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장, 얼마나 달렸을까.
체력이 점점 딸려오는 것이 느껴진다.
"..데인님.. 힘드시면, 제가..."
"아니야..."
얘는 무슨.
자기보다 머리 한 통은 더 큰 사람을 들겠다고.
"....끄으윽..."
"데인님! 이 여자 안색이 정말 안 좋아요!"
빌어먹을.
독이 온몸으로 퍼져가고 있나보다.
살리고 내 편이 된다면 확실히 효용가치가 높겠는데...
과연 살렸다고 내 편이 되려고 할까?
내 계획에 동참하려고 할까?
"...그러,니까... 죽이라고... 했잖아.."
깜짝아.
정신을 잃은 줄 알았는데 귀에 대고 말하니까 놀라지.
.....아니야.
이렇게 업고 왔는데 힘들다가 던져버릴 수도 없지.
체면이 있는데 말이야.
..아리에는 그걸 바라지 않는 것 같지만 말이다.
"이 길만 지나면, 이제 산인거지?"
"...네!"
"조금만 버텨요, 용사님!"
"살아서 복수해야지! 내가 도와줄게요!"
살아.
네가 살아야지 내 계획에 네가 도움이 되지.
살아남는다면, 내 계획에 동참할 사람이 두 사람이나 되는거다.
아리에와 이 퇴역 용사까지.
그들 의견은 물어봤냐고?
어떻게든 끌어들여야지.
.
.
.
.
.
"데인님, 생명나무에요!"
"드, 드디어...!"
"그런데.. 이 여자 얼굴빛이 보라색이에요!"
젠장.
독이 정말 다 퍼져, 목숨만 붙어있는 상황이다.
"...치료해야 해. 아리에, 도와줄 수 있지?"
"....네."
아리에는 곧 기도를 하듯 두 손을 모으더니, 뭐라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
"..그래, 빨리."
"................................."
"아리에, 뭐라고 하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좋아. 그러니까, 빨리!"
이렇게 힘들게 끌고 왔는데 죽어버리면 좋을 것 하나 없잖아!
그러니까 좀 빠르게 말하라고!
이 달리기만 빨라터진 엘프년ㅇ..
"됐어요! 이제 생명나무가 이 여자를 치료해줄거에요."
믿고있었다고, 아리에!
곧,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생명나무가 움직이더니, 용사를 감싸앉기 시작했다.
되게 듬직하게 생겨서는 섬세히 나뭇가지로 화살촉을 제거하고는...
상처구멍 사이로 가지를 집어넣서는.... 우욱.
내시경도 아니고..
오히려 더 상처를 후벼파는거 아니야?
"아리에, 저거 치료해주는거 맞아? 조금 이상.."
"헤헤.. 저 잘했죠?"
"어,어?"
"저.... 저 여자를 제 보금자리로 데리고 오는거 정말로 싫었어요."
언제는 사람들이 오지 않아서 슬펐다며?
"그래도 데인님 부탁이여서 노력해서 저 여자를 살렸어요!"
"잘했죠? 헤헤헤.."
"으,으응.. 그런것... 같네.."
얘 조금 맛이 간 것 같다.
하루 사이에 맛이 가버린건가?
아니면 원래부터 맛이 간건가?
그건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이 엘프소녀는 조금 이상한 상태였다.
"...치료 끝났네요. 한 반나절 후면 멀쩡해질거에요."
"좋았어! 고마워, 아리에."
이제, 저 용사가 깨어나면 인정으로 좀 어필을 해야겠다.
잔뜩 낯간지로운 말들로, 예를 들어 당신을 이해하는 등 나라가 썩어빠졌다는 등의 말로 위로를 해준 후에 내게 슬슬 마음을 열게 만들어야 한다.
아리에는 조금 맛이 가버린것 같지만, 내게 마음을 충분히 연 상태고 내가 하자는 말은 잘 따르고 있다.
이렇게 어감이 조금 이상하지만 어쨌든 조교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크고 지속적인 한탕을 벌기 위한 계획을 알려주고 끌어들여야 겠지.
이름하야 '데인교 프로젝트'.
크으 --
계획이 확실히 내 머릿속에 정리되자, 남은 것은 시간문제 뿐이라는 생각에 나는 여유롭게 풀밭에 주저 앉았다.
"..데인님, 여기요."
"배고프실 것 같아서 또 가지고 왔어요."
아리에는 또 내게 플링 뭐시기를 내밀며 싱긋 웃더니 내 옆에 앉았다.
"오, 고마워. 아리에. 잘 먹을게."
-와삭.
으음.
이 과즙.
당뇨병 걸릴 것 같아.
"...저, 데인님."
"응."
"저 질문이 있는데요.."
"그래, 뭐든지 물어봐."
그래.
저 용사도 살려주느라 애를 써주었으니 대답 못 할 것도 없지.
뭐든 물어봐.
팬티색 물어봐주는 것도 오늘은 기꺼이 포상으로 넘길테니.
"..아까, 그 도적떼들이 말하는 걸 들었어요.."
"데인님더러, 사기꾼이라고 하던데....."
"........"
"........."
뭐야, 이 분위기.
아리에, 너.
예쁘다 예쁘다 하니까 자꾸 신경을 건드리네.
조금 강수를 두어야겠다.
"..내가 사기꾼이면, 날 여기서 내쫓을거니?"
"네?"
"아....아니요..! 전... 데인님이 사기꾼이시든 아니든 전혀 상관이 없어요..!"
좋아.
얘는 완전히 나에게 잡혀있다.
그럼 빌드업을 들어가볼까나.
"나는... 사기꾼이 아니야."
"...거리에서 박해받는 신세였지."
"...네..?"
"오늘 갔던 내 집만 봐도, 난 정말 불행하게 살아왔어."
"..그렇게 살다가... 살다가.."
"...살다가...?"
지금 딱 던져버릴까?
아니, 지금은 무리수일까..?
아냐, 얘 눈 좀 봐.
완전 몰입해있다고.
엘프는 천성이 순진하고, 누군가를 잘 믿는 성격이라고 이 생의 어릴 적 들은 적 있다.
이 초롱초롱하게 나를 보는 눈이 빨리 말해달라고 독촉하는 듯 하다.
그래, 던지자.
"내가 성인식을 하고 나서야 깨달았어."
"...무엇을요..?"
"내가, 신의 사자라는 걸 말이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