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맥없이 쓰러진 그이를 들어 옮깁니다.

아마 눈을 뜨면 그이는 텅 빈 공간에 덩그러니 놓여 있을 겁니다.

굳이 지금부터 나만 생각하도록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의 정신 상태 따위는 나에게는 장애물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너무 일찍 미쳐버리는 것은 좋지 않을 테니까요.

지금은 그저, 저 아름다움에 묻은 더러운 것들을 청소할 겁니다.



이 방 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문은커녕 열릴 수 있는 구조조차 육안으로는 찾을 수 없었다.

머리를 부딪혀 보기에는 저 벽은 너무도 부드럽다.

알지도 못하는 1900년대 초 음악이 노이즈와 섞여 흘러나온다.

문제는 그 음악이 어디에서 흘러나오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 나는 정말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었다.



그이가 공백과 망각에 지쳐 잠들 때를 기다립니다.

미리 준비한 사람들을 시켜 수면제와 마취제를 투여합니다.

식사를 지급하지 않았으니, 이때 영양 또한 공급합니다.

그러고는, 그의 왼손 약지에 반지 모양의 상처를 입힙니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 그 신경을 조금씩 건드립니다.



흘러나오는 음악이 좀 더 흐려졌다 생각하며 잠에서 깬다.

이렇게 몇 번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였는데, 횟수를 세다 잊었다.

이 공간은 나에게 무언가를 잊어버리기를 종용하는 것 같다.

이런저런 사소한 문제를 제외하고 생각하면,

아마도 난 육체적으로는 괜찮은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은 내 왼손 약지다.

평소보다 굼뜨게 움직이는데, 마치 내 것이 아닌 것 같다.



그이의 왼손 약지에는 원래의 주인이 있어서였을까요.

나는 그가 저 손가락을 스스로 뜯어내길 원합니다.

다른 소중한 신체 부위들이 아닌, 저 손가락만을 원합니다.

빌어먹을 원래의 주인과의 흔적 또한 모두 지우고 싶었습니다.

다만, 지금은 그가 저기에 걸쳤던 추악한 이의 상징을 지우고,

뜯어낸 파편이 그와 나의 새로운 상징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이가 추악한 과거에서 빠져나온다면,

그 조각은 내가 그를 다시 구해냈다는 증표가 될 겁니다.



누가 한 짓인지는 모르겠지만, 불쾌하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살조각이 내 손가락을 대신한다.

이상한 상처는 나 있지만 이상하게 단단히 붙어 있다.

뭔지 모를 소리는 들리는데, 나는 이 손가락이 싫다.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의 왼손 약지는 이제 그에게 긍정적인 기억을 가져오지 못합니다.

방 안에서 계속 울리는 음악은 이제 그 구조조차 잃었습니다.

아마 그는 이미 보통 사람이 감당할 수 없게 미쳐버렸겠죠.

지금은 왼손 약지를 보며 떠오르는 모든 것들을 증오할 겁니다.

떠오르는 게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말이죠.

장담하건대, 조만간 우리는 새로 만나게 될 거예요.

당신은 나를 모르지만, 나는 당신을 구할 거고요.



이걸 뜯어내야 해



드디어 그 가증스러운 자국을 뜯어냈습니다.

아무런 도구 없이 손으로 뜯어낸 만큼 고통스러웠겠지만,

바닥에 튄 살점과 피는 앞으로의 우리를 축복합니다.

그가 직접 끊어낸 저 손가락은 더는 더럽지 않습니다.

그가 볼 수 없는 곳에서 이 일을 기념하려 합니다.

체포될 가짜 범인들은 이미 묶어 두었습니다.

이제 문을 열고, 연기를 시작할 차례겠죠.


"괜찮으세요? 세상에... 출혈이 심하신데 빨리 따라오세요!"



대충 기혼자 혹은 커플이었던 얀붕이를 납치해서 미치게 만들고 연애 혹은 결혼의 물리적인 증거인 반지가 끼워져 있었던 왼손 약지를 증오하게 만들어 스스로 극단적인 방법으로 부정하도록 했으면 재밌겠다는 의미없는 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