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은 경비병을 사랑해버렸다 (54)

 

 

 

 

 

111.

 

왠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었다.

 

끝도 없이 밑으로 곤두박질치는 이 감각.

 

숨조차 쉴 수 없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이건, 위험한데…….’

 

나야 일반인에 비해 몇 배나 오랫동안 호흡하지 않아도 버틸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게

 

이 땅속에 파묻혀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오래 버텨봤자 몇 분이다. 물고기도 아닌 내가 몇 시간이 버틸 수 있을 리는 없다.

 

“꾸루루루룩-”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다.

 

주위를 얼렸다간 꼼짝없이 갇힐 테고, 미래 예지는 이 상황에 도움이 되질 않는다.

 

애초에 위아래도 구별되지 않는 이 상황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죽는다.

 

그런데 어째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평온하다.

 

‘생각해보면……처음 그곳에서부터……나는 죽으려고 했으니까.’

 

얀센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거기서 죽었으리라.

 

이 허무함이, 어찌할 수 없는 절망이, 나를 죽였겠지.

 

‘……널 만나서 다행이었어.’

 

끝없는 구멍 속에 빠진 나를, 너는 몇 번이나 끄집어냈다.

 

너는.

 

얀센, 너만큼은-

 

……철컥!

 

그 순간, 무언가가 내 멱살을 잡았다.

 

‘이건……?’

 

동시에- 몸이 붕, 위로 뜨는 것 같았다.

 

무언가가 나를 잡았다, 그리고 지금 나를 여기서 끄집어내고 있다.

 

하지만, 누가?

 

첨벙-!


빛이 보였고, 그 다음엔 얀센이 보였고, 숲이 보였다.

 

“콜록, 콜록……!”

 

“아가씨! 무사하십니까?!”


“내가 어떻게……아니, 잠시만……그 의수였나.”


얀센의 의수에서 ‘손’이 분리되어 있었다.

 

손목 부근에 와이어가 연결되어 있었는데, 구조상 안에 와이어가 내장되는 것 같았다.

 

“꽤 편리한 기능이잖아, 그거.”


“저, 저도 솔직히 어떨지 몰랐습니다만…….”


“또 너한테 목숨을 빚져버렸네. 얀센.”
 
“저도 아까 빚졌으니까, 딱히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샤크아의 ‘지느러미’가 땅 위에 솟아나, 우리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함부로 움직였다간 바로 공격당하겠지…….

 

“이제 어쩝니까?”


“땅 위에서 싸우는 건 자살행위야. 너무 불리해.”


어디서 튀어나올지도 모르고, 또 붙들려서 끌려 들어갔다간 정말로 끝장이다.

 

……그래. 땅 위에서는 불리하다.

 

“얀센, 그거, 어떻게든 쓸 수 있겠어?”
 
“이 로켓 펀치 말입니까?”


“벌써 이름을 붙였어?……아무튼, 그걸로 저 나뭇가지를 잡을 수 있어, 없어?”


얀센이 내가 가리킨 나무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내가 네 뒤에 붙을게, 지금부터는 나무를 이용해서 이동하자.”


“원숭이처럼 말입니까?”


“비유는 좀 그렇지만, 정확해.”


나무 위에 있으면 붙들려 끌려 들어가는 것만은 피할 수 있다.

 

“셋, 하면 바로 뛰어.”


“네!”


“셋!”


“어……잠깐! 왜 하나가 아니라 셋입니까?!”


나는 얀센의 뒤에 매달렸고, 동시에 그가 나무를 향해 손을 발사했다.

 

“으윽……이, 일단 됐습니다!”


“머뭇거리지 말고 계속 움직여. 그리고 지금부터는 내 신호에 맞춰!”


“알겠습니다!”


샤크아가 우리를 뒤쫓아 오는 게 보였다.

 

“키-샤아아!”


미래 예지-

 

3초 뒤를 예지하여, 샤크아가 발사한 화살의 궤적을 본다.

 

“셋하면 오른쪽으로 가! 하나, 둘-”


“우오오오오!”


“셋!”


파악-!


화살이 아슬아슬하게 빗나가, 나무에 박혔다.

 

“잘 들어, 얀센! 상대는 마녀야!”


“그, 그게 어쨌다는 겁니까?”


“마녀의 마법에는 한계가 있어, 방금 전에 그런 마법을 썼으니 저 녀석도 곧 한계일 거야!”


얀센이 그제야 내 말뜻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마녀든, 마법을 사용할 때는 무언가를 소모하기 마련이다.

 

그게 수명이든, 감각이든- 무한정으로 마법을 난사하는 건 불가능하다.

 

아까처럼 주위를 전부 녹여버리는 마법을 두 번씩 쓸 수는 없으리라.

 

“이 근처에, 버려진 성당이 있어.”


“성당……입니까?”


“거기로 가자. 저 녀석을 쓰러트릴 방법이 떠올랐거든.”


“알겠습니다! 방향만 가르쳐주시면 됩니다!”


“왼쪽으로! 셋하면 틀어!”


우리는 샤크아의 공격을 피하면서, 버려진 성당으로 향했다.

 

“성가시게 도망치기는……!”


성당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얀센의 등 뒤에서 뛰어내렸다.

 

“저 마녀의 마법에는 약점이 있어. 알 것 같아, 얀센?”


“어……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간단해. 저 녀석이 완전히 지상으로 나오도록 유도하는 거야.”


그럴 수만 있다면, 생포하는 건 일도 아니다.

 

죽이는 게 훨씬 쉽지만- 저 마녀는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또 다른 실마리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더 정보를 모아야한다.

 

“지하로 내려가자. 그리고 얀센?”


“네?”


“……믿고 있으니까, 이번에야말로 멋진 모습 보여줘.”


“알……알겠습니다!”


성당의 지하로 내려간 뒤, 놈을 기다렸다.

 

여기는……어두침침하고 사방이 꽉 막혀있었다.

 

사람이 200명은 들어올 수 있을 정도로 넓었고, 책상이나 탁자의 잔해 따위가 있었지만

 

대체로 탁 트여있었다. 

 

녀석은 여기가 자신한테 유리한 곳이라고 인식할 테지만-

 

“……키샤샤샤……설마 자기 발로 무덤에 들어오다니, 완전 머저리잖아.”


잠시 후, 샤크아가 계단으로 내려오며 말했다.

 

“이런 밀폐된 장소가, 내게 얼마나 유리한지 모르는 거냐?”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뭐야?”


“모르면 가르쳐주는 수밖에……얀센?”


“네!”


“가자.”


우리는, 동시에 양옆으로 찢어져 달려갔다.

 

“흥, 고작 그 정도로 뭘 어쩌겠다는 거냐!?”


샤크아가 바닥으로 잠수했다-

 

동시에 나는, 미래 예지로 샤크아의 다음 행동을 예측했다.

 

“얀센! 셋하면, 나를 향해 쏴!”


“네!”


“셋!!”


푸슈우우우욱-!


샤크아가 튀어나온 순간, 얀센의 손이 놈의 어깨를 붙잡았다.

 

“어, 어떻게?!”


“끄집어내!”

 

“영-차!”


샤크아가, 낚싯줄에 걸린 물고기처럼 공중에 튀어 올랐다-

 

동시에, 나는 바닥에 손을 얹었다.

 

쩌어어어어억……!


“이, 이건……! 위험해, 바닥이!!”


여긴 ‘그물’ 속이다.

 

녀석은, 지금 완전히 그물에 걸린 물고기 신세다.

 

바닥 전체를 얼려버리면, 방금 전처럼 잠수하는 건 불가능하다.

 

얼음을 녹이고 잠수하기엔 시간이 부족할 테니까-

 

“컥!”

 

마녀가 얼음 바닥에 처박힌 뒤, 데굴데굴 굴렀다.

 

“제……젠장……바닥이……자, 잠수해야……!”


“어딜 도망치려고?”


“씨발!!”


투투투투퉁-!!

 

마녀가 연발 쇠뇌로 나를 쐈지만, 당연하게도 화살은 박히지 않았다.

 

“뭐, 뭐가 이렇게 튼튼한 거야!?”


“초월자한테 그런 장난감이 먹힐 거라고 생각했어?”


“이……!”


마녀가 물병을 꺼내 입에 털어 넣으려던 순간- 얀센이 손을 날렸다.

 

“어림없다!”


“무, 물약이!”
 
물약의 내용물이 뭔지는 몰라도, 그건 바닥에 엎질러졌다.

 

이제 저 녀석에게 남은 수는……없다.


“키……키시시……이거, 완전히 당해버렸잖아…….”


“얌전히 항복하면 좋겠는데.”


“키샤아아아아아-!!”


녀석이 내게 덤빈 순간-

 

나는 놈의 안면을 붙잡고-

 

콰아앙!!

 

……그대로 바닥에 꽂아버렸다.

 

“주, 죽인 겁니까?”


“아니. 그래도 당분간 이 상태일 거야.”


마녀는 혀를 길게 뺀 채 기절해버렸다.

 

“자, 그 녀석 챙겨. 남은 건……기술자들한테 맡기자고.”


“정말로……아가씨가 아니었으면, 완전 당했을 겁니다.”


“나야말로 네 덕분에 살았어. 또, 서로가 서로를 구해준 셈이네.”


“저는 아무것도-”
 
“구해줘서 고마워.”

 

얀센이 부끄러운 듯 고개를 푹 숙였다.

 

……하여간, 귀여운 남자라니까.

 

“돌아가자.”


“네.”


그리하여, 우리는 지영의 마녀- 샤크아를 제압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우리가 거기 돌아왔을 때-


성은, 그곳에 없었다.

 

 

 

 

 

112.

 

전염 마법.

 

그것은, 내가 아는 마녀의 마법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고, 잔혹하고, 무자비한 마법이다.

 

신체에 닿은 모든 것을 폭파시키는 ‘접촉 폭파’

 

신체를 폭파시켜 주위의 모든 걸 날려버리는 ‘자폭 마법’

 

그리고 제 3마법.

 

“전염 마법!!”


세크메트가 성을 만졌다.

 

동시에 불꽃이- 순식간에 성에 퍼져나갔다.

 

“세크메트!!”


“크아아아아아……!!”


화르르르륵-!


검붉은 불꽃이 돌도, 나무도, 땅도, 닿는 모든 걸 태워버린다.

 

전염의 마법.

 

이름 그대로 닿은 것을 불태우며, 폭파시키고, 그 여파에 닿은 걸 다시 폭파시키는 마법.

 

대상을 가리지 않고 그저 반복해서 파괴할 뿐인, 오직 대량 파괴에만 치중된 마법.

 

이건- 위험하다.

 

“위치 변환!”


단숨에 세크메트의 앞으로 날아가- 

 

스걱!


오른손을, 잘라냈다.

 

“손이 아니라……목을 노렸어야지……!!”


콰아아아앙-!!

 

나는 순간 팔을 올려, 폭발을 막았다.

 

그러나 너무 가까이서 당한 탓에- 검이 부러지고 온 몸이 박살났다.

 

“크으윽……!”


조금만 더, 위력이 셌다면, 방금 그걸로 죽었다.

 

다시 일어섰지만 다리가 후들거렸다. 충격 때문에 시야가 흔들린다.

 

“------”

젠장, 귀도 당했나. 세크메트의 목소리가 제대로 안 들린다.

 

“아------아파------아그아아아아-----”

 

연달아 마법을 썼으니, 당연한 것이다.

 

세크메트의 마법은 강력하지만- 그 대가는 참혹하다.

 

마법을 쓸 때마다 온 몸이 불타오르며, 그 상처는 쉽게 낫지 않는다.

 

심지어 마법을 쓰지 않는 동안에도 몸은 조금씩, 조금씩 불타오른다.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몸이 타오르는 고통을 느끼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약……약을……주사……으그으윽…….”


세크메트가 목에 주사기를 꽂았다.

 

진통제인가……저걸 써도 상처가 회복될 리는 없다.

 

나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젠장……조금만 더……하면……되는데……!”


“세크메트…….”


“일단, 후퇴하겠지만……다음엔, 반드시……죽여 버릴 거야…….”


“……다음에는……나야말로, 널 죽여주마.”


세크메트가 이상한 주문을 외우더니, 바닥에서 수 개의 팔이 돋아났다.

 

그리고 그 팔에 감싸였고- 이내, 사라져버렸다.

 

“불길이……크윽, 왕성을 지키지 못하다니……!”

 

콰앙- 콰아앙-!


불길과 폭발이 성을 무자비하게 파괴한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으으……우오오오……우오오오오오……!”


나의 어리석음과 나약함이, 그 아이의 저주와 증오가.

 

언제까지고 우리 둘의 발목을 붙잡고, 심연으로 끌어당긴다.

 

그것만을, 나는 줄곧 후회하고 있었다.

 

 

 

 

 

 

 

 

 

오늘의 사소한 설정

 

전염의 마법은 크게 3가지 마법으로 구분된다.

접촉 폭파

자폭

전염

이야기에서 설명됐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마법은 3번, 전염의 마법이다.

손에 닿은 모든 물체/생물을 불태우고 폭파시키며 그 여파에 휘말린 것을 다시

태우고 폭파시키며, 힘이 다하거나 근처에 태울 것이 없어질 때까지 파괴를 반복한다.

반전의 마법이 방어와 개인전에 특화된 마법이라면, 전염의 마법은 철저하게

대량 살상과 공격에만 치중된 마법이다. 

물론 그 위력에 걸맞게 항상 몸이 불타오르고 다시 재생되길 반복하는, 지옥과

같은 고통에 더불어 어마어마한 속도로 수명을 소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