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탁에 빙 둘러앉은 오크 장로들과 족장은 이 행성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숲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대한 사건에 대해 정부에 알려야 한다는 우리의 의견에 동의를 표시했다. 오크 족장은 묵묵히 깊은 생각에 빠진 듯했다. 

"우리는 너희들의 처분에 대해 회의를 할 것이다."

사모아 형사, 오크 스파링, 그리고 나 한누리 이렇게 우리 일행 3명은 회의실 밖으로 안내되어 회의 결과를 기다리게 되었다. 


한 동안 웅성거림이 있더니 우리는 다시 회의장으로 안내되었다. 오크 장로는 우리의 모습을 보자마자 바로 장로 회의 결과를 선포한다. 

"우리는 너희를 이 숲 밖으로 추방한다. 다시 이 숲에 들어오려거든 목숨을 각오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다시 우리 영토에 침입하는 경우에는 더 이상의 용서는 없다."

오크 장로가 우리의 추방을 선포했지만 사실상 우리의 의사를 용인한다는 뜻도 되었다. 사모아 형사는 장로에게 감사를 표하며 말했다. 

"족장님, 저희는 이 숲을 벗어나 정부에는 어둠의 정신지배 세력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것을 전달하기는 어렵습니다. 저희는 그런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을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직접 정신지배를 하는 세력을 경험하겠다고 한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그것은 너희 스스로가 위험에 뛰어든 것일 테니까. 아무튼 다시는 우리 영토 안으로 발을 들여놓지 말아라."

"오크 마을의 영토라면 절벽이 감싸고 있는 분지 지형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렇다. 지금 바로 이곳을 떠나라."


우리 일행은 오크 마을을 떠나 우리가 거쳐왔던 계곡을 따라 절벽에 도착했다. 절벽에 설치했던 밧줄은 별 이상이 없었기에 그것을 타고 절벽 위로 올라갔다. 언덕을 올라 주위를 조망했다. 우리가 오토바이를 주차한 지점은 단말기에 표시되어 있기 때문에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숲을 빠져나오자 사모아 형사가 스파링과 나에게 말했다. 

"나는 이번 사건을 보고하러 경찰 본부로 갈 생각이네. 자네들도 동행할 수 있겠나?"

"그렇게 하지요. 아무래도 우리가 참고인으로 진술하는 것이 보고의 신빙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겠지요."


경찰 본부는 산토아 메갈로폴리스에 위치하고 있다. 나는 삼마 행성에 불시착한 이래로 아직까지 대도시를 방문한 적이 없다. 사실 지금까지 방문했던 행성의 대도시는 어느 곳이나 다 비슷했다. 


사모아 형사의 오토바이를 따라 2시간을 고속으로 운전하니 저 멀리 빌딩의 불빛으로 휘황찬란하게 번쩍이는 대도시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오늘은 여러 사건을 겪느라 근무시간이 훨씬 지났으므로 일단은 경찰청 인근의 숙소에서 잠을 잔 후 내일 아침 사무실에 들러 사건을 보고하기로 했다. 


사모아 형사는 자신이 공무상 쓸 수 있는 자금에는 한계가 있어 저렴한 숙박시설을 이용하는 것에 대해 양해를 구했다. 또 호텔은 경찰청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불편하다고 했다.  우리는 캡슐형 숙박소에서 잠을 자기로 했다. 


사모아 형사는 자신의 단말기를 숙박소 입구의 숙박관리시스템에 접촉해서 2명분의 숙박비를 지급했다. 캡슐형 숙박소는 선불이 원칙이었다. 


스파링과 나의 방은 나란이 붙어있었다. 스파링은 피곤한 기색으로 자신의 방에 들어가면서 나한테는 잘 자라고 인사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방으로 들어갔다. 


캡슐형 숙박소의 방은 10제곱미터 정도의 넓이에 침대와 작은 탁자 및 화장실 정도가 전부였다. 


나는 아직 잠이 오지 않았다. 작은 탁자에 앉아 단말기를 검색해서 과거 지구에서 인기를 끌었던 좀비 바이러스에 관한 동화를 여러 편 읽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내용 그대로였다. 과연 좀비 바이러스와 행성의 생태환경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조사하고 싶어졌다. 삼마 행성의 생태적 특성에 관한 자료를 살펴보았으나 특이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이번 사건에 대한 나의 생각이 맞는 걸까? 머릿속으로 내일 경찰청에서 진술할 사건의 개요를 정리하는 가운데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캡술 숙소의 문을 두르리는 소리가 들렸다. 옷을 챙겨입고 나가니 사모아 형사와 스파링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경찰청으로 직행했다. 사모아 형사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사건보고서를 작성했다. 사건보고서를 전자문서의 형태로 상관에게 올리자 바로 면담시간이 잡혔다. 


특수사건을 총괄 책임지는 문치 경무관과의 면담시간에 맞추어 사모아 형사는 나와 스파링을 참고인 자격으로 대동했다. 


우리가 사무실의 문을 열자마자 문치 경무관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다들 소파에 앉게. 사모아 형사, 자네의 보고서는 잘 읽었어. 자네 말로는 숲의 늑대가 집단행동을 하기 시작했다면서?"

"예, 그렇습니다."

"늑대의 집단행동에 대한 원인조사를 했겠지? 그런데 그 원인에 대해서는 직접 면담을 하면서 구술하겠다고 했지? 그 이유는?"

"늑대들이 집단행동을 하는 원인에 대해 조사하였지만 아직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주 유력한 가설이 존재하기에 이렇게 참고인을 대동한 것입니다." 


문치 경무관은 스파링과 나를 바라보며 턱짓을 하며 끄덕였다. 참고인으로서 의견을 말해보라는 투였다. 내가 말을 시작했다. 

"경무관님, 보고서에서 사건을 조사한 정황을 기술하였다시피, 저희는 숲에서 오크 마을을 발견하고 오크 장로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숲에서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놀라운 일이라는 것은 도대체 뭔가?"

경무관은 믿으려고 노력하는 아량을 보이겠다는 투로 말했다. 

"경무관님, 숲에는 여러 오크 마을이 있습니다. 저희가 방문했던 오크 마을과 대립되는 세력이 존재하지요. 오크 장로는 대립되는 세력에게는 다른 지성체의 정신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정신지배는 일종의 바이러스 감염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혹시 어렸을 때 좀비 바이러스에 관한 동화를 읽으신 적이 있으신가요?"

"내가 어렸을 때에는 한 때 그런 동화가 유행하기도 했었네." 

"그럼 이번에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쉽게 이해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정신을 지배하는 바이러스에게 감염된 지성체가 다른 지성체를 물어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있습니다. 바이러스는 지성체의 지적능력을 통제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특이한 능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당초 바이러스는 하등동물의 정신을 지배했는데, 어느 날 오크 어린이를 감염시키고 드디어는 특정한 능력을 지닌 성인 오크를 감염시켰습니다. 그 특정한 능력을 지닌 성인 오크를 감염시키면서부터는 하등동물이 아닌 주로 지성체를 대상으로 감염을 시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주 그럴 듯한 이야기야. 자네의 상상력은 탁월하군."

"제가 상상하거나 지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희가 방문했던 오크 마을의 장로가 한 말에 근거한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자네는 자신의 말을 증명할 물건이나 서류를 갖고 있나?" 

"오크 마을 장로의 진술을 저장한 음성 화일이 있습니다."

"그것 외에는 지성체의 정신을 지배하는 바이러스에 관한 물적인 증거는 없다는 말이 되겠군." 


"경무관님, 제가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 행정은 크나큰 위험에 직면하게 됩니다. 오크 마을뿐만 아니라 인구가 밀집된 도시의 지성체들이 감염이 된다면 행정 전체가 바이러스의 지배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은하계의 다른 행성도 위험하게 되겠지요." 

"그래서?"

"사태의 중대성을 감안할 때, 대규모 병력을 숲에 파견하여 본격적으로 이 특이한 바이러스의 실체를 파악하실 것을 추천드립니다." 


"대규모 병력이 아무런 물증도 없는 상태에서 공허한 가설에 근거해서 파견될 수는 없겠지. 사모아 형사, 자네는 참고인의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경무관님, 저는 대규모 병력을 요청하려고 이곳에 오지 않았습니다. 단지 이번 사건의 파장이 중대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사건을 자세히 조사하기 전에 중간 보고를 드리려고 온 것입니다." 


"중간 보고? 그렇다면 허황된 가설에 근거해서 조사를 계속하겠다는 말인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는 다양한 가능성을 모두 염두에 두고 추가적인 조사를 진행하겠습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바이러스 학자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바이러스 전문가라? 알겠네. 이 행성의 풍토병이 가끔씩 노인들에게서 정신발작 형태로 발병한다는 말이 있기는 하네만. 집단적인 발병이 바이러스에 기인할 가능성도 있겠지."


"바이러스 전문가는 숲에서 발생하는 질병의 원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알았네. 바이러스 전문가가 이번 조사에 참여할 수있도록 함세." 


"감사합니다."


경무관이 내 말을 믿지 못해 위기의 상황을 맞이하기도 했지만 사모아 형사가 임기응변으로 제대로 대응했다. 사모아 형사 덕분에 바이러스 전문가의 도움을 얻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쯤 되니 나로서는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 행성에서 용병으로 일하다가 우주선 수리비만 벌면 원래 목적지로 떠나면 되는 것이다. 상황이 꼬여서 무슨 사건의 조사를 맡게 되었는데, 과연 이 일이 용병 활동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사모아 형사의 사무실로 되돌아왔다. 


"사모아 형사님, 바이러스 전문가는 언제부터 참여할 수 있나요?"

"내일부터는 참여할 수 있겠지. 사실 경찰은 과학적인 수사를 위해서 다양한 과학자가 사건 수사에 참여하기도 한다네."


"스파링과 저는 용병인데, 이렇게 경찰 업무에 협조하는 것에 대해 용병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 


"아, 그것을 미쳐 생각하지 못했군요. 내가 용병 사무실에 전화를 하겠네. 당연히 공적인 업무에 도움을 주는 것에는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따라야겠지." 


사모아 형사는 즉시 용병 사무실에 전화를 해서 사건 조사가 용병 업무로 등록되도록 했다. 형사의 전화가 마치자 얼마 안 있어 내 단말기에서 띵링 소리가 났다. 

"새로운 용병 업무가 등록되었습니다." 


단말기 화면을 확인했다. 


"집단 발병의 원인 조사: 30나노"


30나노라면 우주선 수리비 100나노의 30%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적어도 3개월 이상의 용병 보상에 해당한다. 


꼭 보상을 바라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되니 더욱 사건 조사의 의욕이 생겼다.  또한 좀비 바이러스와 유사하지만 주로 지성체에 감염되어 정신을 지배하는 바이러스의 정체를 밝히는 문제는 은하계에 존재하는 모든 지성체의 생존에 직결되는 문제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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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화면이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글을 쓰려고 하니 문장이 잘 이어지지  않는군요. 나중에 잘 다듬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