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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렸을 때는 누워있는 상태였고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산소공급기와 각종 기계를 확인해봤지만 역시 공기가 선외로 누출되었다는 기록은 없었다. 


끔찍한 악몽일 뿐.


꿈속에서 어떤 여자가 내 뇌를 만진 것, 우주에서 떠있는 것은 신비롭다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반대로 얀순이 섬뜩한 메세지를 보내거나 숨이 막히는 것은 정말 끔찍했다.


그런 끔찍한 꿈이 대체 어떤 감정의 발로인지 나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지금 이미 죽음에 대해 달관한 상황이라고 자부할 수 있었고 불안, 슬픔이나 체념은 이미 소화시켜버렸기 때문이었다.


얀순에 대한 마지막 희망이 있는 것일까. 그와 만날 것이라는 것이라는 일말의 가능성에 대해 여전히 희망을 갖고 있는 것인가.


나는 몇주전에 그만둔 얀순에게 보내는 메세지를 다시 보냈다. 그녀가 알아듣지는 못하더라도 그저 내가 아직 있다는 것을 그녀에게 알리고 싶었다.


‘얀순 어디야?’


‘얀순아 너랑 만날 수 있을까?’


역시나 답은 없었다. 그렇게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다.


다시 꿈에 이상은 없어졌다. 평소처럼 아예 꿈을 꾸지 않거나 그냥 가벼운 정도의 꿈을 꾸었다.


나는 다시 나의 최후를 향한 잠에 들었다.


이제 식량은 바닥이다. 정말 식량이 없다. 무한한 산소, 풍부한 물은 있지만 이제 식량이 없다.


정말 나, 얀붕이라는 존재의 최후가 눈앞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아직 식량이 많이 남아있던 몇주 전까지만 해도 죽음에 대해 달관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죽음이 눈앞에 닥치니 공포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굶어죽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물만 마셔서 어떻게 버틸 수 있지 않을까.


허기졌을때의 고통은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겪어본 적이 없었다. 그저 대학원생 시절 실험이 며칠 길어졌을때 이틀 정도 굶은 것이 다였다.


그때도 충분히 배가 고프고 힘들었는데 몇주를 버틸 수 있을까.


끊임없는 의문과 함께 절망이 생겨난다.


며칠이 더 지난다.


물배만 잔뜩 채우지만 근본적인 배고픔이 해결되지가 않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고통스럽다. 


더이상 무언가를 할 수도 없을 정도로 머리에도 짙은 먹구름이 내 지식과 사고를 잔뜩 가리고 있다.


나는 마지막 선택을 하기로 한다.


그전에, 나는 얀순에게 마지막 메세지를 보낸다.


‘잘있어, 얀순. 너와 만나고 대화해서 즐거웠어. 아무래도 나는 여기서 죽음을 맞을 것 같다. 부디 너는 행복하기를…’


그녀가 알아듣지 못할지도 모르는 메세지를 전송하고 나는 울음을 터뜨린다.


굶주림으로 계속 고통받는 것보다는 그냥 지금 목숨을 끊는 것이 좋은 선택일터.


나는 선내의 모든 전기공급을 끊는다. 전등, 산소공급기에 전기가 차례대로 내려간다.


산소공급기가 꺼지면 산소농도는 조금씩 내려간다. 천천히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몇십년전에 나온 자살용 기계와 유사한 원리다.


몇분이 지나고 나는 천천히, 잠에 들듯이, 눈을 감는다.


-


또 꿈이었다.


약 3주일 전 내 머리에 손을 집어넣는 여자의 꿈, 그리고 일주일전 우주에서 떠돌다가 얀순의 메세지를 받는 공포스러운 꿈, 그리고 내가 죽음을 맞는 꿈.


나의 진짜 최후가 다가올수록 꿈은 조금씩 공포스러워졌다.


남은 식량은 이제 열흘 남짓.


이 꿈을 꾸기 전까지 나는 정말 차분하다고, 초탈하다고 생각했으나 나의 무의식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제 이해했다. 내 꿈이 점점 공포스러워지는 것은 죽음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꿈에서 깨어나 있을때 나는 모든 것에 초연하다고 착각했던 것이다.


믿고있었던 단단한 유리벽이 산산조각난 기분.


진실을 깨닫자 죽음에 대한 공포와 고립된 상태의 외로움, 그리고 마지막 희망이라고 생각했던 얀순에게 사실상 버려지고 말았다는 슬픔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나는 통신기를 들어 얀순의 마지막 메세지를 다시 읽었다. 어느덧 한달 반이나 된 메세지.


‘얀붕 돌아가고 싶다! X’

‘나 돌아가고 싶다 너’


처음에는 얀순이 나를 곧 찾아올 것이라는 메세지로 해석했지만 몇주가 지나도 얀순은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두달이 가깝게 지난 지금은 사실상 올 수 없다고 해석하는게 합리적이었다.


눈물이 줄줄 흘렀다.


이 메세지가 나와 타인의 마지막 통신이었다니.


난 이제 이 우주선에 갇혀 꼼짝없이 죽게되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초연한 감정이 완전히 사그라들고 나는 고통스러운 아사 또는 질식사를 기다리는 가여운 짐승이 되어버렸다.


‘얀순아 어디야?’


‘얀순아 제발 나타나줘…’


‘얀순… 제발…’


그가 나의 마지막 희망, 헛된 희망일지라도 메세지를 보내는데는 아무런 리스크가 없으니까 나는 그에게 미친듯이 메세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의미없다는 것은 나에게 의미가 없었다.


이제는 죽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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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후에도 사흘 후에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


나는 정신을 완전히 놓아서 한참동안 울다가 멍하니 어두운 우주공간을 바라보거나 밥도 제대로 챙겨먹지 않았다.


그 덕분에 열흘치 식량은 닷새가 지나서도 8일 정도나 남았다.


우는 것도 빠르게 열량이 소모되는 행동이라 자제해야 하지만 어디 그게 되겠는가.


이제는 잠에 드는 것이 아니라 지쳐서 그대로 뻗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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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전기를 내리고 눈을 감으면 우주의 소리가 귀로 들리는 것 같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몽환적인 소리.


생의 마지막을 이런 소리속에서 마감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쿠궁…’


멀리서 행성이 진동하는 소리가 들린다.


지진이 난 걸까. 나는 가만히 생각에 잠긴다.


‘쿠구구구…’


점점 지진 소리가 커진다.


‘쿠과과과과…’


소리가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지자 나는 눈을 뜬다.


조종실의 커다란 창문으로 강렬한 빛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태양을 똑바로 쳐다보아도 이렇게 밝은 빛은 본적이 없었다.


나는 다급히 손으로 눈을 가렸다.


‘쾅!’


우주선이 무언가에 부딪힌 것 같았다.


나는 황급히 관리 모니터를 보았다. 센서가 도킹부에 무언가 걸렸다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동시에 통신기가 메세지 수신을 알리는 소리를 냈다.


‘얀붕, 내가 왔다. 얀순이다.’


나는 눈을 비비고 다시 메세지를 읽었다.


피시식 공기가 빠지는 소리가 나면서 도킹 데크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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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쓰는데 빠르게 완결낼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