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은 옷 사이로 스미는 미지근한 바람이 상쾌하다.

 

달 없는 밤하늘 아래, 어둑한 정원을 그와 함께 거닌다.

 

한치 앞도 분간되지 않는 어둠 속을 말없이 맞잡은 손에 의지한 채, 내딛었다.

 

조금 앞서가는 바실리오스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그를 불렀다.

 

“바실”

 

밖에 나가고 싶다고 조르는 채원을 마지못해 허락한 그가 돌아본다.

 

“왜 사랑해요?”

 

채원의 물음에 바실이 걸음을 멈췄다.

갈색이던 눈동자가 채원을 담았다.

 

“눈”

 

영문을 알 수 없는 대답

 

“나만을 바라본 그 눈 말이다.”

 

“왕자도 아니고, 스트라테고스도 아니고, 나만 바라보는 그 눈”

 

바실리오스가 채원을 끌어당겼다.

 

채원이 원망스러운 목소리로 다시 묻는다.

 

“그러면 그때는 왜 그러셨어요?”

 

올려 보는 그녀의 눈빛이 싸늘했다.

 

“품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아서”

 

채원이 바실리오스를 밀어내더니 등을 돌려 딴 곳을 바라봤다.

 

“변명으로도 못 쓸 핑계네요.”

 

멀어진 그녀가 정원속, 별들이 담긴 호수를 보며 말했다.

 

“아빠가 될 거예요.”

 

내뱉은 채원의 말이 숲 속을 떠돈다.

 

그 말에 마법이라도 담긴 듯, 얼어붙은 바실리오스가 멍하니 서 있다.

 

온갖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는 원하지 않았던 걸까, 기쁘지 않은 걸까, 

 

관목들 사이로 들려오는 부엉이 울음소리가, 스산하게 퍼져 귓가를 맴돌았다.

 

그렇게 얼어붙어 있던 바실리오스가 천천히 걸음을 떼, 다시 채원에게 다가간다.

 

묘한 불안감이 채원의 몸을 움츠러들게 했다.

 

채원이 자신도 모르게 배에 손을 가져다 댔다.

 

괜히 말했다.

 

“엘피다”

 

“엘피다”

 

잠긴 그의 목소리가 녹슨 쇳소리처럼 불편했다.

 

이내 채원에게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다가온 그가, 채원을 끌어안더니 채원의 어깨 맡에 머릴 파묻었다.

 

젖어오는 얇은 옷 사이로 느껴지는 뜨거운 눈물

 

“바실?”

 

대답하지 못하는 그의 모습이, 초라했다.

 

“고맙다.”

 

짧은 말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에, 잔뜩 긴장했던 몸에 힘이 풀린다.

 

스스로에게 속삭이듯, 배냇 아이에게 속삭였다.

 

‘네가 있어도 괜찮은가 봐’

 

점차 밤바람이 거세져 오자, 바실리오스가 채원을 업고서 별궁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