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동안의 한바탕 소란이 지나가고 해가 떨어져 어둠이 길가에 드리워지기 시작하자 도시는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나는 아름다운 갈색 빛의 가로등을 하나둘 켜기 시작했다하늘에 떠 있는 달빛이 거리를 비추었고광장에서는 여러 모험가와 음유시인들이 모여 하나의 캠프파이어를 피우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그들 중 한 명시선을 사로잡는 청년이 있었다

 

그는 챙이 넓고 크라운이 낮은 갈색 가죽으로 만들어진 에콴디노 페도라를 쓰고 있었다그 페도라의 챙 부분에는 약간 푸른빛을 띠고 있는 흰색의 깃털이 장식으로 달려있었다그 갈색의 페도라 아래로는 은발의 머리카락이 눈에 띄었으며머리는 샤기컷 스타일로 썩 멋들어지게 스타일링이 되어있었다은발에 머리카락과 어울리는 적안은 알 수 없는 부드러움을 지닌 채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입고 있는 옷은 가벼운 로브로 격한 움직임을 한다고 해도 꽤나 편할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로브의 배색은 대체로 검은색과 흰색이었는데검은색의 배경에 센스 있게 자수가 놓인 흰색의 무늬가 그의 로브가 세련된 고급 제품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성으로 들어가려고 리디아여의와 함께 걸어가던 투전승불의 시선은 슬쩍 그에게로 향하였다투전승불이 시선을 보낼 즈음에 그는 류트를 꺼내어 사람들의 앞에서 연주를 시작했다그의 손가락이 현을 타고 춤을 추듯 움직였고그것에 맞추어서 류트는 매우 아름다운 소리를 내뱉었다날이 점점 저물고 어두워질 즈음에 하늘에 떠오른 달과도 매우 잘 어울리는 론도 형식의 음악이었다그 음악 소리를 듣고 투전승불은 본인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히야실력 죽이네끝내주는데?”

 

무엇이

 

투전승불의 중얼거림을 듣고 시선을 그에게 돌린 리디아가 물어보았다이내그녀도 지금 들려오는 음악 소리를 들은 것인지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그에게 말해주었다.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갑자기 무슨 소리냐리디아.”

 

현재 들려오는 음악 소리를 조금 감상하려는 듯리디아는 그 자리에 서서 발걸음을 멈추었고그것에 따라서 그녀를 따라가던 여의와 투전승불도 발걸음을 멈추고 사람들이 흥얼거리며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있는 캠프파이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 곡을 연주하고 있는 자의 이름입니다주군.”

 

사람들 앞에 서서 연주하고 있는 저 녀석 이름이 셰익스피어야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 것 같다만… 어쨌든귀는 호강하고 있네.”

 

그녀의 말에 어깨를 살짝 으쓱인 투전승불이 가벼운 목소리로 이야기하자 리디아는 그에게 시선을 살짝 돌려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해주었다.

 

악기를 다루는 실력이 매우 뛰어난 자이지요.”

 

팔짱을 끼고 있던 투전승불은 리디아의 말이 끝나자 갑자기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그래실력이 매우 뛰어난 자라고 해서 생각났는데 말이야아까 그 하얀 놈보통내기는 아닌 것 같더라고.”

 

하얀 놈이라니 누구를 말씀하시는…‥ 혹시 제임스를 말씀하시는 건가요주군.”

 

그래루의 수호기사라고 했던 놈일단 내가 이제 막 전생을 하고 온 거라서 힘이 약해졌다고는 해도 말이야.”

 

리디아의 물음에 투전승불은 곰곰이 생각하는 시늉을 하면서 자신의 턱을 잡고 눈을 감았다잠깐의 정적 후다시금 리디아를 바라보며 이야기하였다.

 

이래 봬도 나는 여기로 오기 전천상계를 한바탕 뒤집어엎고 온 놈이야그런 나를 상대로 느리지만공격을 따라왔다는 건

 

그가 실력이 뛰어난 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거군요.”

 

자신을 따라서 같이 심각해진 리디아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는 말을 덧붙였다.

 

그렇다고 볼 수 있지솔직하게 말하면 너희들이 기특하기도 하단 말이야그런 녀석을 수호기사로 두고 있는 놈의 나라를 상대로 버티고 있었으니.”

 

이내고개를 끄덕거리며 자신의 말에 긍정하던 투전승불이 뭔가 다른 말을 꺼내려는 듯 말을 고르는 모습을 보이자 리디아는 그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오며 이야기하였다.

 

왜 그러시나요주군.”

 

셰익스피어인가 하는 녀석이 연주하는 곡어째 가만히 보고 있으니까 하얀색의 기운이 나와서 사람들 몸 안으로 들어가는 거 같은데몸에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만

 

그것은 저자의 능력일 겁니다셰익스피어라는 자는 현재 영웅이라고 불리는 자들 중에 한 명이기에 저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예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죠.”

 

영웅뭐야 그건엄청나게 멋있는 이름이네뭐 특별한 일이라도 한 거냐?”

 

흐음… 그렇다고 할 수 있지요영웅이라는 칭호는 그렇게 쉽게 붙는 칭호가 아니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리디아는 생각에 잠긴 채제 입을 살짝 가리고 있다가 막 떠올랐다는 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저자는 익스마르짐과의 전쟁을 포함한 모든 전쟁에서 거듭되는 패배를 겪고 완전히 사기를 잃어버린 이곳옵타움의 군사와 백성들에게 사기를 북돋아 주고 마지막 전쟁에 승리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들었습니다.”

 

투전승불이 고개를 끄덕이며 흐으음… 하는 소리를 내자 리디아는 제 검지를 세우며 살짝 미소를 짓고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제가 주군께 아군으로 삼으면 어떻겠냐고 말씀드리려 했던 인재 중의 한 명이기도 합니다.”

 

오호쓸 만한 녀석들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말이다그런데마지막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해서 쓸 만한 녀석은 아닌 거 같은데다른 게 있으면 모를까.”

 

… 만약에 그가 엄청난 활약을 하였다 한들 본인이 우리에게 합류하기를 거절하면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시는지요주군.”

 

글쎄다… 그것도 문제네만약에 본인이 우리에게 합류하기를 거절한다면 억지로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답지 않게 고민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살짝 웃음을 지은 리디아가 그에게 한 발짝 다가오며 이야기하였다.

 

후후복잡하기는 하지만그런 것들도 하나하나 신경 쓰고 최대한 많은 인재를 최소한의 소비로 등용 할 수 있는 능력이 왕의 자질이겠지요.”

 

난데없는 그녀의 정설에 잠깐 멍하니 있던 투전승불은 웃음을 터트렸다.

 

푸핫그러게이런 것들을 일일이 신경 써야 하는 걸 보면 왕은 정말 귀찮은 직책이라니까.”

 

그래도 이번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주군이미 오래전부터 옵타움은 전 대륙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영웅들을 아군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들과 접촉해왔었고셰익스피어저자도 저와 톰보우 어르신께서 매번 우리에게 합류하는 건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 왔으니까요.”

 

그녀의 말을 들은 투전승불은 오오라고 작게 소리를 치고 왼손을 허리에 올리며 말하였다.

 

옵타움의 군대 얘기를 하니까 생각났는데옵타움에서 운용하는 군대의 이름은 있어?”

 

군대의 이름말인가요? 평범한 병사들이 주둔하고 있는 부대에는 없습니다만… 옵타움에서도 손꼽히는 정예병들이 소속되어 있는 부대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정예병들이 소속되어 있는 부대라… 그런 곳의 이름은 외워놔야 나도 지휘하기가 편하겠지그래서이름이 뭔데그 부대 말이야.”

 

엘루켄티아라고 합니다주군.”

 

엘루켄티아라는 말을 들은 투전승불은 제 턱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잠시 그 이름을 몇 번 중얼거렸다

 

엘루켄티아… 오케이접수했다그렇게까지 어려운 이름은 아니라서 외우기 쉽군그러면 이제 셰익스피어에 대해서 말인데내가 방금 말한 대로 마지막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해서 금방 가치가 있는 녀석이다라고는 쉽게 말 못 해.”

 

투전승불은 캠프파이어로 시선을 돌렸다캠프파이어에서 론도 형식의 곡을 연주하고 있던 셰익스피어는 어느새 다른 형식의 곡을 연주하고 있었고역시 그 곡이 연주되는 멜로디에 따라서 하얀색으로 빛나는 기운이 사람들에게 부드럽게 흡수되었다.

 

저 녀석이 정확히 어떤 활약을 어떻게 했는데마지막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해서 그냥 아무것도 없이 그렇게 마지막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경사 났네경사 났어는 아닐 거 아니야.”

 

그의 말을 들은 리디아는 그의 질문에 대한 답을 떠올리듯 고개를 살짝 숙인 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사실 저희 옵타움은 방금도 말씀을 드렸지만왕도 없을뿐더러 연이은 익스마르짐들과의 전쟁아까와 같은 이웃 나라들과의 연이은 전쟁으로 상당히 지쳐있는 상태였습니다.”

 

조금 전에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너에게 왕의 성으로 안내받으면서 보였던 적은 병사들의 수로 미루어 짐작하기는 했기 때문에 새삼 놀랍지는 않네.”

 

그의 말에 살짝 슬픈 미소를 지은 리디아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의 손잡이를 꽉 쥐면서 말을 이었다.

 

주군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전쟁은 수도 없이 많이 일어났지만 이렇다 할 정도로 완벽한 승리를 취한 전쟁은 별로 없었고오히려 패전의 횟수가 승전의 횟수보다 압도적으로 많았죠.”

 

… 설마 이 나라 군대들‥ 아니지리디아.”

 

투전승불은 그녀의 말에 뭔가 짐작 가는 것이 있기라도 한 듯어두워진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우리 군대가 실력이 없는 오합지졸이라든지 그런 문제는 없습니다오히려 저희 옵타움의 국력은 다른 국가들에 비하면 강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냐그러면 뭐가 문제길래 연이은 패전을 겪은 건데?”

 

지금은 주군께서 오셨기에 해당하지 않는 말입니다만… 우리 옵타움은 과거에는 이 대륙에 존재하는 세 개의 국가 중 유일하게 신이라는 존재가 아군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구만다른 나라랑 비교해서 스펙이 딸렸구나?”

 

덕분에 이미 신이라는 존재들이 강림한 다른 국가에 밀릴 수밖에 없었지요더군다나 일반 병사들로는 상대하기가 힘든 익스마르짐들도 우리 옵타움의 주변을 에워싸고 있으니

 

거기다가 왕도 없고전쟁은 계속 지속되고… 병사들 사기는 떨어질 대로 떨어질 테고갈수록 최악의 상황만 남았었겠네?”

 

말씀하신대로 입니다저희 군대는 온 힘을 다해 지키려 해보았지만 수적으로도 그들을 전부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때문에 연패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 이 나라가 이 정도까지 몰렸는지는 알겠고그래서셰익스피어라는 녀석이 뭘 어떻게 했는데?”

 

저도 그때는 다른 곳에 있었기 때문에 정확한 상황을 알지는 못합니다다만수비대장인 렌트그에게 들은 바로는 셰익스피어그의 연주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투전승불은 헛기침을 살짝 하고 대답했다.

 

.근데 설마 그 정도로 영웅이라고 불리는 건 아니겠지?”

 

영 못미덥다는 듯 한 그의 말투에 리디아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셰익스피어를 한번 바라보다가 다시 투전승불에게 시선을 돌리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당연합니다그렇게 갑자기 들려온 음악소리는 사기가 다 떨어진 우리 병사들에게 다시 희망을 주었고그것으로 하여금 떨어진 사기를 다시 채울 수 있게 해주었다고 합니다.”

 

검지를 세우며 그에게 천천히 설명을 해주던 리디아는 이내 방금까지와는 다른 밝은 목소리로 그에게 해주던 말들을 이어서 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는 전장의 선봉으로 나서서 완전히 바닥까지 떨어졌었던 사기 덕에 엉망이었던 수비대의 진형을 다시 조율하고 전방에서 수비대를 지휘했다고 합니다.” 

 

리디아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투전승불은 잠깐만이라고 말을 멈추더니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리디아에게 질문했다.

 

근데셰익스피어는 음유시인이라면서전쟁에 재능이 있었다고?”

 

그가 전쟁에 탁월한 재능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남다른 통찰력과 냉정함으로 전장의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아군의 피해를 최소한의 피해만이 생기도록 전장을 설계했고결과적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합니다.”

 

“ 흐음그렇군전투로 활약한 건 아니지만전쟁 그 자체에 큰 영향을 주었고 결과적으로 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전쟁을 승리로 만들었다는 건가?”

 

중얼거리며 투전승불은 그 붉은 눈을 하늘로 향했다그의 머릿속에는 셰익스피어의 가치에 대해 고민되는 내용들이 가득차기 시작했고 결국에 그를 아군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현재 옵타움은 지금 당장 전쟁이 일어난다고 하면 당장 쓸 만한 병력의 수가 너무 적었고그 때문에 어떤 인재라도 전부 받아들여야했다

더군다나 현재 영웅이라고 불릴 정도의 대단한 인물이라면 더 이상 투전승불이 고민할 필요는 없어보였다.

잠깐의 고민으로 생각을 정리한 투전승불은 고개를 끄덕이고 시선을 내려 리디아와 맞춘 뒤조금 간격을 두고 말을 이었다.

 

그 정도로 영웅 대접을 받는 위대한 인재라면 당연히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는 게 옳겠지좋아그러면 리디아빠른 시일 내에 그 녀석과 약속을 잡아달라고할 수 있겠지?”

 

그가 고민하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던 리디아는 투전승불이 말한 것에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는 듯 한 몸짓을 취했다이어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는 금은보화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예술적으로 조예가 깊은 사람과의 만남을 바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주군혹시 성 내에 저명한 예술가를 한 명 같이 보낼까요?”

 

예술가… 없는 것보다야 낫겠지만그래도 처음부터 그렇게 나랑 같이 보내지는 말고내가 신호를 주면 그때 투입해줘신호는 눈치 빠른 너라면 알 수 있을 거다리디아.”

 

자신의 질문에 확실한 대답을 주지 않고 오히려 의문이 생기게 만드는 말을 하는 그에게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의문을 표하던 리디아였지만얼마안가 고개를 끄덕이고 가볍게 경례하며 말하였다.

 

알겠습니다주군.”

 

그녀의 대답을 확인한 투전승불은 그 자리에 서서 가만히 셰익스피어의 연주를 조금 더 듣더니 천천히 성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신들의 전쟁. 3-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