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하루의 즐거움은 집에서 컴퓨터를 앉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블로그에 들어가 어제 올린 작업에 대한 성과를 확인했다. 조회수는 이미 수십만.

밑에 따라오는 덧글도 훑어보았다.

 

-'음악소년'님 대단하시네요. 언제 봐도 감탄스럽습니다-

-우왕 쩐다... 님 진짜 18살 맞음?-

-이 정도면 스카웃 제의도 들어올듯-

 

언제나처럼 보이는 덧글들. 

칭찬세례에 자연스레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하지만 간간히 보이는 악플도 있다.

 

-헐 님들 귀 썩었음? 이게 뭐가 좋음ㅋㅋㅋ 아마추어 냄새 팍팍 나고 조율도 엉망이구만-

 

"얘는 또 이러네."

 

킬러비. 항상 내게 악플을 다는 악질 유저의 닉네임. 기억하기 싫어도 하도 자주 이러다 보니 절로 닉네임이 머릿속에 각인되어 버렸다.

 

한숨을 쉰 나는 덧글을 무시하고 곧이어 글의 동영상을 재생했다. 

 

동영상에서는 조용하면서도 빠른 선율의 음악이 재생되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조용히 음악을 감상했다. 그러나 얼마 듣지 못하고 그대로 동영상을 꺼 버렸다.

 

"역시 사람이 부른 게 아니면 안되려나."

 

보컬로이드 전문 작곡가.

 

인터넷 상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를 향해 붙여주는 호칭이다.

 

언젠가 내가 만든 음악을 가수들이 불러주고 많은 사람들이 내 음악을 알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내 꿈이다.

 

하지만... 내 음악을 불러주는 것은 사람이 아닌 음성 합성 소프트웨어다. 

내가 작곡한 음악을 불러주고 인터넷에 올리는 사람도 몇몇 있긴 하나 그들은 정식 가수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에게 미안한 소리지만 대중들에게 어필하기엔 인지도도 무척 낮은 편이다. 

 

내 음악을 불러줄 '가수'가 나타나는 것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

 

"후우."

 

한 번 더 한숨을 쉰 채 아무것도 없는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내 음악을 불러줄 사람이 언제 나타날까. 

오늘도 기약없이 그저 기다릴 뿐이다.

 

 

 

내 하루의 즐거움이 집에서 컴퓨터를 앉는 시간이라면 그 반대의 시간은 등교시간이다.

내가 문을 열고 교실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나는 정강이에 그대로 강한 충격을 느꼈다.

 

"악!"

"오, 정운아. 내가 널 얼마나 목 빠지게 기다렸는지 아니?"

 

내가 그대로 고꾸라지는 것과 동시에 머리 위에서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어제 밤에 관장님한테 배운 로우킥인데 어때? 아파?"

 

나는 고개를 올릴 생각도 못한 채 절뚝거리며 그대로 자리로 돌아갔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 상황을 최대한 무시하려 애쓰고 있었다. 

 

물론 딱히 그들을 원망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 나라도 그랬을 테니까. 

 

목표물이 나라는 게 문제지만.

 

"니들 뭐하는 거야!"

 

그러나 이 반에는 불의를 참지 못하는 학생이 딱 한 명 있었다.

바로 반장이었다.

 

"왜 가만히 있는 애를 때리는데!"

 

반듯한 얼굴에 항상 성적은 상위권을 유지하며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까지. 

그야말로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설정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씩씩거리며 등장한 반장의 모습에 날 괴롭히던 녀석들 중 한 명이 콧방귀를 꼈다.

 

"반장. 속담 몰라? 원래 쓰레기한테는 매가 약이라고."

"쓰레기는 너희들이겠지. 한 번만 더 그래봐. 선생님한테 말하는 걸로는 안 끝날 테니까."

"큭큭. 그럼 뭐 어쩌게?"

"또 이랬다간 학생회에 건의하는 건 물론이고 교장선생님한테도 정식으로 건의할 거야."

 

그 말에는 날 괴롭히던 무리들도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반장은 실제로 한다면 하는 여자였으니까.

 

결국 한 녀석이 짜증난다는 듯이 바닥에 침을 퉤 뱉었다.

 

"씨발. 진짜 짜증나게 하네."

"더 짜증나게 해 줘?"

"하, 간다, 가. 어차피 그만둘 생각이었으니까 너야말로 좀 꺼지지?"

 

결국 날 괴롭히던 녀석이 혀를 차며 자리로 돌아갔다. 

한심하다는 듯 그 녀석을 보던 반장이 내게로 고개를 돌리더니 점차 다가오기 시작했다.

 

"......"

 

언제나 나를 도와주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그다지 호감은 가지 않는다. 

 

왜냐면...

 

"너 진짜 바보니? 왜 항상 가만히 맞고만 있어?"

 

도움 이후 항상 따라오는 비난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는 눈빛.

그건 어떤 의미에서는 구타보다도 더 괴롭게 느껴졌다.

 

거기다 눈 앞의 상황만 도와주는 것은 오히려 나에게 해가 된다는 것도 모르는 것 같다. 

실제로 저 뒤에서 날 때린 녀석이 더욱 사납게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왠일로 오늘은 한 대로 끝내냐? 큭큭."

"반장 저 년이 짜증나게 굴잖냐."

"뭐, 오늘은 적당히 하자고. 러브픽션 '아리'도 온다는데."

"오, 그거 오늘이었냐? 그럼 안 되지. 내 신사적인 모습을 보여줄 기횐데."

"신사는 개뿔."

 

뒤에서 낄낄거리는 녀석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아무튼 다행히도 오늘은 한 대로 끝난 모양이네. 

 

이후 수업이 시작되는 것과 동시에 책상에 엎드려 잠에 빠져들었다. 학교 수업이라는 건 자습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괜히 깨 있어봤자 일진 놈들에게 좋은 먹이감만 될 뿐이고. 

 

약자답게 그저 숨을 죽이고 지내는 것. 

그게 내 학교에서의 생존 법칙이었다.

 

띵동댕동.

 

4교시 종이 울리기 무섭게 옥상으로 갔다. 아침에 사 놓은 내 몫의 빵과 함께. 

그러나 교실에 사람이 이상하리만치 많은 탓에 교실을 나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어째 오늘은 학교가 좀 시끌벅적하네..."

 

이상할 정도로 반에 모인 학생들의 수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런 걸 볼 틈은 없었다. 괜히 멍 때리고 있는 순간 점심시간 동안 하루종일 괴롭힘만 당할 것이 뻔했다. 

 

나는 사람들을 겨우 제치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교칙을 준수하는 한편, 학생들에게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학풍은 개인적으로 참 맘에 든다.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교장은 학생들에게 더 많은 유익함을 선사한다는 목적으로 옥상에 정원을 꾸민 것이다.

 

물론 구내식당이 있는 마당에, 그것도 겨울인 지금 옥상에서 끼니를 때우는 학생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 나만 빼면 말이다. 

 

“하.”

 

벤치에 털썩 주저앉아 숨을 크게 내쉬었다.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장소는 학교에서 이곳만이 유일했다. 

 

이 시간은 나에게 거의 유일한 작곡의 시간이기도 하다.

 

벤치에 앉은 채 빵을 우물거리며 주머니에 구겨넣은 작곡노트를 꺼냈다. 구겨져서 음표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런 시간이 난다는 것이 어딘가. 묵묵히 영감이 떠오르는 데로 음표를 넣었다. 너무 몰두한 나머지 근처에 사람이 다가오는 것도 모른 채.

 

"너 뭐하는 거니?"

 

고개를 든 그곳에 금발의 미소녀가 서 있었다.

 

그러니까, 음...엄청나게 예쁜 여자애였다.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모를 정도로. 

 

교복을 보아하니 우리 학교 학생인 거 같긴 한데.

 

하지만 이 학교를 다니면서 나는 이런 얼굴의 여자를 본 적이 없다.

분명 이렇게 예쁜 여자라면 기억이 날 법도 한데 말이다.

 

"그건 뭐야?"

 

그녀는 내가 당황한 틈을 타 그대로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엇...!"

 

그녀와 어깨를 맞댄 것만으로도 흠짓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여자, 아니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 자체가 별로 익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슨 고양이니? 그렇게 화들짝 놀라게."

 

킥킥 웃은 그녀가 나를 쳐다보았다. 

그 똘망똘망한 눈빛에는 나에게는 없는 순수함이 엿보였다.

 

순간 놓치고 싶지 않다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너, 넌 누구야? 우리 학교에서 너 같은 애는 처음 보는데."

 

그 때 당시 내가 한 질문은 멍청하기 그지없는 한마디였다.

 

"뭐?"

 

그녀는 순간 벼락이라도 맞은 듯 그대로 멈춰 버렸다. 

 

그렿게 그녀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고개도 푹 숙인 채 어깨만 부들부들 떠는 그녀의 모습은 괜히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무슨 말이라도 걸려고 했지만 그녀의 이름도 모른다는 것이 떠올랐다.

 

"저, 저기요. 금발머리 씨?"

"그, '금발머리 씨'?"

 

내 말에 그녀의 몸이 움찔 떨렸다. 고개를 숙인 채 저러니까 오히려 좀 무섭다.

거기다 머리까지 기니 무슨 귀신같기도 하고. 

 

 

"미, 미안. 니 이름을 잘 몰라서."

 

꿈틀.

 

"내 이름을...모른다고...?"

 

이번에도 화나게 한 것 같다. 

왠지 폭발할 거 같은 그녀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대체 내가 뭔 잘못을 했다고 화가 난 거야? 

 

"어, 저기, 그러니까..."

 

그녀는 그제서야 고개를 들었다. 

강렬한 분노가 섞인 그 표정과는 별개로, 그녀의 눈빛에서는 눈물이 떨어질 듯 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 이름, 절대로 잊지 않게 해줄께."

 

한참 동안 날 노려볻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눈을 슥슥 닦은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옥상을 나갔다. 

 

나는 그저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점심시간 이후 나는 그녀의 이름을 절대 잊지 못하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점심시간에 왜 우리 반에 사람이 왁자지껄했었는지도 알 수 이게 됐다.

 

“걔가 그 러브픽션의 ‘아리’였구나.”

 

그녀가 바로 러브픽션의 '아리'로 5교시부터 같이 수업을 듣게 될 같은 반 동급생이었던 것이다. 아이돌은 많은 관심을 가지지 않은 탓에 나는 그녀의 이름을 몰랐던 것이다.

 

작곡가 지망생 주제에 가수 이름도 제대로 모르다니... 내 둔감함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아리 덕분에 5교시는 전혀 잠을 잘 수 없었다. 물론 5교시 이후로 매진하는 작곡도 전혀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학교 교복에 이름표가 없다는 사실을 저주했다.

 

“…….”

 

수업 도중에도 날 노려보는 유아리(그녀는 본명으로 활동하고 있었다)의 눈빛이 따갑다.

아마도 날 보고 있는 거겠지. 

내 앞자리에 있는 일진 무리 중 한 명이 아리를 보고 쉬는 시간에 자신을 쳐다봤다고 좋아하는 꼴을 보면서도 나는 전혀 집중할 수 없었다.

 

"그럼 이 문제는 유아리 학생이 풀어봐요."

“네.”

 

6교시 수학시간. 재밌기로 소문난 수학선생이 칠판에 문제를 쓴 채 그녀를 불렀다. 

자리에 나간 아리가 칠판에 분필을 슥슥 적기 시작했다.

 

그 유명한 아이돌의 공부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나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녀가 푸는 문제에 관심이 쏠려 있었다. 그녀는 한동안 문제를 풀었지만 결국 답을 적지 못했다. 

 

아리가 난처한 듯한 웃음을 지었다.

 

"아, 잘 모르겠어요. 선생님, 너무 어렵게 내신 거 아니에요?"

 

유아리가 장난스런 말투로 그렇게 말하자 학생들 사이에서 웃음소리가 퍼졌다. 

선생님도 껄껄 웃은 채 말했다.

 

"그래? 이건 그다지 어려운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것과 달리 칠판에 적혀 있는 문제는 쉬운 난이도가 아니었다. 거의 수능 시험에 버금가는 수준의 문제였지만 그걸 아리가 알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곤란한 듯이 끙끙거렸다. 학생들 사이에서 작게나마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선생님, 이건 저보다 다른 친구가 푸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음, 그래. 그럼 누가 이 문제를 풀어볼래?"

 

선생님도 아리가 풀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는지 금세 타겟을 다른 학생들에게 돌렸다. 

선생이 그 말을 하는 순간 대부분의 학생들은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거나 딴청을 피웠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아리는 그것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선생님, 쟤가 풀게 하는 건 어떨까요?"

 

처음에는 다른 사람을 가리킨 줄만 알았다. 

허나 재차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킨 그녀를 보자 깜짝 놀랐다.

 

"네? 아, 아니, 나는..."

"그래. 그럼 정운이가 풀어 봐라."

 

대놓고 지목했는데 모른 척할 수도 없는 노릇.

결국 우물쭈물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앞서 아리가 받았던 박수와 웃음소리는 나에게 전혀 주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리에게 거둔 관심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아리보다 더욱 예리한 느낌의 관심이 나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어재서 제가? 왜 아리는 저 녀석을 선택한 거야? 둘이 아는 사인가?

그런 소근거림이 들리는 듯했다.

 

평소라면 이런 문제는 적당히 모른다고 하고 지나갔을 터. 

 

그런데 어째서였을까. 

나는 그 순간 반드시 문제를 풀고야 말겠다는 스스로도 모를 기분에 휩싸였다.

 

나는 그들의 차가운 관심을 온몸으로 받은 채 자리에 올라갔다. 꽤나 긴 수식의 문제였지만 나는 20초도 지나지 않은 채 문제를 다 풀었다. 

문제를 다 풀자 선생님이 놀란 듯이 중얼거렸다.

 

"오오, 이거 꽤 어려운 문제인데 굉장히 빨리 풀었구나."

 

그러나 놀란 것은 선생님만이 아닌 듯했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소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야, 재가 어떻게 저걸 풀었어? 재 그다지 성적 좋지 않잖아? 뭐야, 전에 풀어본 문제겠지. 나는 학생들의 소근거림을 무시한 채 자리에 앉았다. 유아리도 학생들의 소근거림을 들었을 것이다. 그녀는 슬픈 건지 씁쓸한 건지 모를 미소를 내게 보이더니 자리로 돌아갔다. 

 

이후 그녀는 나를 전혀 쳐다보지 않았다.

 

 

"너 뭐야?“

 

쉬는 시간.

일진에게 화장실로 불려간 나는 흠씬 두들겨 맞고 있었다.

 

”왜 아리가 널 보고 자꾸 웃는 건데? 너 아리한테 뭔 개수작을 한 거야? 앙?"

 

녀석은 6교시가 지난 이후에서야 나와 아리의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챈 듯했다. 

그녀가 자꾸 자신이 아닌 나를 쳐다보았다는 것도 알자 그의 분노는 끝을 달렸다.

 

나는 어떤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무자비하게 그에게 밟혔다. 

언제까지 이렇게 때리는 걸까.

 

그 순간.

 

퍼억! 

 

“컥!”

 

무언가 맞는 소리와 함께 형진이 그대로 뒤로 나뒹굴었다. 

 

나는 퉁퉁 부은 눈을 겨우 뜬 채 형진을 때린 게 누군지 쳐다보았다. 

반장이었다.

 

"너, 내가 건드리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미친년……. 여기 남자화장실이야!“

”어쩌라고?“

”아, 씨발……. 니가 뭔 상관이야? 반장이면 단 줄 알아?"

 

짝!

 

녀석이 어안이 벙벙한 채 그대로 멈춰 버렸다. 쳐다보고 있던 나조차도 놀랐다. 문답무용으로 뺨을 날려버렸으니까.

녀석이 다시 정신을 차린 듯 반장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너 진짜 돌았냐?“

”돌은 건 지금 네가 하는 짓거리고.“

”허! 여자라면 내가 못 때릴 줄 알아!"

 

녀석이 그대로 반장에게 덤벼들었다. 그러나 반장은 무식하게 달려드는 녀석의 얼굴에 무릎을 꽂아 넣었다. 무슨 킥복싱도 아니고.

 

“아악!”

 

일진 녀석은 별다른 힘도 쓰지 못한 채 화장실 변기에 그대로 쳐박혀 버렸다.

쏴아아아- 

 

고장난 변기의 물소리가 침묵을 깨뜨리는 유일한 소리였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될 지 모른 채 그대로 앉아 그녀를 쳐다보았다.

 

"일어나."

“여기 남자화장실인데."

"넌 할 말이 그거밖에 없니?"

 

반장이 기가 막힌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빨리 일어나. 간호실 데려다 줄게."

"아, 응."

 

성적우수, 품행단정, 용모우수. 그런 그녀였지만 오늘부로 품행 단정이란 항목은 그녀에게 제외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녀에게 부축을 받은 채 그대로 화장실을 나왔다.

 

 

 

우리 학교 간호실에는 6교시까지 간호선생님이 있지만 이후로는 선생님이 없다. 대신 간호실 문은 열려 있기 때문에 아픈 학생이라면 언제든지 간호실을 이용할 수 있다. 물론 간호선생이 없기에 허가가 쉽게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평소 행실이 반듯한 반장이었기에 쉽게 허락을 받은 듯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간호실에는 나와 반장밖에 없었다. 

반장은 퉁퉁 부은 내 얼굴에 약을 솜에 묻혀 이리저리 발라주고 있었다.

 

반장이 이런 모습이라니. 나는 의외의 모습에 그냥 멍하니 그녀가 하는 대로 있었다. 

부끄러운 마음에 내가 한다고 했지만 반장은 굳이 자신이 하겠다면서 계속 나를 간호해 주었다.

 

뻘쭘한 분위기 속에서 먼저 말을 연 것은 반장이었다.

 

"이런 건 내가 원하던 게 아니었어."

"응?"

"항상 도와줘야겠다고는 생각했는데, 쉽사리 행동을 못했어. 무섭기도 하고."

 

방금 꼴을 보아하니 무서워해야 하는 사람은 오히려 그 녀석들인 거 같은데. 그리 말하고 싶은 게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가까스로 참았다.

 

"나는 네가 스스로 변하기를 바랬어. 내가 도와준다고 해도 소용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손을 멈춘 채로 반장은 나를 쳐다보았다. 

 

그 말에는 나도 반박할 말이 산더미처럼 있었다.

그럴 거면 차라리 어설프게 도와주지 말지. 도와줄 거였다면 진작에 도와줄 것이지. 왜 이제서야 도와준 거야.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실제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니까.

 

반장은 한동안 내 눈을 쳐다보더니 그대로 고개를 푹 숙여 버렸다. 이미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알고 있는 듯이. 

그녀는 눈길을 떨군 채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미안해. 정말로."

 

죄책감 가득한 목소리.

 

그런 그녀의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이나마 이해했다.

 

그래. 세상에는 그녀같은 사람도 있는 것이다. 누군가를 도와주길 바라면서도 그게 해가 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사람. 방법이 너무도 어리숙했을 뿐이다.

 

적어도 지금껏 나를 도와준 것 자체는 사실이지 않은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숙인 그녀의 손을 잡았다. 다행히 그녀는 그런 내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

 

우리는 한참동안 말없이 그렇게 있었다.

 

 

 

저녁시간이 끝날 즈음 나는 반으로 돌아왔다. 

반에서는 내가 상상도 못한 일이 진행되고 있는 것도 모른 채.

 

나는 반으로 들어오자마자 칠판에 적혀 있는 글들을 볼 수 있었다. 교실에 있는 티비에서 흘러나오는 영상도.

 

그것은 내가 만든 작품들이었다. 음성 합성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의 마스코트 캐릭터들이 동영상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칠판에는 이런 저런 욕들도 쏟아지고 있었다. 

 

더러운 오타쿠라느니, 

상종하기도 싫은 변태라느니, 

 

대충 그러한 혐오가 가득 담긴 말들이.

 

아마추어 작곡가라고는 하지만 지금 내가 하는 작업들은 서브컬처에 발을 걸친, 대중들에게는 상당히 마이너한 작업들이었다. 특히 유행에 민감한 청소년들이 내 취미를 쉽게 용인해줄 리도 없었다. 그렇기에 여태껏 취미를 숨겨왔던 건데...

 

나는 망연자실하게 칠판을 쳐다보았다. 

뒤늦게 돌아온 반장이 칠판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그 새끼, 치졸하게……!"

 

반장은 그대로 어디론가 뛰쳐나가더니 사라져 버렸다. 나는 반에 있을 용기가 없었기에 그대로 가방을 든 채 자리를 떠났다. 뒤에서 반 애들이 비웃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도착한 곳은 옥상 문 앞이었다. 

 

피곤하다. 

이젠 모두 다 그만두고 싶었다. 

 

천천히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러나 나는 마지막 순간에 망설였다.

 

이렇게 끝내도 되는 걸까? 나는 꿈이 있을 텐데? 그리고 나를 이해해 준 사람도 있다. 과연 이런 일로 그만둬도 되는 것일까?

 

...아니, 하지만 너무 늦었어. 

난 이미 지칠 대로 지쳐 버렸으니까.

 

그러니까. 

 

”이제 다 그만둘래."

 

나는 옥상 문을 열었다.

 

 

 

“……어?”

 

그 곳은 내가 예상한 옥상이 아니었다.

번쩍번쩍 빛나는 미러볼과 귀가 찢어질 듯이 시끄러운 음향 장비들. 그리고 중앙의 텅 빈 홀.

 

그 곳은 나도 모르는 새 무대가 되어 있었다.

 

“야!”

 

그리고 무대 한 가운데에 유아리가 있었다.

 

이전의 교복 차림이 아닌, 화려하면서도 노출이 드러난 의상.

그 모습은 내가 본 그 어떤 사람보다도 아름다웠다.

 

"빨리 왔네?“

”이, 이게 뭐야?!“

 

날 보며 반갑게 손을 흔드는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스피커가 시끄럽게 웅웅 울리고 있었지만 어째선지 그녀의 목소리만큼은 그 무엇보다 잘 들렸다. 

 

나는 화려한 옷차림의 그녀를 보며 소리쳤다.

 

"대체 이게 뭐하는 건데!"

"응?! 잘 안 들려!"

"뭐하는 거냐고!"

"안 들린다니까! 좀 더 크게 말해봐!"

"이 대책 없는 여자야! 정신이 있어 없어?! 학교에서 이런 짓을 하면 어떻게 해!"

"뭐, 뭐야!!"

 

그래도 자기를 욕하는 소리는 잘 들리는가 보지. 

결국 아리는 화가 잔뜩 난 채 나에게 외쳤다.

 

"이거 다 너 때문에 준비한 거란 말이야!"

"뭐?!"

"됐어! 준비한 거나 잘 들어!"

 

아리는 내가 뭐라 말할 틈도 주지 않은 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힘차면서 강하게 울리는 목소리, 가벼운 고음처리. 아이돌다운 노래솜씨였다. 

그러나 내가 놀란 것은 그녀의 노래 솜씨가 아니었다.

 

아리가 부르는 곡은 바로 내가 작곡한 곡이었던 것이다.

 

나는 멍하니 그녀가 부르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부르는 순간을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내 음악을 가수가 불러주는 것, 그건 내 꿈이었다.

 

그리고 그 꿈이 오늘 이루어진 것이다.

 

나는 음악이 끝날 때까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음악이 다 끝나자 그녀는 개운한 듯이 홀에서 폴짝 뛰어 내렸다.

 

"하, 힘들다. 네 곡은 너무 호흡이 길어서 부르기 힘드네."

 

내가 뭐라고 말해야 될지 모른 채 가만히 있는 동안 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외쳤다.

 

"잘 들어, 황정운!"

"어, 어?"

"내가 바로 러브픽션의 유아리라고! 절대로 잊지 마아아!"

 

나는 그제서야 그녀가 이런 짓을 저지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설마 내가 이름을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가만히 바라보는 날 향해 그녀가 씩 웃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물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어, 어떻게...안 거야?"

"응?"

"어떻게 이 곡을 알게 됐냐고."

 

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숨길 생각도 못한 채 물었다. 

내 물음에 그녀의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아, 아까 칠판에 쓰는 글이랑 화면 보고 알았어."

"뭐?"

"그리고 그게 네가 만든 곡이라는 것도."

 

무기력한 기분이 내 어깨를 짓눌렀다. 

 

모두 다 그녀가 봤구나. 

내 스스로가 한심해서 견딜 수 없었다.

 

내 곡을 불러준 사람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주다니. 부끄러움에 나는 도저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나는 주먹을 꽉 쥘 뿐 그녀를 고개를 숙였다.

 

"저기 말이야, '음악소년'. 그렇게 기 죽지 마."

"하지만 나는...너무 비참해. 내 꿈을 이루어준 사람에게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야 된다니..."

"꿈?"

"내가 만든 음악을 가수가 불러주는 거. 그건 내 꿈이었어."

 

그녀는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살짝 고개를 들자 생각지도 못한 모습의 그녀가 보였다.

 

"큭...크큭...푸하하하!"

 

결국 참지 못한 그녀가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으니까.

 

"왜, 왜 웃는 거야!"

 

그 모습에 절로 짜증이 팍 치솟았다.

 

누구는 이렇게 부끄러운데, 화가 나는데.

뭔데 그렇게 웃는 거냐고!

 

"아니, 큭, 니, 니가 너무, 지 진지...큭..해서...푸...푸하하하하하!"

 

그녀는 큰 소리로 웃었다. 

처음 다짐대로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기분이 다시금 들었다.

 

"우, 웃지 마! 나도 나름대로 진지하게 말한 거라고!"

"미, 미안...하아...아, 너무 웃겨...후아아..."

 

아리가 숨을 고르는 데는 한참이 걸렸다. 

그녀는 갑자기 진지한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음악소년', 아니, '황정운'.“

”어?“

”뭘 그렇게 우울해하고 있어. 칠판에 있던 걸로 알게 됐다는 건 니가 '음악소년'이라는 걸 알게 됐다는 거 뿐이야. 나는 네 음악을 좋아했거든? 아주 예전부터 말이야."

"뭐?"

"내가 가수가 되기 전부터 쭉, 좋아하고 있었어. 오히려 내가 영광인걸. 이렇게 좋은 음악을 부를 수 있게 해 줘서 말이야."

 

내게 다가온 아리가 갑자기 나를 확 안았다.

그녀의 따뜻한 체온이 전해져 왔다.

 

아리는 나를 그대로 안은 채 말했다.

 

"절대로 기죽지 마. 아니, 나와 다른 팬들을 위해서라도 기죽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우리는 언제나 너를 응원하고 기다리고 있으니까. 네가 하는 것에 당당해졌으면 좋겠어."

 

가슴이 아린다. 내가 언제 이런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까. 아니, 이런 이야기를 들을 거라고 생각이라도 못했는데. 절로 목이 메는 게 느껴진다.

 

"우...으..흑..."

"그리고...앞으로도 좋은 음악 많이 들려줬으면 좋겠어."

 

나는 그녀의 품에 안긴 채 필사적으로 울음을 참았다.

 

"고마워.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해줘서. 좋은 음악을 부를 수 있게 해줘서."

"아니, 내가... 내가 고마워. 내 음악을 불러줘서..."

 

나는 그녀의 품에 안은 채 그대로 한참을 울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한 채로 말이다.

 

 

 

다음 날 일진은 내 예상과는 달리 오히려 무척 얌전해진 모습이었다.

그는 얼굴에 이곳저곳 멍이 든 채 얼굴만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내가 불안한 마음에 반장에게 물어보니 역시 그녀가 손을 쓴 상태였다.

 

"아, 걱정 마. 이런 저런 협박이나 겁이나 자존심을 긁었으니까. 뭔 짓은 못할 거야."

 

이럴 거면 진짜 좀 도와주지 그랬냐.

그리 말하고 싶은 걸 꾹 참느라 고생했다.

 

뭐, 그녀 입장에서는 내가 스스로 해결하기를 바랬던 것이었으니까.

 

“쟤도 존심이 있으면 여자한테 맞은 걸 말하진 못하겠지.”

 

하긴 평소 반에서 한 주먹 한다는 녀석이 가녀린(나는 이제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반장한테 맞았다느니 같은 소문이 들리기라도 한다면 고개를 들 수가 없겠지. 

확실히 시원스런 상황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되려나. 

 

뭐, 앞으로 편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힘든 거 있으면 나한테 연락하고."

 

반장은 한쪽 눈을 찡긋 감은 채 자리로 떠났다. 

보통 저런 소리는 남자가 해야 되는 것일 터인데. 왠지 좀 비참하다...

 

 

 

아이돌인 아리를 만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아무리 번호를 교환한 친구 사이라 해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나름대로 유명 아이돌이었던 유아리는 쉽게 학교를 등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일주일에 한번 꼴로 오는 그녀에게 과연 졸업할 생각이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통로가 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그대로 컴퓨터를 켰다. 

사이트를 들어가 내 블로그를 들어가보니 이틀 전 새로 만들어 올려둔 음악이 꽤나 큰 반응을 불러오고 있었던 모양이다. 덧글란에는 아리로 짐작되는 덧글과 함께 여러 답덧글이 보였다.

 

-참 좋은 노래네요. 꼭 부르고 싶어요. 내일 방송에서 깜짝 공개할까봐요^^-

ㄴㅋㅋㅋ헛소리. 지가 무슨 가수인 줄 아나

ㄴ음악방송? 님 가수임? ㅋㅋㅋ

 

 

이게 바로 어제 덧글들의 반응이었다. 그러나 오늘 답덧글은 반응이 정반대였다.

 

ㄴ헐 야 진짜 이거 가수가 부른듯...

ㄴ엥? 누구여?

ㄴ러브픽션의 유아리 모름? 걔 음악방송에서 이거 이벤트 송으로 부른듯...ㄷㄷ...

ㄴ헐...그럼 이거 진심 유아리?

ㄴ쩌네...현실에 이어 인터넷 아이돌까지 점령할듯

 

나는 밑에 달려있는 덧글들을 보며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하고 행복한 기분이었다.

 

아마 한동안 이 웃음은 멈추지 않을 것 같다. 

나는 녹화해둔 그녀의 방송을 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고마워...내 꿈을 이루어줘서."




시발 좀 퇴고하다가 오글거려서 포기했다

뭔 정신머리로 썼지 이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