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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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킬레우스와 거북이에 관한 역설 알아?

아킬레우스는 왜 거북이를 따라잡지 못했던 걸까?

사실 이 모든게 아킬레우스를 속이기 위한 연극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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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은 항상 누구와의 경쟁으로 뒤덮여 있었다.

누군가를 쫓고, 누군가를 따라잡고, 결국 누군가를 뛰어넘는 인생이 나의 인생이었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오, 웬일로 얀붕이가 1등이 아니네?"

"그렇네. 1등이..어, 쟤 저번에 전학온 얀순이 아니야?"


시작은 고등학교 3학년 9월 모의고사였다.

사실 별 생각은 들지 않았다.

또 따라잡으면 되니까. 또 뛰어넘으면 되니까.


"학원 두개 더 늘려야겠네."

이미 빽빽한 스케줄표에 어거지로 학원 두개를 끼워넣는다.

하루에 3개의 수업.

고등학교 1학년 때 체력적인 부분에서도 모두를 뛰어넘기 위해 열심히 운동을 했기에, 체력적인 부담은 없었다.

그저 10월 모의고사가 빨리 찾아오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남들을 짓누르고 그들의 반응을 보며 기뻐하는 부류의 사람은 아니었다.

그냥 내 성격이, 남들 아래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것 뿐이었다.

.

.

.

.

...뭐지? 이럴리가 없다. 이런 일은 있을수가 없다.

10월 모의고사가 끝나고 내가 받은 전체 석차는 2등.

1등은 또 얀순이었다.


"어머, 얀순아 축하해~!"

"에헤헤, 고마워..그냥 운이 좋았던 것 같아."


내 1등을 앗아간 장본인이, 내 옆에서 축하를 받고있다.

그녀와 나의 자리가 한참 먼데도 불구하고. 굳이.


"이럴 때가 아니지. 오늘은 내가 매점 쏜다! 가자!"

"오~ 반 꼴찌 탈출 기념이야?"

"닥쳐 이년아"


다들 웃고 떠들며 교실을 빠져나갔다.

...그 애만 빼고.


"...쯧."


분명히 들었다

나를 비웃는, 그 한심하다는 듯한 소리를.


"방금.. 뭐라고 했어?"


"어머, 잘 안들렸나봐? 다시 한번 들려줘?

쯧. 이라고 했어.


넌 그냥 내 아래에 계속 처박혀 있어.

니가 아무리 노력해도, 내 아래에서 벗어날 순 없을 거야."


상상도 못한 말을 내게 쏟아내고는, 자리를 뜬다.

엄청난 수치심과 모멸감이 내 몸을 훑고 지나간다.

동시에, 엄청난 반발심과 분노를 느낀다.

이 분노는 모든 것의 원천이 되어, 그녀를 뛰어넘을 날개를 달아주리라.

이제 남은 것은 하나. 수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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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실패했다.

역대급 불수능이라고 불리는 시험이었다.

모든 1타 강사, 선생들이 만점자는 없을 거라고 입을 모아 단언했었다.

모든 과목을 통틀어 하나 틀린 나도 그럴 줄 알았다.

만점자가 되지 못한게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얀순이를 이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OO회 수능 만점자 단 한명..그 비결은?'

'수능 만점자 OO고 얀순양의 공부방법!'

'수능 만점자 얀순양이 다닌 학원은?'


어떻게? 무슨 짓을 했길래? 뭘 어떻게 공부했길래?

나는, 이번에도 그녀를 이기지 못했다.


나를 비웃는 그녀, 아니 그년의 얼굴이 떠올라 잠을 설친지도 오래다.


...어쩌면, 나는 그녀를 이기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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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성적우수자 장학금은 얀순이한테 돌아갔네."

"그러게. 얀붕이는 맨날 아깝게 떨어지고."

"이정도면 얀순이가 얀붕이 천적 아니야?"


몇 번째지?

번번히 그녀에게 패배한 뒤로는 그 횟수를 세는 걸 그만두었다.

나도 수능 성적은 우수했기 때문에 그녀와 같은 일류 대학에 들어갔지만, 그렇다고 그녀를 이길 수 있다는 건 아니었나보다.


"어머, 불쌍해서 어쩌니? 이번에도 나한테 무참히 찢겨버렸네?"

"..."


그리고 그녀가 나를 매도하고 모욕하는 횟수도 자연스레 늘어났다.


"그러니까..예전에 모의고사 때 딱 느꼈어야지..

난 너를 못이긴다고, 얌전히 무릎 꿇고 살려달라 빌어야겠다고.."

"..입닥쳐."

"뭐라고? 그 한심한 주둥아리로 떠드니 잘 안들리네?"


"그 걸레같은 입 여물라고!"


실수했다.

순간의 감정을 주체 못하고, 큰소리를 내버렸다.


"ㅋㅋㅋ 저새끼 열폭하네 ㅋㅋㅋㅋㅋ"

"말 심하네.. 아무리 얀순이가 얄미워도 그렇지, 선 넘은거 아니야?"


당연히 반응은 좋지 않았고, 얀순이는


"난, 난 그냥..괜찮냐고 물어보려던 거였는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었다.



자연스레

대학교 내에서 내 평판은 개판이 나버렸고,

그나마 있던 친구들까지 나를 버리고 얀순이에게 붙었다.


오히려 좋았다. 좋다고 정신승리를 했다.

인간관계를 모두 끊고,

취직에만 집중하자.

졸업하자마자 대기업에 입사하여 그년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자.


..그때라도,

나는 언제나 그녀의 손바닥 안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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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신입사원 김 얀 붕 인사드립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번에는 성공이다. 실패할 리가 없었다.

내가 노력한 대로 졸업하자마자 일류 대기업에 입사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아무리 그녀라도, 그 괴물이라도 나를 이길 수 없었다.

이번만큼은 내 승리였다.



승리였어야 했다.


"여기서 보네? 얀붕아."

"네..네가 어떻게..."

"어머, 몰랐어?"


그곳에는

내가 보고싶지 않던

죽어도 보기 싫던


"나 여기 부회장."


얀순이가 있었다.


"아..아아..."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는다.

나는 그녀를 이길 수 없다.

아무리 내가 날고 기어도

그녀의 발 아래에 있는 한낱 미물일 뿐이다.


내 머리는 사고를 중지하였고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흐른다.

헤벌어진 입은 다물 생각이 없다.


주저앉은 내게 얀순이가 다가온다.


"그러게..내가 처음 말할 때 무릎 꿇었어야지.

내 앞에 무릎 꿇고 빌었어야지.

나는 당신을 죽어도 못 이긴다고,

제발 이 불쌍한 개새끼를 거두어달라고 말했어야지.

니가 이렇게 뻗대니까 나도 이럴 수밖에 없었잖아?

뭐 그래도.."


손을 뻗어 내 얼굴을, 아니 내 목을 움켜잡는다.

망가질 대로 망가져버린 내 얼굴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이렇게 망가진 모습도 보기 좋네.

내가 너를 얻으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생각해보면...

이 정도는 약과야.


자, 이제 어떻게 해야할지 알겠어?"


본능이 시킨다.

지금이라도 그녀에게 무릎 꿇으라고,

사죄하라고.


"죄송합니다...제가 멋모르고 날뛰었습니다...

저는 언제나 얀순님의 밑이었습니다..

제발 이 한심한 새끼를 거두어가 주세요..."


그날,

얀순이가 자신의 집으로 나를 데려갔을 때도

얀순이가 내게 저녁을 먹일 때도

얀순이가 나의 몸을 탐할 때도


내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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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다녀올게."

"다녀와."

"그래. 집에선 뭘 하라고?"

"난 하등 쓸모없는 쓰레기니까, 아무것도 하지 말고. 숨만 쉬고 있을게."


얀순이가 만족스런 얼굴로 집을 나선다.


문이 닫힘을 확인한 후, 침대 위에 다시 눕는다.

이제 얀순이가 올때까지 내가 할 일은 없다.

얀순이와 결혼한 이후, 나는 집에서만 생활하는 인간쓰레기가 되어버렸다.

불만은 없다.

나보다 모든 방면에서 잘난 얀순이가 모든 것을 해결하니까.

난 그저 얀순이의 만족을 위한 인형에 불과하니까.


그렇게 생각하던 도중.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얀순이가 무언가를 놓고 갔나?

하는 생각에 밖으로 나가보니

빠루를 든 강도가 있었다.


"뭐.뭐야!"

내가 있을 줄 몰랐는지, 당황한 기색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주.죽어!!"


목격자를 제거하려는 것인지 내게 빠루를 휘둘러댄다.

그런데..


뭐지?

빠루의 궤적이 선명하게는 아니지만 보인다.

왜 보이는 거지?

...맞다. 나 운동했었지.

남들보다 월등했을 정도였...어?


내 머릿속에 무언가가 희미하게 떠오른다.


"맞아, 맞으-"

무작정 빠루를 휘둘러대는 강도를 때려눕히고 생각에 잠긴다.


난..운동을 잘했었지.

운동만 잘했던 건가? 다른 건?

공부는? 못했었나?

아니,아니야. 난...


"...아"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 녹이 슨 톱니바퀴가, 삐걱대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머릿속에서 톱니바퀴가 맞물리며, 얀순이가 감춰둔 내 본모습과 현재의 내가 대면한다.


"아하하...아하하하하..."


웃음이 끊임없어 새어나온다.

기쁨의 웃음이 아닌, 자학의 웃음이.

우습다. 내가 참 우습다.한심하다.

자괴감이 몰려와 내 가슴을 짓누른다.

3년 동안을 이렇게 살다니.

내가 너무나도 한심해서 살 수가 없다.

그렇기에, 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녀를 뛰어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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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고 돌아온 얀순이를 반기는건

목을 매단 얀붕이의 시체였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얀붕이는 죽음으로서 그녀를 뛰어넘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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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두개쓰려니까 힘드네

사실 얀순이에 의해 자신이 억눌려가며 살아가던 얀붕이가 

자신이 얀순이만을 뛰어넘을 수 없던거지 다른 일반적인 사람들보다는 훨씬 월등하다는걸 깨닫고

자괴감이 몰려와 괴로워하다가

죽음으로서 얀순이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뛰어넘는다는

그런 스토리를 쓰고 싶었는데

후반부가 내가 원하는 대로 써지지가 않아서

얼렁뚱땅 마무리했네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한번 고쳐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