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던 어느 날, 성호는 울적한 마음을 숨기고 꽃집의 아가씨, 하나에게 한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왜 던졌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그 날은 꼭 했어야만 하는 질문이었다. 해바라기를 꺾고 있던 하나는 웃으면서 맞아줬었다.


 “[프레시아 꽃집]에서 ‘프레시아’의 의미 말이죠? 성호 씨가 꽃말 말고 다른 걸 물어본 건 꽃집을 물려받고 나선 거의 처음이네요.”


 “프레시아가 무슨 의미입니까? 여기 있던 꽃집은 원래 더 촌스러운 이름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 여자, 신하나의 정체를 아직 성호는 파악하지 못 했다. 요 1년 간 성호는 하나가 이 세계에 존재해서는 안 될 변칙적인 존재라는 것만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경계하는 눈빛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웃으며 설명해준다.


 “후후, 아빠의 작명 센스가 형편없기는 했죠. [불숨 꽃집]이라니 성호 씨도 웃겼나요? 어린 저도 잘 이해가 잘 안 갔답니다.”


 “아빠? [불숨]의 그 영감님이 하나 씨의 아버지였습니까?”


 원래 [프레시아 꽃집] 자리에 위치하던 건 [불숨 꽃집]이라는 이름이 촌스러운 꽃집이었다. 성호는 교원 임용에 합격하고 나서 고향인 I시로 돌아온 케이스. 

 어릴 적 [불숨 꽃집]에서 망토를 입은 괴팍한 차림새의 노인네가 꽃에 물주는 모습은 몇 번 목격했다. 설마 하나가 그의 딸인걸까.


 “네, ‘불숨’은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식물이었죠. 세상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도 있는 식물이라고 알고 있어요. 결과적으로는 촌스러운 이름이 되었지만요.”


 불숨, 세상 어디에도 있고 세상 어디에도 없는 식물이라, 철학적인 말이지만, 식물 따위에게 별 생각 없다. 그녀에 대해 새로운 정보를 얻었다는 것이 물결처럼 가슴을 때린다. 반격의 기회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나이차가 많이 나는 군요.”


 “그렇죠. 아빠가 50살이 넘어서 제가 태어났으니까요. 뭐, 그 부모님은 이제 세상에 없지만요.”


 해바라기 꺾는 걸 멈추고 이번에는 단련된 손놀림으로 리본을 묶는다. 새하얀 손, 저 손으로 나에 대한 수많은 괴롭힘을 해왔겠지. 구역질이 나올 것 같지만 참는다. 서투른 미소를 짓고 다시 한 번 물어본다.


 “그래서, 프레시아의 뜻은 뭔가요?”


 “정해져 있지 않아요.”


 “그게 무슨 말이죠?”


 황당한 대답이 돌아왔다. [프레시아 꽃집]에서 ‘프레시아’의 의미가 정해져 있지 않다니. 성호로서는 짐작도 할 수 없다. 멋들어지게 만든 고유명사라는 소리일까? 그럴듯한 대답은 하나에게서 나왔다.


 “프레시아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 들이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거 에요.”


 “이해가 잘 안가네요.”


 “가장 일반적인 해석은 꽃 프리지아(Phrygia)를 비튼 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성호 씨는 프리지아를 아시나요?”


 꽂혀 있던 수많은 꽃 중 노란 빛깔의 꽃을 하나 꺼내드는 하나. 둥글둥글한 노란 꽃잎과 멋진 모양의 암술. 정확한 이름은 모르지만, 조화로 자주 보곤 하는 예쁜 꽃이다. 


 “본 적은 있습니다.”


 “프리지아는 말이죠. 온갖 좋은 꽃말을 다 가지고 있어요. 천진난만, 순결, 청함…. 하지만, 가장 유명한 꽃말은 ‘당신의 새 출발을 응원합니다!’ 겠죠. 사회 초년생들에게 드리는 꽃다발 주문이 들어오면 무조건 넣는답니다.”


 좋은 의미다. [프레시아 꽃집]의 ‘프레시아’가 정말로 프리지어에서 따온 거면 이 여자에게도 아직 갱생의 여지가 있다. 그가 모르는 사이에 목구멍 사이를 넘어가는 침. 너무 긴장한 게 분명하다.


 “프리지아, 잘 알아두겠습니다.”


 “두 번째 해석은 라플레시아겠네요. 라플레시아, 선생님처럼 똑똑한 분은 알고 계시지 않나요.”


 똑똑해서 안 다기 보다는 게임이나 대중 매체에 자주 나오는 식물이다. 라플레시아(Rafflesia), 몬스터로 자주 나오는 식물. 이름은 알지만 정확히는 알지 못 한다.


 “이름과 대강의 생김새는 압니다만, 역시 자세히는 모르겠네요.”


 “아하하, 세상에서 가장 큰 꽃이에요. 일주일도 안 되어서 져버리는 꽃.”


 잠깐만요, 하나는 성호가 말릴 새도 없이 영어로 된 두꺼운 잡지를 어디선가 가져와 펼친다. 징그러울 정도로 큰 붉은 꽃잎에는 표면이 종기처럼 울퉁불퉁 해져있다. 뭐가 재밌는 지 웃는 하나. 


 “냄새가 어떨 것 같아요? 시체가 썩는 냄새가 솔솔 풍긴다고 해요. 게다가 기생식물이라 라플레시아가 기생한 식물은 끔찍할 정도로 약해지죠.”


 불길한 식물이다. 이 여자가 라플레시아만큼은 우리 집 현관에 놔두지 않기를. 혹시나 하는 마음의 라플레시아의 꽃말을 물어본다. 


 “이런 꽃도 설마 꽃말이 있는 건 아니겠죠?”


 “있어요. 꽃말은 거대한 미와 순결. 징그러운 생김새와는 어울리지는 않지만요.”


 아무래도 좋을 얘기다. 꽃말로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확인 차 물어봤을 뿐이다. ‘거대한 미와 순결’로 사람을 곤경에 빠트리지는 않겠지.


 “두 의미가 끝이면 가 보겠습니다.”


 “하나 더 있어요. 성호 씨에게만큼은 알려드리고 싶네요.”


 나에게 알려주고 싶다? 그는 확신했다. 이 쪽이 진짜 의미라고. 프레지어와 라플레시아는 일반 손님들에게 둘러대는 구석일 뿐이다. 


 “라프라스의 악마(Laplace's demon)에서 프라스를 프레시아로 바꿨단 해석이요. 가장 좋아하는 해석이랍니다.”


 “뭐…?”


 식물이 아니라, 과학에서 심심치 않게 존재가 언급되는 존재. 프랑스의 수학자인 라프라스가 제시한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측하는 악마. 당황해서 높임말까지 잊어 버렸다. 개의치 않고 얕게 웃으며 물어보는 하나. 


 “불숨과 라프라스의 악마, 성호 씨는 뭐가 더 마음에 든 걸까요?”


 “모르겠습니다.”


 “저는 성호 씨를 항상 보고 있어요.”


 나긋나긋한 그 한 마디를 듣고 나서는 더 이상 [프레시아 꽃집]에서 머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다시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저 여자는 마녀(魔女)다. 이 현대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마녀. 


 그리고, 마녀는 나를 좋아한다. 끔찍하게도.


***


 성호의 책상을 배경으로 키위꽃이 흐드러지게 흩어져있던 주가 지나고, 그 다음 주. 아침 6시에 잠시 문 앞을 확인했었다. 배달 온 끔찍한 꽃들을 찢어 버리는 게 그의 낙이기 때문. 

 오늘은 안 왔다는 사실에 깊은 안도를 느끼며 출근 준비를 하고 다시 나오자, 그 시간 사이에 두 꽃이 살포시 배달 왔다.


 카네이션,


 오늘 5월 8일에 잘 맞는 꽃. 흔히 카네이션하면 생각하는 붉은 색이 아니다. 흰 색, 노란 색. 


 인터넷에서 쳐도 나오는 꽃말이겠지만, 이미 그가 직접 해결해보겠다는 의지는 꺾인 지 오래다. 하나를 보는 것이 죽을 만큼 싫지만, 마법이라도 걸린 것 마냥 [프레시아 꽃집]을 향하게 되는 것이었다. 


 정류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위치한 [프레시아 꽃집], 내키지 않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들어선다. 성호의 속도 모르고 기분이 업 되어 있는 그녀. 


 “어서 오세요! 성호 씨네요. 오늘 어버이날은 대목이에요. 성호 씨도 부모님에게 드릴 거 사가겠어요?”


 “어제 이미 학교 주변 꽃집에서 배달시켰습니다. 시골로 내려가셨거든요.”


 그 이유도 있지만, 하나에게 돈을 주고 싶은 마음은 없다. 


 “앗, 많이 깎아 드렸을 텐데, 아쉬워요. 선생님, 오늘도 꽃말 때문인가요?”


 “네, 이번엔 뭔지는 알겠네요. 노란 카네이션과 흰 카네이션, 두 송이입니다.”


 손으로 망가뜨려 엉망이 된 두 송이의 꽃을 보란 듯이 보여준다. 네 집착에 대한 내 대답은 항상 이거야.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하나. 대단한 철면피가 아닐 수 없다. 


 “누구에게 받은 건가요?”


 곤란하다는 얼굴. 본인이 보낸 꽃을 보고 저런 얼굴을 짓다니 항상 그 연기력에 감탄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평소대로 우연히 주은 꽃입니다.”


 “으음, 성호 씨, 빨간 카네이션을 왜 스승의 날, 어버이날 때 사랑하는 분들에게 주는 걸까요? 생각해 본 적은 없으시죠?”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 꽃말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만, 그 생각을 깨 부셔 준 건 하나의 상냥한 목소리였다. 


 “사실 큰 의미는 없답니다. 1907년 안나 자비스라는 여성이 5월의 둘 째 주, 일요일에 카네이션을 좋아하던 죽은 어머니를 추모하기 위해 듬뿍 바치기 시작한 걸 계기로 어머니의 날이 생기고, 한국에서 이 문화를 받아 들여 어버이날이나 스승의 날에 주고받게 된 거죠.”


 이 여자, 대학도 안 다니고 꽃집에 뛰어 들었지만 너무 박식하다. 빼어난 외모랑 함께 그녀가 마녀라고 의심하게 된 계기 중 하나다. 


 “그럼, 이번 건 꽃말하고 상관없겠군요.”


 “아뇨, 어버이날에 유독 붉은 카네이션은 주는 이유는 ‘건강 기원’의 꽃말이기 때문이에요. 분홍색은 ‘열렬히 사랑한다.’ 전자는 꼭 어버이날이 아니어도 어르신들에게 드리는 꽃다발에 , 후자는 구애를 위한 꽃다발에 부적처럼 섞어 준답니다, 후후.”


 그딴 건 알 바 아니야. 어서 이 곳에서 벗어나고 싶다. 재촉하듯이 노란색과 흰 색의 꽃말, 물어본다. 


 “노란 색과 흰 색은? 무슨 의미죠?”


 “으음, 거의 취급하지 않아요. 성호 씨에게 이걸 준 사람이 있다면 짓궂은 사람이네요.”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 하나. 무슨 미소일까? 그래, 모나리자의 미소다. 미묘하고도 신비로운 웃음. 잠시 머리를 쓰다듬고는 입을 연다. 


 “노란 색 카네이션은 ‘경멸’,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 이 사람이 정말 싫다. 이런 의미에요. 흰 카네이션은 우리나라로 치면 흰 국화와 용도가 같거든요. 장례식장에 ‘죽음에 대한 추모’를 위해 사용하는 꽃. 꽃말도 ‘추모’에요.”


 “경멸과 죽음에 대한 추모….”


 “이번 꽃점 풀이는 빗나갔으면 좋겠네요. 성호 씨와 이야기하는 게 저의 제일 큰 기쁨이니까요.”


 조용히, 사근사근하게 말한다. 그는 입술을 깨문다. 경멸과 추모, 이 여자, 기어코 나를 죽이려는 걸까? 학교에서 평소보다 더 심한 따돌림을 받고 자살하는 이미지가 성호의 눈앞에서 그려진다. 


 죽기 전에 이 여자를 철저히 유린이라도….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아니, 아직은 이르다. 끓어오르는 화를 꾹 참고 직접적으로 악의를 담아, 말했다. 


 “하나 씨는 내가 경멸 받거나 죽는 걸 원하시는 군요. 고려해보겠습니다.”


 “아뇨, 이 순간이 계속 되었으면 좋겠어요. 좀 더 다가가고 싶지만, 성호 씨는 곁을 주지 않네요. 성호 씨가 경멸받거나 죽으면, 저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을 거 에요.”


 그런 년이 불길한 꽃들을 보내? 하지만, 눈물까지 살짝 맺힌 하나에게 더 이상의 살의는 들지 않는다. 어쩌면, 그녀가 어렸을 적 자주 상상하곤 했던 이상형과 상당히 닮아서 일지도 모르겠다. 뒤돌아선 성호는 문을 열기 직전, 혼잣말 하듯이 하나에게 물어본다. 


 “왜 나지?”


 “우린 운명이니까요.”


 “못 들은 걸로 하지. 나는 네가 싫어.”


 “알아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오늘 하루,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경멸’과 ‘죽음에 대한 추모’가 이루어진다. 아직은 죽고 싶지 않다. 그것도 하나에게 살해되고 싶지는 않다. 


 그의 머릿속을 침식하는, 불길하고 음습한 생각을 가지고, 성호는 그가 교편을 잡고 있는 연화초로 향하는 마을버스에 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