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늑대를 향해 나아간다. 스파링은 보물 방패를 왼손에 든 채 이번에도 앞서 간다. 나는 그 뒤를 따랐다. 동족의 피냄새를 맡았는지는 몰라도 울부짖는 늑대의 음색은 다소 거칠어졌다. 늑대도 긴장하고 있는 것이 여실했다. 


늑대 30미터쯤 앞두고 스파링은 얍 기합을 지르며 방패를 던졌다. 방패는 스파링의 손을 떠나자마자 날카로운 톱니바퀴를 바깥으로 내보냈다. 톱니바퀴가 회전하면서부터는 방패의 이동속도가 더욱 빨라진다. 늑대는 아직 공격자세를 취하지 못한 상태였는데, 날아오는 무시무시한 방패의 위력에 일순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마치 방패를 오른 앞발로 처내려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톱니바퀴는 목공소에서 나무토막을 자르듯 깔끔하게 들린 늑대의 앞발을 잘라냈다. 


"와호"

스파링은 유쾌한 함성을 지르더니 방패를 던졌던 팔을 다시 쭉 뻗었다. 늑대의 앞발을 불구로 만들어버린 방패는 공중에서 부드럽게 유턴을 하더니 되돌아온다. 무섭게 회전하던 톱니바퀴는 이제 방패 내부로 들어갔다. 방패가 부메랑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바라보며 흡족한 표정을 짓는다. 신기하게도 방패는 스파링에 근접해서는 방향을 틀더니 손잡이를 스파링에게 내밀며 손바닥에 착 달라붙었다. 가히 오크 기술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른 앞발이 잘린 늑대는 짧막한 신음소리를 내더니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우리는 늑대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달려간다. 스파링은 다시 한번 방패를 휘감아돌리더니 늑대 머리를 향해 던졌다. 방패는 윙 하는 소리와 함께 톱니바퀴를 빼내어 돌리면서 늑대의 목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그와 동시에 나는 잽싸게 공중으로 뛰어오르며 방패의 톱니바퀴로 온전히 잘라지지 않은 늑대의 목을 칼로 내리쳤다. 이제 늑대는 고통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경쾌한 띠링 소리를 들으며 착지하며 스파링을 돌아본다. 스파링은 오른손의 엄지손가락을 위로 치켜들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기분이 좋다. 내가 여태껏 고이 숨겨두었던 잔인성이 드러난 것일까? 애궂은 늑대를 해치우고서는 상쾌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무엇일까? 


사실 늑대는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단지 늑대의 서식지를 개발하고자 하는 인간을 비롯한 지성체의 욕심에 사냥을 당하고 있는 신세가 되었다. 나는 용병으로서 인간들의 욕망을 충실히 실현하기 위해 자연의 일부로 평화롭게 살아가는 늑대를 토벌하는 짓을 저지르고 있다. 그런데도 늑대를 죽이는 것을 즐기는 나란 인간은 도대체 뭘까? 


"스파링, 늑대를 죽이니 기분이 어떠세요?"

"난 상쾌한데? 먼 옛날 오크는 자연에서 이렇게 맹수를 사냥하며 살았다고 하였소."


"그건 그렇고 방패의 톱니바퀴를 다루는 법은 어떻게 익히셨나요? 대단하군요. 아주 능숙하게 다루시더군요."

"사실 이번이 처음이었소. 여태껏 방패를 적의 타격을 막아내는 데에만 썼지만 공격용으로 쓰는 것이 더 유용하다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깨닫게 되었소." 


"이 숲은 얼마나 큰지 아시나요? 나무가 울창해서 낮인데도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군요."

처음 숲속으로 들어올 때는 지나치게 긴장한 때문인지 숲에 대해 스파링에게 물어보지 못했다. 이제 마음이 놓이니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어진다. 

"파랑카라 숲은 그 면적이 100만 헥타아르라고 들었소."

"아 1만 제곱킬로미터로군요. 그 정도 넓이라면 대략 한 변의 길이가 33킬로미터인 정사각형의 면적과 비슷하겠네요."  

"혹시 이 숲에 살고 있는 생명체에 대해서는 잘 하시겠죠?"

"나도 이곳에는 자주 오지 않았소. 겨우 늑대만 사냥을 해보았을 뿐이오."

"늑대가 숲 변두리에서 생활하는 것을 보면 숲 중앙에는 더욱 크고 사나운 짐승이 살고 있을 가능성이 크군요." 


일단 안전을 위해서라면 숲 중앙으로 전진하는 것은 자제를 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우선 변두리를 돌면서 늑대를 처리하기로 했다. 


스파링과 나는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늑대 11마리를 잡았다. 정오가 되었으면 이제 쉴 때가 된 것이다. 숲은 바닥이 울퉁불퉁하고 고사리와 비슷하게 생긴 양치류가 이곳저곳에 자생하고 있다. 주욱 살펴보니 그래도 나무의 바로 아래 그루터기에 앉는 것이 가장 편해 보였다. 나는 햇빛이 많이 보이는 쪽으로 걸어 나무 그루터기에 앉으려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 단순히 앉아만 있을 것이 아니라 뭔가 먹을 것이 필요했다. 


나는 미처 먹을 거리를 준비하지 못 했다. 혹시나 해서 스파랑에게 물어본다.

"혹시 먹을 것 있나요? 저는 아무것도 없군요. 생각을 하지 못 했어요."

"도처에 먹을 것인데, 뭐가 격정이수."

스파링은 바로 검지손가락을 펴며 쓰러진 늑대를 가리켰다. 나는 맹수인 늑대를 먹을 생각을 아직 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당황했다. 스파링은 우습다는 듯 지껄인다.

"어떤 동물이 다른 동물을 왜 사냥하겠소? 이곳도 자연이니 그 법칙에 따라 음식을 조달해야 하지 않겠소?"

"이곳에 늑대가 즐겨 먹는 사냥감이 있지 않나요? 늑대보다는 먹이감이 되는 동물이 더 나을 듯한데......" 

"늑대도 그런 대로 먹을 맛이 날 거요. 내가 요리를 할 테니.."


스파링은 허리춤에서 단도를 거냈다. 날카로운 단도를 늑대의 옆구리에 찔러넣어 아래로 쭉 그었다. 단도가 날카로운 때문인지, 아니면 죽은 늑대의 피부가 날붙이에 대한 저항력을 상실한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늑대의 살은 아주 부드럽게 잘라졌다. 스파링은 능숙한 솜씨로 늑대의 살을 손바닥만한 크기로 토막을 내었다. 그러고서는 주위를 휙 둘러보더니 나뭇가지를 줍기 시작한다. Y형의 나뭇가지를 양 옆에 꽂은 뒤 그 위에 고기를 꿰뚫어 매단 일자형 가지를 걸쳐놓는다. 허리띠에 묶어둔 공구자루에서 조그마한 라이터를 꺼낸다. 라이터는 손가락 굵기로 한 뼘 길이인데, 엄지와 검지로 집은 채 가운데께에 있는 단추를 누르자 불꽃이 일었다. 라이터의 불꽃이 늑대고기 아래에 수북히 쌓인 나뭇가지에 닿자 타닥 소리와 함께 힌 연기를 뿜으며 나뭇가지가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스파링의 능숙한 솜씨를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살펴보고 있자니 고기 타들어가는 냄새가 구수하기 맡긴다. 살짝 입에서는 군침이 돌았다. 

"한누리, 뭘 그렇게 멀뚱하니 서서 지켜보고만 있소? 여기 앉아요."

내가 앉으려 하자 스파링은 공구자루에서 반짝이는 금속포크를 꺼내어 나한테 건내었다. 반질반질하게 잘 닦인 포크를 보면서 스파링의 준비성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내가 품어왔던 오크에 대한 편견은 여지없이 깨부수어졌다. 

"혹시 포크는 두 개씩 준비하고 다니나요?"

"나 역시 그 정도로 준비하지는 않소. 포크야 딱 하나 있었는데, 나야 나무로 포크를 만들어 먹으면 될 테니까, 띨한 당신은 이 포크를 이용하소." 


스파링은 대충 생긴 나뭇조각을 왼손에 잡아 오른손에 쥔 단도를 마구 휘둘렀다. 대충 깎아낸 나무지만 제법 뾰족하니 고기를 찍어먹을 만했다. 계속해서 스파링의 적응력에 감탄하고만 있을 수 없는지라, 나는 금속포크로 노름하게 구워진 늑대 고기를 찍어 먹어보았다. 

"노름한 냄새가 나서 아주 맛있을 줄 알았는데, 그 정도는 아니군요. 그래도 쇠고기 맛 정도는 나는군요."


인류가 지배하는 거의 대부분의 행성에는 지구에서 기원한 소가 길러지고 있다. 물론 이 행성에서도 소가 사육되고 있는지는 모른다. 소보다 더 훌륭한 식육용 동물이 있다면 그 동물을 기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류에게 가장 친근하고 맛있는 고기야말로 쇠고기일 터이다. 


지구에서 기원한 생물종의 씨앗이 다른 행성에 마구 뿌려져서 생태계를 교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기는 하지만, 인간은 오히려 거의 모든 행성을 지구와 비슷한 환경으로 테라포밍하는 것을 최상의 생태조건으로 여기는 듯하다. 가축으로 길러지는 소의 경우에는 특별히 생태계에 교란을 일으킨다는 소문은 없다. 


"스파링, 소금을 고기에 뿌렸나요? 간도 맞는 것 같은데요."

"이곳의 동물은 약간씩 소금기를 머금고 있소. 굳이 소금을 뿌리지 않더라도 먹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게요."


"혹시 다른 짐승을 잡아먹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이곳 삼마 행성에 서식하고 있는 다양한 동물의 고기를 먹어보고 싶군요."

"글쎄, 내 경험상으로는 다른 초식동물이나 육식동물보다 늑대 고기가 가장 맛있었소."

"그렇다면 실망이군요. 늑대 고기보다 더 맛있는 고기가 없다니...."

"물론 사람에 따라 취향이 다르니까. 어디 나중에 다른 고기도 맛을 봅시다. 비교해 보면 알 테니."


우리는 손바닥 만한 늑대고기를 서너 점씩 뜯었다. 약간 배가 든든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스파링은 불꽃잔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단백질 음식을 충분히 먹었으니 이제는 탄수화물이 든 것도 어느 정도는 먹어줘야 소화에 도움이 될 거요."

"무슨 먹을 수 있는 식물을 발견하셨나요?"

"저기 보시오. 저 버섯은 생으로 먹으면 독이 들어 있지만, 익히면 독이 사라져 식량으로 활용할 수 있소." 


스파링은 성큼 걸어가 단도로 주황색 버섯의 밑동을 잘랐다. 다시금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너댓 개의 버섯을 채취했다. 

우리는 버섯을 구워먹었는데, 신기하게도 버섯은 내게 매우 익숙한 맛이 났다.
"단맛이 조금 있고 탄수화물과 섬유질이 충분히 있는 것으로 보아 딱 고구마와 비슷한 맛이 나는군요."

"그래서 이 버섯의 이름도 인류는 고구마 버섯이라고 하지요."


한참 배를 채우고 나니 낮잠을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낯선 숲속에서 잠을 자는 것은 여러 모로 위험한 짓이다. 일단 오늘은 늑대를 잡아 업무량을 채우고 난 뒤 용병 길드가 있는 마을로 귀환하는 것이 상책이다. 

"스파링, 아까 늑대 10마리를 잡을 때 늑대 사냥 완료를 자동으로 보고하고 난 뒤 다시 같은 업무를 갱신했을 겁니다. 이제 9마리를 잡고 늑대 사냥을 끝낸 다음 마을로 되돌아가는 것이 어떻겠어요?"

"그렇게 합시다. 이곳은 빨리 어두워질 테고, 당신한테는 오늘이 이 행성에서의 첫날이니 마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구경을 해도 될 테니까." 


우리는 오후 사냥에 열중했다. 스파링과 나는 손발이 착착 맞았다. 늑대를 발견하는 족족 손쉽게 사냥을 할 수 있었는데, 문제라면 늑대를 잡을수록 늑대를 발견하는 데 시간이 조금씩 더 걸린다는 것뿐이었다. 아무튼 우리는 9마리를 더 사냥해서 2명에게 할당된 10마리의 늑대 사냥 업무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띠링 소리와 함께 개인용 단말기에서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업무 완료를 보고했습니다. 동일한 업무의 갱신을 용병 사무소에 요청합니다. 갱신이 승인되었습니다."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숲을 벗어나 오토바이를 주차한 곳까지 걸어나왔다. 오토바이의 주행시스템은 우리가 떠나온 용병 길드가 있는 마을을 검색해서 그쪽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나는 모처럼 30분 정도 단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