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그녀에게 관심을 기울였던 때가, 과연 언제였을까.

 

3월. 초봄이 시작되기 직전 짧은 시기의, 이른 아침이었다. 당시의 나는 청소 당번으로서 방과 후에 복도를 돌며 대걸레질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건, 몇 번째인지도 모를 문제를 일으킨 걸로 인해 받아버린 벌이었을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지루함에 몸서리치며 복도를 지나고 있을 때였다. 1학년 B반 교실 문 너머로, 창문 쪽에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있는 소녀가 우연히도 눈에 띄었다.

 

보브컷 스타일로 자른 윤기 나는 흑단색 머리칼, 몽우리가 솟은 그다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가슴. 치맛자락 사이로 보일락 말락 하는 새하얗고 매끈한 허벅지. 수수하지만 예쁜 외모를 한, 어딘가 청초한 느낌의 여자아이였다.

 

그녀는 책상 위에 엎드려, 어딘가 우울하고 텅 비어있는 시선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날 보는 줄 알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저 오른쪽으로 엎드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딘가 애처롭고 부서지기 직전일 것처럼 보이든 그 모습에 끌린 나는, 대걸레질을 하는 것조차 잊은 채로 한참 동안 소녀를 응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녀의 얼굴에 물감이 번지듯이 짜증과 당혹감이 번져나갔다. 수치심이 그녀의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두 눈에는 분노의 감정이 떠올랐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하고는, 그대로 그 교실을 지나쳤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 때 그녀에게 반한 것일지도 모른다.

 

다음 날, 나는 그녀의 이름을 알아냈다. 얀순이. B반에 있는 친구 놈에게 물어본 결과로는, 어딘가 음침하고 남성을 싫어하는 기색이 있는 소녀였다.

 

“그 자식, 뭔가 이상해. 모두에게 미움만 받는다니까. 남자애들에겐 이상하게 공격적이고, 틈만 나면 여자아이들을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본다고.”

 

나는 그에게 감사를 표하고, 교실로 돌아갔다. ‘레즈비언인가? 그럼 고백해봤자 소용 없겠네.’ 그게 내 생각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에 대한 나의 흥미는, 보잘것없을 정도로 식어버렸다.

 

얀순이와 다시 접점이 생겼을 때는, 그로부터 사흘 후였다.

 

점심시간에 식판을 들고 이동하다가 잠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그녀가 내게 달려와서 전속력으로 부딪혔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나는 식판을 놓치고 바닥에 넘어졌고, 뜨거운 국물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팔의 살이 빨갛게 부어오르자, 나는 고통에 신음했다. 범인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들자, 안색이 창백해져서 떨고 있는 얀순이가 보였다. 그녀는 미안해서 떨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분노로 인해 떨고 있었다.

 

“성추행이야!!”

 

그녀는 목이 찢어질 듯한 고음으로, 악착같이 소리를 내질렀다. 귀여운 편인 얼굴이 순식간에 악귀같이 일그러졌다.

 

나는 당황해서 바닥에 쓰러진 채로, 고개를 돌려 나를 둘러싼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상황을 목격한 몇몇은 곧바로 내게 달려와 괜찮냐고 물었지만, 그 후에 몰려온 아이들의 얼굴에는 경멸의 시선이 담겨 있었다.

 

심장이 갈기갈기 찢겨나가고, 혈관이 불타오르는 것만 같았다. 통제할 수 없을 정도의 분노가 뇌를 지배하자,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얀순이를 주먹으로 후려갈겼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패배했다.

내가 그녀를 때리자, 다섯 명이 넘는 남자아이들이 즉시 나에게 달려들어 미친 듯이 나를 주먹으로 때리고 발길질을 날렸다. 나 역시 이를 부서질 듯이 악물고 책상 하나까지 박살내가며 맞섰지만, 상대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씨부랄. 먼저 선빵을 맞은 건 나고, 먼저 누명을 쓴 것도 나다.

 

그리고 나는 딱 한 대만 때렸다고. 이 뒷구멍에다가 전기톱을 꽂아서 반토막내고, 좆대가리를 믹서기에다 쳐넣어서 갈아버릴 새끼들아. 성스럽고 지고하신 여자님의 짭짤한 발가락을 버터견처럼 핥짝거리니까 기분 좋았냐? 한번이라도 비위를 맞춰서 따먹을 수만 있다면, 지들 부모랑 자식마저도 기꺼이 소각장에 꾸역꾸역 욱여넣을 발정난 원숭이 새끼들.

 

 

어쨌든, 우리 어머니께서 눈물을 흘리시며 여기저기 뛰어다니신 끝에 간신히 퇴학은 면했지만, 그 사건 이후 학교에서의 내 취급은 완전히 투명 인간 수준이 되어 버렸다.

폭력을 시도하는 놈도 있긴 했지만, 자극이 들어오면 그 곱절로 지랄하는 내 성질 때문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포기해버렸다.

 

그나마 희소식이 있었다면 얀순이 역시 결말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는 것이다.

 

한 달 후, 얀순이는 대낮의 교정에서 꽃다발까지 주면서 학생회장에게 고백했다.

 

카리스마 있는 3학년 여자 선배였던 회장은, 그녀의 고백을 거절하고 꽃다발을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짓밟았다. 그 때 그녀가 쏟아냈던 욕설은, 2층 교실에 있던 내 귀에까지 아주 생생하게 들렸던 걸로 기억한다.

 

어쨌든 그 사건으로 인해, 얀순이는 내 뒤를 이은 2대 병신 취급을 받기 시작했고 반대로 나는 어느 정도 입지를 회복할 수 있었다.

 

장난기 많은 아이들은, 아예 나와 그녀를 학교 공식 커플이라고 부르며 조롱했다. 얀순이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온 몸을 부르르 떨며 분노를 표시했지만, 나는 그냥 웃고 넘겼다. 진지하게 반응해봤자,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는 소리만 들을 것이 뻔했으니까.

 

물론, 얀순이에 대한 내 분노는 고작 그 정도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최선을 다해 그녀의 약점을 잡으려는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학교가 끝나면, 온갖 수단을 활용해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근처에서 감시했다. 그녀의 집이 가난해서 인적이 드문 곳에 있었고, 내 부모님이 방임주의적이라는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성능 좋은 쌍안경을 구입한 나는, 그것을 활용해 매일 밤마다 얀순이의 집 근처 갈대밭에 숨어 그녀의 집 주변을 살폈다.

모기에 물리거나 순찰하는 경찰에게 들키기 직전까지 몰리는 등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약점을 잡아서 그녀를 조질 수만 있다면 그딴 고통쯤은 가뿐하게 참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그러한 노력은 최악의 형태로 돌아왔다.

 

그날도 어김없이 나는 갈대밭에 숨어 얀순이의 집을 쌍안경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벌써 몇 시간 동안이나 엎드려 있던 나는 서서히 잠에 빠져들기 바로 직전이었다.

 

그 때, 검은색의 무거운 자루를 질질 끌고 나오는 얀순이의 모습이 보였다. 한순간에 잠이 달아난 나는, 급하게 자세를 고쳐 잡고 더 깊은 풀숲 속으로 파고들어갔다.

 

얀순이의 표정은 뭔가 정상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웃고 있었지만,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가 숨어있는 강가 쪽으로 내려오자, 찐득찐득한 액체가 그녀의 옷에 잔뜩 묻어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선배...선배....아흐으........죄송해요.....죄송해요.....”

 

나에게서 15미터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은 물가로 걸어온 얀순이는, 커다란 자루를 바닥에 내려놓고 그것의 매듭을 푼 다음 흐느끼기 시작했다. 어두운 하늘 때문에 처음에는 그것의 내용물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 내용물이 뭔지 알아차렸다.

 

목이 부자연스러운 방향으로 꺾인 회장의 시체가, 자루 안에 담겨 있었다.

 

격렬한 다툼이 있었는지, 그녀의 뻣뻣한 신체는 이곳저곳이 훼손된 상태였다. 얀순이는 차갑게 식어버린 그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고, 끄윽끄윽 거리는 기이한 소리로 흐느끼며 계속해서 이상한 말을 중얼거렸다.

 

극도의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는, 그 와중에도 그것을 찍어야 한다는 기이한 충동에 사로잡혀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카메라를 실행하고, 흐릿한 초점을 맞춘 후 셔터를 누르자 한순간 대량의 밝은 빛이 어둠 속으로 터져나왔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저지른 중대한 실수를 알아차렸다. 플래시 설정을 켜놓은 채로 셔터를 눌렀던 것이다.

 

나는 즉시 그 질퍽질퍽한 갈대밭에서 일어나, 온 힘을 다해 사람이 많은 거리 쪽으로 도망쳤다. 얀순이가 뒤쪽에서 뭐라뭐라 알 수 없는 발음으로 소리를 질러댔지만, 나는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곧바로 핸드폰으로 찍은 시체 유기 현장의 사진을 프린터를 이용해 선명하게 인쇄했다. 만약 파일이 지워질 경우의 백업용이었다.

 

당시의 내 마음 속에, 이미 두려움은 사라지고 없었다. 어차피 내가 잘 모르는 회장 따위, 죽어봤자 별 상관도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기괴한 가학심과 흥분감, 그리고 내일 얀순이를 어떤 식으로 협박할지에 대한 기대감에 몸서리치며, 나는 포근한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 잠에 들었다.

 

애석하게도 당시의 나는, 그녀의 집착을 받는다는 게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지금 이렇게 되어버릴 줄 알았다면, 그냥 그 때 그만뒀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까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