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식사를 마친 후 도깨비 형제와는 헤어졌다. 나는 앞으로 숙식을 함께 하기로 스파링과 약속을 하였기 때문에 스파링의 안내를 따라 그의 집으로 향했다. 


스파링의 집은 소도시 중심부에 있는 아파트였다. 그곳은 도시 중심부의 슬럼화를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아파트 겉면의 페인트칠은 다 벗겨졌다. 멀리서 보면 고색창연하게 하얗다. 

주차장에 오토바이를 주차한 후 16층까지는 계단으로 걸어서 올라갔다. 엘리베이트가 고장이 나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계단도 곳곳에서 시멘트 바닥이 파여 있었다. 이런 아파트는 강제적으로 운동이 되므로 체력적인 훈련이 필요한 용병에게는 안성맞춤일 것이다. 

"스파링, 혹시 아파트에 수도나 전기가 안 들어오는 것은 아니겠지?"

"어, 어떻게 알았어? 당연히 수도와 전기가 안 들어오는데."

"전기야 없어도 생명에 지장이 없다고 치더라도 물은 어떻게 해결해?"

"아파트 아래쪽에 공동화장실이 있는데, 그곳에서 물을 길어와서 생활하는 사람이많아."

"이곳에 주로 거주하는 사람들은 오크냐?"

"오크가 대부분을 차지하지. 하지만 휴먼도 종종 섞여있어." 

"이렇게 생활여건이 어려운데도 폭동을 일으키지 않는다니 이상하군."

"사실 여러번 폭동이 일어나기는 했어. 하지만 대부분이 불법체류자인 오크로서는 국가에서 돈을 지원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이곳보다 더 싼 거주공간을 확보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냥 이곳에서 눌러 살고 있는 편을 택하고 있지."

이곳에 대해 알아갈수록 삼마 행성의 정치체계에 대한 궁금증이 깊어갔다. 

대부분의 행성에서 오크가 사회의 하층민으로 살아가고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열악한 곳은 처음이었다. 

"스파링, 궁금한 것이 오크들은 이 행성에서 살아가기가 이렇게 힘드는데 왜 이 행성을 떠나지 않는 거지?"

"한누리, 이 행성을 떠나기 위해 우주여행을 하려면 엄청난 돈이 든다고. 또 오크를 속여서 노예처럼 부려먹는 행성도 많잖아. 이곳은 그래도 강제노동을 엄격하게 단속하고 있어 다행이지."

"은하계 공통 인권선언에서는 지성체에 대한 노예제도가 영구적으로 폐지되지 않았나?"

"알면서 모르는 척하지 말라구. 우주 여행을 다니다 보면 노예처럼 가혹한 노동을 강제하는 곳이 많았을 거 아냐?"

"그런 소문은 듣기는 들었어. 하지만 내가 행성의 밑바닥까지 훑어 상황을 파악할 능력이 못 되거든. 겉으로는 노예가 눈에 띄지 않아. 암암리에 행해지겠지. 우주 경비대가 놀고만 있는 것은 아닐 테니까."


16층까지 올라와 한숨을 크게 쉬었다. 늑대 사냥도 운동이 되겠지만, 이런 계단 오르기는 다리 근육을 단단하게 할 것이다. 


스파링의 집은 어두컴컴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니 당연하다. 스파링은 나한테 깔고 잘 수 있는 매트리스를 건냈다. 

"스파링, 혹시 베개도 있나?"

"나는 딱히 베개가 없어도 잠을 잘 자거든. 필요하다면 나중에 나무토막을 잘라오면 될 거야." 


부모님은 대체적으로 부유한 편이었고 우주선도 편의시설은 다 갖추고 있기 때문에 오늘 밤처럼 못 갖춘 상태에서 잠을 자는 것도 처음일 것이다. 앞으로 몇 달은 이런 생활에 적응해야겠지? 


스파링이든 나든 지금 용병 일을 하면서 벌고 있는 액수만으로 따지면 이런 곳에서 살아갈 이유가 없다. 돈을 조금 더 준다면 필요한 것을 다 갖춘 숙소를 얻을 수 있겠지만 내가 그런 제안을 하더라도 스파링이 완강하게 반대할 것이 틀림없다. 스파링의 처지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생활을 몇 달 해보는 것도 좋겠지?

"스파링, 이곳에서 살기가 불편하지 않았어?"

"딱히 불편은 없어. 사실 나는 이곳에서 잠만 자는 편이거든. 날이 따뜻할 때에 바깥에서 잠을 자기도 해."

"식사도 밖에서 하고 들어오면 비용이 더 들어가는 것 아냐?"

"꼭 그렇지만도 않아. 빵이나 비타민이 들어있는 음료수는 정책적으로 아주 저렴하게 판매되고 있거든."

"일종의 규모의 경제 효과라고 할 수도 있겠군. 대규모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하면 소매로 사는 음식재료비보다 더 싸게 각종 음식을 먹을 수 있겠어."

"또 나의 경우에는 늑대 사냥을 하면 고기를 구워먹기도 하거든. 빵에는 3대 영양소라고들 하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이 딱 적합한 비율만큼 들어있어 영양면에서는 완벽하다고 할 수 있지만 맛이 부족하거든. 그래서 돈이 많은 사람들은 빵을 먹지 않고 음식점에서 다양한 요리를 맛보는 것이겠고."

"그럼 이곳에서 생활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양부족으로 시달리지 않은 건가?"

"그렇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굶는 사람은 없다고 할 수 있지. 다만 아프더라도 병원에는 잘 가지 않기 때문에 수명이 짧은 편에 속해." 

"그 말인즉슨 여기 거주자가 크게 불만없이 생활한다는 건가?"

"꼭 그렇지도 않지. 사람은 먹는 것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거든. 이곳 사람들은 먹는 것 외의 다른 모든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 즉 정치적인 파워를 원하지. 정치인을 뽑을 수 있는 투표권을 원해."

"알겠어. 스파링 자네가 꼭 오크의 권익을 옹호하는 인권운동가처럼 들린다. 하하." 

"그래, 오늘은 너무 쓸데없는 얘기를 많이 하게 되었군. 피곤하지 않나? 나 먼저 잘 테니까 잘 자." 


스파링과 함께 생활하면서 느끼는 것인데, 오크는 인간보다 근육량이 많고 순식간에 폭발적인 힘을 낼 수 있는 반면, 지구력이 부족한 것 같다. 나와 함께 생활했으면서도 나보다 더 빨리 피로하고 더 많은 잠을 자는 듯하다. 


나는 아직 잠이 오지 않는다. 오늘은 딱히 텔레비젼과 같은 것을 보지 않기 때문에 전기가 필요하지 않다. 

앞으로 숙소에서 전기가 들어오지 않더라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내 단말기에는 온갖 정보가 들어있고 위성통신이 가능하기 때문에 언제든 어느 곳에서라도 정보망에 접근할 수 있다. 딱히 다른 오락거리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단말기는 오토바이의 동력으로 충전을 하는데, 한번 충전하면 거의 1주일을 사용할 수 있다. 

오토바이라든지 일반 자동차는 거의 반영구적으로 운행이 가능하다. 과거 원자력 발전은 방사능이 방출되어 인체에 해롭고 환경을 파괴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인류 역사상 우주의 시대가 시작되기 바로 전에 상온 핵융합 기술이 개발됨으로써 에너지 문제가 해결되었다. 핵융합 장치를 소형화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우주선뿐만 아니라 자동차나 오토바이까지도 핵융합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게 되어 더 이상 수시로 연료를 주입할 필요가 없다.


딱히 할 일도 없고 삼마 행성의 대략적인 환경이 지구와 아주 비슷하기 때문에 정보를 검색하는 데 재미도 없었다.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단말기에 내장된 심심풀이 게임을 했다. 


게임은 테트리스라고 하는 것이다. 인류사에서 오래 전에 잊혀졌다가 최근에 복원된 게임으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다. 나이든 사람들은 너무 간단하다며 무시하지만 단순한 것을 좋아하는 청년 세대는 테트리스의 단순한 미학에 흠뻑 빠져있다. 


어두운 방안에서 단말기의 불빛을 의지해 테트리스 게임을 하다 보니 눈이 쉽게 피로해졌다. 잠시 눈을 붙이고 다른 게임을 또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눈을 붙였다 떴더니 벌써 아침이 되었다. 


스파링과 나는 일어나자마자 아파트를 빠져나와 상점에서 그 저렴하다는 빵과 음료수를 사먹었다. 1피코만 있으면 두 사람이 3일간 아침, 점심, 저녁을 먹을 빵과 음류수를 구매할 수 있다. 과연 이 행성은 가난한 자의 천국인가? 

빵과 음료수는 더럽게(!) 맛이 없었다. 이곳이 가난한 자의 천국이라는 말은 취소해야겠다. 

억지로 배를 채우고 난 뒤 사모아 형사에게 전화를 했다. 

"형사님, 오늘은 바이러스 전문가가 조사팀에 참여하게 되나요?"

"어제 전문가 추가를 상부에 신청을 했는떼, 아마도 상부의 결재 과정에서 지연이 있는 모양이야. 내일은 반드시 바이러스 전문가가 조사팀에 합류할 걸세."

"그럼, 오늘 이곳에 못 내려오시는 것이 확실하겠군요. 알겠습니다."


스파링과 나는 오늘도 역시 아침부터 열심히 돈을 벌었다. 나는 숲의 외곽을 돌면서 외톨이 늑대를 사냥했는데, 가능하다면 곰이 자주 출몰한다는 이웃 도시쪽으로 사냥터를 옮겨갔다. 두 가지 이유였는데, 첫째는 리라 약혼자가 얼마나 싸움을 잘 하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였고, 둘째는 곰의 집단행동 가능성에 대해 조사하고 싶어서였다. 


우리는 사냥에 아주 익숙해졌기 때문에 오전 중에 늑대 고기로 트럭을 가득 채울 수 있었다. 트럭 운전사에게는 정육공장까지 고기를 운반해달라고 부탁했다. 어제까지는 내가 동행해서 사장으로부터 판매대금을 받았지만, 지속적인 계약관계가 이미 형성되었기 때문에 앞으로는 굳이 내가 동행하지 않아도 늑대 고기 납품은 원활하게 이루어지리라 판단했다. 또 나는 오늘 할 일이 있다. 


나는 단말기에서 용병 임무를 검색했다. 

"곰 5마리 사냥: 150피코"


곰 5마리 사냥에 150피코라면 단순히 용병 보상만으로는 상당한 금액이라고 할 수 있다. 늑대 5마리 사냥이 50피코이니까. 하지만 늑대는 사냥해서 그 고기를 판매할 수 있어 좋다. 하지만 곰 고기도 식량이 될까? 

"스파링, 혹시 곰 고기도 먹어본 적이 있어?" 

"곰 고기는 냄새가 지독해서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더군. 다만 쓸개가 몸에 좋다는 이상한 사람들이 더러 있어 쓸개는 잘 판매가 된다고 해." 

"곰 쓸개 가격이 얼마인지는 잘 모르지?"

"몰라. 이번에는 곰 사냥을 하려구?"

"아무래도 곰이 집단행동을 할 수 있는지가 무척 궁금하거든."

"곰은 본능적으로 집단행동을 하지 않는 동물일 거야. 어떤 행성에서도 곰은 외톨이로 살아가는 습성을 가졌거든."

"스파링, 혹시 자네도 동물과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나? 자네가 아침마다 호흡명상인지 명상호흡인지를 하고 있지 않나?"

"한누리, 나를 너무 과대평가하지 마. 나는 그저 명상을 해야 전투능력이 더 향상되는 것 같아 매일 하고 있는 것뿐이니까."

"스파링, 자네처럼 명상을 하는 오크가 일반적인가?"

"그야 그렇지 않지. 내가 조금 특이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어."

"그럼, 왜 오크 마을의 장로들은 일반 오크와 다른 능력을 갖게 되었지? 내가 알기로도 모든 오크가 동물과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지만, 그 마을의 오크 장로는 교감을 넘어 늑대의 집단본능을 일깨울 수 있는 능력까지 보여주었잖아."

"글쎄, 명상을 하는 오크가 다 동물과 교감하거나 행동을 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

"혹시 모르지 않나? 자네도 어디 한번 동물과 교감하는 것을 시도해보면 어떨까? 내 생각에는 자네 능력이라면 노력을 하면 동물과 충분히 교감할 수 있을 거라고 봐. 오크는 휴먼보다는 동물과 더 가깝게 생활하는 종족이거든. 정신력이 일정 수준에 있는 오크라면 모두 동물과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이 내재되어 있을 수도 있다고 보거든." 


스파링은 내가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다고 여기는 듯하면서도 고개를 숙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스파링은 오크 장로들이 늑대의 턱을 쓰다듬으며 그 행동을 조정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뭔가를 깊이 생각하는 듯했었다. 스파링이 동물과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을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동물과 교감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래, 한누리. 동물과 교감하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지 나도 궁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