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주제를 고집하신다면 아무도 작가님 작품을 좋아하지 않을겁니다."

"저희 갤러리는 앞으로 작가님 작품은 받지 않겠습니다."



"하......"




핸드폰을 떨구며 한숨을 내쉬는 그녀의 이름은 얀순

전업화가다.


일년 가까이 열정을 다해 만든 그림을 가지고 갤러리를 찾아갔지만

돌아오는건 거절 뿐.


그들의 냉담한 반응에 우울증이 생겨나는 듯 했다.




"내가 보기엔 완벽하기만 한데...."




반품당한 그림은 그녀의 화실 중앙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사지가 잘리고 내장이 흘러나오는 채로 비명지르는 천사의 모습

고통스러운 표정이었지만 눈만큼은 웃고 있었다.


그로테스크한 모습이 왜 그녀의 작품이 반품되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듯 했다.




 "천사님....아직 세상은 당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림을 완성하느라 몇날 몇일 밤을 샌 탓에 낮임에도 불구하고 피로가 몰려왔다.

한참동안이나 천사를 바라보던 그녀는 그림 앞의 소파에 몸을 뉘었다.




"오늘도 찾아와 주실 거죠?"




잠들기 직전까지도 자신이 창조한 작품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그녀는

곧 조용한 숨소리를 내며 수마에 휩쓸렸다.


부스럭거리며 몸을 뒤척이던 그녀는 곧 배고픔에 눈을 떴다.

널찍이 뚫려있는 채광창을 쳐다보니 어두운게 이미 밤이었다.




"하암~"




오랜만에 깊이 잠들어 몸은 상쾌했지만

그녀가 바라던 천사는 꿈에 나타나지 않았다.




"왜 안왔어요...."




투정부리듯 그림속의 천사에게 말을 내뱉던 그녀는

꼬르륵거리는 생체시계에 부엌으로 느릿느릿 걸어갔다.




"아, 마트 가야하는데."




혼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렇듯 매 끼니를 배달음식으로 시켜먹던 그녀의 냉장고는

간단한 반찬조차 없이 술과 카페인 음료로 가득했다.

 



"배민이...."




핸드폰을 찾으러 화실로 돌아가 배달 어플을 켜 보지만

배달 가능한 음식점의 개수는 0.




"여기는 이게 안 좋단 말이야."




시골로 내려오면 진짜 작품을 만들 수 있을거란 생각에 여기까지 들어왔지만

이곳은 게으른 예술가가 살기엔 너무 불편한 곳이었다.


그녀가 아직 남아있는 이유는

여기에 온 첫날 밤 천사님과 만났기 때문이었다.


꿈에서의 아찔한 만남을 되뇌일 때마다 그녀는 아랫배가 저려왔다.




"흐읏....❤"



그녀는 젖어오는 비부를 달래주려 팬티에 손을 집어넣었지만

이내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다시 손을 빼내는데 성공했다.




"일단 밥부터 그리고.... 여기서는 안돼."




그녀는 그림 아래쪽에 튄 얼룩을 보았다.

완벽한 그림에 유일한 흠.


그걸 볼때마다 묘한 감정에 휘둘리곤 했다.


욕구를 참아내지 못하고 그의 앞에서 스스로를 위로하다 

그림에 튄 절정의 분수.


황홀경 속에서도 본능적으로 그녀의 물이 그림에 튀었음을 알아차렸을 때

그녀는 생애 최고의 오르가즘을 경험했다.


그때를 회상하니 몰려오는 죄책감과 배덕감에 천사의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아.... 저혈당 약 먹어야지."




흥분이 사그라들자 순간적으로 찾아오는 저혈당에

머리가 핑 도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주머니에 항상 가지고 다니던 포도당 사탕 하나를 입에 넣고는

벽에 기대어 우물거렸다.




"예술가들이 단명하는 이유가 다 있다니까."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 가장 그녀를 위협했던 건 바로 불규칙한 식습관이었다.


스트레스로 인한 과도한 폭식과 음주, 그리고 작업에 집중하는 며칠동안의 단식

직업 특성상 어쩔 수 없이 식습관이 변하자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했고 

곧 당뇨가 찾아왔다.


그녀의 한탄처럼 그녀의 신체는 언제 죽어도 모를 정도로 위태로웠다.




"냉동피자나 먹을까?"




위장에 때려박은 포도당의 위력인지 금새 혈당은 정상으로 돌아왔고

익숙한 일이었는지 혼잣말을 담담하게 내뱉었다.


그녀는 오늘따라 피자가 먹고 싶었는지 대충 옷과 지갑을 챙긴 뒤 집을 나왔다.








예술가의 고집이었는지 그녀의 집은 마을에서도 끝에 위치했고

가장 가까운 마트조차 걸어서 10분 거리였다.


오랜만에 운동하는 셈 치고 걷기로 한 그녀는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하아...하아...."




몇 분 걷지도 않았는데 땀이 비오듯 흘러내렸다.

이정도로 몸이 쓰레기가 된 줄을 몰랐는데

그녀의 몸은 그녀의 생각보다 더 심했다.


심지어 배도 고파 헛것이라도 보이는지 저 멀리서 희끄무리한 인영이 일렁거렸다.




"저기요! 도와주세요....!"




정말로 쓰러질 것 같은 느낌에 젖먹던 힘까지 끌어내어 겨우 소리치자 

다행히도 그 인영에게 외침이 닿았는지 그가 돌아봤다.




"도와...!"




흰색 티를 입은 남자가 뒤돌아보더니 그녀를 발견하고 

곧장 그녀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마침내 가로등이 어둠의 장막을 거두어 그의 얼굴을 보여주었고

그녀는 천사를 보았다.














"저기요! 괜찮으세요?"




저혈당 쇼크에 잠시 기절한 그녀는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깨어났다. 


시멘트 바닥의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자신과 1m도 떨어지지 않은 천사의 얼굴은 꿈에서 나온 그와 완벽하게 일치했다.




"정신이 들어요?"


"아.....!"


"제 목소리 들려요?"


"아아......."


"구급차 부를까요?"




그는 혼이 나간 사람처럼 나즈막히 탄성만 내지르던 그녀가 걱정됐는지 119를 부르려 했지만

그녀는 혹시 그와 떨어질까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




"저혈당이에요?"




그녀가 어떻게 알았냐는 듯 눈을 휘둥그레 뜨자

그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살짝 미소지었다.




"저희 가족 중에서도 저혈당 환자가 있거든요."

"그거 매일 가지고 다녀서 알아요."




주머니에서 삐죽 튀어나온 포도당 사탕을 가리키며 설명하자,

그녀가 이해했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어 서실 수 있겠어요?"




그가 그녀가 일어나는 걸 도와주었지만

힘이 풀린 연약한 다리로는 서 있기도 힘들었다.




"업혀요, 데려다줄게요."




그녀는 그가 내민 넓은 등에 심장이 두근거리는 게 느껴졌다.


이게 진짜 현실이 맞을까, 내가 꿈을 꾸고 있는건 아닌가

그런 생각은 어서 업히라는 그의 재촉에 이내 사라지고

등에서 전해져오는 따뜻한 온기만이 느껴졌다.




"집 어디에요."




그의 말에 조심스럽게 집 방향을 가리킨 그녀는 

등에 기대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을 뇌에 각인시키고 있었다.


그의 체향, 온기, 목소리까지.


꿈에서는 느낄 수 없던 것들이 지금은 여실히 느껴졌다.


그녀는 이 순간이 영원하기 바랐지만

그의 큰 보폭으로는 그녀의 집 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비밀번호 뭐에요."


"2....3....7..."




조금이라도 더 이렇게 있고 싶어 최대한 천천히 말해보지만

끝은 다가오기 마련이었다.



곧 문이 열리고 아무것도 없는 거실의 풍경에

그는 그녀를 업고 화실로 걸음을 옮겼다.




"몸은 좀 어때요?"




그의 물음에도 그녀가 그의 얼굴만 바라보자 

그가 멋쩍게 웃었다.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살짝 고개를 젓자 그는 다행이라는 듯 웃어넘겼다.



하지만 사실 그녀가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본건 다른 이유에서였다.




'천사님....'




그림속의 천사와 현실의 천사가 함께 있다니.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그녀는 그림과 똑같은 얼굴의 남자를 보고 있자니 미칠듯한 창작욕구가 차올랐다.


 지금도 저리 아름다운데

그림의 모습처럼 더욱 완벽해진다면?


인정받지 못할 창작욕을 충족할 마지막 기회이리라



흥분해 떨리는 그녀의 손을 눈치채지 못한 그는 

어색해진 분위기를 풀고자 말을 걸어왔다.




"혹시 화가세요?  저도 그림공부...."


 


화실 안을 둘러보던 그의 눈에 들어온 기묘한 그림에 

그는 말을 끝까지 이을 수 없었다.



사지가 잘리고 창자가 튀어나온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한 울부짖는 천사


잔인하기보다는 역겨운 천사의 눈웃음에 얼굴을 찌뿌린 그의 뒤


그녀의 손에는 소주병 하나가 들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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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챈 처음인데 이런것도 얀데레 맞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