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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버려진 대지에, 풀과 나무가 자라난다.


대지에 자라난 풀과 나무는 시간이 지나 숲을 이루고, 숲에는 비, 바람, 햇살, 달빛의 이름을 가진 손님들이 찾아온다.


바람은 개구쟁이같이 숲을 방문해서 초목 사이를 지나갈 때, 쪼개지고 쪼개져 나무와 풀들을 흔들리게 하였고. 그 흔들림에 의해 풀은 풀끼리, 나뭇잎은 나뭇잎끼리 맞부딪혀 '촤아아.' 라는 큰 소리를 만들어 낸 후에야, 바람이라는 이름을 가진 손님은 숲을 떠나간다.


비는 수줍게 조금씩 찾아와 '톡,토도독' 거리는 소리와 함께 숲의 생명수가 되어주기도 하고. 때론 용기를 내어 한번에 많이 오거나, 바람이라는 친구와 함께 찾아와 '촤아아.' 하는 소리와 함께 숲의 생명수를 나누어 주고 간다.


햇살은 아침부터 당당히 숲을 찾아와 숲의 광합성을 도와주며, 햇살이 초목에 닿아 반사되는 빛은, 눈에 보기 편한 반사광을 만들어 낸다.


달빛 역시 마찬가지로, 밤이 될때마다 당당하게 숲을 찾아와서, 조금더 고우나, 햇빛보단 조금 덜 밝은 반사광을 만들어준다.


그런 손님들이 지나가면, 숲은 다시 기다리기 시작한다. 소년이 돌아올 때만을 기다리며...

   

그렇게 몇 년이 지나갔을까. 오늘도 사람을 기다리는 이곳에 방문객이 찾아왔다.

   

사람에게 버려진 이 숲에, 다시 사람이 찾아온 것이다.

   

방문객은 젊은 청년이었으며, 숲은 그 청년을 반갑게 맞이했다. 그가 기다리던 소년이 자란 모습인 걸 알기에.

   

그 청년, 아니. 현자는 숲을 걷기 시작했다. 길이 없다면 만들며 걸어간지 5분이나 지났을까.

   

현자는 흙으로 둥글게 쌓아 올려진 봉우리 앞에서 멈춰 선다.

   

그리고, 잠시 그 봉우리를 바라본 후 말했다.

   

“미안해요, 다들. 제가 많이 늦었죠?”

   

현자는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 * * 

   

처음 게임 속 세상에 빙의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내가 다시 살아난 곳이, 내가 즐기던 게임 속 세상이라니.

   

게임 DLC를 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다 죽은 내가 이곳에서 다시 살아났다는 건. 이곳 역시 누군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뜻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상태창을 외면했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상태창이 이곳이 인위적인 세상이라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으며.

   

「퀘스트 발생.」

   

마왕 처치. 0/1

   

보상:■■■


이 퀘스트에 나오는 마왕은, 내버려둬도 용사파티가 처리해줄 거라 생각했다.

   

...난 상관없을 줄 알았다.

  

* * * 

   

'이름 없는 노래'.

   

이 노래는 참 이상하다.

   

미오소티스 마을에 언젠가부터 전해진 민요로서, 처음엔 가사와 곡 이름이 있었으나, 종이는 너무 비싸 구두(口頭)로만 전해지다 세월이 지나 가사와 곡명이 유실되었다고 전해지는 노래 라고 한다. 그래서, 이게 자유를 상징한다고 촌장님이 이상한 소리를 주장하기도 했다.

   

그런 곡을, 나는 기억해야만 했다.

   

-살 사람은 살아야지! 너 먼저 가거라!

   

라고 말하며 나를 마족들에게서 도망치게 해주신 나무꾼 잭 아저씨, 정말 착하고 근육이 크셨었는데.

   

-나중에 죽어서 찾아오거든, 약속한 대로 곡명 정해서 오너라!

 

그렇게 말씀하시며, 먼저 돌아가신 톰슨 촌장님.

   

그 외에도,

   

-어린놈이 죽는 거보단, 그래도 오래 살아본 어른이 죽는 게 더 낫지!

   

-꼭 살아남거라. 

   

-나중에, 술이라도 한 잔 들고 와!

   

그렇게 말씀하시며 아이들을 대피하고 쓰러지신, 잡화점 리안 아저씨, 폴 부인. 양치기 레오 아저씨, 대장장이 크리스 아저씨 등등...

   

아이들 몇 명을 대피시키고, 그 몇 명도 뒤쫓아온 마족들에 의해, 결국 나만 살아남았던 그날.

   

그래, 어쩌면 나는 게임 속 세상에 빙의했다는 이유로 그들을 조금 멀리하고, 내가 우월하다고 생각도 했다. 

   

…그런 철없는 존재에게, 그들은 기꺼이 나를 위해 희생한 거다.

   

...‘이름 없는 노래’를, 자신들만의 가사로 불러가면서.

   

그렇기에 나는 후회했고, 이젠 나만이 아는 이 노래를 계속 연주해갔다.

   

-이 노래는 말이여, 자유를 상징하는 노래여!

   

만취한 상태로 말씀하시던 촌장님의 헛소리는. 진실이 되었다.

   

촌장님의 말씀은, 언제나 옳아야만 하니깐.

   

게임속 지식과 상태창의 도움으로, 나는 현자가 되어 용사파티에 들어왔다.

   

마을의 복수를, 마왕을 잡아야만 했으니깐.

   

그들의 죽음 역시 원치 않았다.

   

고된 여정 때문에 인연이 깊어진, 소중한 사람이 되어버린 그들을 잃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소중한 이들을 위해서  목숨을 바쳤다.

   

그렇게 모든 일이 끝나고, 나는 다시, 미오소티스 마을이었던 곳으로 왔다. 나중에 꼭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며 만든 봉우리에 술 한 병을 부으며, 나는 말을 시작했다.

   

“드디어, 그들에게 복수했어요. 이제 편히 쉬세요...”

   

그리고. 정말 미안합니다.

   

그렇게 말하던 나는, 갑자기 잠이 몰려오기 시작함을 느꼈고.

   

-풀썩.

   

이윽고, 잠이 들었다.

   

* * * 

   

   

“으...음...”


여기는...?

   

“아이고, 이 녀석. 이제 정신이 드느냐?”

   

“...톰슨 촌장님? 어떻게 살아계신...!”

   

-빠악!

   

“야 이놈아! 멀쩡히 살아있는데 죽은 사람으로 만들지 마라!”

   

“아고고...”

   

뭐지...? 어째서? 분명 다들...

   

“임마, 축젯날에 기절하는 건 너밖에 없을 거다.”

   

“진...”

   

분명, 나를 살리고 죽어버린 내 친구가... 그리고 여긴... 미오소티스 마을?

   

‘아...’

   

악몽을 꾼 거구나, 다들 죽지 않았던 거였어.

   

그렇게 생각하던 중. 헛기침을 하여 이목을 집중시킨 촌장님이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자, 이제. 현우도 깨어났으니! 노래 부를 사람이 생겼군!”

   

그에 호응하는 환호 소리에, 나는 얼떨결에 리라를 꺼내 들었고.

   

‘그래, 그건 다 꿈이었어.’

   

꿈속에선, 마족의 침공으로 부르지 못했던 ‘이름 없는 노래’나 부르자며, 나는 연주를 시작했다.

   




   

노래 연주가 끝나자, 마을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가 퍼졌다.

   

“잘 부른다!”

   

“그러게, 내년에도 현우가 해야겠어!”

   

그렇게 말하는 마을 사람들의 말에, 나는 조금씩 이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현우?’

   

나는, 이곳에서 본명을 말한 적은 없었는데...?

   

그렇게, 의심은 의심을 낳았고, 조금씩 이상한 점과 진실을 구별해가기 시작했다.

   

‘내가 리라를 배운 적이 있었던가? 나는 배운 적이 없는데...?’

   

그렇게 생각을 해나가던 중, 나는 깨달았다.

   

‘지금 보는 것이 환상, 혹은 꿈.’

   

꿈이라 여긴 것이 현실이고, 현실이라 생각한 것이 꿈이었다.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누군가의 소리가 들려왔다.

   

“...깨달았니?”

   

“…촌장님, 이게 무슨...”

   

얼떨걸에 그렇게 물었고, 쉿 소리와 함께 촌장님은 다시 이야기 하셨다.



“신께서 우리를 너의 꿈에 잠시 깃들게 하셨다. 그러시고는, 여기가 꿈인 것을 깨달으면 이런 말을 전하라 하더구나.”

   

‘퀘스트 보상.’ 이라는 말에, 나는 복받쳐옴을 느끼면서 말했다.

   

“정말… 정말 촌장님과 마을 사람들인 거에요?”

   

“그럼, 나를 어떻게 완벽히 따라 해?”

   

“서운하네, 우린 현을 믿었는데. 죽고 나서야 이름이 현이 아니라 현우라는걸 알게 되고.”

   

“그래도, 마왕도 잡고 참 대단하네!”

   

“마왕 잡을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 좀 해봐!”

   

“아...”

   

그래, 지금 눈에 보이는 마을은 가짜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마을 사람들은 진짜구나. 

   

“좀 길어도 괜찮죠?”

   

“그리 말하며. 나는 이야기들을 풀기 시작했다.

   

* * * 

   

그렇게, 이야기를 계속하던 도중, 마을 사람들은 어째서인지 측은하게 나를 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테라, 일레시아, 스텔라가…”

   

“으음…”

   

"쟤는 이미 글렀구만..."

   

“…불쌍한, 아니. 부러운 새끼.”

   

“다들 왜 그러세요?”

   

그렇게 말하자, 마을 사람 중 과묵한 편이셨던 크리스 아저씨가 나에게 말씀하셨다.

   

“현우.”

   

“네, 크리스 아저씨.”

   

“여자 조심해라. 조만간 큰일이 있을 거다.”

   

“네?”

   

그렇게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어느새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어...? 다들 몸이?”

   

“아무래도,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거 같아. 

   

현우에게 할 말 남은 사람?”

   

라고 레오 아저씨가 말씀하셨고, 곧이어 톰슨 촌장님이 말씀하셨다.

   

“아 그래, 현우야. 그래서, ‘이름 없는 노래’의 곡명은 정했니?”

   

“…네. 곡명은…”

   

그렇게 말을 전하자마자, 꿈은 붕괴하기 시작했다.

   

* * * 

   

   

그렇게, 다시 깨어나 보니, 낮은 밤이 되어있었고. 나는 봉우리 앞 들판에서 누워있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자기 멋대로 뜬 시스템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만변(萬變)의 노래.

   

이 곡은 처음부터 곡명, 가사 없이 만들어졌으나, 다루는 이에 따라 곡이 만변(萬變)하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현자, ‘최현우’에 의해 이름 붙여짐.

    

 

“…한 번만 더 부를까.”

   

그리 말한 현자는, 리라를 꺼내들고 연주를 시작했다.

   

   

그날, 인적 드문 깊은 숲에서 아름다운 연주와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고. 초목은 바람이 불지도 않았거늘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촤아아 소리를 내었고, 보름달 또한 유난히 밝고 커다랬다.

   

   

여름이라기엔 조금 지난, 가을이었다.

   

   

-현자의 노래, 만변의 노래. 끝.

   

* * * 

   

미오소티스(Myosotis), 물망초.


담편부터 진도 좀 나가봄... 


오탈자 지적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