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무가 있었다.

한 소년이 있었다.


나무는 소년을 사랑했고

소년 역시 나무를 사랑했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면,

나무가 소년을 너무나도 사랑했다는 것이겠지.

소년이 나무를 사랑하지 않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아이야, 따가운 햇볕이 네 고운 살결을 붉게 물들일까

걱정되는구나. 어서 내 가지 밑으로 오려무나."


소년은 말 없이 그늘에 가서 앉아 나무 기둥에 몸을 기댔다.


"나의 아이야, 힘이 없어 보이는구나. 열매가 달려 있는 가지를 

그리로 뻗어줄 테니 이걸 먹고 기운을 차리렴."


소년은 말 없이 열매를 받아 먹었다.

분명 처음 베어물었을 때는 달콤했을 터인데,

이제 와서는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의 아이야, 네 얼굴에 슬픔이 서려 있구나. 어째서 내게

미소를 보여주지 않는 것이더냐?"


"..."

"너가 있었기에 행복했지만, 

너가 있었기에 내 삶은 불행해졌으니까."


잠깐의 정적이 흐른다.


"나의 아이야, 네 어찌 내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이더냐?

난 그저 네가 행복하기를 바래서..."


"내가 친구를 데려올 때마다 열매나 벌레를 떨어뜨려서

어느샌가 난 혼자가 되어 버렸어. 내 여자친구를 데려온 날에는

벌집을 떨어뜨렸었지. 그 아이는 아직도 병원에서 나오지 못했고."


바람은 불지 않을 터인데, 나무의 가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런 인간들은 필요 없다. 내가 있지 않느냐. 

오직 나만이 너를 이토록 아끼고 보살펴줄 수 있단 말이다..."


"넌 그냥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것에 불과해! 

내겐 그늘도, 열매도 필요 없었어! 나는..."


자신이 하려던 말 조차도 눈물에 젖어 흐려졌는지,

울먹이며 읊조리는 말은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난 그저... 혼자가 되고 싶지 않았을 뿐인데..."


소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땅으로 떨어졌으나,

나무의 뿌리는 그 눈물마저 놓치지 않고 마셔 버렸다.

그 정도로 나무는 소년을 소중히 여겼다.

자신의 품에서 두 번 다시 떼어놓고 싶지 않을 만큼.


"그래서 나를 떠나가겠다는 것이냐?"


나무의 목소리가 점점 가라앉는다.

소리에 형태가 있었다면, 마치 칼날처럼 날카로웠을 그 소리.


허나 그 앞에서도 소년은 겁먹지 않았다.

눈물을 닦아내고 그저 당당히 읊조릴 뿐이다.


"그래. 네가 나에게 무엇을 줄 수록, 

나의 소중한 것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갔으니까.

내 가족, 친구, 연인...


그리고 나의 자유까지도."


"아낌 없이 사랑을 쏟아부었거늘, 

이리도 무정하게 떠난단 말이더냐."


지면이 흔들린다.


"!?"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소년은

그대로 뒤를 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나무의 뿌리가 흙을 뚫고 올라와 소년의 주변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소년이 어디로 도망치더라도, 무성한 가시덤불이 앞을 가로막았다.

마치 나무가. 이 숲 전체가 소년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헉...허억..."


소년은 멈출 수 없었다. 지금 발을 멈춘다면, 

그 결과는 두 번 다시 돌이킬 수 없을 테니까.


"나의 아이야! 나는 네게 모든 걸 주었거늘, 네 어찌 떠나려 하느냐?

너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그늘을 만들어 주마.가장 달콤한 열매도

맺혀 보이마. 원한다면 내 가지를 잘라가도 좋다! 그러니 제발...


떠나지 말아 다오!!!!!"


소름끼치는 외침이 숲에서 메아리친다.

소년은 이런 광적인 사랑을 바라지 않았기에

더욱 멈출 수 없었고,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를 즈음

간신히 숲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 두 번 다시는 그 숲에 발을 들이지 않으리라.

그리고 기억의 한 켠에 새겨진 공포를 영원히 두려워 할 것이다.


자신을 사랑했던,

아낌 없이 주는 나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