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붕이는 평범한 꼬맹이었어, 환하게 웃고, 다른 애들이랑 장난도 치고, 놀러다니는... 그런 평범한 소년.

그런 얀붕이네 옆집에는 얀순이라는 한 살 차이인 누나가 살고 있었고, 그 누나는 가끔 얀붕이와 놀아주면서 그럭저럭 좋은 사이로 지내고 있었지.

그런데 어느날 얀붕이네 가족이 해변가에 놀러갈 일이 생겼을 때, 평소랑 다른 모습으로 얀순이가 얀붕이에게 말한거야.


'바다에 절대로 다가가면 안돼.'


얀붕이는 그 말을 확실하게 들었지만, 어린애이기에 금방 흥미가 다른 곳으로 옮겨져서 잊어버리고 말았지. 그리고 그 행동의 결말을 처참했고.


바닷가로 놀러간 얀붕이네 가족은 같이 손을 잡고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얀붕이에게 있어서 처음보는 바다에 다가간 거야. 책으로만 바다를 봤었던 얀붕이는 바다는 정말 짤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가갔고, 그런 얀붕이를 부모님은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지.

그런데 바다의 색깔이 탁했기에 얀붕이는 급격한 경사로 인해서 자신이 발이 닿지 않는 곳을 보지 못하고 발걸음을 향해버렸고, 그대로 빠져버렸어.


그 후 정신차린 얀붕이에게 들린 건, 자신이 바다에 빠져서 아버지가 자신을 구하려고 바다에 뛰어들었다는 이야기, 물결에 휘말려들어서 멀리까지 갔다가 겨우 아버지가 데려왔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 아버지는 자신을 데리고 돌아오다가 해파리에 쏘여서 죽었다는 이야기.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죽었다는 사실을 얀붕이는 받아들이기가 힘들었고, 문득 얀순이 누나의 말이 떠올랐어.


'바다에 절대로 다가가면 안돼.'


얀순이 누나의 말을 잘 들었다면, 이럴 일은 없었을텐데. 내가... 내가...

그런 죄책감들이 얀붕이에게 쌓여가기만 했지.


눈 깜짝할 사이에 아버지의 장례식도 치뤄지고 얀붕이는 정신차릴새도 없이 집에 돌아오게 되었어. 다행히, 얀붕이네 집은 맞벌이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경제상황이 크게 안좋아지는건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얀붕이네 어머니께서 버시는 돈이 아버지보단 적었으니 그걸 메꾸기 위해서 얀붕이네 어머니는 야근도 하고 밤늦게 돌아오게 되었지.


그러다보니 얀붕이의 마음 속 상처를 아물게 할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 옆집의 얀순이 누나빼고는 말이야.

얀순이 누나는 얀붕이가 터덜터덜 학교에서 돌아올 때마다 자신의 집으로 오라고 했어.

얀붕이는 반겨줄 사람도 없는 싸늘한 집보단 얀순이 누나와 있는 게 훨신 더 나았고, 그렇게 얀붕이는 얀순이 누나의 집에 가는게 일상화된거야.

그런 얀붕이를 집으로 들여보내고, 품에 안아서 얀순이는 귀에 속삭이는거야


'왜 내 말을 듣지 않았어?'

'내 말을 들었으면 얀붕이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지?'

'얀붕이가 내 말을 안 들은 탓이야.'

'그러니까 얀붕이는 내 말을 들어야해.'

'얀붕이가 내 말을 듣기만 하면 모든 게 잘될거야.'


이렇게 매일 속삭이니 죄책감에 시달리던 얀붕이는 점점 얀순이에게 의존하게 되었고, 점차 얀순이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게 된거야.

그 후부터는 갑자기 모든게 잘 되기 시작했어.

얀순이가 하라는 대로 하니까 의도치 않게 어머니의 일을 돕는게 되어버려서 어머니도 승진을 하게 되어 예전처럼 늦게까지 회사에 있을 필요가 없어져서 다시 어머니와 같이 있을 수 있게 되었고, 주변 사람들에게 평판이 좋아져서 대인 관계도 좋아지고... 그렇게 점차 얀붕이의 상태는 나아져갔고, 마음의 상처는 아물어가는 것만 같았어.


시간이 흘러 얀붕이가 중학교로 올라가게 되었어, 그 중학교는 얀순이도 다니는 중학교여서, 초등학교가 달랐던 때와 다르게 중학교 내에서도 얀순이와 마주치게 된거야.

그런데 아직 사춘기를 보내기 직전인 중학교 1학년 시절의 남자들에게 있어서 여자와 논다는 것은 놀림받을 일이었지. 그렇다보니 점점 얀붕이를 놀리는 애들이 많아졌고 얀붕이도 그런 일로 인해서 점점 얀순이를 찾아가는 것을 그만둬가게 된거야.


그렇게 3일, 단 3일이지만 항상 만났던 얀순이와 만나지 않았던 길디긴 3일이 지나고, 오늘도 얀순이를 피해서 집으로 들어갈려고 일부러 얀순이의 하교 시간대보다 늦게 귀가한 얀붕이가 현관문을 열기 직전에 바로 얀순이가 자기 집 문을 열었어.

다급하게 들어가려는 얀붕이, 그런 얀붕이를 보면서 얀순이는 한 마디만 한거야.


'지금 당장 어머니 마중나가는게 좋을거야.'


하지만 얀붕이는 그 말을 무시하고 들어갔고, 얀순이는 그걸 보면서 살짝 웃으면서 집 문을 닫았어.

그리고, 얀붕이의 어머니는 강도로 인해 사망했지.


인생에서 경험하는 2번째 장례식. 얀붕이가 천애고아가 된 날, 얀순이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장례식을 끝마쳤고, 아무도 없는 집으로 돌아갔지.

또였어.

또 얀순이의 말을 무시해서 부모님이 죽었어. 그런 주제에 또 얀순이의 도움을 받았어.

부끄럽다고 얀순이를 무시하지 않았으면, 달라졌을텐데, 또...

그런 얀붕이를 얀순이가 집으로 데려와서 어릴 때와 똑같이 다시 껴안고 속삭이는거야.


'또 내 말을 듣지 않았구나'

'아버지도 어머니도 둘 다 그렇게 싫었어?'

'왜 내 말을 안 들었어?'

'왜 나를 피했어?'

'이젠 그러면 안되는 거 알지?'

'이젠, 내 말만 따르는거 알지?'

'다른 사람의 말은 듣지마.'

'얀붕이는 내 말만 들으면 되니까.'


아물었던 것 같은 마음 속 상처는 다시 크게 벌어졌고, 이전보다 더, 확실하게 얀순이의 목소리는 얀붕이의 머릿 속을 지배해나갔어.

이제 얀붕이는, 온전히 얀순이의 것이 되어버린거야





저는 미래가 보입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1초,1분,1시간,1일... 여러가지 순간의 미래가 보였어요.

그래서 그런지 저는 다른 아이들보다 상당히 빠르게 성숙해졌답니다.

두 살때부터 논리적으로 또박또박 자기 주장을 말할 수 있는 여자아이. 처음에 부모님은 신동이라고 좋아하셨어요. 그래서 전, 큰 실수를 저질러버렸죠.

눈을 감을때마다 보이는 부모님이 저를 버리는 미래를 무시하고 부모님이 좋아하는 것을 보려고 노력하는 짓거리를 해버린거 말이에요.

그 노력을 보고 오히려 부모님은 저를 없는 것처럼 행동하게 되었고, 그렇게 전 5살 때부터 실질적으로 육아포기당해서 돈만 받고 알아서 살아야했답니다.

정말, 충격이었어요. 알고 있었지만, 계속 눈을 돌렸기에, 그러기에 더욱요. 그래서 울고 있는 저에게 옆집사는 얀붕이라는 애가 손을 내밀어주었답니다.

제가 그 손을 거절하니까 누나 왜 울어? 괜찮아? 하면서 내 주변을 떠돌던 아이. 그것 뿐이었는데, 웃기게도 전 그 어린아이에게 사랑을 느껴버렸습니다.


하지만, 눈을 감을 때마다 보였어요. 얀붕이가 저를 떠나게 될 날이 언젠가 올지도 모른다는 걸. 그게 지금은 높은 확률은 아니지만, 그럴 수가 있다는 걸.

이번에 저는 제가 보는 미래를 의심하지 않고 대처하기로 했습니다.

얀붕이가 저와 영원히 함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거기에 대한 답을 어린 저는 얀붕이가 자기가 없으면 살지 못하게 만든다. 즉, 의존하게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어떻게 의존하게 만들까가 문제였죠.

약? 얀붕이가 약에 의존하는 건 싫었어요. 약 따위가 나의 얀붕이를 침식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았으니까요. 애초에 약물의존으로 따르게 하는건 리스크가 높아요. 딴 사람이 채갈 수도 있다는 거니까요.,

폭력? 제 손으로 얀붕이를 때리긴 싫어요. 얀붕이는 사랑스러운 존재지, 학대해야할 존재가 아니니까요.

그렇게 고민하다, 저는 결국 답을 생각해냈답니다.

내 말을 따르지 않으면 얀붕이가 나쁜 방향으로 가게 하고, 내 말을 따랐을때만 좋은 방향으로 가게 하면 될거라고.

허술한 계획이라 하지 말아주세요. 미래가 보여서 나름 어른스러웠다고 해도 저는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못한 어린아이였는걸요.


그래서 저는 미래가 보이는 제 능력을 사용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운 좋게도 그렇게 마음먹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얀붕이네가 여행가게 되었어요. 저에게는 그것에 관련된 여러 미래가 보이고 있었죠.

얀붕이네 가족이 전부 살아돌아오는 미래, 얀붕이만 살아돌아오는 미래, 부모님 중 하나만 죽고 돌아오는 미래...

그 중 저는 얀붕이네 아버지만 돌아가시는 미래로 정했어요. 얀붕이에게 바다에 관한 동화책을 읽어주거나, 바다는 엄마 같다는 글을 보여주거나...

그렇게 바다에 좋은 인상을 심은 다음, 저는 얀붕이에게 말한거였어요.


'바다에 절대로 다가가면 안돼.'


하지만, 그 동안 제가 바다에 대해서 좋은 말만 들려줬는데, 얀붕이가 그런 말을 듣겠어요? 제 계획대로 얀붕이는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만들었어요. 얀붕이는 크게 슬퍼했고, 그 슬픔이... 저를 의존하게 만들 수 있는 큰 틈이었죠.


뭐, 그래서 꽤 잘 되긴했어요. 조금 황당한 말도 얀붕이가 큰 의심없이 따르게 되었으니까.


그렇게 즐거운 시간이 지나면서 얀붕이는 점점 저에게 떨어져나가려는게 보였어요. 그래서 저는 초조해...하지 않았어요. 왜 일부러 제가 얀붕이네 어머니를 살려두었다고 생각하세요?

쐐기를 박기 위해서에요.

얀붕이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 점점 저랑 같이 지내는 것을 멀리하겠죠. 그렇게... 그렇게 멀어졌다가, 또 다시 제 말을 안 듣고 부모님이 돌아가신다면, 얀붕이는 그 때부터 저의 말을 무시하려고 할까요? 저에게서 떨어지려고 할까요? 이미 아버지를 제 충고를 듣지 않아서 죽여버렸는데?

아아, 그러니까 그 때는 냅뒀어요. 얀붕이에게 나쁜 것을 알려주는 얀붕이네 잡 것들도, 얀붕이에게 흥미를 가지고 접근하려는 창년도, 단순히 부끄러워서 저에게 다가오지 못하고 있는 귀여운 얀붕이도.

그래서 그 날, 얀붕이가 저보다 늦게 올 그 날, 저는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으로 불려놓았던 돈을, 일부러 얀붕이네 어머니와 같은 옷을 입고, 같은 화장을 하고, 누군가가 보면 얀붕이네 어머니로 착각하도록 해서 어떤 사람에게, 다른 사람이 볼 수 있게 대놓고 건내주고 얀붕이네 어머니가 다니는 회사에 들어가서 변장을 풀고 집으로 돌아갔어요.

그리고 나서 얀붕이에게 말한 거였죠. '지금 당장 어머니 마중나가는게 좋을거야.' 라고 말이에요


아, 혹시나 착각하실까봐 말하는데, 정말 얀붕이가 그 때 당장 얀붕이네 어머니를 마중나갔다면 강도에게 얀붕이네 어머니가 죽을 일은 없었을 거랍니다? 얀붕이가 다치면 안되잖아요. 그러니까 안전책정도는 마련해놨죠.

그래도 제 기대를 벗어나는 일 없이 얀붕이는 제 말을 따르지 않았고, 결국 얀붕이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말았죠.


그러고 나서는 간단했어요. 이미 어린 시절에 제 말이 옳다고 생각했으니, 그걸 어긴 얀붕이가 잘못했다고 얀붕이의 머리에 새기고, 죄책감을 자극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면 안된다고 속삭이고... 제 말만 들으라고 세뇌하고.


그렇게 얀붕이는 저를 완전히 의존하게 되었고, 저는 얀붕이의 미래를 잡아버린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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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데레 성분 적었던 글 올린거 사과겸 소재도 떠올라서 한 번 써봄. 근데 이거 일단 분류상 얀데레 맞는거지?


미래를 볼 수 있다면 폭력없이 얀붕이를 지배하지 않을까라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