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급 업무 목록

1. 야생 늑대 사냥: 50피코

2. 무법자 체포: 100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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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업무 목록을 대충 훑어보았다. 사실 이 목록만으로는 업무의 난이도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이 행성에 서식하고 있는 늑대의 능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도 알지 못한다. 또 무법자의 경우 지성체일 텐데 어떤 종족이, 어떤 무시무시한 짓을 저질렀으며, 어느 정도의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는지 도통 알 길이 없다. 

일단 안전빵으로 야생 늑대 사냥을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용병 사무실의 대기좌석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따 빨랑빨랑 업무를 끝마친 보상을 지급해줘요!"

괄괄한 목소리가 사무실에 울려퍼진다. 창구쪽에서는 오크로 보이는 남성이 사무원을 앞에서 고함을 지른다. 


인류는 우주탐험을 시작한 이래로 많은 지성체와 접했다. 지성체는 대체적으로 지구의 생물분류상으로 볼 때 포유동물에 속하는 경우가 많았고 특히 인류와 비슷한 신체구조를 갖곤 했다. 지성체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행성의 천체 특성이 지구와 비슷해야 한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밝혀졌고, 특정한 생명체가 지적인 능력을 갖기 위해 필요한 생리적인 조건이라는 것도 포유동물의 특징에 가장 근접했다. 간혹 파충류나 어류, 조류와 유사한 지성체도 종종 등장하기도 했지만 가장 많은 지성체는 역시 포유류였다. 물론 포유류라고 해서 지구상에 존재하는 포유류와 아주 똑같은 생리적인 특성을 보유하는 것은 아니다. 


오크라고 불리는 지성체는 과거 지구에서 유행했던 환타지 소설에서 등장한 바로 오크라는 종족과 유사한 형태와 생리적 특성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인류가 최초로 맞닥뜨린 지성체는 파라무그라 행성에 기원을 둔 바로 이 오크였다. 인류와 오크는 접촉 초기에는 상호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오크의 왕성한 증가세에 위협을 느낀 인류가 먼저 전쟁을 선포하여 승리하였다. 대체적으로 오크는 인류보다 조금 낮은 계층에 속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크는 인류보다 높은 출생률을 자랑하고 사회적으로도 대부분의 행성에서 인류가 하지 않는 허드렛일을 하면서 사회의 저층을 형성하고 있다. 


용병 사무실 대기좌석에 앉아 살펴본 정보에 따르면, 삼마 행성은 인류보다 출생률이 낮은 일명 "엘프"의 이민에 대해서는 적극적이지만 오크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우주연합에서 정한 1인 1투표제에 따라 오크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인류의 정치적인 입지가 줄어들 것으로 우려한 때문으로 보인다. 오크는 정식적인 이민자로서 들어오기보다는 단기적인 일자리를 얻어 기간이 지나면 행성을 떠나야 하거나 불법적으로 이 땅에 거주하면서 저렴한 일자리를 전전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정식적인 이민수속을 받지 않고 들어온 오크는 투표권도 인정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인지 집권세력으로서는 저임금 노동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불법이민에 대한 단속을 철저히 하지 않고 있고 아울러 많은 행성인이 불법이민자를 착취하며 이익을 취하고 있기도 하다. 


용병 길드도 오크 용병이 수행한 업무에 대한 보상을 제때 지급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어느 행성에서나 오크에 대한 대접이 좋지 못하다. 

오크의 외침은 계속된다. 

"보상을 빨리 지급하지 않으면 노동사무소에 신고하겠어요."

창구의 직원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말한다.

"어디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여기 전산 기록에 따르면 업무 보상이 지급된 것으로 나와 있는데요?" 

"야생 늑대 5마리를 사냥하면 50피코를 지급해야 하는데, 제가 10마리를 사냥했지만 여전히 50피코만 지급되었잖아요." 

"그것은 늑대 5마리를 사냥한 후 바로 신고하지 않아서입니다. 신고를 한 다음에 다시 업무를 갱신했어야죠." 

"아니, 신고라고 하는 것이 업무항목을 한번 클릭하는 것에 불과한데, 그것을 안 했다고 보상을 지급하지 않으면 안 되잖아요."

"신고 의무는 규정상 필수적인 것이라 어쩔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늑대 사냥이라는 업무가 필요성이 없어져서 갱신되지 않을 수도 있거든요. 그럴 경우에는 길드와 용병원 사이에 계약이 성립되지 않은 셈이니까 늑대 사냥을 하더라도 보상이 지급되지 않은 것이 맞겠죠. 고객님, 죄송합니다만 의문이 있으시다면 용병 상담소에 문의를 해보심이..."


오크와 창구 직원이 하는 말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 오크가 규정을 철저하게 지키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삼마 행성처럼 아직 원시적인 자연환경이 남아 있는 곳에서는 늑대 사냥 업무가 갱신되지 않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상식적으로 따져 경미한 규정 위반을 빌미삼아 보상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길드측의 갑질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힘의 강약 차원에서 보자면 역시 용병은 길드의 요구에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오크를 향해 소리쳤다.

"어이 파라무그라에서 오신 양반! 저도 비슷한 경우를 당한 적이 있어요. 제가 업무 프로그램의 설정을 변경하는 법을 알려드릴 테니까.." 

천천히 오크쪽으로 향해 걸어가면서 가볍게 고개를 까닥였다. 

"저는 한누리라고 합니다. 이 행성에는 오늘 도착했어요. 이곳에서 용병 일을 좀 하려고 하지요. 우주선이 고장나서 수리비가 필요하거든요. 어디 개인용 단말기를 봅시다."

나는 오크의 단말기를 받아 업무 아이콘을 클린한 다음 설정 항목으로 들어가서 "자동 신고"를 활성화시켰다. 이렇게 하면 업무를 완료한 경우 자동으로 길드에 신고하고 또 자동으로 업무를 갱신하게 되어 있다. 업무가 갱신되더라도 반드시 완수해야 할 의무나 패널티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나중에 갱신된 업무를 취소하면 그만이다. 

오크는 자동 신고가 활성화된 것을 확인하더니 한풀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수다. 이런 기기를 다루는 것이 영 익숙하지 않아서리..."

"혹시 계속 늑대 사냥을 하실 건가요? 제가 이곳은 처음이라 늑대 사냥의 난이도가 어느 수준인지 가늠이 안 되서 그러는데, 함께 사냥할까요?" 

"용병 등급은 어떻게 되오?"

"저는 D등급입니다. 형씨는 어떻게 되시나요?"

"난 E등급이오. 나보다 등급이 높군요. 늑대 사냥은 문제 없을 게요."

아마도 늑대 사냥은 E등급도 가능하기는 할 텐데, 업무 목록에서는 처음이 아니라 끝에 나열되어 있을 것이다. 목록은 대체로 난이도가 쉬운 것부터 어려운 순서로 나열되어 있는데, D등급에서 쉬운 것이 E등급에서 어려운 축에 드는 편이다. 등급이 다른 사람끼리도 합동으로 사냥하는 것이 가능하고, 합동으로 업무를 수행할 때에는 전체 인원에 비례해서 해결해야 하는 업무의 양도 늘어난다. 이를테면 늑대를 5마리 잡는 것이 업무의 내용이라면 2명이 합동작업을 하게 된다면 10마리를 잡아야 업무를 종료할 수 있게 된다. 

나는 다시 오크에게 합동 사냥을 제안했고, 오크는 능락했다.

"나는 스파링이오. 한누리라고 했소? 참 좋은 이름이오. 그리고 나는 파라무그라에서 오지 않았소. 내  출신 행성은 파라쿤이오. 그럼 우리 함께 늑대 사냥을 하러 갑시다." 

내가 스파링에게 파라무그라를 언급한 것은 오크로서 파라무그라에서 왔다고 하는 것이 긍지를 심어주기 때문이었다. 일종의 칭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크 종족이 가장 왕성할 때는 바로 파라무그라를 기반으로 은하의 여러 행성을 정복해서 지구인과 처음으로 접촉해서 막 전쟁에 진입할 때였다. 당시 기술력의 차원에서 보자면 인간이 월등했기 때문에 오크로서는 계속 내리막만 있을 뿐이기는 하였지만 말이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로 지하 1층에 있는 주차장으로 내려와 각자의 오토바이에 탑승했다. 스파링의 오토바이가 앞장을 섰다. 


용병 길드가 있는 마을을 벗어나 한참을 달리니 울창한 숲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숲은 역시 인간의 기분을 들뜨게 한다. 상쾌한 향기가 코를 스침과 동시에 온 몸이 활력을 찾은 듯했다. 오토바이가 멎었다. 스파링과 나는 오토바이에서 내려 각자의 무기를 점검했다. 


우주공간에서 함선과 함선이 전투를 벌일 때에는 레이저포를 사용하지만 각 행성의 내부 전투에서는 레이저의 사용에는 제약이 따른다. 레이저의 살상력이 크기 때문에 우주연합에서는 생명체에 대해서는 레이저 무기를 사용할 수 없게 했다. 이에 따라 엄격하게 레이저의 개발 및 생산이 규제되기 때문에 현재 사용되고 있는 레이저 무기의 파장은 생명체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레이저 무기를 사용하지 못한다면 화약을 활용한 재래식 무기가 활성화될 수도 있는데, 대부분의 행성에서는 화약 무기조차도 엄격하게 규제하고는 한다. 방탄 갑옷의 제작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권총이나 기관총, 심지어는 대포와 같은 화약 무기는 갑옷을 장착하는 인간에 대한 살상력이 매우 떨어지게 되었기 때문에 인간을 대상으로 사실상 원시적인 무기만 활용되고 있다. 물론 갑옷을 입지 않은 원시적인 생명체에는 총이 매우 유용한 원거리 공격 무기가 된다. 칼이나 창, 도끼 따위는 인류가 태동한 이래 가장 원시적인 무기이면서도 과학기술이 발달한 현대에서도 가장 유용한 무기가 되고 있다. 그것은 금속제련 기술이 발달하여 칼날이나 도끼날이 더욱 예리해졌고 금속의 강도가 더욱 강해졌기 때문이다. 


스파링은 어깨에 메었던 도끼를 손에 들었고 나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았다. 우리는 각자 원시적인 생명체를 상대하기 위한 기관총을 한 정씩 갖고 있었으나 늑대 사냥에는 활용하지 않을 생각이다. 이곳에 서식하는 늑대는 특이하게도 원거리 무기의 공격력을 극대로 약화시키는 특수한 털가죽으로 뒤덮여있어 도끼와 검과 같은 무기만이 유용했다. 


삼마 행성의 개발자들이 늑대를 단번에 퇴치하지 못하고 이렇게 용병 길드에 의뢰를 하는 이유도 원거리 공격수단으로 늑대를 처치하기 곤란하기 때문이다. 용병은 그래도 전투적인 기술을 터득하고 있지만 일반 시민은 근접 전투를 수행할 담력과 기술이 한참 부족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주차한 오토바이에 보호막을 친 후 숲속을 향해 걸어갔다. 숲은 들어갈수록 나무 그늘에 가려 어두움이 깊어갔다. 이따금 멀리서 들리는 늑대의 울음소리는 정신을 집중하게 한다. 

"스파링, 늑대 사냥 경험이 많으신가 보죠?"

"아뇨, 나도 며칠 전부터 처음으로 동료 2명과 함께 늑대 10마리를 잡았다오."

"늑대를 3명이 함께 잡았다고요? 그런데, 왜 저와 함께 2명이서 늑대를 잡겠다고 나섰나요?"

"한누리, 당신은 D등급이지 않소? 아무래도 E등급 2명 분량의 역할을 할 전투력이 있지 않을까 해서죠." 


순간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D등급치고는 전투 경험이 거의 전무하다는 것을 명시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늑대 사냥이 만만하지 않을 것임을 직감하면서 그래도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숨을 깊이 들이 쉬면서 숲속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