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식사 후, 나는 진미에게 완전히 쥐어짜였다.

아랫도리 안에 있던 것들이 다 빠져나간 기분이다.

몇 번의 발사 후, 진미는 만족했는지 나를 꼭 껴안고 다시 잠에 들었다.

나도 피곤해서 미칠 것 같지만, 이 미친년이 내 옆에 붙어있는 이상

편하게 잠이나 자고 있을 순 없었다. 여기서 빠져 나가야 돼!

다행히도 지금은 결박이 풀려있다.



눈을 뜬 채로 그대로 누워있은 지 얼마나 됐을까...

한 시간? 두 시간?

나는 내 옆에 찰싹 붙어서 자고있는 진미를 흘끔 처다보았다.

이쯤 됐으면 살짝 움직여도 안 깨겠지...?

"진미야...?"

낮은 소리로 진미의 이름을 불러봤다.

... 미동도 하지 않는다. 좋아. 이제 움직여보자.

내 몸에 얹어놓은 팔부터 살짝 내려놓고, 천천히 옆으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 됐어! 휴우. 깨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럼 이제 핸드폰을...


...!


철퍼덕-


윽... 다리에 힘이 없어...

벽을 짚고 조심스레 일어나보았다.

다리가 계속 후들거리는게 젤리 같구만.

감각이 돌아올때까지는 천천히 움직여야겠다...

오! 핸드폰이다.


뚜루루루루- 뚜루루루루-

"여보세요"

"지선 씨, 저에요"

"하민 씨! 카톡도 안 보시고... 무슨 일 있었어요?"

"아.. 그게 저.. 지선 씨.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요"

"네?"

"지금 제 집에 전여친이 저를 감금해놨어요"

"뭐, 뭐라구요?"

"믿기 힘들겠지만 사실이에요"

"그게 무슨..."

"아무튼 여기서 몰래 빠져 나가야겠어요"

"잠깐만요. 일단 경찰에 신고부터 하는게 낫지 않을까요?"

"지금 경찰이 와봤자 저 애가 거짓말하면 끝이에요. 요즘 세상에 경찰이 누구 말을 더 믿어 줄 것 같아요?"

"아... 하긴..."

"혹시 지금 시간 되면 이리로 차 좀 끌고 와주실 수 있나요?"

"네? 아, 시간 되죠"

"후우... 그러면 카톡으로 집 주소 보내드릴게요. 최대한 빨리 좀 와주세요"

"네..."

"고마워요"


띠링-


됐어. 이제 지선 씨가 올 때까지 진미만 어떻게든 깨우지만 않으면 돼.

하아... 그나저나... 이 후에는 어떻게 한담...

일단 이 동네에서 빠져 나가야지. 그리고 어디로?

진미가 알고 있는 곳은 안되니까... 본가는 안되고...

찬구네 집도 안되고... 흐음...

... 아, 진짜...! 도대체 어디로 가야 이 좆같은 상황을 피할 수 있을까!

...

아...! 중훈이 형네 집!

거기라면 진미가 절대 모르겠지.

그래... 염치불구하고 가봐야겠다. 일단 살고는 봐야지.

좋아. 갈 곳도 정해졌고... 옷이랑 지갑만 챙겨서 화장실에 짱박혀야지.



대충 옷방에서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대로 입었다.

쇼핑백에다가는 간단한 속옷이나 편하게 입을 옷들을 쑤셔넣었다.

됐어. 이제 지갑이... 아.


방 안을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진미는 아직까지 깊게 잠들어 있는 모양이다.

"후우우..."

소리가 나면 안돼. 절대 소리가 나선 안돼.

발소리가 나지 않도록 천천히 방 안에 들어갔다.

한 걸음.

한 걸음.

씨발... 소리내지 않고 움직이는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등 뒤에 식은 땀이 흘렀다.

보자... 내 지갑이... 아.


진미 바로 옆에 내 가죽 지갑이 있었다.


씨발... 닿을 거 같은데...

왠지 팔을 계속 뻗다간 진미한테 닿을 것 같다.

진미가 깨어나는 순간 나는 죽음이야...




<이해를 돕기 위한 그림>


한 쪽 팔로 침대를 잡아 지탱하고...

몸에 안 닿게 재빨리...!

됐다...!

휴우우... 안 일어난 것 같네.

좋아. 지갑에 카드랑 현금도 그대로 있어.

그러면 다시 화장실로...


"흐으음. 그거 가지고 어디로 가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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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도 않았네..."

하민 씨가 보내준 주소로 도착하자마자 카톡을 보냈지만,

10분 째 읽지도 않은 상태다.

... 무슨 일 생긴거 아니야?

혹시 모르니까 도어락 비밀번호도 알려주긴 했는데...

하아... 한 번 들어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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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 우리 귀여운 하민이- 내가 설마 모를거라고 생각했어?"

"자, 자고 있던거 아니였어...?"

"내가 그렇게 허술한 사람이야? 하민아?"

진미는 나를 바라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자는 척하면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구... 그런데 슬쩍 빠져나가는 거 있지?"

"재밌어서 어디까지 하나 놔뒀더니... 거의 성공할 뻔 했네?"


딱- 딱- 따닥-

나도 모르게 턱이 떨려 이빨이 부딪혔다.

이젠 끝났어. 난 진짜 죽었다.


"야"


갑자기 복부에서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다.

"크헉!"

아프다. 존나게 아프다.

씨발... 어디서 이런 파워가 나오는거야...

"감히 날 떠나겠다고? 내가 다시 돌아왔잖아... 용서도 빌었잖아!"

다시 한번 진미의 주먹이 내 명치를 향해 날아왔다.

"끄허억! 잠깐만... 진미야, 내가 잘못ㅎ.."

"우리 하민이, 기절하면 다시 묶어놔야 도망갈 생각을 못하겠지? 그치?"

짝- 짝- 짝-

진미는 나의 뺨을 수차례 쳤다. 목이 돌아갈 것만 같은 파워다.

정신이 점점 혼미해진다...

"너... 절대 나한테서 벗어날 순 ㅇ..."


쿠당탕-


진미가 갑자기 옆으로 굴러 떨어져 나갔다.

뭐야? 누구야?


"하민 씨 괜찮아요? 꼴이 이게 뭐야?"

"지... 지선 씨..."

아아- 씨발. 역시 그냥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일단 병원으로 가야... 꺄악!"


다시 일어난 진미가 지선 씨에게 돌진해왔다.

"넌 뭐야, 이 썅년아!"

진미가 지선 씨의 멱살을 잡고 마구 흔들어댔다.

"이 미친년이!"

지선 씨도 진미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팔을 막 휘둘렀다.


"윽!"


진미의 얼굴에 상처가 나 피가 난다.

아무래도 손톱에 긁힌 것 같다.


"허, 이런 개같은 년이..."

진미가 조리대 위에 놓인 식칼을 잡아들었다.

어! 안돼!

"죽어!"

진미는 식칼을 들이밀며 지선 씨에게 달려들었다.


와장창-!


화분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진미가 바닥에 쓰러졌다.

흙이 온 사방으로 튀었다.


"헉- 헉- 헉-"

"하민 씨..."

"...괜찮아요?"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라도 막지 않았으면 지선 씨는 그대로 죽었을 것이다.

"으으..."

긴장이 풀려서인지 지선 씨는 바닥에 엎어지고 말았다.

"지선 씨!"

"아.. 괜찮아요.. 일단 경찰에 신고부터 먼저..."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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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가 마지막임