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끝을 따라 길을 걷다보면 파도에 휩쓸려 발자국이 보이지 않게 된다. 기억이란 그러한 것이다. 그렇기에 잊혀지는 것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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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의 무너진 벽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그 빛은 돌무더기에서 아슬아슬하게 자고 있던 아이의 잠을 깨웠다.

"벌써... 아침이야...?"

아이는 덜 떠진 눈으로 주변을 둘러본다. 아무것도 없고 그저 희뿌연 콘크리트의 먼지로 가득찬 고물들이 보이는 평소와 같은 아침이다.

"끄응... 머리 아파..."

아이는 자신의 머리를 약하게 빚고 깨진 거울로 엉성하게 머리를 묶었다.
오늘도 평소처럼 포니테일로 묶었지만 무언가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이게 아니야... 무언가 이상해.'

"후후후 좋은 아침입니다. 연화양."

익숙한 목소리, 익숙한 말투에 웃음소리. 아이가 잘아는 사람, 흔히 에디라고 불러달라고 하는 남자는 폐허의 그늘 속에서 나타났다.

"와... 왔어요?"

"오늘도 엉성하게 묶으셨군요. 하지만, 저희는 외모부터 완벽해야 사람들이 오는 법입니다. 그러니 제게 맡겨주시죠."

그가 양팔을 뻗으며 웃자 아이는 그 품 안으로 들어갔다. 익숙한 온도와 향기가 아이의 몸에 스며든다. 따스하고 푸근하며, 숲속에 안긴 느낌의 냄새. 아이가 좋아하는 냄새였다.

그리고 익숙한 손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아이는 편안하다는 듯이 조용히 눈을 감으며 비어있는 두 손으로 그의 허리를 감싸기 시작했다.

평소와 같은 하루이기에 잊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잊혀지기 싫다. 아이는 그렇게 생각했다.

"자, 다 됐습니다. 연화양 어떻습니까."

그는 웃으며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가 고개를 들자 예쁘게 단정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옆으로 에디의 뿌듯한 얼굴도 같이 보였다.

오늘따라 더 열심히 한 것처럼 평소와 다르게 뿌듯한 표정이었다. 아이는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웃음이 나왔다. 우연히 깊게 파여 파도가 덮쳐도 사라지지 않는 발자국이 남는 것처럼 오늘의 아침은 선명히 기억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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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오늘도 똑같이 에디의 곁에서 그가 바라는 상황을 만들고자 했다. 그와 같이 다니며 그의 지시대로 사람들과 계약을 하고 반항하는 사람들은 힘을 빼앗았다.

힘을 빼앗는 건 에디의 힘인 콜렉터의 일부였다. 그러나 그는 콜렉터라는 힘을 혼자서 가지면 본인이 악한 마음이 들었을 때 아무도 대항할 수 없다며 아이에게 건네준 것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그 힘을 이용해 누군가의 힘을 빼앗아 에디에게 건네주었다. 오늘도 평소와 같이 세력을 늘리기 위해 그러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마지막으로 어떤 남자와 계약을 하기 위해 골목에서 그와 얘기하려고 했다. 그때 사이렌 소리가 들리며 뒤쪽으로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같이 들려왔다.

"거기까지입니다! 자칭 혁명단 여러분. 당장 하던 일 멈추고 얌전히 손드세요."

"경찰인가... 흠... 이거 재밌는 상황이네요. 아직은 이른데 말이죠."

특수 능력 조사팀이 오늘은 한발 앞서나왔다. 지금 앞에 있는 남자와 그들간의 대화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연일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경찰이고 뭐고 다 죽이면 그만이잖아. 안 그래?"

"죽이면 안됩니다. 기절시키는 거면 몰라도 말이죠. 가능할까요? 연화양."

"당연하지. 에디, 너를 위해서라면..."

아이는 머리를 묶은 뒤로 마음가짐이 달라져 마음이 몹시 여유로웠다. 불안한 마음을 죽이며 온 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총이 아닌 책을 들고 있는 젊은 남자의 뒤에서 중년의 남성이 나타나자 여유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

"호오... 팀장과 함께 오다니. 큰 일이군요. 저자의 능력은 절대 기억력인데 방심했네요. 이렇게 마주할 줄 알았다면, 가면을 쓰고 오는 건데 말이죠."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괴롭힐 거지?"

중년 남성의 목소리에 아이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오래전에 남은 몇 없는 기억 속에서 저 남자가 자신의 아버지임이 들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을 버리고 후회가 가득한 표정으로 걸어오는 모습을 보면 우스꽝스러웠다.

어째서 나를 버리고 후회하는 표정을 짓는 건가. 만나면 왜 버렸냐고 묻고 싶었는데 어째서 그런 표정을 짓냐고 먼저 묻게 만드는가. 그러한 애절함과 원망이 아이의 팔에 점차 물들기 시작했고, 그렇기에 웃으며 남성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아버지... 아아 내가 원망하는 아버지! 어째서 지금 내 얼굴을 보고 놀라며 후회하는 얼굴을 하고 계신겁니까. 아이의 생각은 끊임없이 앞에서 삼단봉으로 칼을 막는 남자를 원망하는 것으로 가득찼다.

점점 힘은 과격해지고 일그러졌다. 계약으로 받은 검술 또한 쓰지않은 채로 무차별하게 우악한 모습으로 점차 한을 풀기 위한 행동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남자는 얼굴이 표정이 달라지지 않았다. 본인에게 원망이 가득한 공격이 들어와도 계속 후회하는 표정이었다.

그때 남자의 뒤로 벼락이 떨어진 것처럼 번쩍이더니 빛이 아이의 배를 뚫었다.
아이는 극심한 고통에 칼을 놓치고 배를 끌어안았다.

"지 팀장님! 괜찮으십니까!"

"그래, 괜찮다. 저 녀석은 최대한 다치지 않게 체포해야 하니까 그 책은 자제하도록 해라."

"끄윽... 어째서... 당신이 어째서!!!"

후회 가득하던 얼굴이 자신을 버려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잡지 못해 그런 거 같다 생각한 아이는 더욱 원망이 가득차 소리질렀고 앞에 있는 남자가 자신을 잡으려는 순간 땅이 치솟으며 벽이 만들어졌다.

"휴... 괜찮습니까. 연화양. 칼은 제가 챙겼으니 일단 돌아갑시다."

에디가 자신이 만든 벽에 노크하자 문이 만들어지며 열렸고, 그는 아이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어느 가게 안에 들어온 에디는 손에서 칵테일 잔을 만들더니  잔 안에 들어있던 노란 액체를 마시고 아이의 배에 손을 올렸다.

손에서는 빛이나며 아이의 배에 은은하게 퍼져갔고 아이는 그를 끌어안으며 펑펑 울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묶여있던 끈이 끊어지며 머리가 풀렸다.

"어째서.... 어째서 제 아버지는 저를 매몰차게 버리고 저를 모르는 척하며 잡으려는 걸까요. 어째서..."

그는 다른 손으로 아이를 쓰다듬으며 천천히 말했다.

"언제나 말했지만, 그는 연화양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저는 그 폐허 속에서 당신을 찾은 거고 그는 한발 늦은 거였겠죠. 너무 원망하지 마세요. 전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겁니다."

"그치만... 그래도..."

"한 숨 푹 주무세요. 모든 게 다 나아질 겁니다. 그리고 일어나면 저를 반갑게 맞이해주세요."

아이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아이는 꿈 속에서 해변의 끝을 따라 걷고 있었다. 쓸쓸한 바다에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뒤를 돌아도 파도에 휩쓸려 사라진 발자국들이 보이지 않을 뿐이었다.

아이는 말없이 앞으로 걸어간다. 언젠가 숲이 자신을 반기길 바라는 마음을 지니며, 원망스러운 바다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을 지니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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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은 다시 쓰는 중인데 다시 올리기엔 양이 적어서 나중에 다시 올리려고 하는데 또 처음부터 쓰는 중이라 언제 올릴지 모름

초반부 집착을 버릴 수 없으니 참으로 슬픈 일이로다. 폰으로 쓴거라서 모음집에 넣는 건 나중에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