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으니,

언제나 이웃이 그 주변에 있기 때문이다."

-논어 이인편 중에서-


사람이란 너무도 빈약한 존재라서

조금의 거친 바람이 인생을 스치면

놀라서 휘청이곤 한다. 그 바람을

몰고 오는 것은 대개 남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 때문이니, 공동체에서 벗어나

살아갈 수 없다면 이것을 피할 수도 없다.


그러나

가끔 그런 사람이 있다.

말 한 마디를 해도 예쁘게 하는 사람.

근사할 것은 없지만 따듯한 밥을 내어주는 사람.

질책 대신에 그저 부드러이 안아주는 사람.

우리는 그런 사람을 덕이 있는 사람, 인자라 부른다.


얀붕이도 우리가 인자라 부르는 그런 사람이다.


"얀순아, 왜 밥 안 먹고 이러고 있어?"


육상부 출신에 늘씬하고 까무잡잡했던

얀순이는 숫기도 없고, 붙임살도 없어

그 반반한 모습으로도 남들과 쉽게 친해질 수

없었다. 또 혼자 밥 먹는 모습을 남이 본다면

자기를 헐뜯을 것 같다는 생각에 급식을

피하고 교실에서 혼자 웅크려 있던 것이었다.


"나?... 아냐, 안 먹어도 돼."


남이 오랜만에 말을 걸어준 것에

사뭇 놀라기는 했지만, 더 이어 나갈 수

없었기에 단답으로 끝내려 했다.

그런데 그때


"에이~ 운동하는 사람이 밥 거르고

그럼 안돼."


라 말하며 얀붕이는 그녀의 팔을 살포시

잡아 끌었다. 그 모든 것이 얀순이에겐

처음이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그렇게 신경써주고, 억지로라도 끼어주려 한 것이.

둘은 그렇게 같이 밥을 먹게 되었고,

얀붕이가 말했다.


"얀순아, 넌 나중에 모델 해도 되겠다."


"어?..어?!"


얀순이가 어버버거리자 얀붕이가

웃으며 말하기를


"아니~ 너 키도 크고, 비율도 좋고, 예..."


마지막 말은 조금 부끄러운지 뭉뚱그리곤


"아무튼, 타고 났는데 뭘"


제삼자, 그것도 이성이 그렇게 평가해주었다.

아무와도 어울리지 않았고, 그녀는 부모에게 조차

의존할 수 없었다. 그랬기에

자존감이 바닥이었던 그녀의 삶이었고,

남이 짜준 시나리오 대로만 사는 게 당연한 듯

싶었다. 그러나 얀붕이의 그 말이 있고

얀순이는 집에 있던 전신 거울 앞에 섰다.


'비율도 좋고... 예쁘다고? 타고 났어?'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얀붕이가

한 말을 기분 좋게 종일 곱씹었다.


......,


곧 변화는 시작됐다.

얀순이는 세안법, 화장법, 코디 등을

익혔다. 그렇게 그리고, 지우고, 입고, 벗고를

반복하고 나서, 또래 중에서도 반에서

외모로 잘 나가는 애들 반열에 설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모습으로

얀붕이의 앞에 다가 서서 말했다.


"얀붕아, 나... 그때 네 말 듣고 진로도 바꿨다?

나, 모델과 지원하려구..."


아무 화장도 걸치지 않은 모습 조차

흠잡을 곳이 없는 자연 미인인 그녀였지만,

그렇게 치장을 하고 나니 정말 환골탈태가

따로 없었다. 얀붕이가 그녀의 말에 무어라

답할 줄을 모르겠어서 말하기를


"에,,에이~ 뭘 나 때문에 모델과를 가~

그냥 네가 키도 크고, 그... 주, 준수 하니까

적성에 맞는 거지."


이렇게 대답하고 넘기려 했는데,

얀순이는 그냥 넘길 생각이 아녔나 보다.


"얀붕아, 너 얀챈 대학교 사범 대학으로

간다며? 나, 너 거기로 간다는 거 듣고 나도

그쪽 모델학과로 넣으려 하는데..."


말 끝을 흐리는 그녀였지만, 그녀는 베시시

웃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예전에 그녀의 웃음엔

순수함과 풋풋함이 있었다면, 이제는 이유 모를

살짝의 광기가 보여 그 매혹적인 모습에서

섬뜩함이 조금 느껴졌다. 얀붕이가 그 모순적인

모습과, 상황을 정리하려 머리를 굴리던 그때,

둘의 사이에 족쇄를 채우는 그녀의 한 마디.


"그리고 얀붕아, 나... 너, 좋아해."


가뜩이나 말주변 없는 여자의

급한듯 보채는 목소리.

171cm 장신에, 매혹적인 모습인

얀순이가 마치 반전 매력이라도 되는냥

더듬거리지만, 거절은 용납 안하겠다는

목소리로 밀어 붙이자 뭐, 사춘기 사나이

얀붕이, 넘어갈 수 밖에 없었다.


......,


그 날 이후 둘은 주변 친구들의 관심을

한 눈에 받았다. 특히, 항상 얀붕이 품에

달라 붙어있는 얀순이 때문에라도 더 말이다.


그의 품에서 한 시도 떠나지 않으며,

그를 매만지던 얀순이가 물었다.


"얀붕아, 너 교사 되면...

나 챙겨준 것처럼 다른 애들 챙겨 주면 안돼, 알았어?"


얀붕이가 되물었다.


"에이... 선생님이 되면 당연히 내 학급 학생들은

책임지고 잘 보살펴야지, 그게 뭔 말이야?"


그러자 얀순이는 시선 조차 돌리지 않고,

그의 옷깃을 잡아 끌며 말했다.


"너는 이제 내 건데... 니가 잘 해준다고

어린 년들이 너한테 껄떡대면... 내가

못 참을 것 같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