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파링을 보며 말했다. 

"스파링, 내가 말하지 않아도 왜 용병 휴게소에 오자고 했는지 알겠지?"


나는 가능하다면 한 말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아파트를 떠나면서 이곳에 오는 이유를 와서 말해주겠다고 스파링에게 약속했으니까.


스파링은 빙긋 웃는다. 나도 따라 웃었다. 스파링과 나의 사이에는 이심전심으로 웃음이 통했다. 


나는 급히 수전 연구원에게 연락을 취했다.

"수전 박사님, 여기는 용병 휴게소인데요."

"그런데, 왠 일이시죠?"

"제 옆에는 바이러스에 감염될 뻔한 사람이 있어요. 몸에 들어간 바이러스의 상태가 어떤지 확인하고 싶어요. 빨리 와 주세요."

"환자의 상태를 잘 살펴주세요. 어떤 돌발행동을 할지 모르니까요. 곧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리라는 피곤한 듯 가만히 누워만 있었다. 나는 지긋하게 리라의 얼굴을 바라보며 무릎을 굽힌 자세 그대로 있었다. 

"리라, 걱정하지 마세요. 미생물학 박사님이 오셔서 리라의 몸 상태를 살펴보실 거예요."

"감사해요. 그런데 카라쿠롬은 어떻게 된 거죠?"

"카라쿠룸은 걱정하지 마세요. 죽지 않았으니까요. 제가 나중에 다 설명할 게요."


몇 십 분쯤 기다리자 수전 연구원이 사모아 형사와 함께 휴게소 안으로 들어왔다. 스파링이 입구쪽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박사님, 여기에 한누리와 환자가 함께 있어요." 

"환자 상태는 어떤가요?"

"제 정신을 차리고 있어요. 착란 증세 같은 것은 없어요." 


박사와 형사는 카운터 안으로 들어와 나와 리라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너무 다정하게 앉아 있군요."

"형사님, 농담하지 마세요."

"한누리, 환자의 혈액을 채취해서 검사를 해야겠군요."


수전 박사는 리라의 팔에서 소량의 혈액을 채취해 패트리 접시에 담아 분석장치에 넣었다. 단말기에서는 혈액의 홀로그램 영상이 뿜어져나왔다. 


"바이러스가 침투한 후 곧바로 치료제가 투여되었군요. 혈액 상태를 보면 정신지배 바이러스는 거의 모두 파괴되었어요. 남아 있는 바이러스는 극소수이기 때문에 신체의 면역기제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소멸될 겁니다. 환자의 상태는 겉으로 봐서도 큰 이상이 없는 것으로 보이네요."


"박사님, 감사합니다. 정말 다행이로군요."


사모아 형사는 나한테 리라가 정신지배 바이러스에 감염될 뻔한 경위를 물었고 나는 차근차근 일어난 사건을 설명했다. 

"한누리, 자네 대단하군. 어떻게 해서 카라쿠롬이 리라에게 찾아와 바이러스를 감염시키려고 할 것이라고 생각해낼 수 있었지?"

"형사님은 확실히 훌륭한 수사관이시군요. 뭐든지 추론의 근거와 이유를 물으시니까요."

"일종의 직업병이라고 할 수 있지." 

"저는 며칠 전 리라와 카라쿠롬에 관한 꿈을 꾸었어요. 제 무의식 중에서는 카라쿠롬이 홀로 곰 사냥을 떠나며 숲 깊숙히 들어가는 것을 보며 불안감을 느꼈나 봅니다. 어떤 예감과 같은 것이죠."

"카라쿠롬이 떠날 때는 말리지 못하다가 나중에서야 잠을 자면서 뭔가를 깨달았다는 말인가?"

"저는 꿈 전문가가 아니니까 뭐라고 말씀은 못 드리겠지만요, 예감이란 의식의 끈을 모두 내려놓은, 편견이 없는 상태에서 발현되나 봅니다."

"수전 박사, 한누리의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꿈이란 과학과 비과학의 경계에 선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기는 힘들 거라고 봐요." 

"한누리, 자네가 며칠 전 꿈을 꿨다고 해도 오늘 아침에 이런 사건이 벌어질 것을 어떻게 추론할 수 있었지?"

"오늘 새벽에 우리는 감염자 집단을 물리쳤죠? 감염자 집단의 오크 장로는 아직 세력이 약해서 대규모로 공개적인 방식으로는 숲밖으로 진출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래서 은밀한 방법을 썼을 거예요."

"그 은밀한 방식이라는 것이 카라쿠롬으로 하여금 약혼녀를 감염시키는 것이고?"

"감염된 장로는 카라쿠롬의 지식도 알았을 겁니다. 카라쿠롬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으니까요."

"카라쿠롬에게는 애인이 있고 무척 아름답다. 애인을 감염시키고 아름다운 애인이 또 많은 사람에게 감염시킨다? 사실 키스보다 더 은밀한 감염수단도 없겠군. 하하하."

"사실 이것은 사실에 근거한 추론이라기보다는 뜬금없는 상상이었고, 상상이 우연찮게 맞아떨어진 것에 불과하겠지요."

"자네는 참 운이 좋은 친구야."

"저는 무엇보다 리라가 감염되기 전에 이곳에 올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참 운이 좋았죠."


"오크 장로가 무리를 이끌고 마을로 후퇴한 뒤 은밀하게 카라쿠롬만 데리고 이곳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이 딱 맞아떨어졌군." 


그 때 스파링이 끼어들었다.

"형사님, 카라쿠롬이 도망쳤습니다. 아마도 바이러스를 감염시킬 자를 찾고 있겠죠. 우리는 빨리 카라쿠롬을 찾아내야 합니다. 시간이 없어요."


"스파링, 자네 오크 장로의 교감 에너지를 느낄 수 있나?"


"한누리, 누구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교감 에너지 흐름을 느낄 수 있어. 하지만 아주 미약해. 아마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것 같아."


오크 장로는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편히 앉아 카라쿠롬을 조종해서 리라를 감염시키려 했을 것이다. 정신지배를 하던 장로는 리라의 감염이 실패한 것을 알았을까? 아마도 리라가 치료제를 먹었는지 여부를 잘 알지 못한 것 같았다. 아직까지 오크 장로가 확보한 자료로는 치료제가 있는지조차 몰랐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오크 장로는 일단 카라쿠롬은 자신에게 후퇴시켰지만 리라가 감염되었을 것으로 생각해서 아직까지는 느긋하게 앉아 리라의 몸에서 바이러스가 퍼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테지? 오크 장로가 안심하고 있을 때 우리는 부지런히 그를 찾아내야 한다. 


"스파링, 교감 에너지가 흘러나오는 쪽으로 찾아갈 수 있겠어?"


"거리가 멀어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역시 스파링보다는 오크 장로의 교감 능력이 훨씬 강하다. 스파링은 장로의 에너지를 미약하게 느낄 뿐이지만 장로는 리라가 감염되었다면 이 거리에서도 리라 정신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 


"스파링, 일단 휴게소 밖으로 나가서 이리저리 다녀보자구. 교감 에너지가 강해지는 지점을 찾아낼 수 있을 거야."


"한누리, 자네 생각대로 하는 것이 낫겠어."


나는 리라를 휴게소에 비치되어 있는 간이 침대 위에 누였다. 도깨비 준코에게 연락을 했다.


"준코, 용병 휴게소에 빨리 와 주세요. 리라가 카라쿠롬에게 감영될 뻔했어요. 다행히 치료제 덕분에 감염을 면했지만 안정을 취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저와 스파링은 급한 일이 있어서 이제는 휴게소 밖으로 나가야 하거든요. 리라를 부탁드릴 게요."

"한누리, 내가 빨리 가겠네."

"준코, 리라가 침대에서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해 주고. 무슨 일이 발생하면 연락을 주세요."

"알겠네."


스파링과 나, 박사와 형사, 이렇게 4명은 휴게소 밖으로 나왔다. 


사모아 형사는 단말기로 용병 사무소의 주차장에서 나간 오토바이나 차량의 검색해서 카라쿠롬이 탈것을 이용했는지 확인했다. 

"카라쿠롬이 걸어서 도망친 것 같군." 


우리 일행이 용병 사무소를 빙 둘러걷던 중 스파링이 말했다.


"음, 이 지점에서 교감 에너지가 더 강하게 느껴지는군요. 교감 에너지의 흐름을 천천히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스파링, 대단하군."


박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기술적으로 교감 에너지 흐름을 추적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 수 있다면 좋겠군요."

"박사님, 생물학과 공학이 만난다면 그런 장치를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겠지요." 

"교감 에너지가 생체 에너지인지는 모르겠어요. 저는 생물학자이지만 전혀 느낄 수 없으니까요. 스파링, 당신이 부럽네요."


"박사님, 교감 에너지를 느끼는 것은 개가 냄새를 잘 맡는 것과 같아요. 에너지를 잘 느끼는 민감한 사람이 있고, 또 훈련을 거듭한다면 더 잘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스파링은 가끔 눈을 감은 채 정신을 집중하면서 한쪽 방향을 잡아 걸어갔다. 나는 스파링이 눈을 감고 걷다가 딱딱한 것에 부딪히려고 할 때마다 주의를 주었다.

"스파링, 눈을 떠. 벽에 부딪히겠어."


스파링이 걸어가는 길은 니카라 공원을 향했다. 카라쿠롬과 오크 장로의 전투력은 우리 4명이 충분히 커버할 수 있을 것이다. 


"스파링, 오크 장로가 니카라 공원에 있어?"

"그런 것 같은데? 상당히 강력한 교감 에너지의 흐름이 공원쪽에서 느껴지거든." 


"혹시 오크 장로가 스파링 자네의 교감 에너지를 느끼는 것은 아니겠지?" 


"나는 교감 에너지가 방출되는 것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가고 있으니까 오크 장로가 나를 단순한 느낌만으로 찾아내지는 못할 거야." 


우리 일행은 니카라 공원에 도착한 다음에는 더욱 발걸음을 죽이며 눈에 띄지 않는 자세로 걸어갔다. 하지만 엘프의 탐지능력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카라쿠롬은 오크 장로와 떨어져서 조망이 좋은 곳에 선 채로 우리가 활의 사정권에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오크 장로에게 접근하는 것에 지나치게 신경을 쓴 나머지 카라쿠롬이 쏜 화살을 피하지 못했다. 우리의 바로 눈 앞에서 화살이 날아와 스파링의 오른쪽 어깨를 맞추었다. 


스파링은 앗 하며 어깨를 휘청하면서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용병은 기본적으로 원거리 공격무기를 방어할 수 있는 슈트를 입고 있다. 하지만 엘프는 슈트의 방어력을 무력화할 수 있는 기술을 넣어 화살을 발사한다. 


다시 화살이 날아왔으나 사모아 형사는 검을 휘둘러 막아냈다. 화살은 방향을 잃고 튕겨나갔다. 궁수의 위치를 인지한 이상 빗발쳐 날아오는 화살은 문제될 것이 없었다. 


스파링은 자신의 왼쪽 팔에 걸친 방패를 나한테 건네 주었다. 

"한누리, 이 방패로 화살을 막는 것이 검으로 막는 것보다 편할 거야."

"아니야, 나도 충분히 검으로 화살을 막을 수 있어. 자네가 방패를 걸치고 있어. 카라쿠롬이 엎어져있는 자네한테도 화살을 날릴 수 있으니까."


우리가 쏟아지는 화살 세례에 곤란스러워하고 있을 때 오크 장로는 우리의 시야 밖으로 유유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형사님, 장로가 도망치고 있네요." 

"오크 장로 쪽으로 뛰게. 내가 엄호할 테니까."

사모아 형사는 스파링의 방패를 움켜쥐었다. 스파링의 몸에서 방패가 치워지자 카라쿠롬은 다시 스파링에게 화살을 날렸다. 수전 박사가 검으로 스파링에게 날아오는 화살을 쳐냈다.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오크 장로를 향해 뛰었다. 카라쿠롬은 나와 스파링을 번갈아가면서 공략했지만 화살은 모두 막아낼 수 있었다. 


오크 장로는 이제 걷지 않고 뛰어갔다. 하지만 나의 걸음이 더 빨랐다. 나와 오크 장로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자 오크 장로는 도망치는 것을 포기한 듯 뒤를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