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나에 대해 너무 잘 알아' 에서 이어집니다. https://arca.live/b/yandere/19939469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것을 마주한 공포. 내 모든 것이 그녀의 손 위에 있다는 사실이 주는 무력감. 그것이 나를 그녀에게 거스를 수 없게 만들었다.


버려진 낡은 인형처럼 나는 현관에 쓰러져 있었고. 그녀는 그 인형을 애타게 찾던 주인처럼 나를 쳐다보았다.

그것은 집착, 애정, 그리고 어떠한 형태의 필사적인 발버둥이었다.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에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니 상황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조건이 되는 것이 빨랐다고 할까.

밤을 새고 아르바이트를 다녀온 직후였고 온 몸이 피로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배가 고팠다.

'꼬르륵.'


"우리자기 배고프구나! 히히... 내가 요리해줄게! 부엌으로 가자. 응? 밥 먹고 씻고 자야지. 우리 자기 밤새 고생했잖아?"

"......"

나는 낯선 집에 분양된 강아지처럼 느릿느릿 주위를 살피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

거실에 방이 하나 있는 투 룸 형태의 집이었다. 특이하게도 거실에는 아무런 가구도 있지 않았고. 창문은 암막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부엌도 단촐한 것은 마찬가지 였다.

"히히.. 있잖아..."

"....응?"

나는 나도 모르게 반말로 대답했다.
"나.. 그거 하고싶은데..."

"그거?"

"뒤에서 꼭 하고 안아 주는 거.. 해줘."

"......."

거부감이 들었다. 그런 행동을 할 만큼 그녀를 좋아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런 비슷한 감정은 커녕 그녀에게 느끼는 가장 큰 감정은 공포였기 때문이다.

"......왜 그래?"

그녀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지고 다시 편의점에서 처음 봤을 때의 눈빛으로 돌아갔다.

"......또...사랑하는 사람끼리 하는 거.. 안 하려고..?"

"..그..그게.."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살 이유가 있는 거라고... 그랬잖아..?"

"그.. 그랬지만.."

그녀는 부엌에 있던 식칼을 꺼내 들었다.

"나.. 살 이유가 없어지면.. 그래서 내가 죽으면....? 그러면...?"

그녀는 슬며시 미소 지었다. 그리고 식칼을 두 손으로 잡아 날끝을 자신의 배로 향했다.

"자기가... 날 죽이는 거야..."

"그러지마.."

"내가 죽지 않기를 바라는 거야? 아니면.... 죄책감을 갖고 싶어하지 않는 거야?"

"그.. 그건..."

"대답해!!!"

"......네가 안 죽었으면 좋겠어..."

"이유는?"

"....널.. 사랑하니까."

"......."

그녀가 뒤로 돌아 칼을 탁자위에 올려 놓았다.

"히..히히..."

"...."

"나 뒤에서 꼭~ 해줘!"

그녀는 웃으며 나를 돌아보았다.

"....그래"

"헤에... 이거 좋다~"

그녀는 그녀를 안고 있는 내 팔에 그녀의 볼을 부비며 말했다.

"이 팔은.. 나랑 꼭 항상 같이 있는 거야."

".....어?"

"언제 어디서 뭘 해도.. 계속 붙어있는 거야."

"......그래.."

나는 대답하면서도 그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것 하나는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인질로 잡은 자신의 목숨을 살려둘 유일한 방법이 이것 뿐 이라는 걸.


----

"....잘 먹었습니다..."

"어땠어? 맛있었어?"

그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요리 해주었다. 그리고 그 음식은 내가 해 먹던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맛을 냈다.

"응..."

"헤헤... 노력한 보람이 있네!"

"...."

"이제 정리하고 씻고 코~자자."

"어. 그래"

"졸리니까 대충 싱크대에 넣어놓고  나중에 설거지 할까?"

"상관 없어"

"으웅.. 그럼.. 나중에!"

그릇을 치울 때도 그녀는 내 팔을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어.. 씻으라고 하지 않았어..?"

"응!"

"그.. 나 씻어야 하는데..."

그녀와 나는 욕실에 서있었다.

"....?"

그녀는 천진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 보았다. 

"........"

아마.. 씻을 때도 이 팔은 그녀의 것인가 보다..

"내가 머리 감겨줄게!"

"...응..."

나는 우물 쭈물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 있잖아.."

"응?"

"팔을 놔야 옷을 벗을 수 있을 것 같은데...."

"......"

그녀의 표정이 굳었다.

"아니! 아니! 그러니까.. 그... 허리... 잡고 있을래?"
그녀의 표정이 풀렸다.

"응!"

상의를 다 벗고.. 이제는...

"도와줄까?"

"....내가 할게.."

"치..."

나는 나체가 되어 그녀 앞에 섰다. 몹시 수치스럽다.

"이제 나도 벗을게"
그녀는 상의를 거침 없이 벗어버렸다.

그리고 이윽고 실 한 올도 남지 않았다.

"......히히.."

"....."

"조금.. 부끄럽네...헤헤.."

"....씻자 이제."

"응!"

나는 필사적으로 그녀의 몸에 시선을 두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그녀는 계속 그녀의 몸을 내 몸에 가까이 하려 했다.

그녀에게서 멀어지려 해도 그녀가 자꾸 따라 붙다 보니 등의 벽과 배앞의 그녀 사이에 끼인 듯 한 형태가 되어 버렸다.

"히히.. 이거... 자기가 쓰는 거~"

그녀는 내가 쓰는 것과 같은 목욕 타월에 당연하다는 듯 내가 쓰는 것과 같은 바디워시를 짜서 거품을 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몸에 거품을 발랐다. 그리고 밀착한 채로 몸을 돌렸다.

"등 닦아주라~"

"...이 상태로..?"

"당연하지!"

"....알겠어."

그녀의 시선이 내 얼굴을 향하고 있고 나는 곁눈질로 그녀를 보며 조심스레 타월을 건내 받았다.

천천히 그녀의 등을 타고 내 손이 움직인다.

"헤헤.."

그녀는 행복하다는 듯 미소지으며 그녀의 몸을 내 몸에 부볐다.

"....으...."

"응? 왜 그래?"

"아... 아냐.."

그녀는 장난스런 눈빛으로 날 보고 있다. 이 사람은 내가 인터넷에 올린 뻘글까지 다 알고 있다.

내 성적 로망을 적어 놓은 그 글.. 나도 이제야 기억해낸 그 상황을 똑같이 연출하고 있다.

반응이.. 와 버렸음을 느낀다.

"에에... 자기..."

"....왜..."

"히히... 헤헤헤.. 히힛...히히.."

"....."

"다음은... 침대에서... 맞지?"
이 것 마저 똑같다.


우리는 수건으로 대충 물기만 닦고 침대로 향했다.

"후....하....히히...후..."

그녀는 웃으며 흥분하며 나를 끌어당겼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스스로를 정당화 하며 그 끌어당김에 응했다.

"나.. 나는 이미.. 준비.. 끝났는데... 히히... 하..."

"...."

"빨리..... 나.. 오늘만.... 오늘만 기다렸단 말이야..."

"....들어...갈게.."

그녀의 입구는 나를 부르는 그녀의 입술만큼 촉촉해져 있었다.

그러나

"히윽......헤히...히..."

"처...처음이야?"

"히히...히...첫...사랑인걸...."

"....."

"멈추지마... 나.. 괜찮으니까..."

"....응"
나는 최대한 천천히 그녀의 안에 길을 만들어 갔다.

"아아.....하... 히히...흐....헤윽..."

그녀는 웃으며 괴로워하며.. 또 행복해했다.

그리고 그 길의 목적지의 다다른 순간.

"으그극....흐응.. 헤에......히이...이..."

"...괜찮아..?"

"네....괜찮...아요...."

".....?"

"아..아..아니!.. 괘...괜차.나..... 히히..."

순간 위화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강렬한 쾌감은 그 느낌을 단숨에 덮어버렸다.

"움직일게"

"...응.."

아주 익숙한 나의 방에서, 전혀 익숙하지 않은 조건에서

나를 아주 잘 알고 있는 그녀를, 그런 그녀를 하나도 알지 못하는 내가

사랑의 한 조각이라고 할 수 있는 짓을 해버렸다.

행복인가, 불행인가, 즐거움인가 두려움인가. 나도 알지 못하는 그런 감정과 뒤섞인 쾌락.

그 절정 이후 나와 그녀는 그대로 잠에 빠져 들었다.


----


그 날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그 날에는 나의 인생이 송두리째 빼앗겨 버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다만 나의 인생이라는 것이 그녀와의 공동 소유 비슷한 것이 되었다.

언제나 이 왼팔은 그녀와 붙어있어야 한다. 이 규칙을 지키면 무엇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부모님께는 여자친구가 생겨 동거한다고 말씀 드렸다. 처음엔 의아해 하셨지만 평생 여자친구 한 번 없던 아들인지라 늦바람이 무서운 것으로 이해해주신 것 같다. 아르바이트도 계속 다닐 수 있었다. 항상 그녀가 뒤에 졸졸 따라 다니는 조건 이었지만.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생활이다. 그녀는 내가 바라는 모든 것을 알고. 또 그것을 완벽하게 수행하니까.

그러나 그것은 정말 이상한 것이었다. 내가 바라는 것이란 때론 공존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예를 들어 그녀는 토요일에는 츤데레처럼 굴다가도. 일요일엔 다시 첫날 경험한 그녀처럼 행동했고. 낮에는 호색하다가도 밤에는 수줍어했다.

그녀의 그런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며 알게 된 것이 있다. 그런 극적인 성격 변화 중간에 그녀가 반드시 핸드폰을 본다는 것이었다.

핸드폰이야 매번 쳐다보는 것 이지만. 연관이란 없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녀의 핸드폰을 살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이 그 기회다.

그녀와 함께 침대에 누워있고 그녀는 나보다 먼저 잠에 들었다. 내 팔을 꽉 안고 있어서 멀리 움직일 수는 없다. 그러나 문제되지 않는다. 알람을 더 잘 듣고 싶다며 손 닫는 거리에 그녀의 핸드폰이 있도록 유도 했기 때문이다.

"열렸다."

그녀의 핸드폰은 잠겨있지 않았다.

정말 심심한 핸드폰이었다. 기본 배경화면에 기본으로 깔려있는 어플 밖에는 없는 핸드폰이었다.

".....헛수고였나..."

생각하던 찰나. 한 어플을 발견했다.

'XX♥'

내 이름으로 된 어플이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으웅..."

"...!"

그녀가 뒤척였다. 나는 깜짝 놀라 그녀를 쳐다보았다.

"....."

다행히 잠깐 움직인 것 뿐이었던 것 같다.

나는 어플을 켰다.

"이...이게..무슨...."

어플은 평범한 달력 어플 같아 보였지만 내용은 달랐다.

[X월 X일 11시 30분 까지 츤데레로 행동하기]

[O월 O일 3시부터 못 참겠다고 하기]

"...이게...이게..."

"뭐해.....요?"

".....!"

".....어.. 어어... 아니... 아닌데.. 이거.. 이거 계획... 아닌데...."

"....."

"이거...이거...어어.. 어.. 이거.. 아닌데.. 이거...아닌데.. 아닌데.."

그녀는 발작하듯 몸을 덜덜 떨며 손톱을 깨물었다.
"이거.. 이거.. 이거 들키면.... 그러면.. 그러면..."

그녀는 내 손에서 핸드폰을 뺏어 보며 불안한 눈빛으로 화면을 쳐다봤다.

"이럴 때.. 어떻게.. 어떻게..하면.. 이런 거.. 이런 거..."

"없어.. 없어.. ..어떻게.. 어떻게...."

"...지...진정해.."

"....."

그녀는 멍한 눈으로 날 쳐다봤다.
"..................."

".....왜 그래"

".........나.. 몰라요.."

".....응?"

"어떻게.. 해야 되는 지.. 모르겠어요..."

"......"

"이상해요.. 당신.. 이런 거.. 쓰지 않았잖아요..."

"......뭐...라고?"

"완벽..했는데.. 나는 당신이 바라는.... 그런 모든 걸 다.. 준비 하고...."

"...."
"이런 거.. 아닌데.. 이게 들키는 거는... 이런.. 이런..."

나는 덜덜 떨고 있는 그녀를 끌어 안았다.
"......"

"....."

".......무서워요..."

"무서워?"

"나...나는.... 그러니까..."

"천천히 말 해도 되"

".........사랑..하는 거.. 모르는데..."

"..."
"모르니까.. 당신이.. 인터넷에.. 써 놓은 거를 보고..."

"...설마.."

"부족하면.. 당신이 본 글이나.. 만화를 보고.. 또... "

"...."

"......그런데.. 당신.. 이 이야기는 없었어요.. 내 계획이 들키는 이야기는.. 없었어요.. 전부 다 있었는데...."

"전부.. 그 것들을 따라한... 거라고...?"

".......모르니까.. 어쩔 수 없어요... 나.. 나는 나쁘지 않아요!"

"...."

"모르는 걸 공부해서.. 노력해서.. 준비해서!!.. 그렇게.. 한 거니까.. 그런 거니까.."

"..."

"........어떡하죠.. 이런.. 이런거.. 나는.. 몰라.. 몰라.. 또.. 또.. 버려져.. 또... 다.. 날 버려.. 내가.. 사랑을.. 못 받게 행동해서.. 다들..."

"아니야."

"또 다 사라져 버리면.. 나 어떡하죠.. 나 또.. 나 혼자.. 매일.. 또..."

"아니야."

"당신도 날 떠나면.. 나는.. 그러면..나는.... 어.. 어떻게.. 나.. 어떻게..."

"...."
"나.. 나는.. 그러업.. 읍.. 으븝..."

나는 경황없이 말을 늘어 놓고 있는 그녀의 입술을 내 입술로 막아버렸다. 처음에는 숨 쉬기조차 버거워 하던 그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안정됬다.

"폐흐....하....."

"좀.. 진정 됬어..?"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네...."

"......"

"....."

그녀는 내 가슴에 고개를 파 묻고 물었다.

"당신도.. 날 버릴 거에요....?"

그녀는 이별이 두려운 것 인가 보다. 그녀가 살며 만나온 누구인가가 그녀에게 상처를 주고. 그녀는 그 상처를 안고 아파하다. 이렇게.. 아직도 아파하고 있는 거다. 처음에 그녀를 만났을 때. 나는 그때가 언제인지 기억 나지는 않지만 아마 내가 그녀에게 어떤 희망을 주었나 보다. 그리고 그녀가 나를 편의점을 찾아 왔을 때. 그 날을 위해서 그녀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아니"

나는 그녀에게 말 한다.

"......정말요..?"

"정말"

진심이다.

편의점에서 첫번째로 그녀에게 사랑을 말 했을 때 그것은 동정이었다.

이 집에서 그녀에게 사랑을 말 했을 때 그것은 두려움 이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진심이다.

내 어딘가가 잘못 되어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이 사람이 이렇게 사랑스러워 보인다니. 내 가 생각해도 정상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이제 연극 같은 건 안 해도 돼"

"네에...?"

"넌.. 날 사랑해?"

"......네."

".....그거면 돼."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몰라도 돼."

"......헤헤.. 네."

"아.. 이것만 알아둬."

"뭔데요?"

"너 정말 사랑스러워."

".......몰라요 그런 거.."

"내가 아니까 괜찮아."

"......네!"

그녀가 자신의 사랑스러움을 아는 데 까지 얼마나 걸릴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괜찮다. 내가 천천히 처음부터 알려줄 태니까.


-끝-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