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르트가 의외로 연애물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안 이후로, 히비스커스가 종종 취미로 연애물과 관련된 주제로 이야기하는 일종의 동아리 같은 그룹에 어울리면서 점차 대원들에게 살가워지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는 그 '동아리'에 속한 멤버들만 말이다. 


 히비스커스의 주도하에 만들어진 동아리는 주로 연애와 관련된 영화를 틀어서 관람하거나 소설이나 책등을 읽는, 그냥 연애물과 관련된 것이라면 뭐든 가능한 참 소녀틱한 동아리였다. 인원은 크게 몇 명 없는데, 히비스커스와 왠지 모르게 따라온 라바. 영화 볼 때 팝콘 준다는 이유로 들어온 케오베, 그리고 새로 들어간 수르트 정도로 안 그래도 얼마 없었는데 그 나마 수르트가 들어온 덕분에 인원이 늘어서 그런지 분위기가 더 살아난 느낌이었다. 수다 떨기는 나쁘지 않다나 뭐라나. 


 한 번은 박사가 심심해서 그 동아리를 참관한 적이 있었다. 일도 없고, 괜히 궁금해져서 참석해봤는데, 기존에 알고 있었던 수르트는 어디가고 연애물에 집중하는 한 명의 소녀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건 꽤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보통 영화화하면 망작이다, 뭐다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거는 그런 징크스를 없앤 작품 중 하나랄까요?"

"동국 옆에 있는 나라가 영화는 잘 만든다고 하던데... 반도 녀석들, 제법이잖아?"

  

 동국에서 만든 원작을 기반으로 한 다른 나라에서 만든 영화를 같이 관람하면서 히비스커스와 수르트의 대화였다. 라바도 조용히 관람 중이었고, 케오베는 팝콘을 씹으면서 영화는 보는 둥, 마는 둥,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박사도 마찬가지로 영화를 조용히 관람했다. 딱히 영화보는 것에 취미가 있는 건 아니고, 많이 보는 것도 아닌 박사이나, 생각외로 유치한 점은 있어도 재미는 확실히 있었다.


 영화의 내용은 대충 모종의 사고로 기억을 잃어버린 여성과 그 여성의 기억을 되찾아주기 위해 동분서주한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었다. 처음에는 코믹스러운 연출도 있었지만, 중반부에 가니 왠 제 3자가 끼어들어 기억을 잃은 여인이 넘어갈 뻔 하지만, 기적적으로 기억을 되찾고, 여성과 남성이 재결합해, 키스를 하는 것으로 끝나는 내용이다.


 여성이란 참 미묘한 존재다. 히비스커스를 보아라. 별 거 없음에도 감동 받아서 훌쩍이며 잘 됐어. 잘 됐어. 라며 눈물을 훌쩍이는 게 아닌가. 라바랑 수르트는 별 반응은 없지만 감명은 있는 듯 하고, 케오베는 어느새 박사의 무릎을 배게 삼아 잠들었다.


 그나저나, 기억을 잃었다는 점은 매체에서 참 좋은 소재라는 것을 알게 해준 영화이기도 했다. 크게 성공하지는 못한 영화라는데, 영화는 '공감'을 얻는 것에 대해서도 플러스 점수를 받는데, 여기서는 영화에 공감할 수 있는 존재라면 박사와 수르트 딱 둘이었으니까 말이다. 


 케오베가 하품을 하면서 눈을 뜰때쯤에 영화가 끝났고, 히비스커스는 라바에게 휴지를 받고 흐르는 감동의 눈물을 닦고 있었다. 


 수르트는 그런 영화를 보고 나서는 진중한 표정이 되어있었다.


 영화가 감명 있었다는 표정이 아니었다. 무언가가 해결하지 못한 찝찝함과 알듯말듯한 아리송함이 섞인 복잡한 표정. 참관도 다 했고, 나가려고 했던 박사의 발목을 잡는데 충분한 역할을 해주었다. 보통 저런 얼굴로 박사에게 상담을 하러오는 오퍼레이터들이 있었기에 수르트도 얼마안가 박사에게 질문을 할 거라는 예감이 들어서 별 생각 없이 수르트에게 먼저 말을 걸기로 했다.


"복잡한 생각하는 모양인데,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어?"


 영화를 보면서 박사가 앉아있던 의자를 끌고 수르트의 옆에 앉았다.


"아니, 그냥... 내 기억하고 관련된 거라서."

"그러면 내가 더욱 신경을 써줘야겠네."


 영 미덥지 못한 표정으로 박사를 바라보지만, 수르트도 스스로가 마땅히 의지할만한 대상이 없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한숨을 한 번 내쉰뒤 자신이 느꼈던 심경을 박사에게 말하기로 했다.


"별 거 아니야. 영화를 보고 나서 떠오른 기억 중에 남자가 한 명 있거든."

"호오?"


 꽤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잘하면 수르트에 대한 것을, 그녀의 기억을 좀 더 확실하게 되살릴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저 영화를 보면서부터 계속 그래. 이 기억에서 남자는 뭐랄까... 다정해."

"흐음."


 수르트에게 다정한 남자라.  

 어쩌면 이런 상태이기 이전에 친하게 지냈던, 그런 부류의 남자라고 생각했다. 그때 수르트의 성격도 이랬을지, 아니면 반대였을지는 모르겠으나, 수르트가 이런 성격이었다면 남자가 호구거나, 아니면 대인배, 성격이 반대였으면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을 것이다. 그 남자에 대한 것을 알게 되면 수르트에 대해 큰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게 아니라면 그냥 영화의 내용을 자신의 기억으로 받아들이는 착각의 문제일 수도 있다.


"혹시, 영화 내용을 왜곡시킨 건 아니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번 떠보았다. 수르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영화의 내용이 아니야. 확실히 내 기억이야...아닐 수도 있고..."


 확실하다. 라고 단정짓지 못하는 복잡한 표정이 신경 쓰였다. 결과적으로 수르트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에는 실패했다. 


 이후에도 수르트는 연애물에 관한 관심이 계속 높아졌다. 일이 없는 날에는 혼자서 서점에서 책이나 만화를 구매하거나 DVD 대여 및 판매점 또는 인터넷을 통해 영화나 드라마를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시청하기도 했다. 

 

 저러한 의외의 모습은 시간이 날때마다 보여줬으면 다른 오퍼레이터들이 보기에는 참 의외다. 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수르트는 그 연애물에 집중할 뿐이었다.


 허나, 그러한 수르트의 모습이 좀 이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처음 봤을 때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았는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연애물을 보는 것이 즐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모르는 것을 백과사전에서 찾으려 하는 듯한 모습이 박사가 보기에도 지나치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봐, 수르트. 너무 책에 열중하는 거 아니야?"


 순간, 광석벽의 영향의 정신계까지 침투하면 과도할 정도로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경향이 생긴다는 보고를 본 적이 있는 것을 떠올렸다. 수르트의 행동이 그것과 비슷하다고 느껴  문제가 생긴 게 아닐까 하는 걱정에 수르트를 말리기로 했다. 

 허나, 수르트는 책에 집중할 뿐 박사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것 같았다. 자세히 보니 눈가에 다크서클까지 낀 것을 보아하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것 같았다.


"수르트. 잠시 책 좀 내려놔."  

 

 못 들었을 것 같아서 목소리도 높였지만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박사는 별 수 없이 수르트의 책을 빼앗았다.


"아..."


 그제야 반응하는 수르트. 몇 일 잠을 못잤다는 것을 광고하듯이 다크서클은 물론이고 그녀의 얼굴이 무척이나 수척해졌다.


"너 괜찮아? 반응도 제대로 하지 않고, 무슨 문제 생긴 줄 알았다고."

"오, 오늘이 몇 일이지?"


 설마 몇 일이고 연애물에 빠져있었던 건가?


"너 책만 들고 다닌지 3일 정도 지났는데 날짜 계산도 안한 거야?"

"..."


 별 대답하지 않은 채 고개를 떨구었다. 깜짝 놀란 박사는 수르트의 상태를 살펴보는데 눈을 감고 새근 거리는 것으로 보아 잠에 빠진 상태다. 3일 동안 잠도 안자고 아이스크림만 먹으면서 지냈으니 피곤할 법도 했다. 일단, 체력적으로 지친 수르트를 위해서 숙소로 데려가기로 했다.

 운동은 죽어라 하기 싫어하고, 앉아서 서류 작업을 하거나, 그나마 움직여도 현장에서 지휘하는 게 전부라 체력적으로는 전선에서 활동하는 어린 오퍼레이터보다 못하겠지만, 업어서 데려다 줄 정도의 힘은 있었던 박사는 수르트를 등에 엎었다. 


 숙소로 향하는 복도. 박사에게 조용히 엎힌 수르트가 잠꼬대를 하는지 뭐라고 중얼거리는 게 들렸다.


"...알 것 같았어."


 박사에게 말을 걸었다. 잠꼬대가 아닌 것 같았다. 


"뭘?"


 박사가 수르트에게 물었다.


"내 진짜 기억."


 가상매체를 보고 현실을 찾아낸다는 말은 좀 우스웠다. 


"수르트. 아무리 그래도 네가 본 거는 다 사람이 만든 거잖아."

"...맞아. 하지만..."

"하지만?"


 수르트는 뜸을 들였다. 그마저도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 못하는 것일까.


"...알 것 같았단 말이야..."


 가끔 연상되는 무언가를 보고 잊어버린 기억을 떠올린다는 경우도 종종 있다. 전쟁 참여해서 기억을 잃었던 어느 군인이 자기가 썼던 제식 무기를 보고 그 때의 악몽일 떠올린다는 슬픈 일도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박사도 자신이 잃어버린 기억의 한 편을, 그의 앞에 나타나는 뜻 밖의 존재들로 일부분이 떠오르기도 한다. 수르트가 기억을 잃은 것이 아닌, 어떤 것이 진짜 기억인기 구별하지 못하는 것과 다른 이치라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박사는 자신 전용 마스터키로 수르트의 숙소에 들어갔다. 사방에 책과 DVD등이 널려 있는 것으로 보아 3일 동안 연애물만 줄기차게 봤던 게 거짓말이 아닌 것 같았다. 


 이거 좀 심각한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을 뒤로 한 채 수르트를 침대에 눕혔다. 다시 곤히 잠들어 있는 수르트의 얼굴 표정이 유독 밝아보였다. 전투나 일을 한 것도 아닌 자기가 좋아하는 일로 이렇게 피곤해질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부디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미래가 오기를 바랬다.






성격 거친 애가 연애물 같은 거에 빠지는 거 생각나서 넣어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