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연기를 하고 있다.

내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이 여자는 내 경호원이다.

"얀붕아, 일어났으면 누나한테 모닝키스를 해줘야지."

나는 이 여자가 너무나도 두렵다.

이 여자는 내 누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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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사업가. 모두가 나를 그렇게 불렀다.

실제로 나는 울산에서 부동산 임대업으로 점점 세를 불려, 이제는 나름 알아주는 회사를 운영 중이다.

하지만, 부산으로 넘어가면서 터줏대감들에게 미움을 사 목숨을 위협받는 처지가 되었다.

부산 출신 건달들의 협박과 방문에 나는 경호원을 고용하기로 했다.


전문 경호업체에서 소개받아서 온 사람은 여자였다.

평퍼짐한 후드에 아무렇게나 모자를 쓴 채 갈색 머리를 대충 뒤로 넘긴 연노라빛 눈동자를 가진 여자.

엄청나게 못 미덥게 생긴 그녀를 보고 바로 업체에다가 컴플레인을 걸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무리 그래도 부산 전역에서 목숨을 위협받는데, 아시아 최대 경호업체에서 이런 인물을 보낼 줄이야.


휴대폰으로 다이얼을 누르는 순간, 내 사옥 앞으로 연장을 든 깡패들이 몰려왔고, 뒤이어 내가 있는 임원실로 뚫고 올라온다고 보고가 들어왔다.

이제라도 지주들에게 넙죽 엎드려야 하나?

그렇게 주위를 둘러보던 중, 방금까지 불만을 제기하려던 여자가 일단은 경호업원이였다는게 기억이 났다.


“거기 너, 이름이.. 아씨, 일단 저거부터 어떻게 해봐!”

“저, 채용인가요?”

“쟤네 다 가면 채용이든 뭐든 원하는거 다 해줄게!”

“맡겨주세요.”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가슴 부근 주머니에서 총을 꺼냈다.

총...?

“야! 그거 뭐야? 쏘지마! 쏘지마!! 불법적인 일을 하면 어쩌란 거야!”

“이거 BB탄인데요.”

...?

“그럼 더 안되지!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아이씨, 괜히 도망갈 시간 버렸네. 그냥 쟤네 들어오면 절하게 비켜봐.”


목숨 앞에서는 체면이고 자존심이고 다 필요 없다.

나는 넥타이를 풀며 최대한 불쌍하게 보이려고 연습했다.

“제 호위 대상이 이럴 줄이야, 한심합니다. 이래 봬도 첫 임무인데.”

“니도 같이 엎드릴 준비나 해”

“싫습니다.”

“안그러면 같이 사시미로...”


말하던 도중, 사무실의 문이 박살이 나며 날아갔다.

머리에 용 문신을 한 대머리가 딱 봐도 양아치처럼 생긴 모습에 체인이 걸린 옷 같은 걸 입은 채로 내게 다가온다.

“그러게 왜 어르신 말씀을 거절하십니까…. 서로 귀찮게 됐잖아요?”

“아니, 로비를 하라고 대놓고 말하는데, 누가 거기서 넙죽 알겠습니다라고 하냐?”

“그래서 제가 여기 왔잖아요. 저희 어르신께서 특별히 얀붕씨는 너무나도 안타깝다고 이 계약서에 싸인만 딱! 해주면 돌아가라 하셨습니다.”


계약서는 당연히 불공정 계약서였다.

내가 부산에서 얻은 이익 절반을 세금 때고 이들에게 넘기는 조건.

“이.. 이..”

자존심이 상했지만, 더 이상 뻐팅기다가는 죽도 밥도 없는 걸 알기에 사인을 하려고 했다.

“쏠까요?”

괜히 옆에서 상황을 보며 멍하니 있는 그녀에게 화나서 툭 하니 말을 던졌다.

“니 맘데로 하세요~”


마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그녀는 깡패들에게 총구를 겨눴다.

“이년이 무슨 장난을 치려고...”

탕-

BB탄 총에서 나오면 안되는 소리가 나왔고 말을 하던 깡패는 그대로 복부를 잡으며

“그거 BB탄 아니지, 개새끼야!!!”

소리를 질러댔다.


아, 일단 생명에 지장은 없네

시시껄렁한 생각이나 하던 찰나, 그녀의 총구에서 계속해서 탄알이 나왔다.

고무인가?

한 명, 두 명 깡패는 피하려고 뛰어다녔고, 마지막에는 서로를 부축하며 3류 악당이 뱉는 대사를 하며 떠나갔다.

“두고 보자~”


옆에서 숨도 안고르며 멀쩡히 서 있는 그녀가 참으로 신기해 서약서를 찢으며 말을 걸었다.

“고맙다. 과정이 어쨌든.”

“채용인가요?”

“어. 이러는데 채용해야지”

“제 이름은 얀순입니다. 잘부탁드릴게요.”

"오냐."

그렇게 나는 호위를 고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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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평탄했다.

그녀는 의외로 전투면 뿐만 아니라 사무보조에도 숙달했고, 점점 더 일에 익숙해져갔다.

그녀가 마음에 들어 회사 관련일도 많이 맡기게 되었고, 월급도 그만큼 올려주었다.

그리고 그녀가 고용된지 반년째인 지금, 설이 다가오는데도 내려갈 생각을 안한다.


"니 안내려가냐? 가족 없어?"

"저 부모형제 없어요."

"... 에이~ 우리가 가족이지 별 다를게 가족이냐? 가족같은 분위기 알아 몰라?"

"가족..?"

"그래그래, 분위기 봐봐. 얼마나 친하냐? 니 이런적 있었냐"

"없었던거같아요."

"그러니 우리가 가족이지 하하하..."

됐다. 나는 패드립을 치지 않았다.


"가족.."

"어쨋든 명절 보너스 줄테니깐 재밌게 놀다 와라. 나도 엄마 보러 서울 올라갈거니깐."

"같이 안가요?"

"내가 내 엄마 본다는데 뭐하러 같이가?"

"가족이라면서요."

"어?"

"가족이라면서요. 가족은 항상 같이 있어야죠."

"아니, 말이 그렇다는거지. 연휴 끝나고 보자~"

멍하니 서있은 그녀를 두고, 방을 나갔다.

나는 이때, 그녀를 좀 더 돌아봤어야했다.


"연휴 잘 쉬었냐?"

"네. 얀붕이는 잘 보냈어요?"

"씨 어따빼먹었냐 씨. 얀붕씨라해. 나름 니 상사다."

"가족사이에는 씨를 붙이는거 아니에요."

"무슨 생뚱맞은 소리를 하는거야?"

"얀붕이에게 선물을 사 왔어요. 여기 받아요."


그녀가 내게 건내준건 한 시계였다.

"오메, 이거 값 좀 나갈텐데 보너스 다 여기다 쓴거야? 나도 명절 선물 준비하긴 했는데 너무 비교되네.."

사실 이런걸 생각 못하고 준비를 안했다.

내가 당장 가지고 있는건 어제 교회에서 주워온 십자가가 잔뜩 박힌 점퍼와 모자뿐.

솔직히 이걸 가져온 이유는 집에서나 입으려고 한거였는데, 이런데 쓸 줄 몰랐다.

"자, 이건 내 선물."

"얀붕아.. 고마워요.."

"존댓말을 하던지, 반말을 하던지 하나만 해라. 헷갈린다."

그녀가 이렇게나 좋아하자 마음이 조금 아리긴 했지만 애써 무시했다.

"첫 선물.."

난 절대 양심이 찔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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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이후부터 그녀는 내게 치근덕거리기 시작했다.

"얀붕아, 저녁먹을래?"

"이제는 말까지 놨구만.."

"곧 발렌타인 데이인데 기대하고 있어?"

"나 아는 여자 없다.."

"알아, 내가 옆에 있잖아. 헤헤"

"근데 왜 물어!"

"내가 주려고 그러지."

"됐다, 그런거 받는 상사 아니다 나는."

"가족끼리는 그래도 되는거야."

"언제부터 우리가 가족이 된거냐.."


어느새 그녀는 당당히 나를 가족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마치 자기 스스로에게 세뇌를 한듯, 한치도 의심없이 자신이 나를 위해 모든걸 바칠 수 있는 누나인양 행세했다.

근데 그런것을 제외하고는 딱히 아무런 일도, 영향도 없어서. 오히려 업무 효율이 증가해서 나는 그대로 냅뒀다.


"자, 이거 발렌타인 선물."

"오! 벌써 왔나? 잘먹을게."

"꼭, 내 앞에서 먹어야해. 알았지?"

"굳이? 뭐.. 오케이"


그녀가 가져온 하트 모양 포장지를 뜯는다.

초콜릿 특유의 달콤한 냄새가 흘렀다.

"오, 수젠가보네. 맛있겠다."

"어서 먹어봐."

이렇게 기대하는걸보니 이상한거라도 넣었나 싶었지만, 딱히 초콜릿맛밖에 나지 않았기에 그냥 맛있게 먹었다.

"얀붕이의 몸 속에 내꺼가..."

"뭐라고?"

"아냐, 맛있게 먹어"

"그래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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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호위의 역할을 충실히 해주었다.

덕분에 나는 부산에서도 승승장구할 수 있었고, 급기야 나를 헤치려했던 자들도 몰아낼 수 있게되었다.


"얀순아, 여기부터 저기까지 이제 다 내땅이다? 솔직히 네 덕도 컸으니깐 좀 나눠줄게. 어디를 원해?"

"왜 갑자기 이렇게 많이 주는거야?"

"뭐, 퇴직금 포함이지. 이정도면 평생 먹고 놀면서 살 수 있을껄?"

"얀붕이 나 짜르려고?"

"짜른다기보다는 이제 안전하니깐 딱히 필요없지?"

"나 경리나 회계도 잘하는데 안자르면 안될까? 부탁할게. 우리 가족인데 이렇게 오래 떨어져도 괜찮겠어?"

"인원도 이제 충분해서.. 특별히 나도 많이 일 안해도 되고 이제는... 그리고 이제 가족놀이도 그만하자."

"뭐라고?"

"자꾸 가족이래 가족은. 나 얀붕 얀씨 장손에 외동이야."

"..."


"그렇게 충격받을 일은 아니잖아? 어차피 우리 사이가 뭐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얀붕이.. 어렸을때 누나랑 결혼하기로 한 약속 잊은거야?"

"엉?"

"얀붕아, 나 누나야. 우리 어렸을때 맨날 서로 키스하거나 사랑을 기약했잖아."

"얀순아, 어디 아파? 오늘 이상한 꿈 꿨어?"

얀순이의 상태가 평소와 달랐기에, 진심으로 걱정이 돼서 물었다.


"꿈이 아니야!!!!!"

"소리는 왜 질러, 처음보네 소리지르는거."

"얀붕이 기억못해? 너가 처음 누나한테 사랑한다고 한날도 내가 기뻐서 소리질렀잖아."

"그게 언젠데 대체.."

"왜 기억 못하는거야!!!!"

그녀가 허리춤에서 뭔갈 꺼낸다.


"얀순아, 멈춰! 그건 진짜 아니야! 아악!"

얀순이가 총으로 날 쐈다.

실탄이 아닌데도 이리 아플줄이야.

설마 내가 저걸 맞을 줄 몰랐다.


"기억못하는... 얀붕이가 잘못이야..."

"그런적 없다니깐!"

"꿈이 아니야!!"

"아악!"

죽겠다. 피는 안나지만 너무 아프다.

"그만쏴, 제발"

"기억나? 얀붕아? 원래 아프면 기억날꺼야. 누나도 얀붕이 때리는게 너무 마음이 아파."

"미쳤어? 너 내가 고용한 경호원이잖아!"

"아니야!!!"


어느새부턴가 그녀안에서 나는 그녀와 어릴적부터 함께한 유일한 혈육임과 동시에 그녀와 백년기약을 한 약혼자이기도 했다.


"아악!"

이번 총알은 좋지 못했는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미친..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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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붕아, 정신이 들어?"

"으으.."

"나 알아보겠어?"

"너 내 경호.."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총을 움켜지는 얀순이를 보며 나는 곧장 말을 바꿨다.

"누나.. 크윽.. 나 잘 지억이 안나.."

"괜찮아. 누나가 하나 하나 다시 알려줄게."

그제야 웃는 얀순이를 보며 나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연기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연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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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척 너무 꼴리는 둣. 념글보고 바로 써봤음

다음엔 착각계 얀붕이도 쓰고 싶다

링크종합 : https://arca.live/b/yandere/207587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