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장"

달도 비치지 않는 어둠 속에서 검은 재킷의 남자가 가파른 숨을 내쉬며 달리고 있다.


그리고 그의 뒤를 바짝 쫓는 단발 머리의 여성, 그녀는 달리는 것을 잠시 멈추고 남자의 등에 활을 쏘았다.


화살은 남자의 등, 오른 쪽 날개쭉지를 맞혔지만 치명상은 아니었다.


"썅" 남자는 짧은 욕을 뱉었고 계속 달렸다.


"누나가 매형 등에 한 두 발까지는 박아 넣어도 괜찮지만 조심히 노려서 쏘래." 

단발 머리의 여성의 귀에 있는 송신기로 앳된 목소리의 남성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알겠어. 계속 형부가 어디로 가는지 알려줘." 단발머리의 여성은 앳된 목소리의 남성이자 그녀의 남편에게 짧게 답한 뒤,

 남자에 대한 추격을 계속하였다.


"응" 

'매형...' 


한참을 단벌 머리의 여성을 피해 달아나던 남자는 어느 새 멈춰서 바닥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형부! 이제 더 이상 도망칠 곳도 없네요?" 

단발 머리 여성은 남자를 결국 따라 잡았다.  그렇게 그 둘은 한 건물의 옥상에서 맞딱 뜨리게 되었다.


검은 재킷의 남성은 그녀에게  차갑게 말했다.

"역시 특수 부대 출신 경호원 팀장이네. 권총에 소음기를 달아서 날 충분히 쏠 수 있었겠지만 활이 더 조용한 무기라서 효과적인 걸 알고."


단발 머리 여성 역시 가볍게 웃으며 응수했다.

"형부도 민간인 치고는 꽤 오래 도망다니신거예요. 그리고 형부 말도 부분적으로 맞아요. 

  권총을 들고 오긴 했지만 소음기를 써도 소리가 나긴 하죠. 걸리면 귀찮잖아요?"


검은 코트의 남성이 차갑게 말했다.

"...올 때까지 시간 끌꺼면 좀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하든가. "


"눈치는 진짜 빠르시다니까. 어차피 이제 도망 칠 곳도 없으시잖아요? 설마 뛰어내리시게요? 뭐 본 얼티메이텀 찍으시려고?"


그녀의 말대로 지금 그들의 위치는 건물의 옥상, 그리고 그 밑으로는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검은 코트의 남성은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헬리콥터 한 대가 그들이 있는 건물 옥상으로 착륙하려 하고 있었다. 


한편 헬리콥터에서는 한 여성이 경호원들과 함께 내리고 있다.

검은 긴 생머리, 새 하얀 피부, 큰 키, 누구라도 반할 모습의 미모의 여성이 검은 정장을 입고 그들에게 걸어오고 있었다.


"유영 언니, 오랜만이에ㅇ...?" 단발 머리의 여성은 웃으며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나 정작 유영은 그녀에게 일절 시선 조차 주지 않고 검은 재킷을 입은 남자에게 차갑고 어두운 시선을 보냈다.


남자는 그녀의 시선에 시선을 회피하였다.


"야"


남자는 유영이 고함을 지르고서야 그녀를 겨우 다시 바라보았다. 

"...."

"야 한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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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우현과 유영은 사무실에서 처음 만났다.


"네, 한우현이라고 합니다."

"진유영"


둘의 첫 만남은 그저 침묵만이 흐를 뿐 이었다. 

그렇게 1주일에 1번 만나는 상담 시간이, 1년 11개월이라는 기나긴 수 차레의 침묵의 상담 시간 끝에 유영이 첫 마디를 먼저 꺼냈다.


"처음이네."


"네?"


"보통 상담사들은 자기들이 먼저 말을 해서 피상담자가 안심하고 말을 꺼내게 하는데 

너는 오히려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역으로 내가 먼저 말을 꺼내게 했잖아."


"저는 듣는게 편해서요. 제가 아무리 노력해서 이야기 하게 만들어도 사람은 방어 기재가 있으니.

 차라리 자발적으로 먼저 말이 나오도록 하는게 좋을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지금부터가 본격적으로 상담 시작이겠지만 오늘은 돈은 안 받을게요. "


"왜?" 


"남들에게 말하기 힘든 자신의 이야기를 겨우 털어놓는데 돈까지 내야 한다면 부담이 생기잖아요."


"호구네. 추가 비용을 얻어 낼 좋은 기회일텐데."


유영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현은 그녀의 이야기에 그저 듣기만 할 수 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 부터 기업의 후계자로 길러지기 위한 가혹한 학습량, 정해진 일과대로 하지 않을시 행해지는 가혹한 처벌들, 

몰래 좋아하던 이성을 빼앗긴 경험 등, 이외에도 수 많은 안타까운 사연들. 


우현은 그녀의 비극과 같은 슬픈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녀가 왜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후천척으로 소시오패스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다른 이들을 신경쓰다가는 오히려 자신이 죽을 테니까


"그래서 내가 잘못한 거야? 아니잖아?" 유영은 자신의 슬픈 이야기를 담담히 우현에게 털어놓았다.


우현은 애써 담담한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하며 말했다.

"당신 잘못 아니에요."


"뭐? 다른 상담사들은 다 나보고 문제가 있다고 했는데?"


"당신 잘못 아니라고요." 우현은 계속 그 말만을 반복하며 유영을 안아주었다.


그렇게 한참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며 유영을 안아주던 우현은 어느새 그의 옷에서 축축한 느낌이 들었다.

유영은 그의 품 속에서 울고 있었던 것이었다.


유영 역시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어린 시절부터 눈물을 보이면 그녀의 부모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전부 호통을 치며 화를 냈기에  최선을 다해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지금과 같은 성격으로 변했는데 그녀를 안고 있는 이 상담사는 오히려 자신은 잘못이 없다 괜찮다고 그녀를 달래주며 그녀를 받아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유영이 진정된 것 같자 우현은 유영에게 물어보았다.

"내일도 오시겠어요?"


"내일까지 못 기다리겠어.

그냥 나하고 계속 상담하자. 

다른 년들의 이야기는 듣지 말고 내 이야기만 들어줘. 

내 옆에서 계속 내 이야기를 들어줘. 내 옆에만 있어."


우현은 내심 그녀의 집착이 마음에 들었지만 이전과 같은 경험을 반복하기 싫어 퇴근해야 한다고 말하고는 그녀의 곁을 떠났다.


그리고 7일 뒤 검은 재킷을 입고 마트에 간절히 바라던 조니워커 한정판을 팔기 시작한다고 연락이 와서 잠깐 물건을 구매하러 가다가 유영을 상담하기 이전 환자였던 단발 머리 여성 최진아에게 쫓겼고, 건물 옥상에서 유영과 만나게 된 것이었다.   


한참 유영을 바라보던 우현은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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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아, 정신이 좀 들어?"


"..."


"이제 보니 너 나 처럼 상처 받은 사람이었구나..."


'설마 설마 설마'


"심리학 해외 유학을 위해 입국한 직후 조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시는 걸 듣고, 돌아가려 했지만 가지 못해서 임종도 못 챙겨 드리고. 

아차 군 제대 직후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사무실 입사한 직후에는 어머니까지 돌아가셨네.

그런데 정작 사촌들은 널 도우려하지는 않고 네가 상속받을 유산에만 신경써서 화가 난 너는 그들을 손절했고.

그리고 여자친구의 경우, 네가 호구처럼 퍼주기만 하다가 다른 남자를 만나서 떠나고. 

두번째 여자친구의 경우 이번에는 다른 태도를 유지하려 했으나  네 천성 때문에 그러지 못하고 첫 번째 여자친구 처럼 

그녀에게 버려졌잖아."


우현은 유영의 말에 말로 이루말할 수 없을 만큼 분노하였다. 

자신의 슬픈 과거가 강제로 들어났는 데 가만히 있는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읍읍읍!!"


유영은 그런 우현을 말없이 안아주었다. 마치 그가 그녀에게 해주었듯이.


"괜찮아 니 잘못 아니야."


"나는 평생 네 편이 되어 줄게. 네가 나를 도와줬듯이.

그러니 너도 평생 나만 바라봐. 내 옆에서 내 이야기를 듣고, 

다른 년들의 털어놓는 말 따윈 듣지마. 내 말만 들어"


그런 유영의 말에 우현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우현의 입에 물려있던 재갈을 유영은 풀어주었다.


" 정말이죠? 정말 누나는 나 안 버릴꺼죠?"

우현은 눈물을 흘리면서 유영에게 물어보았다.


유영은 미소를 지으며 우현의 입에  그녀의 입술을 맞췄다.

그리고 말했다.

"응. 우린 결혼한 부부잖아 자기야."


진정된 우현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인생의 모든 불행은 다 이때를 위해서 였나봐. 이렇게 훌륭한 아내를 만나기 위해서."


유영은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나도 그런 것 같아, 다른 상담사가 아닌 자기를 만나서 다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