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그걸 내 몸에 대체 왜 놓겠어 내가?”

 한 실험실에서 검은 슈트를 입고 있는 남성이 약간 화를 내며 말했다. 조금 탄 피부를 하고 있는 그는 실내에서도 검은 선글라스를 벗지 않고 있었다. 그는 폼에 살고 폼에 죽는 그런 부류의 사람인 듯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핏이 되는 사람이라면 그런 패션조차 멋이 돼버리기 마련이기 때문일까. 그는 썩 재수없게 보이지는 않았다.

  “아 왜 이리 쩨쩨하게 굴어. 좀 한 번 해줄 수도 있는 거 아니야?”

 그 앞에 앉아있는 여성은 주저하고 있는 남성이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 여성은 윤기가 흐르는 하얀 단발을 한 작은 키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괴짜스러움이 은은히 피어나오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에게서 실험실에 틀어박혀서 사는 고블린 같은 존재가 연상되는 것은 아니었다. 흔히들 괴짜 과학자 하면 떠올리는 퀴퀴한 냄새라던가 걸레짝을 가발로 쓴 듯한 머리라던가 하는 것들은 그녀의 단정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녀는 하필이면 귀여운 축에 속한 여자였다.

 아마 그녀에게서 괴짜의 느낌이 나는 것은 그녀의 지나치게 올망졸망한 그녀의 눈 때문일 것이었다. 사람의 눈이 지나치게 밝으면 뇌가 필요 이상으로 지나치게 활성화되어 있다는 느낌이 나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그녀의 손에는 주사기가 들려있었다. 투명한 약물이 잔뜩 들어있는 주사기 말이었다.

 “하하하. 참... 자기 목숨 아니라고 막말하시네?”

 남성은 오히려 그런 여성이 너무하다는 듯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괴짜 과학자가 주는 주사를 기꺼이 맞겠다는 사람은 세상에 드무니 말이었다.

 “대체 왜 그러는 거야 H. 좀 맞으면 뭐가 덧나?”

 “… 모즐리, 혹시 난 죽기 싫으니 그런게 아닐까?”

 남성은 난감하다며 말했다.

 “아니, 같이 자는 건 되고 이건 안,”

 남성은 누가 들을세라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남성은 방에 그 누구도 없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그래도 다시 한번 혹시라도 누가 없는지 고개를 돌리며 살펴보았다.

 “모즐리! 제 정신이야?”

 “뭐 내가 거짓말이라도 했어?”

 그녀는 전혀 거리낄 것이 없다는 듯이 물었다.

 “하… 모즐리, 정말 몇 번이고 말하는데... 그건 실수였다고. 그 누구한테도 들켜서는 안 되는 실수 말이야!”

 그는 속삭이는 듯 하지만 분명하게 들리는 큰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아니 너 갑자기 왜 그리 민감하게 굴어? 할 때는 좋아라 했으면서.”

 하지만 그녀는 그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했다.

 “아니... 모즐리, 넌 약혼한 여자야. 알고는 있어?”

 “어휴 지겨워 정말. 또 그 얘기야?"

 여성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 지금 내가 이상한 거야? 아니면 혹시 내가 뭐라고 했는지를 못 들은 거야 모즐리?"

 "네네 알겠네요. 아무튼 자.”

 여성은 그렇게 말한 뒤 남성에게 주사를 건넸다. 여성은 남성의 당황한 목소리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남성은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뒤로 돌며 손으로 뒤통수를 감쌌다.

 “뭐 기다리는 거라도 있는 거야? 어서.”

 여성은 그의 뒤통수에 대고 물었다.

 “글쎄… 기다리는게 있다면 아마 네 이성이 아닐까? 모즐리! 정신 좀 차려!”

 “그래그래. 잘나셨어 아주. 그래도 어쨌든 할 일은 해야 되지 않겠어? 자자, 얼른."

 그녀는 주사기를 다시 내밀었다. DH는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큰 눈동자가 보였다. 전혀 남보고 스스로 죽으라고 할 것 같지 않은 순수한 큰 눈동자가 말이었다.

 "H, 뭐 해. 주삿바늘은 스스로 몸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여성은 이해가 안 간다는 투로 말했다. 그녀에게는 남성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귀찮다는 느낌까지 묻어있었다. 남성은 그에 어이가 없었는지 말없이 가만히 있었다.

 “왜 가만히 있는 거야. 혹시 쫄았어?”

 여성은 그런 남성의 기분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지 태연히 물었다.

 “응. 진짜 무서워 죽겠어 아주! 그러니 제발 부탁인데 그 망할 주사 좀 내 눈 앞에서 치워주면 안 될까? 응?”

  그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에게 소리를 질렀다.

 "H, 정말 이 작은 주사가 그렇게 무서워?”

 “응! 모즐리, 그렇다고 대체 몇 번을 말해야 좀 알아들을 거야?”

 “아니 너는 사람도 죽여본 놈이 무슨,"

 "모즐리, 그렇게 내가 아니꼬우면 네 몸에 놔 그냥. 어때. 내가 손수 무보수로 친히 놔드릴게.”

  “그, 그건 안 돼.”

 여성은 갑자기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왜? 모즐리 왜 그래? 쫄았어? 그 작은 주사가 이제는 좀 무서운 것 같아? 응?”

 남성은 비아냥거렸다.

 “... 혹시 죽기라도 하면 어떡해! 누구처럼 다 되살아날 수 있는 줄 알아?”

 그 말을 하는 모즐리의 얼굴에서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살짝 느껴졌다. 남성은 그것을 보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죽음이 뭔지 알면서, 자기가 죽는 건 싫으면서 자신에게 죽음을 요구한 그 뻔뻔함은 역겹기까지 했다.

 “와. 그러면서 나보고는 지금 죽으라는 거야? 모즐리, 뭔가 잘못된 것 같지 않아?”

 “아니 H, 계속 내가 이상한 것처럼 구는데…”

 “진짜로 이상한데? 정말 그런 생각이 안 드는 거야 아니면 그냥 뻔뻔한 거야?”

 “아니 H, 내가 뭐 지나다니던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행인한테 놓는다 했어? 너한테 놓는다고 했지? 그런데도 마치 처음 죽어보는 사람처럼 당황해 가지고는 아주 구질구질 어휴. 그리고 이게 뭐 나만을 위한 거야? 제레미한테서 우리 관계를 숨기려면 이런 생체 실험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야. 넌 대체 내가 오늘 제레미한테 널 만난 걸 어떻게 설명하기를 바라는 건데? 뭐 뾰족한 수 있어?”

 “... 그건,”

 “너도 딱히 없잖아. 그러면 좀 죽어줬으면 해 H. 이게 우리 모두를 위한 최선이야."

 모즐리는 참고 있던 말을 뱉어내는 듯이 속사포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남성도 마찬가지였다.

 “하 참나. 아니 넌, 그러는 넌 뭐 죽어보고 말하는 거야? 말로는 누가 못 죽어. 모즐리, 사람들이 삶이 힘들 때 죽겠다 죽고 싶다하면서도 잘 안 죽는 데는 다 이유가 있어. 왠지 모르는 것 같으니 그 이유를 설명해주자면, 죽는 건 대개 돌이킬 수 없는 불쾌한 경험이거든. 혹시 산성 용액에 온 몸이 녹아봤어? 허우적 거리면서 몸이 줄어들어 본 적이 있냐고!”

 “넌 그게 그렇게 자랑스러워? 녹아본게? 맨날 좀 죽어달라 하기만 하면 그 타령이야.”

 모즐리는 못 들어주겠다는 듯이 눈을 돌리며 말했다.

 “대체 뭐라는… 어휴. 그래. 넌 어릴적부터 하프원더 코퍼레이션에서 펜이나 잡으면서 아주 곱게 자랐으니까 모를 만도 해. 그런 너를 위해 그게 어떤 느낌인지 힌트를 좀 주자면, 물에 몸을 담구면 온몸이 아파와서 목욕도 제대로 못 할 정도라고!”

 “아휴. 그럼 네가 과학자하던가. 각자의 삶이 달랐던게 그리 자랑할 일이야? 그게 뭐 내 탓이라도 되냐고!”

 “그럼 주사를 맞는 건 뭐 내 운명이라도 된다는 거야?”

 “어휴… 그냥 무서워서 저러는 거면서.”

  그녀는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는 그가 변명만 주구장창 들여놓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뭐 내가 죽어주는 게 당연한 일이야? 싫은게 당연한 거 아니야? 모즐리! 죽음이라고 죽음!"

 "H... 나 점점 더이상의 대화가 의미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밤에는 그리 잘만 꽂으시던 분이 주사 바늘 하나 꽂는다니까 이렇게 나오는게 솔직히 좀 추해보이기 까지해."

 모즐리는 비운의 여주인공마냥 가련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남성의 화를 치밀어 오르게 했다. 아무리 봐도 뭔가가 잘못되어 있었다.

 “아니 모즐리... 넌… 넌 너 자신이 감당이 돼? 약혼까지 한 X이 말하는게 아주 거리끼는 게 없어 무슨.”

 "아니 듣자듣자하니까 진짜 너무하네! 그래 맞아. H. 나 제레미랑 약혼한 사람이야. 그런데 그거 알아? 그건 널 약혼 한 여자랑 잔 남자로 만들 뿐이야! 그러는 넌 뭐가 그리 당당한 건데? 네가 보기엔 넌 세상 도덕적인 피해자, 뭐 그런 거고 나만 더러운 년이고 막 그런 거야? 굳이 따지면 공범인 주제에 왜 그리 찡찡대!”

 남성의 지속된 비아냥에 여성은 다시 참고있던 화를 버럭 풀어내기 시작했다. 남성은 그녀의 맞기는 한 말에 버벅 거리며 말을 이었다.

 “난… 난 그래도 최소한의 죄책감은 있어! 바로 네가 좀 많이 가지고 있어야할 그 죄책감 말이야! 지금 내 쪽이 잘못됐다는 거야?”

 “넌 내가 얼마나 우리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지 모르지? 제레미가 요즘 나한테 얼마나 뭐라고 하는지 알기는 해?”

 “아니 그래서 넌 정말 우리 관계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

 “그래그래. 우리 관계가 세상에서 가장 건강한 관계는 아니지. 그런데 H, 그 모든게 지금 이 상황이랑 무슨 상관이야?”

 “... 뭐?”

 남성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녀라는 사람은 알기 참 어려운 사람이었다.

 “왜 자꾸 화제를 돌리는 거야? 왜 자꾸 죄책감 죄책감 거리면서 해야 할 일에서 도망치는 거냐고!"

 "아니, 최소한의 죄의식도 없는 거야 넌? 정말 그게 사람이 할 말이라고 생각해?"

 DH는 화와 어이없음 사이에서 소리쳤다.

 "H, 그게 죄든 아니든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건 들키지 않는 거잖아. 그런 사소한 것에 치여서 중요한 걸 잊어버리면 안 되지. 조금 슬퍼한다고 해서, 조금 반성한다고 해서 과거가 바뀌는 건 아니니까 말이야! 그리고 네 양심이 그리 잘났으면 어젯밤에도 좀 반성해보지 그랬어…”

 모즐리는 마지막 말을 하며 그가 매우 한심하다는 듯이 눈을 딴 곳으로 돌렸다.

 “아니… 아니 너야 말로 이미 벌어진 일로 그러기야? 내가 지금 이미 벌어진 일을 부정하거나 했어? 아니잖아.”

 "H, 그냥 지금 제레미한테 연락해서 말 할까? 너랑 잤다고? 그걸 원하는 거야 H? 그런 거면 그냥 지금 바로 전화할게."

 여성은 갑자기 목소리를 내리깔며 말했다.

 "... 너 미쳤어?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지금?"

 남성은 잠시동안 그녀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받아들이지 못 해 뜸들이다가 말을 했다. 그는 여성이 약혼한 남성한테 외도 사실을 알리는 것이 자신을 협박하는데 쓰이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하지만 여성은 그런 일말의 생각도 없는지 침착하게 말을 이어갔다.

 "아니 왜 H. 그러면 우리 관계가 고쳐지고 모든 죗값도 치룰 수 있지 않아? 네 잘난 양심이 원하는게 이거 아니였어?"

 "아니 그래서 우리의 커리어를 그냥 망치자고? 모즐리, 난 그 정도의 고해성사를 말하는게 아니라,"

 남성은 분명 말을 이어가고 있었으나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뭔가 빨려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봐봐. 들키기는 또 싫잖아 너도. 그러면서 무슨 성인군자라도 된 양,”

 “그래! 그래 모즐리! 나도… 나도 잘못을 했어. 너만 이상한게 아니라고. 그런데 내가 말하는 건...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제 그만 하자는 거야. 이건 내가 성인군자라서 하는 말이 아니야. 그냥... 죄책감이 있는 사람으로서 하는 말이지. 이게 그렇게 이상해?”

 남성은 더듬거리면서 말했다. 그는 그 말을 하면서도 뭔가 꺼림직함을 느끼고 있었다. 어찌나 꺼림직했는지 그의 귀에는 이미 모즐리의 재잘대는 높은 소리의  반박이 들리는 듯 했다.

 “... 어휴. 그러자 그럼. 서로 정조 잘 지키면서 삽시다. 나도 이젠 지쳐 H.”

 하지만 남성의 예상과는 다르게 모즐리는 그를 쏘아붙이지 않았다. 남성은 혹시 이 말이 먹힌 건가 기뻐서 다음과 같이 외쳤다.

 “그래! 아주 좋아. 모즐리, 그냥 앞으로의 삶만 제대로 살자 그거야. 막말로 아직 뭐 결혼한 것도 아니고 그냥 하룻밤의 실수였다고.”

 “H, 그런데 우리 관계가 들키지 않으려면 뭘 해야하는지 알아? 그건 바로 이 주사를 몸에 놓는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또.”

 남성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는 그녀가 적어도 자신보다는 머리가 좋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H, 우린 공식적으로는 그저 실험자와 피실험체의 관계잖아. 그게 아니면 우린 서로 만날 이유도 없어. 그게 아니면 너랑 내가 대체 왜 만나겠어. 안 그래?”

 “모즐리… 지금 그래서 날 죽여야만 한다는 거야?"

 남성은 힘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H, 나라고 널 죽이고 싶겠어? 정말 아직도 내가 널 좋아한다는 걸 모르겠어서 그러는 거야? 정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죽이고 싶어하는 사람으로 보여?”

 모즐리는 갑자기 포근한 투로 말했다. 그녀에게서는 마치 어린 아이를 가르칠 때의 참을성이 보였다.

 “그러면 대체 왜 죽이는 건데!”

 “제레미한테 들키면 안 되니까! 그건 너나 나나 다 싫어하는 거 아니였어? H! 네 말대로 관계를 끊던 이어가던 적어도 오늘 만난 거에 대해서는 명분이 있어야지. 아, 혹시 실험일지를 그냥 조작하라고 하게? 그러면 우리 관계가 그냥 들통이 나는 거야 H. 제레미가 아무리 판촉원이라고 해도 그렇지 보고서를 읽을 줄은 아는 사람이거든. 숨길 거면 제대로 숨겨야지. 사진으로 증거도 좀 남기고. 안 그래? H, 난 정말 오직 우리를 위하고 있어. 날 좀 믿어줬으면 해. 네가 죽기 싫은 건 이해하겠는데, 오히려 네가 싫어하는 일을 해야 제레미한테도 그나마 먹힐 거야."

 DH는 한동안 말을 멈추고 곰곰히 대체 그녀가 뭐라고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의 말에 꽤 일리가 있음을 깨닫고 일단은 수긍하기로 했다. DH 역시 이 관계를 들키기는 싫다는 것에 동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그래. 그럴 지도 모르지. 그런데 모즐리, 그렇다고 쳐도 실험을 꼭 저 수상한 주사로 해야하는 거야? 뭐 다이어트 식품같은 걸로 실험하면 안 되는 거야?”

 “H! 그런 건 그냥 아무나랑 실험해도 되잖아! 너랑만 할 수 있는 실험을 해야 너랑 만나는게 말이 되지! 다이어트 식품에 환장한 과학자는 이미 하프원더 코퍼레이션에 넘치고 넘치는데 그런 걸 너랑 하면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모즐리는 그렇게 말하고는 갑자기 싱긋 웃음을 터트렸다. DH는 그녀의 웃음 코드를 이해하지 못 했다.

 “그럼 다이어트 식품 말고도 뭐 많을 거 아니야… 아니 애초에 꼭 몸에 놓는 걸로 해야해?”

 “H, 아까 말 했잖아. 제레미한테 안 들키려면 너랑만 할 수 있는 걸 해야한다니까? 너의 다른 모든 자질은 잘 찾아보면 세상 어딘가에서는 또 찾을 수 있겠지만, 부활을 할 수 있는 건 이 세상에 오직 너 뿐이잖아. 아무리 제레미가 의심이 많은 성격이여도 내가 널 상대로 꽤 위험한 생체 실험을 하면 우리 관계를 의심하지는 못 할 거야. 이게 어려워 H?

 남성은 여성의 말에 토를 달려고 했지만 그녀가 생각보다 논리적이자 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침묵을 조금 지키다가 못 미더운 듯 이런 말을 덧붙였다.

 “... 어찌됐건 그래서 죽으라 그거 아니야?”

 "아니 안 죽을 지도 몰라 H! 그걸 모르니까 알아내려고 놓으라고 한 거잖아… 어휴. H, 혹시 임상 실험이 뭔지 몰라?”

 모즐리는 남성이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 네가 아까 죽인다며! 그럼 그건 뭐였는데!"

 "... 물론 어느 정도는 예측 가능한 부분이 있지."

 남성의 한숨에서는 정적이 새어 나와 방을 채웠다. 그 한숨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그래… 당연하다고 치자. 그러니까 빨리 놔 좀 H. 내가 강제로 놓으면 살인하는 것 같아서 그래. 이런 부질 없는 일로 시간 더 끌지 말자 우리."

 “모즐리! 대체 부질이 없기는 뭐가 부질이 없다는 거야! 아무리 내가 다시 살아난다해도 그렇지 인생의 하루가 그냥 날아가 있는 걸 즐기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 그리고 뭣보다도… 죽는 건 엄청 고통스럽다고!"

 "... H, 시간 더 끌면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 그냥 빨리 놓고 서로한테 없던 일로 하자.”

  모즐리는 이쯤했으면 됐다는 듯이 그를 딱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남성은 그녀의 그 말에 대꾸하려다 그냥 참기로 했다. 자신의 몇 마디 말따위로는 이 주사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실 DH 자신도 알고 있었다. 이 방법밖에는 없는 것이었다.

 남성은 결국 자신의 팔에 주사를 놨다. 그리고 조금 후에 남성은 심장을 움켜쥐고 쓰려졌다. 여성은 남성을 보며 장갑을 끼고는 조금 안타깝다는 표정을 하고는 이렇게 읊조렸다.

 “뭐… 바로 이게 임상 실험을 하는 이유야 H. 아, 생각해보니 어차피 이것도 까먹겠네. 어휴. 그러니 사람이 도통 발전이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