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르렁, 크르렁, 컹컹"

귀를 울리는 늑대의 낮은 울부짓음은 내 가슴을 철컹 내려앉게 했다. 옆에 있는 오크 동료 스파링의 눈치를 보면서 두려움에 떠는 듯한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이 스파링에게 쉽게 전달되었다. 스파링은 긴장을 조금 풀려는 듯 내게 말을 걸어왔다. 

"한누리, 당신 오크와 함께 일한 적이 있소?"

"아, 이 번이 처음이죠. 저는 지성을 가진 종족이라면 차별을 두지 않아요. 물론 그렇다고 본능적인 거부감까지 완전히 해결한 것은 아니지만요. 아무래도 종족이 다르면 같은 종족을 대하는 것만큼 아주 자연스럽지는 못할 테니까요." 

"그럴 수도 있소. 우리 오크족도 한 때는 아주 강력한 지도자에 의해 통합되어 발생 행성을 벗어나 여러 섹터를 점령하면서 우주에서 상당한 문명을 떨쳤던 적이 있다오. 인류가 오크족을 무너뜨린 후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오크가 다시 통합된 적은 없었소. 오크는 같은 종족 내에서도 조금만 생김새나 피부색 따위가 다르면 인종이나 부족으로 구분해서 차별하고 서로 협동작업도 하려고 하지 않거든." 

"인류도 한 때 그런 적이 있었어요. 하지만 우주 개발시대에 접어들면서 외계 종족과 접속을 하게 되어 인류 내에서는 자연스럽게 통합이 이루어졌지요." 

"자, 그렇다면 인류와 오크족을 비롯한 모든 지성체를 위협하는 세력이 등장한다면 오크와 인류가 통합해서 하나가 될 수 있겠소?"

"아마도 그럴 것으로 생각합니다. 공동의 적이 등장했다면 함께 싸워야만 승산이 높아질 테니까요."


이러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에 늑대의 울부짓는 소리는 더 커졌다. 

"스파링, 늑대가 이제는 가까이에 있지요?"

"아직 조금 더 남았다오. 이곳 늑대는 다른 행성에 사는 비슷한 종류의 생명체에 비해 몸집도 크고 목소리도 큰 편이라 할 수 있지. 그것은 보면 알 것이오."

"늑대의 주 공격은 이빨이나 발톱으로 사람을 물어뜯는 것일 테지요. 당연할 말이겠지만."

"이곳의 늑대도 다른 행성에서 늑대라 불리는 생명체와 비슷한 생태를 지니고 있어요. 생김새를 보아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공통적으로 늑대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것일 테구."

"다른 행성에서는 늑대가 보통 집단행동을 하지 않나요? 엄청난 크기의 늑대가 집단 공격을 해온다면 상대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참 다행스러운 것이 이곳 늑대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무리를 짓지 않고 홀로 활동하더군요." 

"그것 참 다행이군요. 그 이유가 뭘까요? 거의 대부분의 습성에서는 일반 늑대를 빼다박았다면서요."

"이곳 늑대는 몸집도 크고 야생에서 생활하는 다른 생명체에 비해 상당히 강력한 면모를 보이지요. 집단 생활을 하지 않고 홀로 생활하더라도 사냥에 아무 지장이 없기 때문에 그런 쪽으로 습성이 진화했을 겁니다. 각 생명체의 습성은 각 개체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발달하게 되어 있는데, 이곳의 늑대가 워낙 강력하다 보니 개별 행동의 습성을 갖게 된 것이고." 


한 마리의 늑대를 상대하기 위해 우람한 오크 3명의 협동이 필요하다면 이 야생 개체가 얼마나 강력한지 알 듯하다. 아무튼 사냥에 임해서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이제는 늑대의 목소리가 처렁처렁 귀를 울릴 정도까지 커졌다. 아울러 옅은 어둠 속에서 노랗게 빛나는 눈빛이 이곳저곳에서 보이기 시작한다. 

스파링은 이제 왼손에 방패를 들었다. 여태껏 방패가 따로 있다는 말을 나한테 하지 않았는데.... 스파링의 방패는 내가 알지 못하는 특수한 금속으로 제작된 듯 매우 견고하여 어떠한 공격이라도 막아낼 수 있을 만큼 든든하게 보였다. 

"스파링, 방패가 갖고 계셨군요. 늑대 사냥에서 방패는 필수인가요?"

"어? 방패가 없나요? 난 당연히 당신이 갖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제가 입고 있는 갑옷이 아주 단단하기 때문에 특별히 문제는 안 될 겁니다."

"그렇다면, 갑옷으로 가릴 수 없는 얼굴이나 손발 등을 조심하시오. 늑대의 이빨은 아주 날카롭다오." 

"그 방패가 아주 좋아 보이는군요."

"이것은 우리 집안에서 대대로 가보로 내려오던 것이라오. 자 늑대가 우리를 노려보고 있소. 곧 공격해 올 테니 조심하시오." 


스파링이 나 앞을 가리며 늑대에게 성금 다가갔다. 늑대는 그 키가 인류 성인의 1.5배에 근접해 보였다. 약 2.5미터 정도일 것이다. 이렇게 거대한 육체라면 늑대의 힘과 민첩성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하지만 스파링도 근력을 강화하는 갑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힘에 있어서는 늑대에게 밀리지는 않을 것이다. 지성체의 강점은 육체적인 약함을 기술적인 능숙함으로써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늑대는 뒷발로 껑충 뛰더니 앞발의 발톱을 세워 스파링의 머리쪽으로 강타해왔다. 스파링은 민첩하게 허리를 바짝 숙여 늑대가 휘두른 앞발톱을 피함과 동시에 늑대의 옆목을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늑대는 도끼날을 맞고도 크게 요동하지 않으며 스파링의 뒤에서 앞으로 다가가는 나를 향해 입을 벌리며 뛰어왔다. 


나는 방패를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늑대의 이빨을 막을 수 없었으니 어떻게 해서든지 날렵하게 피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발바닥에 힘을 주어 로켓 추진력을 분사해서 2미터쯤 뒤로 물러나 늑대의 아가리를 피할 수 있었다. 내가 입고 있는 갑옷 슈트는 중세시대에 기사들이 입었던 갑옷처럼 활동을 불편하게 하지 않고 에어로빅 댄서가 입는 운동복처럼 신축성이 뛰어나고 경우에 따라서는 추진장치가 달려 운동력을 크게 보강해준다.  


늑대가 고개가 땅에 근접하게 수그러진 틈을 놓치지 않고 다시금 로켓 추진력을 이용해 높이 도약을 하며 머리 높이 검을 들어올렸다. 내가 쥔 검은 광고에 따르면 어떠한 생명체의 피부도 잘라낼 수 있는 절삭력을 지니고 있다. 나는 늑대의 머리와 어깨의 정중앙에 위치한 목 부위를 향해 힘껏 검을 내려쳤다. 그러면서 하중의 힘을 강화하기 위해서 어깨와 등 위쪽에서도 추진력을 발사했다. 


검은 늑대의 목을 관통했다. 그리고 늑대의 몸과 머리는 분리되었다. 늑대의 거대한 목둘레는 일격에 두 동강 낼 수 있다니.. 내가 직접 늑대를 공격하였지만 나로서도 스스로의 위용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늑대는 목이 분리된 채로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이 맹수는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을 것이다. 그와 함께 몸에 부착된 단말기에서 띠링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늑대 한 마리의 생명을 확실하게 빼앗았음을 확인하는 신호음이었다. 경쾌한 신호음을 들으면 오크 스파링 쪽을 슬쩍 살펴보았다. 스파링은 다소 어안이벙벙한 상태로 나와 늑대를 번갈아가며 쳐다보며 말한다. 

"와 대단하군요. 한 번의 칼 놀림으로 늑대의 목을 쓱싹 해치우다니... 역시 B등급의 위력은 대단하군요."

"사실 저도 제가 이렇게 잘 싸울지 몰랐어요. 이곳에서 늑대와 싸운 것도 처음이려니와 제가 다른 행성에서 용병 활동을 한 것도 그리 많지 않거든요." 

"경험이 부족하다고 겸손의 말을 하니 더욱 놀랍소. 이거 대단한데요." 

"사실 제가 잘 싸우는 것이 아니라 다 장비가 좋아서지요. 일종의 템빨이라고 할 수 있어요." 


내가 어렸을 때 즐기던 인공지능 게임에서는 유저들 사이에 "실력보다는 템빨이다"는 말이 널리 퍼져 있었다. 템빨이라는 말이 도대체 어디에서 유래된 말인지는 알지 못한다. "템"이라는 것이 유저가 착용하거나 사용하는 기술이나 장비를 의미한다는 것은 알겠지만 말이다. 

물론 내가 오늘 발휘한 발군의 역량이 모두 장비 덕분만은 아니다. 나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가상 현실 게임을 즐겼는데, 이 때 익힌 전투감각이 상당한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실전의 경험은 없었지만 머릿속에서는 엄청난 수의 전투를 경험한 바가 있으니 알게 모르게 몸이 저절로 움직였을 터이다. 


사실 D등급의 실력으로 지나치게 뻐기는 것도 겸연쩍은 일이다. 이번의 사냥은 단지 내 실력이 그래도 명실공히 D등급에 부합한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겠다. 나는 멋쩍은 듯 얼굴을 붉히며 스파링에게 말했다.

"솔직하게 얘기해서 막 숲속으로 들어와서는 오늘 임무를 과연 완수할 수 있을까 의심스럽고 두려운 마음조차 있었거든요."

"그래도 잘 싸우셨소. 오늘 업무는 빠르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소."


나는 상당한 마음의 여유를 되찾아 졸였던 가슴을 활짝 펼치며 궁금했던 점을 스파링에게 물었다. 

"지금 갖고 계신 방패는 가문 대대로 내려온 가보라고 하셨죠? 그렇다면 단순히 적의 공격을 막기만 할 것이 아니라 어떤 놀라운 기능이 숨겨있지 않을까요?" 

"내가 갖고 있는 이 가보 방패는 아주 단단한 재질로 만들어졌소. 게다가 방패 내부에는 영구적인 추진력을 생성하는 모터가 장착되어 있어 이것을 던지면 톱니바퀴가 방패날에 돌출되어 날아가게 되어 있소. 더군다나 적에게 손상을 입힌 방패는 부메랑처럼 던진 사람에게 되돌아온다오."

"아 놀라운 무기로군요. 그런 무기가 있다는 말은 아직까지 들어보지 못했어요."

"다만 내가 아직 이 방패를 그 용도로까지는 사용하지 못 했소. 이곳에서 늑대를 사냥하는 임무 자체가 워낙 어려웠던 만큼 귀중한 방패를 던지다가 실수해서 영영 가문의 가보를 잃어버릴까봐 감히 던질 수가 없었던 게요." 

"혹시 이 방패를 오크족이 만든 것인가요?"

"우리 오크족의 기술이 퇴화되지 않았던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라오. 이제 오크족은 이러한 방패를 다시 제작하지 못할 것이오." 


우직할 것으로만 생각했던 오크의 숨겨진 기술력에 다시 한번 탄복했다. 이 방패는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엄청난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이러한 가보를 가진 스파링이라면 오크족에서도 상당한 명망이 있는 가문의 출신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런 스파링을 만난 것 자체가 나로서는 엄청난 행운이다. 이 행성에 불시착한 것이 불행이라면 스파링을 만난 것은 그 불행을 뒤덮고도 남을 행운이다. 

"스파링, 앞으로 전투에서는 그 방패의 숨겨진 위력을 십분 활용하는 것이 어떨까요?"

"오늘 사냥에서 지금처럼만 잘 싸울 수 있다면 나도 아무런 거리낌없이 맘껏 방패를 던질 수 있을 것 같소."

"과연 어떻게 싸울 수 있을지 참 기대되네요."

"나야말로 방패를 제대로 써먹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에 대해 감사할 따름이오." 


스파링과 나는 서로를 격려하는 가운데 한결 가벼워진 손짓과 눈짓을 교환하면서 보무도 당당하게 숲속으로 전진했다. 늑대의 우렁찬 울부짓음도 우리의 용기를 짓이길 수 없었다. 우리는 귀를 찢어내는 울부짓음을 향해 걸음을 옮겨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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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스템이 익숙하지가 않군요. 자꾸 "일반"으로 글을 올리게 되네요. 글을 작성할 때 "소설"로 고정하는 방법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