깨비는 그 외모가 인간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하고 친화력도 있으며 우직한 성격으로 인정받아 인간의 이웃이 되는 경우가 많다. 준코 옆에서 묵묵하게 앉아 있던 도깨비 마코가 한 마디 거들었다. 

"스파링, 자네를 용병 휴게소나 늑대 사냥터에서 가끔씩 본 적이 있어. 친해지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다네. 도깨비가 오크를 꺼린다는 편견은 버리게."

"저는 자랑스러운 오크 가문의 후손입니다. 제가 여러분을 도와드리지 못한 상태에서 먼저 폐를 끼치게 되어 죄송할 따름이군요. 그래요, 저녁 식사 초대에 응하지요. 감사해요." 

"자네처럼 몸값이 높은 오크도 처음이네. 우리야 영광이지." 


도깨비 준코와 마코 형제의 집은 마을의 외곽에 있었다. 그리 번화하지 않은 소도시에 불과하지만 이 마을도 중심부는 땅값이 비싼 편이다. 건설현장이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인근의 농장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 이곳저곳 떠돌아 다니며 해결사 노릇을 하는 용병 등의 부류는 주로 도시 외곽의 더욱 시골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주택 지역에서 산다. 준코, 마코, 스파링, 그리고 나는 각자가 끌고온 오토바이를 타고 도깨비 형제의 집으로 갔다. 


오후 6시를 한참 넘어가자 황혼의 물결이 땅에 퍼진다. 어슴푸레 희미해지는 빛줄기를 뒤쫓아 언덕의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다. 그림자가 시작되는 지점에 있는 도깨비 형제의 집 주위를 야채밭이 두르고 있어 목가적인 분위기가 풍겼다. 집 앞 마당에 오토바이를 주차시킨 후 운행차단막을 제거하자 저 멀리에서 늑대의 울부짓음 소리가 더 뚜렷하게 들려왔다. 늑대 무리도 이제 밤을 준비하는 듯하다. 야행성 동물이 숨은 곳에서 나와 활동을 개시하면서 늑대도 본격적인 사냥을 준비할 터였다. 


"준코, 늑대가 밤에는 마을로 침입하지는 않나요?"

"늑대는 사냥감이 없을 때는 가끔씩 가축을 사육하는 인근의 농장에 내려와서 피해를 입히곤 하지."

"늑대말고는 침입자가 없겠죠? 이 마을이 딱히 위험하지는 않는 곳으로 보이거든요."

"한누리, 사실 저 숲에는 늑대를 지배하는 세력이 있다고들 전해지고 있지. 늑대와 친하게 지내는 지성체를 말하는 것 같더군. 예전에 인류가 개를 기르며 생활했듯이 말이야."

"늑대가 길들여질 수 없지 않나요? 옛 지구에서는 인간에게 길들여진 것은 개가 되었고, 그렇지 않은 것은 늑대로 남았으니까요."

"맞아, 늑대는 길들여지지 않지. 하지만 최근에는 늑대가 이상하게도 조직적으로 활동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네. 숲으로 깊숙히 들어갈수록 늑대의 조직적인 활동이 더 활발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네."

"준코, 숲의 중심부에서는 늑대의 습성이 점점 더 조직적으로 변해간다는 말이군요. 그렇지 않은 늑대는 외곽으로 떠밀려나 용병에게 사냥을 당하고요." 

"아무튼 자네도 늑대 사냥을 하면 알게 되겠지만, 사실 내가 늑대 사냥을 그만 두게 된 것도 늑대의 조직적인 활동에 생명의 위협을 가끔 느끼게 되었서였다네. 항상 숲 외곽을 돌면서 사냥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거든. 아무리 이 행성에서 야생 동물의 번식력이 좋다고 하더라도 한계는 있는 법이지." 


나는 다시 한번 저 멀리 어둠에 묻혀 있는 숲을 바라 보았다. 숲은 한결 으스스해 보인다. 과연 저 숲 중심부에는 어떤 세력이 자라고 있는 것일까? 

도깨비 준코와 마코 형제는 집에서 기르는 돼지를 잡았다. 형제의 집은 넓은 농장이었다. 과연 이들이 용병인지 농부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아마도 농부가 주업이고 돈이 궁해질 때 가끔씩 무법자 체포를 부업으로 하는 듯하다. 


도깨비 형제의 식탁은 여러 가지 채소와 곡물, 신선한 돼지 고기로 풍성했다. 휘어지는 식탁 다리를 붙잡고 식사를 해야 할 정도였다고나 할까? 오랜만에 어린 돼지의 뒷다리를 뜯으니 기분이 좋았다. 나는 우리 각자 노래 실력을 뽐내보자며 제안을 하면서 가장 먼저 듣기 거북한 목소리를 뽑아냈다. 내 돼지 멱따는 소리에 귀를 막았던 준코가 아름다운 선율과 박자를 뽐내며 한 가락을 뽑는다. 어렸을 때 태블릿 음성낭독으로 들었던 "혹부리 영감"에서 나오는 음치 도깨비가 아니었다. 고대 지구에 살았다던 도깨비의 편견이 여지 없이 무너졌다. 그럼, 오크 노랫소리는 어떨까? 우리는 오크 스파링에게 노래를 강요했다. 스파링은 전형적인 오크의 이미지 그대로 음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