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어디부터 시작해볼까. 

아, 내 말주변이 부족한 점은 미리 양해 부탁하지. 내 30년 인생에 대부분을 워낙 사내녀석들과만 지내서 말이야. 그럼, 인생이라는 말이 나온 김에 인생 인터뷰식으로 해보자구. 태어나서 자란 이야기면 될까? 마침 '너'로부터의 긴 휴가를 받았잖나. 게다가 이런 초특급 특실 제공이라니, 좋은 기회잖냐. 참, 우린 아직 통성명도 하지 않지 않았나? 내 이름은 '김얀붕'이라고 해. 앞으로 긴 이야기를 할텐데, 잘 부탁하지. 


 그런데 학교 다닐 때의 이야기는 별로 할게 없어. 너무 평범하게 남중, 남고 다니고 밤늦게까지 학원 다니고 점수 맞춰서 대학갔다가 누구에게나 날아오는 입영영장을 받아서 군대를 갔지. 그런데 내 인생은 여기부터가 할말이 많아. 


 난 어려서는 몸이 좀 약했어. 그래서 키도 작고 힘도 약했지. 그러다보니 어디가서 무시당하던 일도 많았어. 그래서 다니던 학원 중에 무술학원이 좀 많았지. 태권도, 유도, 합기도 등등. 그렇게 고등학교 갈 때까지 꾸준히 다니니 작았던 키도, 가늘었던 덩치도 스스로가 놀랄 정도로 거대해졌어. 어느 순간 남들보다 머리 하나는 큰데다 어깨도 넓어지니 그동안 은연 중에 당하던 무시같은건 없어지더군. 여자에게 인기 많았겠다고? 에라이 이 사람아. 내가 남중남고 나왔다고 하지 않았나? 여자구경은 대학가서나 해봤는데 그나마도 공대였어  1학년만 마치고 군대를 갔고. 


어쨌거나, 각종 무술을 했다보니 단증이 몇개 있었어. 그래서 그런지 자원하지도 않았는데 수시로 비무장지대를 수색하던 ☆사단 수색대대로 자대배치가 됐지. 아,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그냥 군생활을 하다가 전역을 하는게 나았을지도 몰라. 군대에선 그저 남들 하는만큼만, 중간만 하면  그게 최고인데 말이지. 그런데 참 애석하게도 남들보다 좀 크고 두꺼워서인지 항상 지목을 당하면 나였어. 부대 내 각종 작업이건, 태권도 시범이건 뭐건 간에 항상 부대 간부들의 손가락 끝은 나를 향해 있었지. 


 그날도 마찬가지였어. 비가 많이 내리던 장마철이라 부대 뒤편 언덕이 무너졌지. '씨발씨발' 거리며 부대원들과 언덕이 무너지면서 같이 묻힌 배수로를 열심히 삽을 들고 까고 있던 중에 평소엔 얼굴도 볼일 없던 중대장이 나를 부르더군. 중대장실을 들어가니 그 안엔 평소 거만하게 뒷짐지고 사람을 깔아보는 듯 하게 쳐다보던 그 중대장이 '중대장은 김얀붕에게 실망했다.'는 고정멘트 대신 자기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두손을 맞잡고 안절부절 하더군. 얼마나 가소롭던지. 그리고 중대장의 의자엔 낯선 사복 입은 남자가 그 날씨에 썬글라스까지 딱 낀 채로 중대장을 대신해서 거들먹 거리고 있더군. 


"어이, 네 이름이 김얀붕이라고?" 


남자가 나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지. 그런데 중대장도 굽실거리는 상대에게 일개 졸병인 내가 뭐라 말했겠나? 


"상병 김얀붕! 예!! 그렇습니다!!!" 


아주 군기가 바싹 들어서 대답하니 남자는 썬글라스를 밀어올리며 어떤 제안을 하더군. 


"김얀붕 상병. 내 한가지 제안을 하지. 아니. 이건 조국의 명령이기도 하다. 너에게 아주 좋은 취직자리를 주지. 지금까지 너와, 너의 복무기록들을 검토해봤을 때 내가 말한 이 자리보다 더 좋은 진로적성도 찾기 힘들거야. 앞으로 3년 간, 아니 바란다만 너의 평생을 조국에 바쳐라. 조국은 너와 너의 가족들의 일평생을 책임지고 보살펴줄 것이며 네가 바란다면 큰 돈으로 보상해줄 것이다. 할 수 있겠나?" 


 22살 어린 내가 뭘 알았겠나? 조국 같은 거창한 단어보단 가족과 큰 돈이라는 단어가 너무나 와닿더군.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지. 


"조국이 부르면 어디든지 갑니다!" 


 그렇게 그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평생을 가슴에 새긴 교훈이 하나있어. '대답은 생각이란 걸 하고 해야한다.' 젠장. 그때 그냥 집으로 간다고 할껄. 지금 여기서 받는 특급대우보다 엄마가 끓여준 고기 듬뿍 들어간 김치찌개, 조갯살 잔뜩 들어간 된장찌개를 갓지은 흰 쌀밥에다가 마음껏 퍼담아 먹을 수 있었을 텐데. 


 아, 여기까지 들어서 알겠지만 내 소속은 알려줄 수가 없어. 그 점 역시 양해바래. 오늘따라 양해할게 너무 많다고? 그것 역시 어쩔 수 없겠지. 내 22살 장마철의 그 날 이후 지금껏 이 날이 올 때까지의 이야기는 날 죽여도 알려줄 수 없어. 아니, 내가 죽어서도 알아낼 수 없을껄. 달링? 지금 집어든 그 쇠꼬챙이로 나를 칠건가? 찌를텐가? 칠거면 어서 치라구. 네가 여자라서 무시하냐고? 천만해. 너같이 매력적인 여자와 이렇게 한 공간에 있는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줄 알아? 내가 비록 이렇게 특급대우를 받느라 양손 양발이 이렇게 묶여 있지만 아직 입과 아랫쪽은 자유롭다구. 남남 북녀라고 하잖아. 이리와. 내 남쪽식 사랑이 뭔지 똑똑히 보여줄테니.(중략) 


[중략 사유 : 심문 진행으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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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 ##년 (서기 20##년) 1월 17일 

16:00시~16:32시(평양표준시) 

남조선 괴뢰도당 간첩 김얀붕 심문 녹취록 

심문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호위총국 소좌 김얀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