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지금 내가 건네는 핸드선풍기도 못쓰는 이유가 그거라고?"


친구가 어이가 없다는 듯 카페에 테이블에 조그마한 핸드 선풍기를 내게 주려다가 내려놓았다.


"응. 이거 쓰면 바람 폈다고 선풍기가 작동을 안 해주더라. 우리 집은 에어컨도 없는데 말이지.."


나는 한숨을 쉬었다.


"아니 진짜 농담 아니고 너 더위먹었냐?

어떻게 선풍기가 집착을 하냐?"


내 부랄친구인 동훈은 날 미친놈 취급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 차라리 미친 거면 좋겠다.

자고 일어나면 코드로 사지가 묶여있었는데 겨우 도망쳐나온 거야."


"큭큭, 꼴값을 떤다.. 어?"


나는 스마트폰을 켜서 동훈에게 한 영상을 보여줬다.


"뭐야 저거. 왜 움직여?"


몰래 캠 카메라로 우리 집 거실을 찍은 동영상이었다.


"까딱하다간 내 정조가 위험할 뻔했다고."


위잉 위잉 소리를 내며 나의 몸을 자신의 코드로 꽁꽁 묶곤, 내 위에 올라탄 선풍기가 보였다.


[으아아아악!!!]


이상함을 눈치챈 영상 속 과거의 내가, 비명을 질렀다.


그 선풍기는 고정이 되었다가, 내가 움직이는 시선을 향해 무섭게도 회전했다. 마치 저주받은 인형과도 같았다.


그리고 영상은 끊겼다.


"이거, 저주받은 거냐..? 누가 봐도 합성이 아닌 것 같은데?"


동훈이 벌벌 떨며, 내게 눈을 올려다보았다.


"아니. 내가 너무 로맨틱했나 봐.. 시이벌.."


나는 자책감에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너가 무슨 얼어 죽을 로맨스야."


"선풍기가 회전하고 있을 때,

그걸 붙잡고 얼굴로 붙인 다음,

목소리 깔고 로멘스 남주 톤으로 [나만 봐라봐.] 한 적이 있었거든?"


"선풍기의 중앙부분만 홍조처럼 붉게 변하더라.

그다음부터 이상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어.

그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갑자기 일 끝나고 오면 저녁밥이 차려져 있거나, 청소되어있거나, 최근에는 선풍기 위에 내 옷이 올려져 있기 시작했어.."


"그리고 이거."


나는 가져온 배낭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남심을 저격하는 선풍기 악세사리>...?

와 시발 이건 진짜 이상성욕인데?"


친구가 책의 내용을 훑어보더니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거기서 웨딩드레스, 면사포, 수영복 파레오에 빨간색으로 동그라미 쳐져 있는 거 밑에 메모 좀 볼래?"


안녕하세요. 나쁜 남자 주인님.

저는 당신의 하나뿐인 선풍기입니다.

여름이 벌써 5번이나 지나가 저희가 많이 가까워 진 건 알았지만..

나만 바라봐. 하는 주인님의 거친 남성미에 마음이 홀라당 뺏겨버렸어요.

다소 거친 방법을 쓰더라도 이해해주실 거죠.

저는 이제 회전하는 법을 모르는 주인님만의 고정형 선풍기니까요..


"'...이 마음을 허락해주시겠어요?' 이거 누가봐도.."


"여자 글씨체지. 씻팔..."


나와 친구는 소름이 끼쳤다.


"이거 좆된거 아니냐?"


"그치."


[나만 바라봐.]

라고 말하는 로멘스 남주 대사를 회전하는 선풍기에게 친 참혹한 대가는,

자신의 집 선풍기를 얀데레로 만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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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기 얀데레!

내가 뭘 쓴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